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21
귀환 마교관
621화
“퀴아아악!”
“쿠와아악!”
마물들이 저마다 듣기 싫은 괴성을 내지르면서 몸을 날려 왔다.
그 순간 서래향의 몸이 미끄러지듯 마물들 사이를 비집고 들어갔다.
동시에 그녀가 양손을 활짝 펼치면서 각 방향으로 장력을 발출했다.
파파앙!
“쿠웨에엑!”
“크에에엑!”
마물들이 비명을 터뜨리면서 쓰러져 갔다.
츠츠츠츠츠으읏!
주변의 땅이 시커멓게 변해 버렸다.
달려오던 녀석들이 흠칫거리고는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크윽! 썩는다! 다리!”
“저년 짓이다! 죽여라!”
독공에 당한 몇몇 마물들이 피를 토하며 쓰러졌고, 그나마 증상이 늦는 녀석들은 서래향에게 몸을 날렸다.
“흥! 징그러운 것들!”
서래향이 차갑게 비웃더니 가볍게 검을 휘둘러 달려드는 마물들을 처리했다.
촤촤촤아악!
“크아아악!”
한 차례 독풍이 불고 나자 주변에 마물들의 사체가 가득했다.
그제야 겨우 호흡을 고르는데.
“홍묘님, 숙이십시오!”
느닷없이 들린 고함 소리.
서래향이 반사적으로 허리를 숙이자.
쒸이이이잉!
적무린의 검이 그녀의 머리카락 끝자락을 아슬아슬하게 잘라내면서 그대로 날아갔다.
쉬따아앙!
강기를 입은 검신이 서래향을 향해 날아들던 촉수와 부딪치면서 금속성을 울리고는 튕겼다.
파밧!
허공으로 도약한 적무린이 튕겨 나온 검을 낚아채고는 얼른 서래향 곁으로 내려섰다.
“괜찮으십니까?”
“응….”
서래향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촉수가 날아온 방향을 보았다.
그곳에 대마괴가 있었다.
“어쩐지 조금 둔해진 느낌입니다. 더 단단해지고.”
“그런 것 같네.”
서래향 역시 고개를 끄덕이고는 적무린의 말에 동의했다.
확실히 뭔가 달라졌다.
여태까지는 뭔가 끈적끈적한 촉수에 탄성을 가진 느낌이었는데, 지금은 강철처럼 단단한 느낌이다.
움직임도 확실히 둔해졌다.
“녀석도 지치는 걸까요?”
“글쎄. 제발 그럼 좋겠네. 일단 지금이라면 한 번 접근은 해볼 수 있겠는 걸?”
지금까지는 대마괴를 정면으로 상대하지 않았다.
때문에 그녀가 이끄는 적멸단과 적무린이 이끄는 멸검단은 대마괴 근방에서 마물들만 상대하고 있었다.
당이협이 이끄는 비살단도 마찬가지.
괜히 섣불리 대마괴에게 덤벼들었다간 오히려 녀석의 먹잇감이 될 뿐이었다.
하지만 지금이라면….
이상하게 대마괴가 점점 굳어 가고 있었다.
색깔도 시커멓게 변하고 있었다.
흑검단을 이끄는 위검종이 두 사람에게 다가왔다.
“대마괴가 느려지고 있습니다.”
적무린이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그렇잖아도 우리도 그 이야기를 하고 있었소.”
“하면, 지금 놈을 치는 건 어떻겠습니까?”
“좋은 작전이 있소?”
“이 상황에 작전이랄 게 있겠습니까? 최대한 놈을 포위해서 한꺼번에 치는 방법밖에 없지요.”
적무린과 서래향이 서로를 보았다.
두 사람도 딱히 이렇다 할 작전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서래향이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요. 그럼 이왕이면 비살단도 합류해서 네 방향에서 치도록 하죠?”
비살단은 당이협이 이끄는 조직이었다.
네 개의 단이 한꺼번에 대마괴 하나를 공격한다면 저 골칫거리를 처리할 수 있을 지도 몰랐다.
“그럼 제가 당 단주님을 모셔오겠습니다!”
몸을 훌쩍 날린 위검종은 잠시 후 당이협과 함께 다시 나타났다.
대략의 이야기를 들은 당이협이 빠르게 지시를 내렸다.
“하면 동쪽은 비살단이 치도록 하겠소. 위 단주가 흑검단을 이끌고 서쪽을 맡아 주시고, 적 단주와 서 단주가 각각 북쪽과 남쪽을 맡아 주시오.”
“알겠습니다!”
세 명의 무인이 이구동성으로 대답한 후 일시에 흩어졌다.
그러는 사이 대마괴는 더욱 몸이 굳어지고 있었다.
거대한 애벌레 모양을 한 대마괴의 전신이 시커멓게 물들더니 이내 철갑을 두른 듯 딱딱해지는 것이 아닌가?
당이협이 신호를 내렸다.
“지금이다, 쳐라!”
“우와아아아아!”
순간 네 개의 조직이 동시에 동서남북에서 치고 들어갔다.
그 함성으로 천지가 격동할 정도였다.
촉수는 더 이상 날아들지 않았다.
마치 거북이 등껍질 속에 들어간 것 마냥 대마괴는 그렇게 움츠러든 모양으로 꿈쩍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무인들의 공격이 먹혀들지도 않았다.
따다다다당!
까가가가가강!
무수한 금속성으로 고막이 터질 듯했고, 연신 불꽃이 튀어 올라 사방이 눈부시도록 번쩍였다.
하지만 대마괴에게는 흠집조차 낼 수 없었다.
‘아무래도 효과가 없는 것 같은데.’
미간을 좁힌 당이협이 몸을 훌쩍 날리고는 대마괴의 몸통 위로 올라섰다.
대마괴는 그야말로 금속 갑주를 두른 것처럼 단단했다.
표피 아래로는 희미한 빛이 쉴 새 없이 흐르고 있었다.
죽진 않았다는 증거다.
다른 무인들 역시 당이협을 따라 대마괴 등에 올라타서는 여기저기 칼을 쑤셔댔다.
하지만 마치 단단한 바위를 쇠꼬챙이로 찌르는 것처럼 끄떡도 없었다.
문득 불길한 생각이 스쳤다.
‘설마…?’
시커먼 표피 아래에서는 다양한 빛깔의 기운이 기분 나쁠 정도로 쉴 새 없이 흐르고 있었다.
어느 순간.
꾸물쩍…! 쩌적…!
대마괴의 등줄기 복판에서 균열이 가기 시작하더니 진득한 점액질 같은 것이 배어나오는 것이 아닌가?
“엇! 반응이 있습니다!”
마침 그 근방에 있던 무인이 소리쳤다.
점액질은 곧 뭉게뭉게 뭉치더니 하나의 사람 형상을 나타냈다.
아마도 대마괴가 흡수한 무인 중 한 명이리라.
사람의 상반신 모양을 한 녀석이 돌연 머리를 감싸 쥐며 절규를 터뜨렸다.
“끼야아아악!”
“크읏!”
자칫 내상을 입을 정도로 짜랑짜랑한 비명 소리에 무인들이 저마다 공력을 끌어올렸다.
“시끄럿!”
근처에 있던 무인이 일갈을 터뜨리며 검을 휘둘렀다.
슈컥!
상반신이 단숨에 절단된 녀석은 그대로 녹색 피를 뿜어내면서 떨어져 나갔다.
그 이후로도 대마괴의 균열은 조금씩 커져 갔다.
쩌적…! 쩌억…!
이번에는 곳곳에서 점액질이 비집고 흘러나오면서 상반신이 만들어지고 있었다.
“이놈 이제야 반응이 오는구나!”
“희생당한 강호 동도의 영혼을 달래주겠다!”
무인들이 저마다 분노를 터뜨리며 칼부림을 시작했다.
하지만 당이협은 뭔지 모를 위화감을 계속해서 느끼고 있었다.
‘아냐, 이 정도로 치명상을 줄 순 없다. 아까부터 뭔가 이상하다…!’
그러는 사이 균열은 계속해서 커져만 갔다.
마침 뭔가를 발견한 당이협이 균열이 생긴 곳으로 달려가 검봉으로 슬쩍 찔러 보았다.
“껍질…? 역시…!”
의심이 확신으로 변한 순간 그가 고개를 휙 돌리며 소리쳤다.
“모두 물러서라! 최대한 멀리 떨어졋!”
“예? 이제 반응하기 시작했는데 왜….”
“어섯!”
말을 마친 당이협이 몸을 훌쩍 날렸다.
그러자 다른 무인들 역시 얼른 뛰어내리면서 달리기 시작했다.
당이협은 확신했다.
‘변태 과정이다! 애벌레 모양에서 지금은 단지 번데기의 모양이 되었을 뿐! 그래서 도검불침 상태가 되었던 거야! 저것이 깨어나면 앞서 대마괴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의 상대가 될 터!’
그의 예상은 한 치의 빗나감도 없었다.
쩌적…!
마침내 커다란 균열이 가더니.
- 꾸우우우우웅!
공기가 떨릴 정도로 엄청난 공명과 함께 단단한 껍질 안에서 더욱 커다란 대마괴가 탄생했다.
- 뀌아아아아앙!
“크읏!”
“으악!”
대마괴의 절규에 무인들이 저마다 비틀거리면서 균형을 잃었다.
몇몇 이들은 내상을 입고 피를 토하며 경련을 일으켰다.
거대한 애벌레 같았던 대마괴가 이제는 마치 커다란 거미처럼 변해 있었다.
그리고 등껍질에서 튀어 나왔다가 가라앉길 반복하면서 절규하는 수많은 사람들의 형상.
마침내 그들의 몸통이 촉수처럼 늘어나면서 사방팔방으로 거미줄처럼 뻗어 나왔다.
“퀴아아아아!”
“흐익!”
“우아악!”
갑자기 날아든 상반신들을 상대로 무인들이 도검을 휘둘렀다.
하지만 이번에는 단순한 촉수가 아니었다.
사람의 상반신 모양을 한 촉수는 마력검을 휘두르는가 하면, 입을 쩌억 벌리고 사람을 산 채로 뜯어 먹기도 했다.
채채챙! 챙챙!
“크아아악!”
어떤 이는 생전에 알고 지내던 이가 촉수로 나타나서 칼부림을 해야 했고, 어떤 이는 촉수가 되어 버린 사부에게 집어 삼켜지기도 했다.
그야말로 아수지옥이 펼쳐지고 있었다.
**
“맙소사….”
강호 명숙들이 무거운 침묵을 흘렸다.
한때는 선풍도골의 풍채를 자랑하며 나이에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형형한 안광을 뿜어내던 그들이 이제는 힘없는 늙은이가 되어 암울한 표정으로 전장만 내다보고 있었다.
“허어, 저런 게… 이 세상에 존재하다니….”
“오래 살다 보면 별 꼴을 다 본다더니, 정말 보지 않아도 될 걸 보는구려.”
“이젠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소. 그저… 저들을 믿을 수밖에.”
그들은 절망과 희망 사이에서 착잡한 표정을 지었다.
처음 대마괴를 보았을 때도 암담한 심정을 이루 표현할 수 없을 정도였다.
한데 지금 변태한 저 괴물을 보니 엄두가 안 난다.
확실히 지금이라면 희망보다는 절망 쪽에 더 가깝다.
게다가 사비강이 있는 곳에서도 갑자기 거대한 존재가 나타났다.
바로 마왕이 변한 것이다.
그야말로 재앙이다.
어디 설화나 전설 속에서나 나올 만한 괴물들이 인간들과 싸우고 있지 않은가?
먼 훗날 오늘의 이야기를 전해 준다면 후세 사람들이 믿기나 할까?
아니, 당장 중원 어딘가에 가서 지금 벌어지는 일들에 대해 이야기해도 사람들은 헛소리로 치부하리라.
두 눈으로 직접 보면서도 믿기 힘든 상황이니, 보지 못한 자들이야 오죽하랴.
하지만 대재앙과도 같은 마물이 실존하고, 거기에 맞서는 인간들이 있다.
그리고 그 모든 마물을 이끄는 절대 악과 맞서는 존재.
‘그가 바로 사비강이다….’
구윤은 그렇게 속으로 뇌까리며 천리경을 내렸다.
지금껏 그는 용암 지대를 살피고 있었다.
강호 명숙들이 그에게 다가와 물었다.
“어찌 되고 있는가?”
예전 같았으면 내공으로 안력을 상승시켜서 먼 곳의 상황도 대략이나마 살필 수 있는 그들이었다.
하지만 이제 평범한 노인이 되어 버린 그들은 구윤의 혀끝만 바라보고 있었다.
어딘지 씁쓸한 생각에 구윤이 쓴 웃음을 지으며 답했다.
“잘… 싸우고 계십니다.”
사실 아직 모르겠다.
마왕은 산처럼 거대한 몸으로 변해 버렸고, 그에 맞선 사비강은 너무나 작은 인간일 뿐이었다.
곧 무슨 일이 벌어질 것 같았지만, 마음이 심란하여 천리경을 내리고 말았다.
자신이 직접 싸우는 것만큼이나 긴장감이 흘렀기에.
구윤이 강호 명숙들을 둘러보며 말을 덧붙였다.
“선배님들은 하실 수 있는 모든 것을 하셨습니다. 저 또한 그렇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더 할 수 있는 것이라면… 저 영웅들을 믿는 것뿐이겠지요.”
강호 명숙들이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비록 내공을 모두 잃은 평범한 노인들이었지만, 한때 천하를 호령했던 자들답게 그 표정과 눈빛에서는 어딘지 모를 기품이 느껴졌다.
구윤은 다시 천리경을 들어 전장 쪽을 살펴보았다.
변태를 끝낸 대마괴는 정말이지 무서운 존재였다.
겨우겨우 녀석들을 상대하던 헬무트 기사단마저 눈에 띄게 밀리기 시작했다.
구윤은 다시 시선을 돌려 저만치 까마득하게 하늘로 솟구친 흑성을 보았다.
‘총관님…! 시간이 없습니다! 서둘러 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