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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 마교관-600화 (600/670)

# 600

귀환 마교관

600화

트라잔의 뺨이 씰룩였다.

“네놈은…?”

그가 시선을 돌리자, 사비강이 차가운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오랜만이군, 트라잔.”

마치 지인을 대하는 듯한 태도에도 트라잔은 별로 놀라지 않았다.

대신 피식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과연. 네놈이 회귀자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내 이름을 정확히 아는 것으로 보아서는 사실인 듯하군.”

말을 마친 트라잔이 순간 두 눈에 힘을 주었다.

찰나.

꾸드드드드득…!

츄아아아!

진득한 액체가 흐르는가 싶더니 잘려 나간 팔이 다시 솟아나면서 재생되었다.

아직은 근육질과 핏줄이 엉겨 붙어서 괴이한 모습이었지만, 분명 제대로 팔의 기능을 하고 있었다.

손가락을 꿈지럭거리면서 움직인 트라잔이 입매를 비틀었다.

“재미있군. 회귀자라… 그래, 중원인으로서 마계를 겪어 보니 어떻던가?”

“말해서 뭐하겠나? 엿 같았지.”

“어떤 점이?”

“고작 이 정도밖에 안 되는 녀석들에게 강호인들이 당했다는 사실이… 아주 엿 같았지.”

사비강의 눈빛이 표독스럽게 변했다.

동시에 트라잔의 눈자위 또한 무섭게 일그러졌다.

“회귀를 한 정도로 무적이 된 줄 착각하는 모양이군.”

“트라잔. 난 네가 늘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어.”

“……?”

“평소에 과묵한 척하면서… 가끔씩 어울리지 않게 종알종알 수다스럽단 말이지.”

스팟!

찰나지간, 사비강의 신형이 사라지는가 싶더니 트라잔 바로 앞에 나타났다.

“놈!”

트라잔이 포효를 터뜨리듯 고함을 내지르면서 그대로 마력검을 생성해 휘둘렀다.

파지지지짓!

탁.

순간 트라잔은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사비강이 손을 들어 마력검을 막아낸 것이 아닌가?

그것도 맨손으로!

‘이런 미친…!’

찰나.

짜아악!

슈우우우욱, 쿠당탕!

사비강의 손찌검에 포탄처럼 날아간 트라잔이 전각을 부수며 나뒹굴었다.

그그그그긍… 콰과광!

기울어진 전각이 무너지면서 트라잔을 그대로 덮쳤다.

눈으로 보고도 믿을 수 없는 힘에 매설란은 물론, 주변의 모든 무인들이 입을 딱 벌리고 말았다.

저 강맹한 적이 단 한 번의 손짓에 저토록 허무하게 날아가 버리다니.

쿠구구궁…!

무너진 잔해 더미에서 트라잔이 불쑥 솟구쳐 올라왔다.

그는 몹시 화가 난 표정으로 사비강을 쏘아보았다.

“감히 인간 주제에 이 몸을…! 크흡!”

트라잔이 말을 마저 잇기도 전에.

슈우우우우욱, 콰악!

“컥!”

자석에 이끌리듯 날아간 트라잔이 사비강의 손에 목이 잡히고 말았다.

그는 지금의 상황을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큭, 커억!”

사비강이 트라잔의 목을 쥔 채로 허공으로 서서히 떠올랐다.

이번에는 트라잔이 대롱대롱 매달린 채로 버둥거리는 꼴이었다.

사비강이 무신경한 표정으로 트라잔을 노려보며 중얼거렸다.

“가슴을 찢었던가?”

“뭐…?”

촤아아아악!

“크아아아악!”

사비강이 손을 그대로 내려 긋자, 트라잔의 가슴에 대각선으로 다섯 줄기 상처가 새겨졌다.

어깨 부위는 어찌나 깊이 파였는지 허연 뼈가 드러나 보일 정도였다.

“이런 처 죽일…!”

뻐억!

“쿠우우욱!”

복부를 가격당한 트라잔이 그대로 피를 토하려는데.

퍼억!

이번에는 사비강의 주먹이 그의 안면을 가격했다.

“컥, 커헉…!”

사비강의 공격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퍽! 퍼퍽! 뻑! 퍽!

한 손으로 트라잔의 목을 쥔 그는 연신 숨 쉴 틈도 없이 주먹을 휘둘러 갔다.

그럼에도 트라잔은 반격 한 번 해보지 못한 채 속수무책으로 당하기만 했다.

뭔가를 시도할 틈도 없이 사비강의 주먹이 쏟아졌다.

‘어째서…! 이렇게 강한…!’

지금까지 사비강의 손에 죽어 나간 마족들을 비웃었다.

한데 이젠 그들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들이 약한 게 아니었다.

사비강이 너무 강하다.

믿을 수 없게도!

마침내 사비강이 무릎으로 트라잔의 복부를 걷어차고는 그대로 두 주먹을 내려찍었다.

꽈아아앙!

슈우우우우욱, 꽈다앙!

지상으로 추락한 트라잔은 그대로 큰 대자로 엎어졌다.

마치 개구리가 네 다리를 쫙 뻗은 채로 죽어 버린 것처럼.

착.

사뿐히 내려선 사비강이 천천히 허리를 숙이고 트라잔의 머리를 움켜쥐었다.

“몰랐겠지. 네가 한낱 인간에게 이런 꼴을 당할 줄은.”

“놈… 어떻게 이런 힘을….”

“고작 궁금한 게 겨우 그런 건가? 좀 더 고차원적인 질문을 던질 줄 알았는데.”

“이익…!”

쉬이이이익!

트라잔이 온 힘을 다해 주먹을 내질렀다.

하지만 사비강에게는 아무런 위협이 되지 못했다.

탁, 우두두둑!

그의 주먹을 낚아챈 사비강이 그대로 관절을 반대 방향으로 꺾어 버렸다.

“크아아악!”

트라잔의 비명이 허공을 채웠다.

사비강이 무신경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상황이 이 지경인데도 외궁에 있는 녀석들은 들어올 생각도 하지 않는군. 아아, 혹시 명령이 있을 때까지 대기하라고 일렀는가?”

“시, 시끄러… 끄아아악!”

트라잔이 다시 한 번 비명을 내질렀다.

그의 오른쪽 어깨가 완전히 가루처럼 부서져 버렸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 사비강에게 일격을 날리고 싶었지만, 이제 그는 손가락 하나도 꿈쩍할 수 없었다.

덜덜덜…!

‘떨고 있어…?’

트라잔은 자신이 미쳐 버린 게 아닌지 의심스러웠다.

한낱 인간을 상대로 자신이 공포를 느낀단 말인가?

그럴 리가!

하지만 그의 추측은 정확했다.

그는 사비강의 싸늘한 시선을 마주하자 온몸의 뼈마디마저 굳어 버리는 듯했다.

“……!”

“지금 이 비명이 네 것이라고는 저들은 상상도 못하는 모양이군.”

말을 마친 사비강이 트라잔의 뿔을 움켜쥐었다.

트라잔은 치욕으로 죽고 싶은 심정이었다.

마족에게 있어서 상대에게 뿔을 잡힌다는 것은 최고의 굴욕이었다.

하지만 그 굴욕 앞에서도 자신이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는 것.

아니, 반항조차 할 수 없는 상태라는 것이 그를 더욱 괴롭혔다.

완전히 공포에 질린 상태.

덜덜덜…!

“네 뿔을 꺾어 줄 테니 돌아가서 마왕에게 일러라. 다음엔 직접 나서라고.”

“……!”

찰나지간.

“크으으으읍!”

신음을 삼키는 소리에 이어.

빠각!

트라잔의 뿔이 뚝 부러지고 말았다.

트라잔이 그 자리에서 무릎을 꿇으며 엎드렸다.

“헉, 헉, 헉…!”

툭!

사비강이 그 앞으로 부러진 뿔을 던졌다.

“기념품으로 줄 테니 잘 간직해라.”

말을 마친 사비강이 몸을 돌렸다.

트라잔이 주먹을 콱 말아 쥐었다.

이 치욕을 받고 돌아간다면 어차피 자신은 죽은 목숨.

“으아아아아아!”

순간 그가 기합성을 내지르며 사비강의 배후를 향해 마력검을 내질렀다.

콰르르르륵!

뜨거운 불길에 휩싸인 마력검이 그대로 사비강의 등을 가격하려는 순간.

탁!

어느새 돌아선 사비강이 이번에도 마력검을 그대로 움켜쥐었다.

곧이어.

꾸자자자작!

놀랍게도 화마로 이글거리던 마력검이 순식간에 얼음덩어리로 변해 가는 것이 아닌가?

꾸자자자자작…!

눈 깜빡할 사이에 트라잔의 손과 팔, 어깨마저도 꽁꽁 얼어붙고 말았다.

다음 순간.

꽈차아아앙!

“크아아아아악!”

트라잔이 몸을 비틀면서 물러났다.

그의 오른쪽 어깨가 완전히 파열되면서 부서져 버린 것이다.

뒤이어 사비강이 트라잔의 품속으로 파고드는가 싶더니.

“어디 심장도 다시 재생되는지 궁금하군.”

푸우욱!

“끄으으읍!”

트라잔은 여전히 불신의 눈빛으로 자신의 가슴을 파고 든 사비강의 손을 보았다.

그리고 사비강의 입매가 비틀리는 것을 본 순간.

부아아아악!

“끄어어억!”

그는 눈을 허옇게 뒤집으면서 물러났다.

그리고 자신의 심장이 몸에서 뽑혀 나오는 모습을 마지막으로 확인하고는 그대로 허물어지듯 쓰러졌다.

사비강이 펄떡이는 심장을 물끄러미 보다가 손아귀에 힘을 주었다.

퍽!

순간 심장이 터져 나가는가 싶더니 이내 시커먼 잿더미가 되어서 사비강의 콧속으로 스며들기 시작했다.

**

“……!”

멸마궁에서 가장 가까운 소환지.

그곳 동혈에는 점액질 같은 것과 마구 뒤엉켜서 바위인지, 나무인지, 아니면 또 다른 생명체인지 구분되지 않는 존재가 있었다.

얼핏 보면 오래된 조각에 넝쿨이 마구 뒤엉켜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순간 조각의 두 눈이 번쩍 뜨였다.

‘트라잔이 죽었다!’

그는 바로 아들러 백작이었다.

‘후퇴 명령을…!’

총사령관인 트라잔이 죽었다면 이 싸움은 위험하다!

후두두둑…!

그의 전신에 연결되어 있던 끈적끈적한 점액질의 무언가가 순식간에 끊어져 나갔다.

그는 서둘러 게이트가 있는 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

어둠이 장악한 땅.

여느 땅과 다르게 모래와 흙이 시커멓게 물들고, 마치 땅 자체가 하나의 생명체처럼 살아 숨 쉬는 듯 간헐적으로 꿈틀거렸다.

테라포밍이 완료된 지역이라는 증거였다.

한데…

츠츠츠츠츳…!

마계화 된 영역이 갑자기 줄어들기 시작했다.

멸마궁 내궁 안까지 침범할 것만 같던 영역이 점점 빠져나가고 있었다.

“이건…!”

마족 기사단장은 사태의 심각성을 눈치 채고는 소리쳤다.

“모두 후퇴한다!”

어떻게 된 영문인지 정확히 알 순 없지만 하나는 분명하다.

마계화가 진행된 지역이 줄어들고 있다는 것은 결코 마족에게 좋지 않은 상황이라는 것.

그리고 내궁 안으로 들어선 트라잔 공작에게서 아직까지 아무런 기별이 없다는 것도 문제다.

명령을 어겨서라도 내궁으로 한번 들어가 볼까 하던 차에 이런 일이 일어났으니, 후퇴 결정은 당연한 것이기도 했다.

그런데.

“누구 마음대로 후퇴?”

갑자기 하늘 위에서 목소리가 울렸다.

차분한 목소리였지만, 수만에 이르는 마족들의 귀에 또렷하게 박혀들었다.

“헛!”

기사단장이 깜짝 놀라서 고개를 들었다.

놀랍게도 허공에서 사비강이 꼿꼿하게 선 자세로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마치 보이지 않는 무언가를 밟고 선 것처럼 한 치도 흐트러지지 않는 모습.

‘한낱 인간이 어찌…?’

사비강이 얼음장처럼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지켜야 할 선을 넘어선 놈들에게 자비란 없다.”

이어서 그가 손을 뻗자.

쿠콰콰콰콰콰콰아아!

검붉은 강기가 땅바닥 여기저기에서 줄기줄기 솟구쳐 오르면서 춤을 추기 시작했다.

마치 굵고 기다란 넝쿨이 마구 자라나는 것처럼 보일 지경.

곧이어 솟구쳐 오른 검붉은 강기가 마족 기사와 마물들을 닥치는 대로 덮치기 시작했다.

“크와아악!”

“크아아악!”

어떤 마족은 하늘로 거침없이 솟구쳐 오르는 검붉은 강기를 따라 떠오르다가 허공에서 분해되어 버렸고, 어떤 마물은 땅속으로 끌려 들어가서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졌으며, 또 어떤 자는 그 자리에서 온몸이 옭아 매여 터져 죽었다.

그나마 먼 곳에 물러나 있던 마족과 마물들만이 서둘러 피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미 멸마궁 인근까지 습격해 왔던 마족들은 죽음의 늪에서 헤어 나오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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