# 652
귀환 마교관
652화(외전 25)
사비란은 네 명의 사부로부터 배운 무공만을 사용했다.
섬광벽력검, 패룡단천검, 흑천도법, 거신혈패도….
모두 목단화와 연우경, 석탄강과 유송령으로부터 배운 무공들이었다.
그 검법과 도법을 서로 조합해서 마치 새로운 무공처럼 보이도록 했다.
일부러 그렇게 한 것은 아니다.
실제 그녀는 여러 사부들을 사사하다보니, 그녀의 무공이 자연스럽게 그리 발전된 것이다.
청출어람이 어떻게 일어나는 것인가?
간단하다.
과거의 으뜸을 현재의 유연함으로 흡수할 때, 어떠한 변화가 일어난다.
그리고 그 변화는 과거의 으뜸을 뛰어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기성은 언제나 경직되어 있다.
최고 수준에 이르러 있을수록 더욱 그렇다.
그간 쌓고 이룬 것을 지켜야 할 것이기에.
허나, 이제 시작하는 자는 늘 도전하는 마음으로 임하기 마련이다.
새로운 것을 추구하고, 그 새로운 것이 곧 힘이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다 보니 자연히 새로 익힌 것들을 모두 흡수하려고 노력하면서 자연스럽게 섞여 간다.
그 어떤 제자도 스승과 완벽하게 똑같을 수는 없다.
타고난 기질도 있을 것이며, 살아온 환경도 다를 것이기에.
그래서 모든 무공이 시간이 지나면 대물림을 하며 발전도 하고, 퇴보도 하는 것이다.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무공이 발전할 경우에는 기존의 방식에서 뭔가가 더해지면서 변했을 때다.
결국 융합이다.
사실, 보수적인 성격이 강한 정파 무림에서는 이러한 발상을 선호하진 않았다.
최고라 칭할 만한 무공은 언제나 숨겨지고 감춰졌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융합이 일어나기 힘들다.
이런 사고방식이 깨진 것은 마족대전이 일어난 직후였다.
그때 무림은 정사의 벽을 허물었고, 모두가 한마음으로 마족에게 대항했다.
강맹한 적이 나타나니 인간들은 자연히 하나가 되었다.
이때 가장 왕성한 접목이 일어났다.
특히 마족대전에서 승리한 이후에는 정사가 완벽하게 섞이면서 무공의 발전이 급속도로 이루어졌다.
정파는 고리타분한 방식에서 조금 벗어나 유연한 사고를 지니게 되었으며, 좀 더 강맹하면서도 효율적인 무공을 추구하게 됐다.
사파는 요행보다는 건실한 기본기의 중요성을 의식하면서 근본을 차근차근 다져 갔다.
허나, 영원한 평화는 없는 법이던가?
어느 틈엔가 정사 간의 분열이 조금씩 생겨났고, 이러한 무공의 발전도 조금씩 정체 현상이 나타나고 있었다.
물론 아직까지는 정사의 구분이 모호한 지경이었지만, 이런 평화가 지속된다면 머지않아 강호는 다시 이기심으로 뭉친 인간들이 자발적으로 혼란을 불러 올 것이었다.
절대 그러지 않을 것 같았던 섬검목가와 흑천도가가 그랬듯이.
지금 이 순간, 섬검목가와 흑천도가의 무인들은 다소 상기된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지금까지 그들이 익혀 온 무공의 한계가 깨지는 것을 눈앞에서 본 것이다.
생각이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그들은 ‘너희보단 우리의 무공이 훨씬 뛰어나다’라는 자존심으로 일관했다.
서로를 보면서 어떤 무공이 더 나은가에 대한 끊임없는 도발만 있었을 뿐이다.
하지만 그들은 이제 달리 생각했다.
두 가문의 무공이 융화되면 더욱 강맹해진다!
어찌 보면 단순한 원리인 것 같지만, 그들에게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물론 연우경과 목단화, 석탄강과 유송령도 소속 무인들의 동요를 느끼고 있었다.
연우경이 헛기침을 하며 말했다.
“제자의 발전만큼이나 스승을 기쁘게 하는 건 없을 터. 청출어람이구나.”
“과찬이십니다. 모두 연 사부님께 배운 겁니다.”
“허허, 나는 패룡단천검을 가르쳐 주었지만, 그렇게 다른 무공과 조화를 이루는 건 알려 준 적이 없다.”
“나 또한 너에게 흑천도법을 알려 주었지, 다른 무공과 혼용하는 건 말해 준 적이 없다.”
석탄강이 연우경의 말을 이었다.
사비란이 희미하게 웃으며 말했다.
“물론, 사부님들은 그러셨지요.”
그도 그럴 것이 그 당시에도 두 가문은 서로 원수처럼 지냈으니까.
“아무리 여러 명의 사부로부터 가르침을 받았다지만, 이처럼 자연스럽게 녹여낼 줄은 몰랐구나. 흡사 다른 무공이라고 생각했으니.”
“사실, 네가 우리에게 왜 이런 식으로 보여준 건지도 알 것 같구나. 하지만 그건 너니까 가능하다는 생각도 든다. 네 사부로서 이런 말을 하는 게 조금 우습게 들리겠지만, 너는 다른 누구도 아닌 그분의 자식이니까.”
목단화의 말을 유송령이 이었다.
사비란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빠 말씀이군요.”
“그래, 어떻게 성격도 다른 그 무공들을 서로 조화롭게 펼칠 수 있었니? 궁주님이 가르친 거니?”
유송령이 다시 묻자, 사비란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맞아요. 사실 여러 사부님으로부터 가르침을 받다 보니, 저 또한 자연스럽게 무공이 섞이는 중이에요. 알게 모르게. 하지만 이것만큼 자연스럽지는 않죠.”
“그 말은 특히 본가와 섬검목가의 무공만 자연스럽게 조화를 이루고 있다는 뜻이냐?”
“네. 아빠가 그것만은 딱 집어서 가르쳐 주셨으니까요.”
“그랬구나. 한데 왜 그것만….”
그러자 이번에는 사비란이 오히려 의아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정말 모르시겠어요?”
“무슨 말이냐?”
“아빠 말씀으로는… 이 무공의 조화를 이룬 건 네 분이라고 들었습니다.”
그러자 네 사람이 동시에 눈을 휘둥그레 뜨고는 반문했다.
“우리? 우리라고? 우리가?”
“네. 분명 그렇게 들었어요.”
사비란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을 이었다.
“아빤 없는 방식을 제게 알려 주신 게 아니었어요. 이런 식으로 조화를 이룰 수 있다는 것도 네 분이 직접 아빠한테 말했다고 들었어요.”
연우경과 목단화, 석탄강과 유송령이 서로를 멀뚱멀뚱 쳐다보았다.
그들의 머릿속에는 같은 생각이 떠오르고 있었다.
‘우리가 저런 조화를 이룬 적이 있다고? 왜? 언제?’
전혀 기억나지 않았다.
만약 그랬다면, 벌써 삼십 년 전의 일일 것이다.
마족대전이 한창 벌어질 때였을 테니까.
그래, 기억을 되새기기에는 너무 오래 전이긴 하다.
그러면서도 동시에 드는 생각.
‘우리가 저만큼 강했구나.’
확실히 평화에 찌든 요즘에 비한다면, 전성기 때 자신들은 매우 강했다.
무공은 나이에 비례하면서 발전하기 마련인데, 그때 평생의 발전을 다 이룬 것만 같았다.
그 이후로는 거의 정체기였으니까.
한데 이제 보니, 정체가 아니라 퇴보가 아닌가?
사비란이 또박또박 말을 이어 갔다.
“거짓말은 아닙니다. 제가 이런 강맹한 무공을 사용하고, 또 강해질 수 있었던 것은 분명히 네 사부님이 계셨기 때문입니다. 뿐만 아니라, 다른 사부님들도 계셨기 때문이죠. 그런데 참 안타깝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저만큼… 아니, 저보다 더 아끼고 사랑할 자녀들에게 이런 무공을 전수해 주실 수 없는 상황이라는 것이. 이런 좋은 무공을 저만 익힌다는 게… 아쉽습니다.”
“…….”
네 명의 사부들은 아무 말이 없었다.
사비란의 말이 조곤조곤 이어졌다.
“연무기행을 하는 것은 드넓은 강호로 나가서 많은 것을 보고 듣고 겪으며 성장하기 위한 것이라고 들었습니다. 한데 바로 근처의 훌륭한 환경조차도 보지 않고 듣지 않고 겪을 수가 없다면, 연무기행이 무슨 소용이겠습니까? 열린 마음으로 강호에 나서지 않는다면, 오히려 그건 독행이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전….”
“……?”
“…두 사람 모두 데려가지 않으려고 합니다.”
“……!”
네 명의 사부가 당황한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보았다.
양가의 무인들 역시 술렁거리면서 서로를 보았다.
한쪽에서 지켜보던 단리혁은 미간을 팍 찡그리고는 ‘저럴 거면 비무는 왜 했느냐’는 표정으로 투덜거렸고, 옹수령은 양손을 꽉 쥐고는 놀란 표정을 지었다.
다만, 등가휘만 보일 듯 말 듯 미소를 지었다.
‘하여튼 짓궂으시다니까.’
사비란이 놀란 표정을 한 네 사람을 둘러보며 말을 이었다.
“물론, 네 분이 허락하신다면 두 사람도 열린 마음으로 이번 임무에 임할 테니 데려가려고 합니다. 하지만 그게 아니라면… 역시 없던 일로 하는 게 좋겠어요.”
말을 마친 사비란이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네 사람을 보았다.
결정을 내리라는 뜻이었다.
그녀뿐만 아니라, 주변의 무인들 역시 네 사람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 광경을 보면서 담진우가 희미하게 웃었다.
‘이번만큼은 단주님이 맞았군요.’
처음 사비란이 이 계획을 말했을 때, 그는 이해를 하지 못했다.
“왜? 비무까지 하시려고 합니까?”
“그리 간단하게 풀릴 관계가 아닐 테니까.”
“하지만 이분들은 아주 돈독한 사이였잖아요. 자녀가 납치당하고 공공의 적이 생기고, 함께 싸우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화해의 물꼬를 틀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요.”
“아니, 그걸로 부족할 거야. 물론, 그 작전은 매우 훌륭해. 하지만 네 말대로 이분들은 아주 돈독했어. 그런데 그것마저 깰 만큼 서로가 멀어진 거야. 불신의 벽이 그만큼이나 두껍다는 거지.”
“하면… 비무의 목적은 뭡니까?”
“그건 바로….”
“일차로 가주들 사이에 쌓인 불신의 벽에 균열을 일으키고, 이차로 소속 무인들의 마음에 균열을 일으킨다….”
담진우가 사비란에게 들은 말을 그대로 따라서 읊조렸다.
지금쯤 두 가문의 소속 무인들은 가슴이 두근거릴 게 분명했다.
무인이라면 으레 상승 무공을 익히는 게 최고의 가치가 되기 마련이다.
한데 눈앞에 지금껏 최고라고 생각했던 무공보다 더 강한 걸 익힐 방법이 딱 보인 것이다.
거기에 사비란이 결정타를 날렸다.
“어떠세요? 제 생각에는 두 가문이 다시 예전처럼 화합해서 제자들에게도 더 발전된 무공을 전수할 수 있다면 나쁘지 않을 것 같은데요.”
사비란의 말이 끝나자 무인들은 열망이 담긴 눈빛으로 가주들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차라리 몰랐다면 모르지만, 엄연히 더 강한 무공이 나올 수 있다는 걸 알아 버렸다.
무인이라면 그 누군들 한계가 분명한 것을 배우고 싶을까?
한참이나 멍하니 있던 연우경이 실소를 터뜨렸다.
“허참, 맹랑한지고. 제대로 낚였군. 자네는 어찌 생각하는가?”
그의 시선이 석탄강에게 향했다.
“흐음. 잘 기억은 나지 않지만, 한 가지는 확실하지. 당시 우리는 강했다. 누구보다도.”
그 말에 목단화와 유송령이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서 ‘우리’란 비록 네 사람만을 두고 한 말이 아니었다.
천멸대와 신생조 모두를 아우르는 말이었다.
그들은 거리낌 없이 서로 무공을 가르치고 배웠으니까.
그렇게 조화를 이루고 융합되어 갔으니까.
그리고 지금 그들은 사비란을 보면서 생각했다.
오래전 자신들의 모습을 보는 것 같다고.
아니, 그 이상이었다.
그건 아마도 세월이 흐르면서 새로운 것들을 그녀가 받아들여서 그런 것이리라.
목단화가 희미한 웃음을 머금고는 말했다.
“그분 말씀이 생각나는구나. 궁주님이 마왕에게 말씀하셨다지. 인류의 최대 무기는 바로 공감력이라고. 교감하고 공감하는 것이야말로 인류의 최대 강점이라고. 어쩌면 우리는 가장 중요한 것을 잊고 살아왔던 것인지도….”
유송령이 거신도에 매인 수실을 매만지며 말했다.
“뭐… 내 아들을 위해서라면, 저들의 실수 정도는 눈감아 줄 수도 있지.”
“뭐? 그건 아니지. 남의 집 귀한 딸에게 수작질을 건 아들래미부터 잘 간수하고 말을 해야지.”
“수작질? 먼저 꼬리 친 게 누굴까?”
“꼬리는 누가 쳐? 네가 봤어?”
“안 봐도 뻔하지!”
“뭐야?”
다시 삿대질을 하면서 열을 올리는 두 사람이었다.
사비란이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서 사부님들… 어떻게 하실 건가요? 임무에 보내실….”
“보낼 거야! 보낸다고!”
두 사람이 동시에 돌아보며 소리쳤다.
사비란이 피식 웃어 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그 모습을 먼 곳에서 가만히 지켜보는 자들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