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49
귀환 마교관
649화(외전 22)
갑자기 나타난 연설연을 보면서 유송령은 잠시 멍한 표정을 지었다.
“네가 왜 여기에…? 아니, 그보다 혹시 우리 아들은 어디에 있는지 아느냐?”
“석 공자님은 지금 안전합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너희들이 같이 있었단 말이냐?”
유송령의 눈매가 대번 매서워졌다.
석검영과 연설연이 함께 있었다는 게 영 달갑지 않은 것이다.
연설연이 잠깐 대답을 망설이는데.
“정신이 나갔군. 나를 앞두고 잡담을 하다니!”
서늘한 목소리가 불쑥 들려오더니.
쒸아아아앙!
촤아아아아!
물보라가 일어나면서 검신이 그대로 날아들었다.
‘이기어검…?’
유송령이 깜짝 놀라면서 거신도를 그대로 내려쳤다.
콰차아앙!
빛 가루와 함께 날아들던 검신이 산산조각 났다.
그제야 그녀는 자신을 노렸던 게 검신이 아니라, 모종의 마법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조금 전 그들이 난혈진에서 사용한 방식과 흡사했다.
“도대체 이것들은…!”
하지만 그녀가 말을 이을 새도 없이.
츄아아아아아아!
갑자기 계곡 복판에서 수룡이 솟구쳐 올랐다.
쿠오오오오오!
물기둥은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꿈틀거리면서 그대로 유송령을 덮쳐 왔다.
“이딴 하찮은 사술을…!”
유송령이 버럭 소리치고는 그대로 거신도를 강하게 휘둘렀다.
슈카아아앙!
촤아아아악!
거신도에 부딪친 물줄기가 두 갈래로 갈라졌다.
파파파파파!
유송령은 생각보다 강한 타격감에 내심 놀라면서 뒤로 물러났다.
‘그냥 물줄기가 아냐! 마치 강기를 입힌 것만 같은…!’
어떻게 이자가 이런 마법까지 구사할 수 있단 말인가?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이건 마법이 아니다.
마법과 무공을 혼합한 것이다.
이게 가능한가?
그녀라고 왜 시도해 본 적이 없었겠나?
천멸대나 신생조 출신이라면… 아니, 멸마관 출신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시도해 보았을 것이다.
한데 쉽지 않았다.
마법에 내공을 주입하는 순간, 모든 것이 엉망이 된다.
물론, 한 사람은 예외다.
멸마궁주 사비강.
그는 애초에 그런 복잡한 것을 시도할 필요가 없는 존재였다.
강호에 정식으로 기록된 역사상 전무후무한 만해경의 경지에 오른 자였으니까.
굳이 마법과 무공을 섞지 않아도 그 이상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자였으니까.
만약 그가 마음만 먹으면, 그러한 신개념 ‘마법무공’도 얼마든지 만들어서 공표할 수 있으리라.
하지만 그는 그러지 않았다.
막강한 힘에는 그만한 책임이 따른다는 그만의 철학이 있기 때문이었다.
어떻게 보면 이기적인 셈이다.
사비강은 대놓고 말했다.
“내가 왜 그걸 만들어서 굳이 너희들에게 가르쳐야 하지? 이젠 막아야할 마족도 없는데. 마왕은 결국 인간이 만드는 거다. 인간이 막강한 힘을 가진다면 그만큼 막강한 악도 태어나게 되어 있다. 이 중원에 무공이 생기고 나서 좋은 일이 많았나? 나쁜 일이 많았나? 온통 죽고, 죽이기 바쁘지. 겉으로는 의협을 부르짖지만 과분한 힘으로 어떻게든 남의 뒤통수 칠 궁리만 하지. 그래, 난 근본적으로 인간을 믿지 않는다. 아니,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인간들이 모여 만든 환경을 믿지 않는다. 그러니 괜히 너희들에게 과분한 능력을 가르칠 생각이 없다. 평화를 즐겨라.”
그의 이런 대답에 염자량이 툴툴거리며 따진 적이 있다.
“그러는 사부님은 막강한 힘을 가지고 계시잖아요.”
“그래. 하지만 나는 나만 잘 관리하면 돼. 그런데 굳이 다른 놈들까지 가르쳐서 감시하며 관리할 필요는 없잖아? 귀찮은 일은 애초에 만들지 않는 게 상책이지.”
쿠오오오오오!
수룡 두 마리가 몸을 뒤틀며 굉음을 내질렀다.
그 바람에 유송령은 찰나지간의 상념에서 깨어나 그 중 하나의 물기둥을 응시했다.
대도는 하나!
양쪽에서 동시에 쏘아져 오는 놈들을 모두 막을 수는 없다.
호신강기를 두르고 한 놈만!
“하앗!”
그녀가 호신강기를 끌어올리고 대도를 내려찍었다.
콰아아아아아아아!
물줄기가 다시 갈라지면서 양 갈래로 뻗어 나갔다.
한데 지금쯤 등 뒤에서 작렬하고도 남았어야 할 물줄기의 힘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힐끔 돌아보니, 어느새 연설연이 다가와 검을 뻗어 물줄기를 막아내고 있었다.
유송령이 혀를 찼다.
“쯧! 누가 너에게 도와달라고 했느냐?”
“보고만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연설연이 대답하자, 유송령이 코웃음을 쳤다.
“흥! 그게 아니라, 날 무시한 것이겠지.”
“그럴 리가요. 저는 선배님의 무공을 진심으로 존경하고 있습니다.”
두 사람이 대화를 나누는 사이, 수룡은 이제 네 마리가 되어 있었다.
석탄강은 복면인들을 상대하느라 여념이 없었기에 이쪽으로 와 도울 처지가 아니었다.
“칫! 그야말로 칼로 물 베기네!”
유송령이 혀를 차고는 미간을 팍 구겼다.
수장 복면인이 차가운 눈빛으로 나직이 읊조렸다.
“그냥 가려고 했다만, 네년들은 내 신경을 건드렸다.”
“내 아들을 납치해서 먼저 건드린 쪽이 누군데!”
유송령이 앙칼지게 소리쳤지만, 복면인은 그 말뜻을 전혀 알아들을 수 없었다.
그렇다고 이 상황에서 전후 사정을 꼼꼼하게 따지는 것도 우스운 상황.
어차피 어딘가 뒤틀려서 엎질러진 물이다.
그렇다면 확실히 물바다를 만들어버리는 수밖에.
촤아아아아아아아!
이번에는 강기를 입은 네 마리의 수룡이 동시에 두 사람을 향해 쏟아져 내려왔다.
사방에서 물기둥이 폭포수처럼 쏟아지자, 유송령은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단지 강력한 물줄기라면 좀 맞아도 상관없다.
하지만 저 물줄기에는 강기가 스며들어 있다.
물의 입자 하나하나가 온몸을 난도질한다고 해도 전혀 이상할 일이 없다.
‘당신이 있어야 하는데…!’
유송령이 석탄강 쪽을 돌아보았다.
두 사람의 무공은 사실상 함께 해야 더 빛을 발한다.
어찌 보면 그들은 둘이 함께 했을 때 더욱 완벽한 무공이 된다.
그런데 지금은 어쩔 수 없이 각개 격파를 해야 하는 상황.
그때,
“선풍회격도(旋風回擊刀)를 구사하는 게 어떨까요?”
연설연이 목청껏 소리쳤다.
목단화가 움찔거렸다.
‘이 아이가 그걸 어떻게…?’
하지만 그런 걸 오랫동안 생각하고 있을 시간이 없었다.
이미 유송령은 반사적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선풍회격도는 사방팔방에서 쏟아져 내리는 비수를 쳐내거나, 다수의 적을 동시에 상대할 때를 위해 만든 흑천도가의 합격술이었다.
달리 말하자면 이 인 이상이 펼치는 협방술 중 하나였다.
어찌 보면 간단하게 보일지라도, 조금 까다로운 면이 있었다.
서로의 공력을 적정 수준으로 맞춰야 하고, 두 사람의 원심력을 잘 이용해야 한다.
해서 많은 훈련과 연습이 필요하다.
자칫 어긋나면 협방술을 펼치지 않는 것만도 못한 결과가 생길 수 있기에.
그럼에도 유송령과 연설연은 매우 자연스럽게 서로의 손을 잡았다.
어느 한 쪽이 사슬낫을 사용할 경우 그 위력이 배가 되지만, 지금처럼 도검을 사용한다고 해도 상관은 없다.
“간다!”
“네, 어머님!”
‘어머님…?’
유송령이 그 말뜻을 따져 물으려고 했으나, 상황이 워낙 급박했다.
‘요, 여우같은 년!’
그녀는 속으로만 생각하면서 연설연의 손을 꽉 맞잡았다.
다음 순간, 두 사람이 공력을 자연스럽게 맞췄다.
아주 짧은 순간임에도 유송령은 놀람을 금치 못했다.
‘이 아이… 어째서 이렇게 자연스럽게…?’
다음 순간.
쒸아아아아아앙!
두 사람의 신형이 원심력을 이용해서 돌개바람처럼 날아올랐다.
츄촤촤촤아아!
사방에서 쏟아져 내리는 폭포수가 회전하는 칼바람에 무수한 파편으로 쪼개져 갔다.
쏴아아아아아아아!
계곡 주변으로 가느다란 물줄기가 소낙비처럼 떨어져 내렸다.
촤아아아앗!
허공으로 날아올랐던 유송령과 연설연이 계곡 바닥으로 내려섰다.
그 바람에 협곡을 메웠던 물이 사방으로 커다란 파도를 만들며 퍼져 나갔다.
츄아아아아아!
“크웃!”
이번에는 오히려 복면인들이 그 물결에 휩쓸리면서 주춤 물러났다.
타닷!
선풍회격도를 끝낸 두 사람이 동시에 바닥을 차고는 수장 복면인을 향해 날아갔다.
연설연의 입에서 날카로운 외침이 튀어 나왔다.
“뒈져 버려! 이 벌레 후장 같은 새끼야!”
그 목소리가 어찌나 날카로운지 유송령과 석탄강은 물론, 싸우던 복면인들조차 흠칫거리며 돌아보았다.
쩌저어엉!
육중한 금속성과 함께 수장 복면인이 뒤로 튕겨 날아갔다.
촤아아앗!
그가 가까스로 바닥에 미끄러지며 멈춰 섰다.
탁! 탁!
유송령과 연설연도 동시에 뭍으로 올라왔다.
유송령이 내심 적응하지 못한 얼굴로 연설연을 힐끔 보았다.
‘이 아이가 그런 말을….’
당연히 명문 정파에서 바르고 고운 말만 들으며 자라 왔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우리 애가 물들였나?’
때 아닌 생각에 그녀는 혼자 피식 웃고 말았다.
“과연 흑천도가로군. 이제부터는 좀 더 진지하게 대응해 줘야겠군.”
수장 복면인이 무겁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읊조렸다.
그가 천천히 손을 들어 올리면서 말했다.
“역마투신공(役魔鬪神功)을 쓰도록.”
“존명!”
복면인들이 일제히 대답하더니 서서히 기도를 끌어올리기 시작했다.
잠시 후, 그들은 조금 전과는 전혀 다른 기운을 내뿜고 있었다.
유송령과 석탄강, 연설연이 눈을 가늘게 뜨고 그들을 노려보았다.
‘굉장히 기분 나쁜 기운이군….’
수장 복면인이 붉게 변한 눈동자로 말했다.
“이제 마무리 짓자.”
그때 다시 낯선 목소리가 불쑥 들려왔다.
“그 마무리 같이 했으면 좋겠군.”
동시에.
슈슈슈슈슈슉!
계곡 주위로 시커먼 그림자들이 가득 떨어져 내렸다.
그들을 이끌고 나타난 자는 다름 아닌 등가휘였다.
수장 복면인이 눈살을 찌푸리고는 그들을 노려보았다.
“웬 놈들이냐?”
그러자 무리 틈에 섞여 있던 단리혁이 성큼성큼 걸어 나와서 진중한 표정으로 말했다.
“우리로 말할 것 같으면… 음… 흠… 우리는….”
“……?”
“음… 우리가 뭐였지?”
단리혁이 등가휘에게 쪼르르 달려가 물었다.
등가휘가 가볍게 한숨을 내쉬고는 성큼 나서더니 말했다.
“본단은 멸마궁 백화단이다. 네놈들은?”
‘제길! 내가 저렇게 멋있게 말하려고 했는데!’
단리혁이 내심 투덜거리는 사이, 수장 복면인의 안색이 살짝 굳었다.
‘하필 백화단이…!’
한편 그들을 본 석탄강이 불쑥 물었다.
“백화단이 여기엔 무슨 일인가?”
“오랜만에 뵙습니다. 석 가주님. 저희들은 목적이 있어 이곳으로 오던 길에 마침 저들에게 납치당한 석 공자의 소식을 듣고 이제 막 구출해서 나오던 참이었습니다… 라고 전하라 하였습니다. 사비란 단주님께서.”
석탄강과 유송령의 눈이 뒤집혔다.
“역시 네놈들이 우리 아들을 납치했던 것이냐!”
유송령이 등가휘에게 물었다.
“우리 아들은? 영아는 어찌 됐나?”
“걱정 마십시오. 지금 무사합니다.”
그때였다.
마침 저만치에서 북적북적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리더니.
타앗!
흑립인을 비롯한 복면인들이 계곡으로 불쑥 나타나는 게 아닌가?
그 뒤를 이어 사비란과 석검영, 목단화와 연우경이 차례로 모습을 드러냈다.
“아, 아버지. 어머니.”
“영아!”
석검영과 유송령이 서로를 알아보고 소리치자마자.
“아니… 연아!”
“아버지?”
“오오, 연아!”
연우경이 감격한 표정으로 연설연을 불렀다.
한편 상황이 뜻밖으로 흐르자, 흑립인과 수장 복면인이 조금 당황한 눈빛으로 서로를 보았다.
등가휘가 사비란에게 전음을 보냈다.
[이제 어쩌지요?]
[어쩌긴. 계획대로 증거 인멸을 해야지. 아니, 증인 인멸인가?]
사비란의 대답에 등가휘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품에서 뭔가를 꺼내 던졌다.
삐이이익, 팡!
신호탄이 하늘에서 붉게 빛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