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36
귀환 마교관
636화(외전 09)
쿠오오오오오오!
거대한 수룡이 물을 뿌려대며 창공에서 몸을 비틀어댔다.
마치 강바닥에 잠자고 있던 용이 드디어 하늘로 승천하려는 것만 같았다.
놀란 주민 중 한 사람이 가까스로 말을 더듬었다.
“저, 저게 뭐지? 용, 용인가?”
“용이다! 수룡이다! 용신이 노하셨다!”
“우와아악!”
마을 주민들이 혼비백산해 있을 때, 두 손을 뻗고 있던 옹수령이 소리쳤다.
“놀라지 마세요! 저건 수룡이 아니에요. 그저 물일뿐이에요.”
말을 마친 그녀가 손을 양옆으로 펼치자, 솟구쳐 오른 수룡이 그녀의 손길을 따라 움직이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이제 달아날 생각도 잊은 채 이 신비로운 광경을 바라보기만 했다.
“맙소사… 어떻게 이런 일이?”
“가만 보니 저건 진짜 물일뿐인데….”
“설마 수령이 물을 다스릴 수 있다는 건가?”
“그런 말도 안 되는 일이 어디 있어?”
“하지만 보라고! 지금 수령이 손을 움직이는 대로 물줄기가 움직이지 않는가!”
사람들이 마구 술렁거렸다.
그러거나 말거나 옹수령은 자신에게만 집중했다.
조금이라도 집중력이 흐트러지면 안 된다.
아이의 목숨이 경각에 달린 상황이다.
사람들에게는 그저 물줄기일 뿐이라고 말했지만, 사실 그녀에게는 다른 존재가 보이고 있었다.
하늘빛 비늘로 덮인 하반신에 아름다운 곡선의 상체를 가진 여인.
검푸른 머릿결을 휘날리면서 삼지창을 들고 도도하게 선 그녀는 바로 물의 최상급 정령인 엘레스트라였다.
조금 전 옹수령은 엘레스트라와 기적적으로 계약을 맺은 상황이었다.
상급 정령인 엔다이론까지는 불러본 적이 있지만, 최상급 엘레스트라를 소환한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만큼 아이를 구하겠다는 일념과 절박한 심정이 엄청난 정신력과 집중력을 발휘하게 만든 것이리라.
[엘레스트라, 방금 물에 빠진 아이를 건져 주세요. 부탁이에요!]
그녀의 의식이 전해지자.
츄아아아아아!
솟구쳐 올랐던 물줄기가 다시 강바닥으로 처박혔다.
“우와악!”
놀란 사람들이 저마다 훌쩍 물러났다.
강 복판에 소용돌이가 치면서 모든 걸 집어삼키고 있었다.
강물을 따라 떠내려가던 잎새도, 나뭇가지도 소용돌이를 벗어나지 못했다.
잠시 후.
츄아아아아아아아!
“허억!”
“뭐, 뭐야?”
다시금 튀어 오른 물줄기에 사람들이 기겁을 하면서 후다닥 물러났다.
잠시 후.
“엇! 저, 저건…?”
“아이고, 내 아들! 내 아들이구나!”
마을 주민 하나가 절규하듯 소리치며 달려 나왔다.
촤르르르르…!
끊임없이 흘러내리는 물기둥은 정확히 사람의 손 모양을 만들고 있었다.
거대한 손이 천천히 내려서면서 강변에 아이를 내려 두었다.
촤아아악!
아이가 바닥에 닿자마자 물기둥은 거짓말처럼 사라지고 말았다.
“아이고, 내 아들! 내 아들!”
마을 주민 중 아이의 부모로 보이는 자들이 달려가 울부짖었다.
옹수령은 그제야 안도의 숨을 내쉬고는 걸음을 옮기려는데.
“어…?”
세상이 핑그르 돌았다.
마침 누군가 소리치는 소리가 들렸다.
“령아!”
순식간에 달려와 쓰러지는 그녀를 부축하며 안은 사람은 바로 구강룡이었다.
“숙…부…?”
“이 녀석아! 지금 무슨 짓을 한 게냐?”
“죄송해요… 하지만… 가만히 있을 수는 없어서….”
“알았다. 일단 아무 말 마라!”
구강룡이 얼른 옹수령의 맥을 짚었다.
‘이런!’
기혈이 엉망진창으로 뒤얽히고 있었다.
그가 옹수령을 얼른 정좌하게 한 다음, 그 뒤에서 등에 손을 뻗고 기를 운공했다.
마침 아이의 부모가 구강룡에게 달려왔다.
“구 대협! 우리 아들이 숨을 쉬지 않습니다! 도와주…!”
“지금 그분을 건드리지 마세요!”
날카롭게 소리친 목소리에 아이의 부모가 흠칫거리고는 돌아보았다.
그곳에는 하늘에서 갓 내려온 것만 같은 아름다운 여인이 굳은 표정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사비란이었다.
그녀의 분위기는 어딘지 모르게 위엄이 있었다.
아이의 부모가 엉겁결에 되물었다.
“그, 그럼 어찌 하면….”
“다들 물러나 주세요.”
그녀의 한 마디에 마을 주민들이 아이 곁에서 멀어졌다.
사비란이 한쪽 무릎을 꿇고는 아이의 맥에 손을 댔다.
‘아직 살아 있어.’
그녀가 얼른 가슴에 손을 대고 운기하기 시작했다.
기를 운용해서 가슴을 압박하는 방법이었다.
숨 막힐 듯한 시간이 흘렀다.
아이의 부모는 발을 동동 구르면서도 감히 함부로 다가갈 수 없는 분위기에 눌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했다.
잠시 후.
“쿨럭! 콜록, 콜록! 허억! 하아! 하아!”
아이가 기침을 토해내더니 격하게 숨을 몰아쉬는 것이 아닌가?
그제야 사람들이 환호성을 터뜨리고는 박수를 보냈다.
“아이고, 아들! 살았구나! 네가 정녕 살아났구나! 하늘이여, 감사합니다!”
“이 녀석아, 괜찮으냐? 얼마나 놀랐는지 아느냐?”
부모가 아이를 부둥켜안고 울부짖었다.
마침 단리혁이 사비란 곁으로 다가오며 구시렁거렸다.
“거참 감사할 줄 모르는군. 그 귀한 자식 살려 준 사람이 누군데.”
“그게 부모 마음 아니겠어? 당장은 살아난 아들이 소중하겠지. 감사 인사는 그 후에 받아도 돼. 인사 받으려고 한 일도 아니니.”
“호오. 역시 사 소저는 마음씨조차 아름답구려. 그런데 우리 이제 반말 하는 사이가 된 건가?”
“그쪽이 먼저 말을 놓으니, 나도 놨을 뿐. 오해는 말길.”
딱 자르듯 말한 그녀가 유유히 자리를 떴다.
그 뒷모습을 보면서 단리혁이 이마를 탁 쳤다.
“캬아, 역시. 멋진 사람이야!”
**
방안의 분위기는 어딘지 엄중했다.
“그런 일이 있었구나.”
옹기승이 무겁게 한숨을 내쉬었다.
딸에게 먹일 약초를 캐기 위해서 아내와 함께 산에 오른 참이었다.
한데 자신이 없는 사이에 옹수령이 위험에 빠질 뻔 한 것이다.
다행히 마침 구강룡이 나타나 응급처치를 했기에 망정이지 하마터면 옹수령은 기혈이 뒤틀려 큰일을 당할 뻔했다.
“죄송해요, 아버지, 어머니.”
옹수령이 고개를 푹 숙이고 죄인처럼 중얼거렸다.
옹기승은 담담한 눈빛으로 옹수령을 물끄러미 응시했다.
“그래서… 아이는 구했느냐?”
그의 말에 옹수령의 표정에 희색이 돌았다.
아버지가 아이의 안위를 물어봐 준 것이 무척이나 고마웠다.
행여나 왜 엄한 일이 끼어들어 위험을 자초하느냐고 다그칠까 봐 내심 걱정하던 차였다.
옹수령이 조금 밝아진 표정으로 대답했다.
“네! 다행히 무사하다고 해요.”
“다행이구나. 너는 어떠냐?”
“저도 숙부님이 치료해 주셔서 괜찮아요.”
“하지만 완전히 나은 것은 아닐 테지. 앞으로는 조심해야 한다.”
“네, 아버지.”
옹수령이 고개를 크게 끄덕이며 대답했다.
옹기승이 옆을 돌아보며 물었다.
“당신은 뭐 할 말 없소?”
그의 곁에 앉은 여인.
옹기승의 아내이자, 옹수령의 어머니인 그녀는 바로 능소소였다.
능소소는 마음이 복잡했다.
옹수령이 저런 몸을 타고 태어난 것도 모두 자기 때문인 것만 같았다.
사실 아니라고만 할 수는 없었다.
옹기승의 선천마령지체의 영향과 정령과 친숙한 자신의 영향을 딱 절반씩 물려받으면서 생긴 현상이었으니까.
그녀의 몸에서 마령의 기운과 정령의 기운이 서로 충돌하면서 기혈이 뒤틀리는 부작용을 일으키는 것이었다.
이를 와해할 방법은 오로지 하나였다.
순간적으로 많은 양의 내공을 주입하거나, 마공석에서 마나를 지속적으로 흡수하는 것이다.
그런 이유로 구강룡은 만물상을 찾아가 삼만 냥씩이나 주고 마공석을 사온 것이다.
한참이나 입을 다물고 앉아 있던 능소소가 부드럽게 웃으며 물었다.
“엘레스트라를 소환했다니 대단하구나. 축하한다.”
이 또한 뜻밖의 칭찬이었다.
옹수령은 어머니가 눈물이 쏙 빠지도록 혼낼 줄 알았다.
일전에 엔다이론을 소환했을 때도 그랬으니까.
하지만 아이를 구했기 때문일까?
어머니였어도 그랬을 것이기에?
모르겠다.
어쨌거나 어머니의 칭찬에 옹수령은 눈물을 그렁거리며 답했다.
“감사해요, 어머니.”
“하지만 네 몸은 네가 지켜야 한다. 그 누구도 대신 지켜 주지 않는다는 걸 명심해야 한다. 오늘만 해도 나와 네 아빠가 전혀 손을 쓰지 못했잖니? 네 숙부도 마찬가지고.”
“명심하겠습니다.”
“남을 구하는 건 좋다. 하나, 그전에 나부터 지킬 줄 알아야 한다. 나를 소중하게 여기지 않는 사람은 남을 구할 자격도 없단다.”
담담하게 흘러나오는 말들.
하지만 그 목소리에는 어딘지 울림이 있었다.
옹수령은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어머니의 목소리가 워낙 진중했기에, 소리를 내어 대답하기보다는 가슴에 새긴 것이다.
다만 구강룡은 두 사람이 이 정도 타이르는 것으로 끝내는 것이 영 못마땅한지 헛기침을 하고는 한 마디 하려고 했다.
하지만 그전에 먼저 옹기승이 사비란을 돌아보며 빙그레 미소 지었다.
“오랜만이구나, 란아.”
“네, 오랜만에 뵙습니다, 사부님.”
“이야기는 들었다. 본론부터 말하자. 임무를 수행하는데 령아가 필요하다고?”
“아뇨. 강요는 하지 않습니다.”
사비란이 딱 부러지게 말하자 옹기승이 조금 의외라는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가 능소소와 구강룡을 한 번씩 바라보니, 구강룡이 대략의 사정을 설명해 주었다.
이야기를 전해들은 옹기승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옹수령을 바라보았다.
“그래, 그것도 좋은 방법이구나.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시오?”
“당신이 받아들인다면 저는 괜찮아요.”
능소소가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옹기승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옹수령을 보고 물었다.
“령아, 어떠냐? 너는 이들과 함께 가겠느냐?”
모두의 시선이 옹수령에게 향했다.
옹수령은 갑자기 들이닥친 이 상황에 그저 얼떨떨할 따름이었다.
“정말… 제가 결정해도 되는 건가요?”
“그렇다. 너도 이제 그럴 나이가 되었으니.”
옹기승이 답하자, 옹수령은 지금 상황이 어색한 듯 심호흡을 했다.
한편 분위기가 생각과 다르게 흐르자, 구강룡은 초조한 심정이 들었다.
“커험! 험! 령아, 이 강호는 무척 험난하단다. 살이 찢어지고 막, 피가 막 튀고, 막… 막 모가지가 비틀리고, 뼈가 부러지고 튀어 나오고 막…!”
“가겠어요. 가고 싶어요!”
“내장이 터져… 응? 뭐?”
“가게 해주세요.”
“령아!”
이번에는 구강룡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모두 그를 바라보았다.
구강룡이 아랑곳하지 않고 소리쳤다.
“잘 생각해야 한다! 이 강호는 절대 호락호락하지 않다. 겉과 속이 다른 자가 천지에 널려 있고, 간악한 무리들이….”
“알고 있어요, 숙부.”
“령아… 너 정녕….”
이제 구강룡은 거의 울음을 터뜨리기 직전이었다.
이래서는 안 된다.
새장에 갇힌 새는 자유를 주어도 망설임이 있어야 하건만.
어째서 너는 그리 쉬이 떠나려는 것이냐!
‘설마 정말로….’
그의 시선이 사비란에게 향했다.
‘…함께 날 친구들이 있기 때문에?’
아무리 그래도 이렇게 쉽게 떠날 줄은 몰랐다.
구강룡은 그래도 포기하지 않았다.
“령아, 너는 성치 않은 몸이다.”
“알고 있어요. 최대한 조심하겠습니다.”
“그게 조심한다고….”
“너무 걱정 마세요, 숙부. 언젠간 저도 홀로 서야 하지 않겠어요? 제게 이번 기회는 좋은 훈련이 될 거라고 생각해요. 그 기회를 이렇게 가질 수 있어서 오히려 기쁘답니다.”
구강룡이 입을 딱 벌리고 아무 말도 못하는데, 옹기승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뜻을 잘 알겠다. 조심히 다녀오너라.”
“감사합니다, 아버지!”
“승아! 너는 정말 저 아이를 이렇게 보낼…!”
“형님. 제가 이 길을 선택했을 때도 저의 결정이었습니다. 이제 령아도 자신의 인생에 책임질 나이가 되었습니다.”
“아직… 저렇게 여리고 여린데… 어찌….”
구강룡은 결국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반면 사비란은 밝은 표정으로 말했다.
“그럼 결정이 되었군요. 백화단은 옹수령과 함께 이번 임무에 임하도록 하겠습니다.”
능소소가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하지만 오늘은 날이 늦었으니 하룻밤 자고 가려무나. 마침 마을 사람들이 감사의 뜻을 전하고 싶다고 하니.”
“감사합니다, 어머니!”
“감사합니다, 사모님!”
사비란과 옹수령이 동시에 대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