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24
귀환 마교관
624화
“키햐아아!”
대마괴의 촉수 끝에 달린 상반신이 괴성을 내지르면서 마력검을 휘둘러 왔다.
“어딜!”
까가앙!
목단화가 재빨리 섬광벽력검을 펼치면서 촉수를 막았다.
하지만 대마괴의 촉수는 점점 그녀를 궁지로 몰아넣고 있었다.
따다다다당!
연신 불꽃이 터지면서 적의 공격을 막아내는 목단화.
일순, 촉수 하나가 목단화의 아랫배를 파고들면서 검을 횡으로 베어 왔다.
“헛!”
헛바람을 삼킨 그녀가 아슬아슬하게 물러나려는데.
촤아악!
한 줄기 섬광이 수직으로 떨어지면서 촉수의 허리가 싹둑 잘려 나갔다.
목단화가 고개를 들어보니 설서린이 채찍을 한 차례 휙 젓고는 조소를 지었다.
“역시 네년은 나 없으면 안 되는구나?”
“흥! 충분히 막을 수 있었거든?”
“고맙다는 말을 하는 게 그렇게 창피하니?”
“고마울 게 있어야 고맙다고 하지! 그리고 내가 널 살려 준 게 한두 번이니?”
“네가 언제?”
“이봐. 이러니까 선심을 베풀어도 아무 소용이 없다니까. 이렇게 배은망덕한 년이라니.”
“시끄러! 지금은 내가 널 살려 준 거잖아!”
“언제?”
“뭐야?”
두 여인이 싸우는 사이에 잘려 나간 촉수에서는 다시 상반신이 뭉그적거리며 생성되고 있었다.
다음 순간.
“캬아아아!”
어느새 재생된 촉수의 상반신이 보복이라도 하겠다는 듯 빠른 속도로 두 여인에게 날아갔다.
“엇!”
“앗!”
그제야 두 여인이 당황하며 물러나려는데.
촤아아아악!
이번에도 빛줄기가 길게 호선을 그리더니 촉수를 잘라내고 말았다.
잘려 나간 촉수는 땅바닥에서 비명을 내지르며 퍼덕거리다가 이내 진득하게 녹아내리고 말았다.
두 여인의 앞을 막으며 나타난 사람은 바로 자운룡이었다.
그가 숨을 헐떡이며 말했다.
“후우, 이런 상황에서도 싸우고 있습니까? 정말 못 말리겠군요.”
그러자 잠깐 머뭇거리던 두 여인이 동시에 소리쳤다.
“우, 우리도 충분히 막을 수 있었다고요!”
그렇게 대답한 두 여인이 서로를 바라보더니, 곧 ‘흥!’ 하며 고개를 휙 돌리고 말았다.
자운룡이 어색한 미소를 짓는데.
“어?”
목단화가 대마괴를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녀의 반응에 자운룡과 설서린이 동시에 대마괴를 보았다.
“촉수가… 재생되지 않아요!”
“진짜네? 뭐지? 왜지?”
변화는 그뿐만이 아니었다.
시커멓게 물들어 있던 땅바닥이 조금씩 회색 빛깔로 변하고 있었다.
곧이어.
그그그그그그그긍…!
땅이 격하게 흔들리더니 저만치 솟아오른 흑성이 조금씩 무너져 내리는 것이 아닌가?
“흑성이…!”
“무너지고 있어!”
두 여인이 그렇게 중얼거린 순간, 어디선가 고함 소리가 들려왔다.
“공격이 먹혀들고 있다!”
“대마괴가 힘을 잃고 있다! 지금이다! 몰아붙여라!”
“우와아아아아!”
거듭 후퇴하던 무인들이 함성을 터뜨리며 대마괴를 합공하기 시작했다.
끊임없이 재생되곤 했던 촉수들도 이제 한 번 잘려 나가면 다시는 만들어지지 않았다.
“갑시다!”
자운룡이 소리치자, 두 여인이 동시에 고개를 끄덕이고는 동시에 몸을 날렸다.
**
털썩…!
타란트가 무릎을 꿇었다.
그는 이제 처음의 모습으로 돌아와 있었다.
난자당한 전신이 피범벅이었다.
기력이 쇄한 그는 사비강을 물끄러미 보았다.
숨결이 희미해지고 있었다.
그는 지금 이 순간이 자신의 마지막이라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다.
때마침.
그그그그그긍…!
육중한 울림에 이어 흑성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그가 고개를 돌려 전장을 바라보니 마계화 되어 검게 변했던 땅이 점점 회색빛으로 옅어지고 있었다.
모든 것을 집어삼키면서 대재앙을 몰고 왔던 대마괴도 차츰 힘을 잃어 가는 것이 보였다.
이렇게 바라보니 인간이 마치 거대한 사마귀를 잡는 개미떼처럼 보일 지경이었다.
“저쪽도 정리가 되는 모양이군.”
“그런 것 같군….”
타란트가 조금은 지친 기색으로 대답했다.
“이것이 인간의 힘이다.”
사비강의 말에 타란트가 피식 실소를 흘렸다.
“과연. 내가 너희들을 얕잡아보았구나. 한 가지 물어보지.”
사비강이 착 가라앉은 눈빛으로 타란트를 응시했다.
타란트의 수명이 다하고 있다는 게 눈에 보였다.
마주하는 것만으로도 숨이 멎을 것만 같은 형형한 눈빛은 이제 차츰 어두워지고 있었다.
“어떻게 그런 무공을 갑자기 만들어 낸 건가?”
사비강이 타란트를 말없이 바라보다가 툭 던지듯 대꾸했다.
“아직도 모르겠나? 이 무공은 하루아침에 갑자기 만들어진 게 아니다. 인류의 역사가 담긴 무공이다. 우리의 강함은 인류가 존재한 이래부터 계속해서 발전해 온 것이다. 그러니 고작 수천 년을 산 너희들이 수만 년의 맥을 이어온 인류를 이길 것 같은가? 이 하등하고도 하찮은 존재여.”
타란트가 가만히 입매를 비틀어 올렸다.
마치 비웃는 것 같기도 하고, 자조적인 웃음 같기도 했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만 더 가르쳐 주지. 이래봬도 내가 교관이니까.”
“무슨…?”
“감정을 느끼지 못한다는 것은 완전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완전함으로부터 결핍당한 것이다. 공감력이야말로 인류가 가진 최고의 무기다.”
말을 마친 사비강이 손을 한 차례 휙 저었다.
쒸쒸이이이이잉!
푹, 푸욱!
순간 베르타스가 앞쪽에서, 고스트가 뒤쪽에서 타란트의 심장을 꿰뚫었다.
“커억!”
정면에서 박힌 베르타스 옆으로 고스트의 검봉이 핏물과 함께 튀어 나왔다.
사비강은 타란트의 마지막을 미루지 않았다.
잠시 잠깐 사이에 어떤 짓을 할지 모르는 것이 타란트였다.
“마족으로 태어난 너는 알려 줘도 모를 테지.”
타란트의 입가에서 피가 걸쭉하게 늘어졌다.
“과연… 나의 패배다. 하지만… 나도 마지막으로 한 가지… 가르쳐 주지.”
“……?”
“내가… 많은 이들의 반대에도… 너를 중용한 게… 무엇 때문이었을까? 그리고… 헬무트는? 큭…, 마지막으로 능운파는 어떤가?”
사비강이 이맛살을 슬쩍 구겼다.
“무슨 소리를 하고 싶은 거냐?”
“그들 모두… 인간이었지. 어째서 나는… 그들을 중용했던 것일까?”
“그야….”
말을 뱉던 사비강이 멈칫하고는 타란트를 보았다.
‘설마?’ 하는 생각이 잠깐 머릿속을 스쳤지만 그는 곧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 생각을 읽기라도 한 듯 타란트가 비릿한 웃음을 흘렸다.
그의 호흡은 이제 굉장히 탁해져 있었다.
“내가 가진 본능의 악신이… 처음에는 무책임과 망각의 악신이었다는 것을… 아는 자는 없지. 모두가 잊었을 테니.”
결국 사비강이 조금 전 가슴에 담았던 의혹을 입 밖으로 꺼냈다.
“설마… 너는….”
“그래… 나도 인간이었거든.”
쿠웅! 쿠구구구궁…!
마침 하늘을 찌를 듯 솟아오른 흑성이 완전히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사비강의 표정이 흔들리는 그 순간, 마왕 타란트가 말했다.
“너는 진정 모르고 있었던가? 마왕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진다는 것을.”
“……!”
“결국 너와 나는 별로 다르지 않을 지도. 나는 이 자리에서 죽지만… 너는 변하리라. 망각의, 악신의… 권능으로 너를, 잊힌 나의 세계에 초대한다….”
타란트의 눈이 완전히 빛을 일었다.
그런데 다음 순간.
슈르르르르륵!
그의 심장에서 검은 기운이 폭사하듯 쏟아지더니 순식간에 사비강을 집어삼켜 버렸다.
**
소년은 고아였다.
갓난아기였을 때 사창가에 버려진 고아.
그는 그곳에서 온갖 잡일을 하면서 지냈다.
창녀 중 한 명이 대모를 자처했다.
하지만 그녀는 다정하지 않았다.
소년에게 온갖 힘든 일과 잡다한 심부름을 시켰다.
폭행도 서슴지 않았다.
이따금씩 남색을 즐기는 손님에게 소년을 내어 주기까지 했다.
당연히 돈은 포주와 창녀가 챙겼다.
사창가를 벗어나기 위해서 몇 번이나 탈출을 시도했다.
하지만 소년은 그럴 때마다 포주가 고용한 남자들에게 잡혀 벗어날 수 없었다.
그런 날이면 밤이 새도록 두드려 맞곤 했다.
뼈가 부러져서 며칠 동안 걷지도 못하는 날도 있었다.
그럴 때는 앉아서 할 수 있는 일을 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먹을 것만큼은 넉넉했다.
다만 입맛이 없어도 억지로 먹어야 했다.
손님들이 마른 몸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게 이유였다.
적당한 체형을 유지해야만 했다.
그렇게 소년은 지옥보다 더한 삶을 살아갔다.
그러던 어느 날, 소년은 피부에 울긋불긋한 자국이 올라오는 것을 보았다.
가려웠다.
어떤 날은 피가 날 정도로 긁어야 했다.
결국 포주와 창녀는 의사를 불러 진료를 받도록 했다.
성병이었다.
무분별한 성행위로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 되고 말았다.
이제 겨우 열여섯의 나이였다.
하지만 소년은 자신이 죽을병에 걸렸다는 걸 알게 되자 오히려 마음이 편했다.
이 지옥이 곧 끝나리라는 생각에.
그날 소년은 사창가에서 쫓겨났다.
그토록 벗어나고 싶었던 곳을 그제야 떠날 수 있게 됐다.
하지만 병에 걸린 그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사창가에서도 쉬쉬했지만, 소문은 금방 퍼졌다.
모두가 소년을 힐난했다.
사람들은 그를 ‘사창가의 저주받은 아이’이라고 불렀다.
길 한쪽 구석에서 누군가 먹다 버린 만두를 주워 먹기도 했고, 개밥을 훔쳐 먹기도 했다.
당장 죽어도 이상할 것이 없는 상황에서도 배고픈 것은 이상하게 참기 힘들었다.
어차피 죽을 테니 그저 본능에 몸을 맡긴 채 명을 이어 가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어느 날, 소년은 재수 없다는 이유로 돌팔매질을 당했다.
뭘 잘못했는지도 모른 채, 그저 잘못했으니 용서해 달라는 말만 무수히 되뇌었다.
“너 같은 건 태어나지 말았어야 했다!”
사람들은 지칠 때까지 돌을 던지다가 저녁 무렵이 되어야 흩어져 돌아갔다.
그렇게 쓰러진 소년에게 누군가 다가왔다.
천사였다.
무척 아름다운 소녀.
“이 아이는 왜 여기에 쓰러져 있는 거지?”
청아한 목소리에 누군가 대답했다.
아무래도 그녀를 지키는 호위병인 듯했다.
“가까이 다가가지 않는 게 좋겠습니다. 사창가의 아이라고 합니다. 성병에 걸린 모양입니다.”
“가여운. 이 아이를 깨끗하게 씻기고 먹을 것을 주어라.”
호위병들이 탐탁찮은 표정을 지었지만, 거역하지는 못했다.
그녀는 공작의 딸이었다.
소년은 태어나서 처음으로 감정이 흔들렸다.
목욕을 마친 소년은 배를 든든하게 채우고 나서 감사 인사를 하기 위해 공녀를 찾아갔다.
하지만 소년이 생각했던 공녀는 그곳에 없었다.
대신 경멸에 찬 눈초리로 자신을 차갑게 노려보는 여인이 있었을 뿐이었다.
“그 더러운 몸으로 어딜 찾아온 것이냐? 아버지의 명성을 생각해서 사람들 앞에서 너에게 호의를 베풀었을 뿐. 이제 그 저주 받은 몸을 끌고 나가서 조용한 곳에서 죽어 버려.”
소년은 그렇게 저택을 나섰다.
머리를 망치로 맞은 것처럼 멍했다.
마침 거리를 지나가던 누군가가 소년을 가리키며 술렁거렸다.
“공녀님이 저 저주받은 아이를 씻기고 먹을 것도 주었다는군요.”
“아아, 역시 마음씨도 고우신 분. 우리 같으면 감히 그럴 수 있겠어요?”
사람들은 입에 침이 마르도록 공녀를 칭찬했다.
이후 소년은 공녀가 도와준 은혜도 모른 채 욕정에 미쳐서 공녀의 침소까지 침범한 파렴치로 소문이 나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공녀는 어린 아이의 철없는 행동이니 용서하고 내보냈다는 후문이었다.
사람들은 소년을 보기만 하면 죽일 듯 달려들었다.
그렇게 소년은 분노를 배우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분노가 폭발하기 직전.
“네가 사창가의 저주받은 아이구나.”
낯선 목소리가 들렸다.
소년이 멍든 눈을 겨우 뜨고는 바라보자, 젊은 청년이 그곳에 서 있었다.
희미한 웃음을 짓는 청년이 부드럽게 말했다.
“나는 아들러라고 한다. 삐뚤어진 너의 운명을 바로 잡을 기회를 주고자 한다. 어떠냐? 한 번 바꿔 보겠느냐? 너의 운명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