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42
귀환 마교관
642화(외전 15)
석검영은 초조한 표정으로 방안을 서성였다.
단리혁은 그런 그의 곁을 졸졸 따라다니면서 마치 물건을 감상하듯 자세히 뜯어 살폈다.
순간 석검영이 신경질적으로 소리쳤다.
“자꾸 졸졸 따라다니면서 뭐하는 짓이오?”
“아, 미안. 그냥 이해가 안 돼서.”
“도대체 뭐가 이해가 안 된다는 거요? 그리고 왜 초면에 반말을 하시오?”
“아, 내가 그랬나? 미안. 미안.”
석검영은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단리혁을 빤히 노려보다가 다시 걸음을 옮겼다.
단리혁이 그런 석검영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어깨를 으쓱이고는 중얼거렸다.
“역시 이해가 안 되는군.”
“대체 뭐가 말이오!”
결국 석검영은 신경 쓰이는지 휙 돌아서서는 소리쳐 물었다.
단리혁이 먼 산을 보듯 딴청 부리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도대체 어딜 보고 반한 건지 말이야.”
“뭐요?”
“사실 그렇지 않아? 내가 보기엔 네가 그렇게 잘 생긴 것 같지도 않고, 피부도 까무잡잡한데다… 지금 보니 성격도 별로인 것 같고… 무공? 글쎄, 그건 내가 안 봐서 모르겠지만… 너보다 무공 잘하는 사람도 있을 텐데. 왜 하필 원수 집안의 자식과 사랑에 빠졌을까?”
“이익…!”
석검영이 어금니를 빠드득 갈고는 단리혁을 노려보았다.
정말이지 눈빛만으로 사람을 찢어버릴 듯한 표정이었다.
“이것 봐. 확실히 성격도 별로란 말이지.”
“이봐! 당신 언제 봤다고 자꾸 반말이야? ‘너’라니! 내가 네 친구냐!”
“음. 뭐, 내가 나이가 많아 보이니까 말 좀 놓아도 괜찮잖아? 몇 살이지? 난 올해로 스물다섯이 되는데.”
“스물일곱이다만.”
“아… 핫핫핫! 두 살 차이면 친구지. 안 그래?”
“누가 친구라는….”
“아! 혹시 연 소저가 엄청 못생겼나? 그렇다면 둘의 관계가 조금 이해가 될 듯….”
“이런 미친…! 당신은 사람을 외모로만 평가하나! 그러는 당신은 얼마나 잘 났다고 그런 망발을 쏟아내는 건데!”
“음… 그래도 난 좀 잘생기지 않았나?”
“개 코나!”
석검영이 연신 씨근거렸다.
마침 방문이 열리면서 등가휘가 들어서자 그가 따지듯 소리쳤다.
“보시오! 이자도 백화단 소속이오?”
등가휘가 단리혁을 힐끔 보았다.
분위기를 보니 두 사람이 이미 한 바탕 한 모양이었다.
그렇잖아도 단리혁이 꼴 보기 싫었던 등가휘가 은밀히 다가와 귓속말을 했다.
“사실 저자는 백화단 소속이 아니오. 궁주님의 명으로 어쩔 수 없이 함께 움직이곤 있으나, 좀 모자라는 사람이라오. 정신이 약간 이상한… 왜 그런 것 있잖소? 어려서 머리를 크게 다쳤다거나….”
“아… 그래서….”
석검영이 이제 이해했다는 듯 측은한 눈빛마저 지은 채 단리혁을 보았다.
등가휘가 열렬히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아마 대화하면서 느꼈을 거요. 일반적인 사람과 많이 다르다는 것을. 많이 저능하지요. 아주 많이.”
“어쩐지. 이상하다 생각했소. 그렇다면 이해가 되는구려. 괜히 화를 냈구려.”
두 사람이 그렇게 속닥거리고 있으니, 단리혁이 창가에서 귀를 후비며 툴툴거렸다.
“어이, 차라리 전음으로 하라고. 다 들린다고.”
하지만 두 사람은 아랑곳하지 않고 험담을 이어 갔다.
그렇게 석검영이 초조함을 달래는데.
“석 공자님?”
방문이 열리더니 옥구슬이 구르는 듯한 목소리가 흘러 들어왔다.
문을 열고 들어선 사람은 다름 아닌 연설연이었다.
“연 소저!”
“아아, 석 공자님!”
두 사람이 와락 달려들며 서로를 부둥켜안았다.
단리혁은 입을 딱 벌린 채 두 사람을 보았다.
“세상에. 정말 서로 사랑하잖아?”
그러거나 말거나 석검영과 연설연은 서로의 몸을 살피며 안부를 물었다.
“어디 다치진 않았소?”
“괜찮아요. 부모님이 그래도 절 때리시진 않는답니다.”
연설연이 농담처럼 말하자 석검영이 멋쩍게 웃었다.
“많이 답답하셨죠? 연통을 넣고 싶었지만 워낙 통제가 삼엄해서….”
“아니오. 줄곧 지켜보고 있었소. 소저가 그런 처지라는 건 진작 눈치 챘다오.”
“죄송해요. 부모님을 설득하겠다고 호언장담해 놓고선… 결국 이렇게 되어 버렸네요.”
“나도 마찬가지요. 우리 부모님 역시 날 죽일 듯이 나무라셨소.”
“정말 답답해요. 이제 우린 어쩌면 좋을까요?”
그때, 그녀의 뒤를 이어 들어온 사비란이 불쑥 말했다.
“간단해. 앞으로 우리 백화단과 함께 임무를 수행하고 돌아오면 돼.”
석검영과 연설연이 동시에 돌아서서 그녀를 보았다.
사비란을 처음 보는 석검영이 눈살을 슬쩍 구겼다.
“당신은…?”
“백화단주 사비란. 두 사람을 임무에 차출하기 위해서 왔지.”
“아, 단주님을 뵙습니다.”
“단주님을 뵙습니다.”
두 사람이 그제야 정식으로 포권하면서 예를 갖췄다.
사비란이 가볍게 손을 저었다.
“거추장스러운 예는 그만두자고. 두 사람 모두 나보다 어리니 말 놓을게. 괜찮지?”
“물론입니다.”
어차피 앞으로 임무를 맡게 된다면 상명하복의 관계가 될 것이다.
말을 높이는 게 더 어색하리라.
“그런데 백화단이 왜 이런 식으로 저희들을 찾아온 거죠?”
“그야… 꿩 먹고 알 먹으려고 그러는 거지.”
“예?”
“일단 두 사람은 납치된 거야. 그것만 알고 있으면 돼. 그러니까 납치된 사람답게 행동해야겠지? 함부로 거리를 돌아다녀서도 안 되고. 밖으로 나갈 생각도 하지 마.”
사비란의 말에 연설연과 석검영이 서로의 얼굴을 멀뚱멀뚱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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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쯤 난리가 났을 겁니다.”
담진우의 말에 사비란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겠지. 연설연을 납치한지 한 식경이 흘렀으니, 아마 두 사부님 모두 알게 되셨을 거야.”
두 사부님이란, 연우경과 목단화를 두고 한 말이었다.
담진우가 희미하게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단주님이시니 미끼는 확실했을 거고요.”
“그래. 분명히 사기를 흘렸으니까. 다만 너무 노골적으로 무공을 사용하진 않았어. 그게 더 이상할 테니.”
“잘 하셨습니다. 그럼 우린 슬슬 새 미끼를 준비하러 가야겠군요.”
“그래야지. 그런데 그 미끼는 어느 쪽으로 가야 구할 수 있을까?”
“아무래도… 흑천도가로 가야 할 듯합니다. 사태의 심각성을 섬검목가에서 더 빨리 깨우치게 될 테니까요.”
“하긴. 슬슬 준비해야겠군. 단리혁.”
사비란이 이름을 부르며 고개를 돌리자, 한쪽에서 가만히 지켜만 보던 단리혁이 눈빛을 반짝이며 다가왔다.
“오, 이렇게 이름을 불러 주니 더욱 친밀한 느낌이 드는군. 무슨 일이지? 사 소….”
“장난치는 것 좋아하지?”
“아주 좋아하지.”
“그럼, 장난을 쳐줘야겠어.”
“맡겨만 두라고. 그래서 무슨 장난을?”
사비란이 대략의 작전에 대해 말해 주었다.
한데 이야기를 들은 단리혁의 표정이 영 심상치 않았다.
“그건 좀… 곤란한데.”
“무슨 말이야?”
사비란이 고개를 갸웃거리자, 단리혁이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난 활을 쏘지 않아.”
“뭐라고?”
생각지도 못한 반응이었다.
일성궁문의 소문주인만큼 당연히 활을 잘 다루리라 생각했다.
물론, 여행하면서 활을 챙겨 가지 않는 게 조금 이상하긴 했지만, 고수는 장비 탓을 하지 않는다고 하지 않던가?
그런 의미로만 생각했는데….
“활을 쓰지 않는다니? 무슨 소리야?”
“활은 영 멋이 없잖아? 뭔가 있어 보이지 않는단 말이지. 역시 남자라면 검이지!”
“그건 무슨 헛소리야?”
“아무튼 난 활을 쓰지 않아. 내가 아버지와 사이가 나쁜 이유도 그것 때문이거든. 그치만 아버지도 참 너무하시지. 대대로 우리 가문은 검가였는데, 아버지가 멋대로 궁가로 바꾼 것 아냐? 그러니 이젠 내가 다시 검가로 바꿀 생각이야.”
“그래. 알았어. 그건 네 마음대로 해. 단리 사부님과 지지고 볶고 싸우든 말든. 하지만 지금은 네가 활을 써야 해.”
“아니. 난 쓰지 않을 거야. 이건 나 자신과의 약속이거든.”
단리혁이 마치 엄청 멋있는 말을 하는 것처럼 겉멋을 잔뜩 부리며 읊조렸다.
“사나이의 다짐 같은… 거랄까?”
정말이지 그 단리정의 아들이 이런 제멋대로인 인간일 줄 누가 알았으랴.
‘사부님 마음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겠구나.’
사비란이 얕게 한숨을 내쉬고는 말했다.
“정 뜻이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
“그래, 어쩔 수 없는 일이야. 이건 사나이의 굳은 결심….”
“돌아가.”
“그래, 돌아… 응? 뭐라고?”
“활을 쏘지 않는다면 넌 쓸모가 없어. 돌아가.”
“아무리 그래도 돌아가라니! 너무 인정머리 없는….”
“지금 여기가 인정 쌓으며 친목이나 나누는 사교 모임 같아?”
“어… 사 소저, 너무 그렇게 각 잡고 이야기하니까 긴장되잖아….”
“도검을 쓰는 사람은 많아. 우린 네가 활을 쓴다고 생각해서 데려온 거야. 하지만 활을 쓰지 않겠다면 여기 있을 필요가 없지. 돌아가.”
사비란의 표정은 진지했다.
단리혁도 더 이상은 농담을 할 수 없게 되자, 표정을 굳히고 말했다.
“그럼, 그 작전은?”
“내가 직접 하지.”
“활쏘기가 만만치 않을 텐데.”
“나도 단리 사부님한테 배웠으니까.”
“아냐. 그래도 쉬운 일이 아닐 거야. 뭐, 정 부탁을 한다면 내가 다시 한 번….”
“아니. 필요 없어. 명령에 복종하는 인간이 아니라면, 조직에 방해가 될 뿐. 돌아가.”
“흥! 그렇다면 진짜 가겠어!”
“가.”
“진짜다! 간다!”
이제 사비란은 아예 거들떠도 보지 않았다.
혼자 씨근거리던 단리혁이 마침내 몸을 휙 돌리더니 쿵쿵거리며 걸어갔다.
그가 문을 쾅 닫고 나갔다.
등가휘가 사비란에게 넌지시 물었다.
“괜찮겠습니까? 저 망나니라면 이대로 갈 수도 있습니다.”
“그럼, 우리끼리 해결하면 돼. 어려운 문제는 아니니까.”
“상대는 섬검목가와 흑천도가입니다. 독이 바짝 오른 상태일 텐데, 자칫 꼬리가 밟히기라도 하면 모든 계획이 물거품….”
“등 부단주.”
“예, 단주님.”
“날 믿어. 아무래도 불신과 불복이 전염된 것 같아.”
“그럴 리가요. 전 언제나 단주님을 믿습니다.”
“그럼 믿어.”
“알겠습니다.”
잠시 후, 갑자기 문이 벌컥 열리더니 단리혁이 들어왔다.
“나, 이제 간다!”
“아직도 안 간 거야?”
“짐 챙겼다! 흥! 어디 한 번 잘해보라고. 그 거리에서 활을 쏘는 게 쉽지 않다는 걸 몸소 느껴 보도록.”
“얼마든지.”
“쳇!”
“참, 단리 사부님으로부터 살아남으면 안부나 전해 주고.”
단리혁이 움찔거렸다.
백화단에서 쫓겨났다는 소리를 들으면 단리정이 가만히 있진 않으리라.
쾅!
단리혁이 다시 문을 닫고 사라졌다.
잠시 정적이 흘렀다.
이번에는 담진우가 넌지시 말했다.
“네 명을 모두 속이고 꼬리가 밟히지 않으려면 최소한 이백여 장 밖에서 쏘셔야 합니다. 가능하시겠습니까?”
네 명이란 연우경과 목단화, 석탄강과 유송령을 두고 하는 말이었다.
사비란이 단호한 어조로 대답했다.
“가능해. 다른 누구도 아닌 단리 사부님께 직접 배웠으니까.”
“그렇다면야.”
담진우가 걱정할 게 없다는 듯 어깨를 으쓱였다.
잠시 후.
다시 문이 벌컥 열리더니 단리혁이 나타났다.
사비란이 이제는 시큰둥한 표정으로 그를 보았다.
“또 뭔데?”
“아무리 생각해도 역시 사 소저가 직접 하기에는 난이도가 어려울 것 같아서. 마음 약한 내가 또 도와줘야 하지 않을까 싶어서… 뭐, 잠깐 만난 것도 정이라고….”
“필요 없다니까.”
“아니, 내가 도와줄게. 이번만은 특별히….”
사비란이 단리혁을 빤히 보며 또박또박 말을 뱉었다.
“네 도움. 필요. 없. 다. 고.”
이제 단리혁은 거의 울 것 같은 표정이었다.
결국 그가 고개를 푹 숙이고는 말했다.
“미안…하오. 사 소저. 나 좀 받아 주시오.”
“소저…?”
“단주…님.”
“왜?”
“제가… 그 임무 맡겠습니다.”
그제야 사비란이 희미한 웃음을 머금고 등가휘를 보았다.
등가휘가 미미한 웃음을 지었다.
[과연 대단하십니다. 기선제압은 확실히 하셨군요.]
[날 믿으라고 했지?]
사비란이 짐짓 심각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그렇게까지 간청한다면 한 번 고민해 볼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