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23
귀환 마교관
623화
타란트는 무너져 내리는 땅에 끌려들어가지 않기 몸을 날렸다.
후우우웅!
그의 등에 돋아난 거대한 날개가 육중한 몸을 허공에 띄웠다.
그 모습 자체만으로도 마치 거대한 산이 창공에 떠 있는 것만 같은 위압감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사비강보다도 타란트 본인이 더욱 놀라고 있었다.
인간이 손바닥을 맨바닥에 내려찍어서 땅이 갈라지고 지면이 무너져 내린다는 게 가당키나 한 일인가?
정말이지 세상이 통째로 무너져 내리는 듯했다.
게다가 갈라지고 무너지는 지면 틈에서 솟구치는 날카로운 기운은 가슴 한편이 서늘할 정도로 위협적이다.
만약 재빨리 반응해서 피하지 않았더라면, 적어도 저 솟아오른 태천원기에 날개 한쪽은 내줬어야 하리라.
“슈비츠, 확실히 내 결정이 틀리지 않았다는 걸 증명해 주는구나. 너의 그 힘을… 내가 가져야겠다!”
천둥과도 같은 일갈을 터뜨린 타란트가 추락하는 혜성처럼 사비강에게 떨어져 내렸다.
쓔아아아아앙!
하지만 사비강은 그 자리에서 피할 생각도 하지 않은 채 담담히 말했다.
“말했을 텐데. 내 몸에 흐르는 피는 인류의 역사라고. 현 시대의 인간에게는 고대 인류의 지혜가 녹아 있다고. 그러니….”
팟!
사비강의 신형이 순간 사라지는가 싶더니 떨어져 내리는 타란트 앞에 거짓말처럼 나타났다.
“하등하고도 하찮은 너 같은 존재가 흡수할 수 있는 힘이 아니란 말이다!”
쉬따아아아아앙!
사비강이 내민 쌍장과 타란트가 휘두른 마력검이 격돌한 순간 하늘이 깨졌다.
기의 폭발로 인해 잔뜩 몰려들었던 먹구름은 산산 조각나며 흩어졌고, 쏟아져 내리던 비는 사방팔방으로 비수처럼 흩어져 날아갔다.
투타타타타타타앙!
빗방울 하나하나가 강기를 머금은 비수처럼 날아가 암벽에 작렬하자, 거대한 산이 비명을 내지르며 무너져 내렸다.
꽈르르르르릉…!
격돌 후에 몸을 물린 타란트는 믿을 수 없는 표정으로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파지지지짓! 꽈지지짓!
손에 들린 마력검은 연신 파동을 일으키며 흘러넘치는 마력을 주체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렇다고 기운이 넘쳐서 그런 게 아니다.
상대의 강맹한 기운과 부딪치는 순간부터 필요 이상으로 흘러나오는 기운이 주체가 되지 않는 증상이었다.
굉장히 큰 힘을 갑자기 쓰고 나면 팔이 부들부들 떨리는 것과 같은 이치.
처음으로 타란트의 표정에 어둠이 서렸다.
‘어쩌면….’
문득 떠오르려는 불길한 생각을 지우려는 듯, 그는 미간을 팍 구기고는 사비강을 노려보았다.
사비강은 비처럼 무너져 내리는 암벽 사이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표정으로 꼿꼿하게 서 있었다.
**
“대, 대단하다…! 정말 대단하다!”
천리경을 들여다보는 구윤은 전율했다.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마왕이 변태했을 때는 정말이지 모든 게 끝난 게 아닐까 싶었다.
사비강이 강호 명숙들의 도움으로 구사일생으로 살아났지만, 만해경에 이르렀는지 어땠는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거의 확신할 수 있었다.
‘저것이 만해경의 경지…!’
처음으로 근거 있는 희망이 생겨나는 순간이었다.
“아, 도대체 어찌 되고 있는 건가?”
“뭐가 그리 대단하다는 거야? 이야기라도 해주게!”
강호 명숙들이 체면불고하고 아이처럼 떼쓰듯 몰려왔다.
몇몇 이들은 무랑을 재촉했다.
“아직도 멀었소?”
“좀 서둘러 주시오! 거참 답답하구먼!”
“허어, 조금만 기다려 주시오. 다 되어 가오.”
무랑은 지금 평범한 노안이 되어 버린 강호 명숙들을 위해서 축지기경진(縮地氣鏡地陳)을 준비하고 있었다.
축지법과 비슷하면서도 다른 이 술법은 특정 자리의 지기(地氣)를 아지랑이처럼 피워 올려 먼 거리의 사물도 가깝게 보이도록 돕는 것이었다.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면 사물이 흔들리는 것처럼 보이듯, 지기의 두께를 이용해서 빛의 굴곡을 일으켜 천리경과 비슷한 효과를 내는 것이다.
일전에 무랑이 심심풀이로 만든 독문진법이었는데, 이런 식으로 쓰일 줄은 그도 몰랐다.
마침내 준비를 마친 무랑이 부적을 태우며 주술을 읊었다.
다음 순간.
“됐소! 모두들 여기서 보시오!”
무랑의 목소리에 강호 명숙들이 너도나도 모여들었다.
“오오오! 가깝구려! 정말 단숨에 달려갈 수 있을 정도로 가까이 보이는군!”
과연 완성된 축지기경진은 먼 거리의 상황도 손만 뻗으면 닿을 것처럼 가깝게 보이도록 해주었다.
게다가 기의 흐름을 곡면으로 설정해서 다른 곳 전장의 상황도 면밀히 살펴볼 수 있게 해주었다.
이 와중에도 구윤은 추후에 저 진법을 담우기에게 익히도록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머리 좋은 담우기라면 분명 무랑의 술법을 빠르게 습득할 수 있으리라.
전시와 같은 상황에서는 저 축지기경진으로 전술을 짜기가 좋을 듯했다.
‘이 상황에서도 그런 생각이라니. 나도 참 어쩔 수 없나 보군.’
그가 그렇게 자조 섞인 웃음을 짓는 동안, 강호 명숙들은 저마다 천리기경을 들여다보며 한 마디씩 내뱉고 있었다.
“그나저나 이렇게 보니 저 마왕은 더욱 두려운 존재로다.”
“그래도 사비강 궁주가 저런 놈을 상대로 잘 싸워 주고 있다니 정말이지 하늘이 내린 인재가 아니겠소?”
“암, 지옥에서 온 마왕을 막는 천신(天神)이나 다름없지요!”
목철우가 고개를 크게 끄덕이며 큰 소리로 추켜세웠다.
과거 사비강을 얕잡아 보던 그를 떠올린다면 정말이지 많은 변화라고 볼 수 있었다.
하지만 그의 말에 반박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실상 축지기경 안의 상황은 지옥이나 다름없었다.
연신 출렁거리며 폭발하는 용암 줄기와 갈라지고 무너져 내린 지면, 부서지는 암벽.
그 와중에 날개를 펼친 거대한 악마와 맞서고 있는 한 명의 인간!
사비강의 신형이 천천히 허공으로 떠올랐다.
“오오, 과연 훌륭한 경신술이로다.”
“오로지 기공만으로 운신하는 것인가? 참으로 놀랍구려.”
“나도 십 년만 젊었으면… 못했겠지?”
누군가 중얼거린 말에 강호 명숙들이 왁자하게 웃음을 터뜨렸다.
이상했다.
분명 상대는 거대하고 강한 존재인데, 사비강을 가까이에서 본 순간, 마음이 놓였다.
마치 재미있는 구경거리가 생긴 기분이랄까?
그들은 누구 하나 빠짐없이 그렇게 생각했다.
오늘의 이 관람을 언젠가 주변 사람들에게 침이 튀도록 떠들게 될 날이 올 것이라고.
반드시 이 강호는 그렇게 맥을 이어 갈 것이라고.
절대 악마와 맞서 싸우는 위대한 인간, 사비강.
그리고 그런 존재를 만든 건 바로 이 할아비라고!
그렇게 말할 날이 반드시 오리라.
어느 순간부턴가 강호 명숙들은 입을 굳게 다물고는 천리기경을 바라보기만 했다.
더 이상의 수다는 없었다.
언덕 위에는 경건한 분위기마저 흘렀다.
한편, 타란트는 사비강을 노려보며 말했다.
“과연 인정할 수밖에 없군.”
“이제 조금 깨달았나?”
사비강이 싸늘한 미소를 그리고는 말을 이었다.
“하지만 아직 뼈에 새길 정도는 아닐 테지. 상관없어. 곧 새겨 줄 테니까. 나약한 인간이 그 감정으로 강해지는 모습을 가르쳐 줄 테니까. 때론 간절하게, 때론 처절하게, 때론 무섭게. 그렇게 인간은 강해진다.”
사비강의 눈빛이 그 어느 때보다도 깊어졌다.
그는 만해경에 이르면서 세상을 보는 시각이 완전히 달라졌다.
예전에는 어느 한 분야에서 오의를 깨달으려면 무수한 노력을 해야만 했다.
그래도 겨우 무공 하나를 통달할까 말까였다.
무공을 창안하는 건 더욱 어려운 문제였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모든 현상과 시간들이 즉흥적으로 이해됐다.
지금 그가 사용하는 무공은 모두 즉흥적으로 만든 것이었다.
인간을 무시하는 타란트를 보면서 떠오른 초식들.
사비강은 이 무공을 ‘천지인세공(天地人世功)’이라 지었다.
그리고 천지인세공의 첫 번째 초식에 이은 두 번째.
“제 이식, 절규식(絶叫式)이다.”
말을 마치는 것과 동시에 사비강이 손을 세차게 휘저었다.
장삼자락이 펄럭이면서 바람 소리를 냈다.
곧이어.
뀌에에에에에에엑!
마치 죽은 영혼의 절규와도 같은 처절한 소리가 창공 가득 울리더니 하늘로 솟구쳤던 태천원기를 이끌며 무섭게 떨어져 내렸다.
마치 벽력이 내려치는 것과 같은 모습!
짜르르릉! 꽈르르르릉!
그야말로 하늘이 절규라도 하는 듯했다.
꽈자앙! 꽝! 꽈다당!
혜성처럼 떨어져 내린 검은 두 자루였지만, 그 주변으로 태천원기가 그 주변으로 마구 내리꽂히면서 땅을 깨부숴 나갔다.
그 중 몇 개는 타란트의 머리를 수직으로 찍어 왔다.
“크익!”
타란트가 어금니를 꽉 씹으며 마력패를 만들어 막았다.
꽈다르르릉!
육중한 그의 전신이 격동했다.
주변으로 거미줄처럼 지면에 금이 생기면서 대지진이 일어났다.
우르르르릉!
꽈다앙! 꽝! 꽝! 꽝꽈앙!
정신없이 쏟아져 내리는 태천원기.
단순한 벽력과도 차원이 다른 기운!
이번에는 타란트에게 반격의 기회가 좀처럼 주어지지 않았다.
태천원기를 막아내는 것만 해도 힘이 모자랄 지경이었다.
“으아아아압!”
꽈다아아앙!
마침내 어마어마한 폭음과 함께 타란트가 마력을 발출했다.
푸스스으!
강렬한 기의 충돌로 인해 하늘이 쪼개지는 듯 하더니 하얀 연기가 자욱하게 피어올랐다.
천리기경을 통해 지켜보던 강호 명숙들이 눈을 연신 끔뻑였다.
“뭐지? 어찌 된 건가?”
“설마 놈이 죽은 건가?”
“죽지 않았겠소? 저런 강렬한 공격을 막는 게 가능이나 할….”
“쉿! 뭔가 움직였소!”
누군가 외친 소리에 모두가 천리기경을 들여다보았다.
과연 자욱하게 피어오른 연무를 뚫으며 시커먼 그림자가 불쑥 나타났다.
“슈비츠! 너의 기고만장을 그만 끝내 주겠다!”
벽력과도 같은 외침과 함께 타란트가 사비강에게 쇄도했다.
이번만큼은 타란트 역시 모든 힘을 다 끌어 모아 일격을 가하는 중이었다.
하지만 사비강은 여전히 미동도 하지 않았다.
대신 그의 앞에 둥실 떠올라 있는 두 자루의 검만이 웅웅 울음을 터뜨릴 뿐이었다.
‘흥! 네놈이야말로 자만했구나, 슈비츠! 이젠 끝이다!’
마침내 마력검이 쑤욱 뻗어 가면서 사비강을 노렸다.
천리기경을 통해 지켜보던 강호 명숙들도 저마다 외마디 비명을 터뜨렸다.
“아앗!”
“위험!”
절체절명의 순간.
놀랍게도 타란트의 뇌리에 사비강의 의념이 비집고 들어왔다.
[잘 봐 둬라. 천지인세공의 마지막. 제 삼식, 멸마식(滅魔式)이다.]
서걱!
타란트는 두 눈을 크게 뜨고는 그대로 멈췄다.
마치 시간이 정지한 듯했다.
아니, 정말 정지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분명한 건 지금 막 무언가가 자신의 전신을 대각선으로 지나갔다는 것이다.
곧이어.
서걱! 서걱…! 서걱! 서걱! 서걱!
수십 개의 빛줄기가 어지럽게 허공을 그어 갔다.
천리기경을 통해 이를 본 강호 명숙들은 입을 쩍 벌린 채 꿈쩍도 하지 못했다.
그들의 눈에는 세상이 절단된 것처럼 보였다.
세상 중심에 대각선으로 빗금이 생기더니, 곧 그 빗금이 점점 늘어나면서 세상을 더욱 잘게 쪼개고 있었다.
다음 순간.
쫘좌좌좌좌좌아앙!
무수히 쪼개진 세상이 산산조각 나면서 무너져 내렸다.
그리고 절대 무너지지 않을 것 같던 거대한 존재, 타란트도 함께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