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43
귀환 마교관
643화(외전 16)
장원이 발칵 뒤집혔다.
연설연이 납치당했다.
그것도 섬검목가장 바로 코앞에서 보란 듯이 납치당했다.
호위를 따돌리고 홀로 사라진 것도 아니다.
호신위 장려심이 함께 있었음에도 손 하나 까딱하지 못한 채 점혈을 당하고 말았다.
상대가 누군지는 알 수 없지만, 결코 만만한 실력이 아니다.
목단화와 연우경은 충격을 받은 표정으로 연무장 한가운데에 서 있었다.
처음에는 장려심의 보고를 믿을 수가 없었다.
혹시 딸이 장려심을 곤란하게 만들어서 장난이라도 치는 게 아닌가 의심했다.
그도 그럴 것이 이곳은 송백현이 아닌가?
송백현에서 감히 누가 섬검목가의 소가주를 건드릴 수 있단 말인가?
하지만 심각하게 굳은 장려심의 표정에서 이번 일이 대수롭지 않게 넘어갈 사건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납치범이 누군지조차 알 수 없단 말인가?”
“죄송합니다!”
장려심은 비통한 표정으로 고개를 떨어뜨렸다.
“허어!”
목단화가 날카롭게 소리쳤다.
“장 호위는 어째서 그런 실수를 한단 말인가! 다른 곳도 아닌, 가장 바로 옆에서 납치를 당하도록 두다니!”
장려심의 전신이 부르르 떨렸다.
그렇잖아도 그는 의식을 차렸을 때 죽고 싶을 만큼 괴로운 심정이었다.
다음 순간.
스르르릉!
“앗!”
장내에 모여 있던 사람들이 저도 모르게 외마디 비명을 내질렀다.
장려심이 누가 말릴 새도 없이 검을 거꾸로 쥐더니 제 목에 가져다 대며 소리쳤다.
“임무를 다하지 못한 죄, 죽음으로 책임지겠습니다!”
찰나지간 그가 검으로 목을 그으려는데.
쉬익, 따앙!
휘리리리링, 푹!
뭔가에 튕겨 날아간 검신이 허공에서 마구 몸을 뒤집더니 바닥에 푹 꽂혔다.
장려심이 놀란 얼굴로 고개를 들자, 연우경이 노한 표정으로 소리쳤다.
“장 호위! 이게 무슨 짓인가!”
“하지만 제 실수였으니, 마땅히 책임을…!”
“누가 자네에게 죽음으로 책임을 질 수 있다고 하던가!”
“……!”
“자네는 책임이라는 뜻이 무엇인지 모르는가!”
“…죄송합니다!”
장려심이 바닥에 이마를 쿵 찧었다.
피가 흘러나왔지만 그는 개의치 않았다.
지금 이순간 자신이 너무나 한심하고 부끄러워서 견딜 수가 없었다.
연우경이 혀를 찼다.
“죽음은 오히려 책임으로부터 가장 편히 도망치는 법. 장 호위는 지금부터 목숨을 다해 내 딸을 찾고 지켜야 할 것일세!”
“명 받들겠습니다!”
장려심이 다시 한 번 이마를 쿵 찧었다.
연우경이 손을 뻗자, 장려심의 검신을 튕겨내 버렸던 비수 한 자루가 능공섭물의 수법으로 휙 날아들었다.
그가 가볍게 비수를 낚아채고는 말을 이었다.
“당분간 딸의 납치 사실은 대외비로 하겠다. 누구도 입 밖으로 내지 말라!”
“존명!”
연무장에 모인 무인들이 이구동성으로 외쳤다.
목단화가 연우경을 돌아보며 말했다.
“도대체 누굴까요? 어째서 연아를… 이곳 송백현에서 감히 섬검목가를 노릴 수 있는 자가 누구란 말입니까?”
“흐음. 일단 침착합시다. 장 호위, 적의 무공이 어땠는지 기억하겠나?”
“그것이… 확실하진 않으나, 분명한 것은 사기가 느껴졌습니다.”
“역시…!”
“설마…?”
목단화의 의혹 서린 표정에 연우경이 턱을 매만지며 중얼거렸다.
“적이 사파라면 뻔한 것 아니겠소?”
“실은 나도 진작 같은 생각이었어요. 사실 흑천이 아니라면 누가 이런 짓을 하겠습니까? 게다가 그 석검영이라는 놈은 호시탐탐 우리 연아를 노리고 있지 않았습니까? 그 녀석의 시커먼 속내를 생각한다면 충분히 일어날 수도 있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당신 생각도 역시 그렇소? 나 역시 같은 생각이오. 사내놈들은 좀처럼 믿을 수가 없으니. 더구나 그 집안의 자식이니 오죽하겠소?”
“맞아요. 이번 일은 틀림없이 흑천의 짓일 거예요. 왜, 연아가 걸핏하면 그런 말을 하지 않았나요?”
이번엔 두 사람이 동시에 말했다.
“언젠간 석검영과 함께 멀리 도망 가 버릴 거라고.”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동시에 같은 말을 내뱉은 두 사람의 표정이 흠칫거렸다.
‘역시…!’
연우경이 다시 손을 뻗자, 열린 창문 안쪽에서 검 한 자루가 쒸잉, 날아들었다.
청빙검이었다.
“갑시다!”
목단화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손을 뻗었다.
쒸이이잉, 탁!
그녀의 손에 날아든 연검은 사심자였다.
목단화가 장려심을 돌아보며 말했다.
“장 호위! 지금부터 흑천도가로 간다.”
“존명!”
“만약의 사태를 대비해서 섬전대(閃電隊)와 광풍대(光風隊)가 함께 간다.”
“존명!”
장내에 가득한 무인들이 저마다 우렁차게 대답했다.
**
“당신, 일어나 봐.”
유송령이 침상에서 자고 있는 석탄강의 몸을 흔들었다.
“무슨 일이야?”
석탄강이 눈을 비비며 몸을 일으키자, 유송령이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영아가 사라졌어.”
“뭐?”
석탄강의 표정이 대번에 굳었다.
그가 미간을 팍 구기고는 말했다.
“이 자식이…!”
침상에서 벌떡 일어난 그가 옷을 주섬주섬 챙겨 입었다.
그가 손을 불쑥 뻗자, 방 한쪽에 놓였던 사슬낫이 쒸잉, 날아들었다.
“이놈 잡히면 내 가만 안 둘 줄 알아.”
“당신은 말만 그럴 뿐이지, 늘 그 아이를 봐주잖아. 그게 문제야.”
“이번엔 아니야. 도대체 지금 시간이 얼마나 지난 거야? 이번만큼은 이놈의 버릇을 확실히 고쳐놔야겠어!”
“보나마나 또 목가에 갔겠지. 최근 들어서 그년이 우리 아들을 적극적으로 홀리는 것 같다니까. 얼마 전에도 평화회담을 빌미로 그년이 우리 영아에게 꼬리를 쳤잖아?”
“가자! 당장 이놈을 잡아오자!”
“그래.”
말을 마친 유송령이 손을 내밀자, 커다란 칼날이 휙 날아들었다.
두 사람이 그렇게 막 문 밖으로 나갔을 때였다.
무인 하나가 안마당을 가로지르며 빠르게 달려왔다.
“가주님! 섬검목가 사람들이 이쪽으로 오고 있습니다! 섬전대와 광풍대도 함께 오고 있습니다. 완전무장 상태입니다!”
“뭣이?”
석탄강과 유송령이 서로의 얼굴을 돌아보았다.
아무래도 뭔가 사달이 일어난 게 분명하리라.
그러지 않고서야 그들이 새벽부터 완전무장을 하고 찾아올 리가 없었다.
이는 분명 석검영이 사라진 것과 관계가 있으리라.
일단 자초지종은 만나서 이야기를 들어봐야 알리라.
두 사람의 눈치를 살피던 무인이 넌지시 물었다.
“어찌 할까요?”
“맞이하라.”
석탄강이 무뚝뚝하게 말을 뱉어냈다.
“존명!”
대답을 한 무인이 빠르게 돌아서 달렸다.
그들이 외원으로 나가자 이미 연우경과 목단화가 정문에 다다라서 사자후를 터뜨렸다.
“이놈 석가야! 당장 나와서 내 검을 받아라!”
연우경의 목소리였다.
석탄강이 미간을 팍 구기고는 성큼성큼 걸어갔다.
이미 맞이하라고 일러두었기에 연우경과 목단화도 정문을 통해서 외원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무슨 일이냐?”
석탄강이 콧잔등을 구기고는 날카로운 표정으로 물었다.
“네놈이 진정 몰라서 묻느냐?”
“흥! 내가 독심술이라도 쓴다고 생각하는가? 새벽 댓바람부터 여길 찾아온 이유나 말해라.”
“노오옴! 이러쿵저러쿵 떠들 것도 없다! 당장 내 딸이 어디 있는지 말해라!”
“뭣이? 네놈의 딸을 왜 내게서 찾는단 말이냐?”
“네놈들이 내 딸을 납치한 게 아니라면, 네놈 아들은 지금 어디에 있느냐?”
“나도 모른다.”
“몰라?”
“그래. 그렇잖아도 네놈에게 따져야 할 일이었는데 잘 됐군.”
“따져? 방귀 낀 놈이 성낸다더니! 딱 그 짝이군! 역시 네놈 아들 짓이렷다!”
“도대체 무슨 소리냐?”
“우리 딸이 납치당했다! 여기 장 호위가 증인이다! 네놈 아들이 지금 행방불명이라고 하니, 분명 그놈 짓이다!”
“닥쳐라! 만약 내 아들 녀석 짓이라면, 역시 목가의 검술은 형편없는 모양이군.”
“뭐, 뭣이?”
연우경이 눈썹을 꿈틀거리는데, 유송령이 불쑥 나섰다.
“흥! 설령 영아가 그랬다고 하더라도 그 아이 스스로 그런 짓을 했을 리가 없어! 분명 그 집 딸이 우리 아들에게 여우짓을 해서 그런 거지!”
“뭐가 어쩌고 어째? 지금 말 다했어?”
이번엔 목단화가 목청을 높이며 삿대질을 했다.
유송령이 대도를 어깨에 척 걸치고는 비웃었다.
“평소에는 온갖 고상한 척, 기품 있는 척하더니. 역시 네년도 목소리를 높이니 똑같구나?”
“뭐, 뭐야? 시끄럽고! 당장 내 딸 내놓지 못해?”
“글쎄, 너희들이나 우리 아들 내놔! 왜 잃어버린 딸을 여기서 찾고 지랄이야?”
“뭐, 지, 지랄? 누가 못 배워 처먹은 사파 나부랭이 아니랄까 봐 저렴한 말투 좀 봐!”
“흥! 비싼 말투는 대체 어떤 거냐? 더 이상 들어 줄 것도 없군. 우린 알아서 아들을 찾을 테니, 너희들은 알아서 딸이나 찾아! 그러니 여기서는 썩 꺼지고!”
“어림없다! 너희들이 지금 누구 덕에 이 호사를 누리는지 기억은 한단 말이더냐?”
“도대체 언제 적 이야기를 꺼내는 거냐? 빨리 나가! 계속 버티면 힘을 쓸 수밖에 없으니까.”
유송령이 말을 마치자마자.
처처처처처척!
흑천도가의 무인들이 일제히 칼날을 앞세우면서 섬검목가 무인들을 겨눴다.
그와 동시에.
차차차차차차앙!
섬검목가 무인들 역시 일제히 검을 뽑아 들고는 대응했다.
석탄강이 연우경을 빤히 노려보았다.
“안 나갈 거냐?”
“못 나간다. 내 딸을 찾기 전까진.”
“네 딸은 여기 없다고 했다.”
“흥, 은혜도 모르는 네놈들 말을 곧이곧대로 믿을 수야 없지.”
“그 은혜는 죽어서도 갚으라고 달라붙겠군.”
“네놈들이 잊으면 그래야겠지.”
“진작 갚고도 남음이다!”
촤르르르르륵!
쉬카아앙!
순식간에 날아든 사슬낫을 연우경이 청빙검으로 쳐냈다.
쫘자자자작…!
청빙검의 한기 때문에 사슬낫이 끝에서부터 서리가 맺히며 얼어 갔다.
곧이어.
후우우우웅!
석탄강이 운기하자, 뜨거운 기풍이 사방으로 훅 불어 나갔다.
동시에 서리가 내려앉으며 얼어 가던 사슬낫도 뜨끈한 열기에 녹아 버렸다.
촤르르르륵, 탁!
사슬낫을 쥔 석탄강의 눈빛이 싸늘하게 식었다.
“한 번 해보시겠다?”
“못할 것도 없지.”
“오냐, 우리 집 안마당에 네놈 뼈를 묻어 버리는 것도 뜻깊을 테지. 와라!”
“물에 빠져도 주둥이만 뜨겠구나!”
파파앙!
두 사람이 동시에 빛살처럼 쏘아져 나갔다.
마침내 사슬낫과 청빙검이 정확히 부딪치려는 순간.
쒸에에에에엑!
두 사람 사이를 파고드는 파공성!
파바바박!
휘리리릭!
둘이 일 장을 마주치면서 팽이처럼 핑그르르 돌았다.
동시에 그들 사이를 지나치는 화살을 각자 냉큼 낚아챘다.
우지끈!
한 자루의 화살이 절반으로 뚝 부러지면서 두 사람에게 각각 잡혔다.
척!
착!
바닥에 착지한 두 사람이 화살이 날아든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내가 가볼 게요!”
목단화가 누가 말릴 새도 없이 바닥을 차고는 내달렸다.
가문의 명칭에서 알 수 있듯이 무공의 신속함으로 따진다면 여기에서 그녀를 따를 자가 없었다.
한편 화살대를 절반씩 꺾어서 가져간 석탄강과 연우경은 손바닥에 종이가 절반 찢어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
공교롭게도 그들은 화살대에 매여 있던 종이도 절반씩 나눠 가진 셈이었다.
“크흠. 일단 내용을 살펴보지.”
“그러지.”
두 사람이 떨떠름한 표정으로 다가왔다.
종이를 펼친 두 사람이 찢어진 부위를 맞춰서 글귀를 읽어 내려갔다.
“이건…?”
- 너희들의 자식을 무사히 되찾고 싶다면, 열흘 후 송백산 관제묘로 마공석을 가지고 나와라.
석탄강과 연우경이 동시에 종이를 와락 구기면서 같은 말을 뱉어냈다.
“대체 어떤 놈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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