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환 마교관-639화 (639/670)

# 639

귀환 마교관

639화(외전 12)

송백현에서 가장 유명한 무가는 바로 섬검목가였다.

아니, 섬검목가는 중원에서도 가장 알아주는 명문 정파였다.

하지만 지금은 조금 다른 상황이었다.

섬검목가와 어깨를 견주는… 아니, 어깨를 견준다는 표현은 조금 점잖은 느낌이다.

섬검목가와 연신 으르렁거리면서 칼부림을 일으키는 또 하나의 세력.

바로 흑천도가(黑天刀家)가 있다.

흑천도가가 송백현에 자리 잡은 것은 고작 삼십 년 정도밖에 되지 않았으니….

“아! 그놈들이 바로 친마 세력의 후손들이구나!”

이야기를 듣던 단리혁이 불쑥 끼어들면서 소리쳤다.

하지만 사비란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 전혀. 완전히 반대야.”

“완전히… 반대라고?”

“그래.”

그렇다.

흑천도가는 친마 세력과는 전혀 관계가 없다.

오히려 흑천도가주는 그 누구보다도 앞장서서 마족을 섬멸했던 자였다.

그는 바로 신생조 소속이었으니까.

그 기구한 사연은 이랬다.

마족대전에서 모든 공력을 소진한 섬검목가주는 딸 목단화에게 가주의 자리를 넘겨주었다.

그리고 목단화는 연우경과 혼인했다.

“에? 갑자기?”

“좀 갑작스럽긴 했다고 해.”

사비란이 어깨를 으쓱이고는 대답했다.

마족대전이 끝난 후, 목철우는 패검연가주인 연강백과 만나 술잔을 기울이다가 정략혼인을 제안했다.

두 사람의 대화가 무척 잘 통했던 것이다.

마족대전으로 인해 정사의 구분이 모호해졌다고는 하지만, 패검연가와 섬검목가만큼은 정파의 태산북두라고 할 수 있었다.

그런 만큼 그들은 아직까지 고리타분한 관습에 얽매인 경우가 많았는데, 정략혼인도 바로 그런 종류 중 하나였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연우경과 목단화가 큰 반대를 하지 않았기에 혼인식은 무난하게 이루어졌다.

패검연가의 차남인 연우경은 목단화를 따라 송백현의 섬검목가로 들어가게 됐다.

그런데 그 시기에 송백현에서 혼인식을 가진 두 사람이 더 있었으니….

바로 석탄강과 유송령이었다.

두 사람은 혼인식을 마친 후, 송백현에 무가(武家)를 차렸는데, 그게 바로 흑천도가(黑天刀家)다.

당시 송백현의 실세였던 섬검목가주 목단화는 두 사람이 흑천도가를 세울 때 많은 도움을 주었다.

자연히 처음에는 그들 사이가 매우 돈독했다.

그도 그럴 것이 이 네 사람은 한때 생사고락을 함께 하며 전우애를 다지던 동료가 아니었던가?

하지만 양가 제자들까지 사이가 좋으리란 법은 없었다.

처음에는 속가제자들의 사소한 다툼에서 시작됐다.

아주 미세한 균열의 시작이었다.

네 사람은 이 균열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좋은 게 좋은 거라는 생각으로 대충대충 넘어가기 일쑤였다.

그저 보기 좋게 그 균열을 덮는 정도에 지나지 않았다.

하나, 균열이란 한 번 생겼을 때 제대로 처리하지 않으면 점점 벌어지기 마련이다.

그 작은 균열은 시간이 흐를수록 걷잡을 수 없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마침내는 송백현이 두 세력으로 확고히 갈라지게 됐다.

세월이 흐르면서 그들의 우정도 점차 희미해져 갔다.

두 무가는 틈만 나면 서로 으르렁거리는 사이가 됐다.

보다 못한 멸마궁에서도 몇 번씩이나 중재에 나섰지만, 타인에 의한 평화가 제대로 유지될 리가 없었다.

그 누구도 이들의 관계가 이렇게 일그러질 줄은 몰랐다.

그렇게 삼십 년 가까이 흘렀을 때는 이미 두 세력이 돌이킬 수 없는 사태까지 이르러 있었다.

그러다 보니 송백현에서는 ‘섬검이냐, 흑천이냐?’는 질문이 유행처럼 번지기도 했다.

이 질문에 대답을 잘못하면 칼부림을 각오해야 한다는 소문까지도.

“헐. 생각지도 못한 반전이군. 왜 우리 아버지는 이런 이야기를 안 해주신 거지?”

단리혁의 말에 사비란이 대꾸했다.

“그분들의 좋지 않은 모습을 굳이 말하고 싶지 않으셨겠지. 단리 사부님은 그런 분이시니까.”

“흐음. 그래서 지금 섬검목가와 흑천도가가 냉전 중이란 말이군?”

“문제는 그게 다가 아니라는 거지.”

“그럼, 또 있나?”

사비란이 희미하게 웃으며 말했다.

“양가의 자녀들이 서로 사랑에 빠졌거든.”

“허어! 원수 집안의 자식들이 서로 연정을 품다니! 이거야 원, 통속 소설에서나 나올 만한 상황 아니야? 애석하도다!”

단리혁이 무릎을 탁 치며 소리치자, 사비란이 눈을 가늘게 떴다.

“전혀 애석한 표정이 아니군.”

“흐흐. 사실은 좀 흥미진진해. 그래서 어떻게 됐어?”

“아직까지 그 상태라고 하더군. 여전히 두 집안에서는 두 사람의 연정을 허락하지 않는 분위기라고.”

“그런 상황에서 우리가 두 사람을 스윽 빼온다면… 사랑의 불씨가 막 활활… 아주 그냥 미친 듯이 화르르르륵! 타오르는 것 아닌가?”

“그럴 지도 모르지. 그게 아니면….”

“집안의 반대로 인재 차출이 불가능할 수도 있겠군.”

“그 두 사람이 함께 있는 모습을 사부님들은 절대 보고 싶지 않으실 테니까.”

“흐음. 그럼 어떻게 하려고?”

“아빠의 힘을 빌려야지.”

“아, 궁주님의 명령!”

사비란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쉽지 않을 거다.

물론 그들이 사비강의 명령까지 거역하지는 못할 것이다.

다른 사람이면 몰라도, 사비강의 명이라면 죽는 시늉도 할 사람들이니까.

그렇더라도 무슨 수든 쓰려고 할 테다.

원활한 임무 완수를 위해서는 그들을 설득해야 한다.

‘뭐, 천천히 생각해 보지. 가는 동안 무슨 수라도 생길 테니.’

사비란은 깊게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지금은 그저 그리운 얼굴들을 보는 것만 생각하기로 했다.

이제 송백현만 거쳐 간다면, 마지막 한 군데만 남았다.

‘그리고 그곳에서 구체적인 작전을 세우고 임무에 나서겠지.’

**

“절대로 안 돼! 내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까지는 안 돼!”

연우경이 이마에 핏대까지 세우며 소리쳤다.

그의 시선이 향한 곳에는 한 떨기 꽃처럼 아름다운 여인이 잔뜩 속상한 표정을 지은 채 서 있었다.

바로 연우경의 딸, 연설연(燕雪然)이었다.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 그녀는 입술을 꾹 씹더니 앙칼지게 소리쳤다.

“아버지! 그렇게 반대하실 일은 아니잖아요! 누가 보면 제가 산적이라도 만나러 가는 줄 알겠어요!”

“뭐라고? 차라리 산적을 만나거라! 어디 만날 인간이 없어서 그딴 놈을 만나? 배워 처먹지도 못한 사파 나부랭이는 애초에 상종하는 게 아니다!”

“정말 너무하시네요. 이젠 시대가 변했다고요! 언제까지 그런 고리타분한 생각에 갇혀서 사실 거예요? 아버지는 아버지가 얼마나 답답한지 아세요?”

“뭐야? 이 녀석이 아비한테 버릇없이 말대꾸를 해!”

“정당한 대꾸도 못하나요?”

“허어! 기도 안 차는군. 내가 젊었을 때는 말이다. 너처럼 부모에게 바락바락 따지는 건 상상도 할 수 없었다.”

“하! 그러셨어요? 그래서 문제아로 분류되어서 특목반에 들어가셨어요?”

“뭐, 뭐야? 이 녀석아! 그래도 결과적으로 잘 된 일이 아니냐? 그 덕에 궁주님과 연을 쌓고, 네가 이렇게 훌륭한 환경에서 클 수 있는 것도….”

“그럼, 저도 두고 보시라니까요? 저도 결과적으로 잘 되면 장땡이잖아요?”

“이 녀석이 진짜…!”

“그리고 걸핏하면 ‘내가 젊었을 때는 말이다’, ‘나 때는 말이다’ 어쩌고저쩌고. 이런 말 하는 사람을 요즘 뭐라고 하는지 아세요?”

“무슨 소리냐?”

“꼰대라고 해요! 꼰대! 바로 아버지 같은 사람요!”

“저, 저, 저…! 말하는 것 보소! 이 녀석이 아주 사파 나부랭이랑 어울려 다니더니 말버릇도 아주 험악해졌구나!”

“아버지도 젊었을 때 사파 나부랭이랑 친구 아니었어요? 흑천도가가 이렇게 성장할 수 있었던 것도 다 우리 집안이 도와줘서 그런 거잖아요?”

“흥! 그건 내가 태어나서 가장 후회하는 부분이다!”

도저히 말이 통하지 않자, 연설연이 풀 죽은 목소리로 말했다.

“아버지. 그냥 편하게 생각하시면 안 돼요? 저는 단지 다루에서 그를 만나 송백현의 평화에 대해 논의하고 싶을 뿐이에요.”

“송백현은 지금도 충분히 평화롭다.”

“아뇨. 툭하면 칼부림이 일어나죠. 이곳 사람들은 우리 가문의 눈치를 보고 있다고요.”

“그놈들 가문의 눈치를 보는 거겠지.”

“아버지!”

“넌 그저 회담이라는 핑계를 대고 그 인상 더러운 놈이 보고 싶을 뿐이잖느냐?”

“그를 그런 식으로 말씀하지 마세요!”

“너, 정녕…!”

연우경은 뒷목을 잡고선 눈을 질끈 감았다.

금이야, 옥이야 소중하게 키운 딸이었다.

한데 하필이면 원수 같은 집안의 자식과 정분이 날게 뭐란 말인가?

게다가 이렇게 자신에게 따지며 대드는 모습을 보자니, 분노를 넘어 슬픔이 느껴질 정도였다.

“몰라요, 몰라! 난 만나러 갈 테니까!”

“이 녀석아, 거기 서지 못해! 내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까지는 절대 불가다!”

“그럼 아버지 눈에 흙을 한 줌 뿌리겠어요!”

“저, 저… 버릇없는…!”

하지만 연설연은 뒷이야기를 더 듣지도 않고 휑하니 걸어가 버렸다.

연우경은 뒷목을 잡고는 그 자리에 털썩 앉았다.

무인이 뒷목이 당긴다면 지나가던 개도 웃을 일이다.

사실 그는 평생 뒷목이 당겨 본 일이 없다.

한데 딸이 제멋대로 행동하면서부터는 줄곧 뒷목을 잡는 일이 잦아졌다.

그만큼 그의 인생에서 딸이 차지하는 의미가 큰 것이리라.

마침 방안으로 목단화가 들어왔다.

“괜찮아요? 조금 전 연아가 잔뜩 토라진 얼굴로 제 방으로 가던데.”

“말도 마시오. 저 녀석이 굳이 석검영(石劍英)을 만난다고 하지 않소? 평화 회담을 위해서라는데, 그게 말이나 되는 소리요? 그저 그놈 낯짝을 보고 싶은 거겠지!”

“또 그 이야기를 했군요. 내가 아침에 그만큼 타일렀는데. 요즘 애들은 참 힘드네요. 도대체 그 인상 더러운 녀석의 어디가 좋다는 건지.”

“내 말이 그 말이오! 어디 배워 처먹지도 못한 사파 나부랭이를 만나려고!”

“그러게요. 오늘은 연아에게 감시 호위를 붙여야겠어요. 혹시라도 지난번처럼 몰래 빠져나가면 안 되니. 내가 단단히 타이를 테니, 당신은 너무 신경 쓰지 마요.”

“잘 좀 타일러 보시오. 절대로 흑천도가는 안 되니까.”

“물론이죠.”

목단화가 고개를 끄덕였다.

**

콰아앙!

요란한 소리에 이어 탁자가 산산조각 났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탁자가 있던 자리에는 사슬낫이 깊숙이 박혀 있었다.

간발의 차이로 사슬낫을 피한 석검영이 등줄기에 식은땀을 흘리며 말했다.

“아, 아버지! 진정하세요! 그렇게 화내실 일은…, 우앗!”

촤르르르륵! 꽈앙!

다시 한 번 사슬낫이 미끄러지듯 날아오더니 침상을 두 동강 내버렸다.

이번에도 석검영은 간발의 차이로 사슬낫을 피했다.

“아버지… 저는 그저 연 소저를 만나서 평화회담을….”

“닥쳐라.”

잔뜩 억눌린 음성.

석탄강은 분을 삭이기라도 하듯 눈을 지그시 감고는 심호흡했다.

하지만 그의 전신에서는 살기에 가까운 투기가 일어나고 있었다.

“어디 만날 사람이 없어서 그딴 위선자들을 상대하려고 해?”

“아버지… 연 소저는 위선자가 아닙니다. 이제 많은 세월이 흘렀으니 오랜 오해를 푸시고….”

“닥쳐라! 머리에 피도 안 마른 놈이 뭘 안다고 깝죽거리는 것이냐!”

촤르르르륵!

“우아악!”

꽈다앙!

이번엔 아예 벽에 구멍이 나버렸다.

석검영이 해쓱해진 표정으로 석탄강을 돌아보았다.

“하하… 아무래도 이 얘기는 다음에 하겠습니다!”

“거기 서지 못하겠느냐!”

하지만 석검영은 이미 창밖으로 몸을 날린 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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