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95
귀환 마교관
595화
무랑전 지하실.
무랑이 사비강과 흑귀 그리고 옹기승을 바라보았다.
세 사람 모두 각오를 다진 표정이었다.
“다들 준비는 되었는가?”
“됐소.”
“됐습니다.”
사비강을 비롯한 세 사람이 동시에 대답했다.
무랑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앞에 놓인 상자를 가리켰다.
“여기에 영약들이 들어 있네. 이걸 단숨에 복용해야 하네.”
사비강에게 한 말이다.
사비강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소.”
한편 옹기승과 흑귀는 기가 질린 표정으로 상자를 바라보았다.
정말이지 어마어마한 양이었다.
영약이 아무리 몸에 좋다지만 저렇게 많은 영약을 한꺼번에 복용하는 것은 자살행위나 다름없었다.
내공이 심후하지 않은 자가 저 많은 걸 복용했다간 주화입마에 걸려서 죽거나 미쳐 버릴 것이다.
아니, 내공이 심후하다고 해도 저 정도로 많은 양을 소화하긴 어렵다.
다만 상자 안에서 풍겨 나오는 약향 만큼은 그 향기만으로도 머리가 맑아지는 기분이 들었다.
무랑이 세 사람을 둘러보며 말했다.
“순서를 알려 주지. 먼저 흑귀와 계약한 악신을 사 궁주의 몸으로 옮길 걸세. 그리고 옹기승에게 깃든 마령혼을 옮길 걸세. 그것만으로도 사비강 자네는 제정신을 유지하기 힘들 걸세. 하지만 그 상태에서 저 영약들을 모두 먹어치워야 하네. 그때쯤엔 내가 이 두 사람을 밖으로 옮기고 이곳 문을 잠글 걸세.”
“알겠소.”
흑귀와 옹기승이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설명을 듣는 것만으로도 긴장이 됐다.
옹기승이 넌지시 물었다.
“저희들은 언제쯤 깨어나게 됩니까?”
“자네들을 지탱해 주던 큰 힘이 갑자기 빠져나가게 되네. 그러니 어느 정도 영향은 있을 게야. 하지만 몇 시진 지나면 곧 의식을 차릴 걸세.”
“하면 궁주님은…?”
무랑이 사비강을 돌아보았다.
“확신할 수가 없네. 언제 깨어날지. 어쩌면 깨어나지 못할 수도 있고, 깨어난다고 해도 온전한 이성을 유지할 수 있을지 알 수 없지. 또한 만해경을 이룰 수 있을지도 알 수 없고.”
흑귀와 옹기승의 표정이 착잡하게 물들었다.
사비강이 씨익 웃었다.
“왜 벌써 애들한테 겁을 주시오? 걱정 마라. 바늘 구멍만한 가능성이라도 있다면 뚫어 버리는 게 나다.”
“알겠습니다.”
“궁주님을 믿겠습니다.”
두 사람이 고개를 푹 숙여 보였다.
하지만 사실 사비강도 자신 있진 않았다.
아니, 온전한 이성을 가지고 깨어날 자신은 있었다.
하지만 만해경의 경지에 이를 수 있을지에 대한 확신이 없다.
어쩌면 만해경이라는 경지가 너무 막연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도 아니라면 무의식중에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는지도 모르고.
어쨌거나 다른 방법이 없다.
시도할 수밖에.
무랑이 사비강을 보며 말했다.
“한 가지는 명심해야 하네. 악신의 힘과 마령혼의 힘을 물려받게 되면, 그것을 그대로 사용하려 해서는 안 되네. 만해경에 이르기 위해서는 반드시 무공으로 만들어야 하네. 철저히 중원의 방식으로. 아마 그리 되면 자네는 나중에 마법도 사용할 수 없게 될 걸세. 대신 만해경에 이른 자만이 깨닫는 어떠한 무공을 사용할 수 있을 테지. 천해경이 하늘의 이치를 깨우치는 경지라면, 만해경은 세상 만물의 이치를 깨우치는 경지일세. 어떤 무공을 어떻게 사용할지는 나도 모르네. 다만 더 강해진다는 것만은 분명하지. 물론… 어디까지나 성공했을 때의 이야기네만.”
“잘 알겠소.”
무랑이 세 사람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그럼 시도하겠네.”
**
매설란은 금속 문 앞에서 서성이며 엄지손톱을 이로 살짝 물었다.
그 곁에는 당이협이 서 있었다.
“너무 걱정 마십시오. 언제나처럼 궁주님은 잘 해내실 겁니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당이협 역시 걱정이 가득한 표정이었다.
매설란이 희미한 웃음으로 답을 대신했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금속 문이 벌컥 열리면서 무랑이 달려 나왔다.
“끝났네! 어서 저 둘을 옮기게!”
그의 목소리가 떨어지기가 무섭게 매설란과 당이협이 얼른 보법을 밟아서 안으로 달려 들어갔다.
두 사람은 각각 옹기승과 흑귀를 등에 들쳐 업었다.
매설란은 바닥에 다소곳이 누워 있는 사비강을 힐끔 보았다.
그의 얼굴과 목덜미 부위에서 울긋불긋한 빛이 비쳤다.
‘당신, 잘 해낼 거라고 믿을게!’
그때 문밖에서 무랑의 고함소리가 들렸다.
“어허! 뭘 하는 겐가? 깨어나기 전에 어서!”
“네!”
매설란이 얼른 대꾸하고는 몸을 날렸다.
그렇게 네 사람이 문밖으로 이동하자, 무랑이 얼른 금속 문을 쾅 닫아 버렸다.
그러자 기관 장치가 작동하면서 금속 문이 저절로 잠겼다.
기이이잉. 철컥! 철컥! 철컥!
그제야 한시름 놓은 무랑이 안도의 숨을 내쉬고는 매설란과 당이협을 보았다.
“그 두 사람은 초환당으로 옮기세. 이제 내가 할 수 있는 건 다 했네. 남은 건 궁주의 몫이지.”
“알겠습니다.”
두 사람이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고는 계단을 올랐다.
무랑도 지상으로 올라가기 전, 육중한 금속 문을 한 번 바라보았다.
‘사비강 궁주! 무운을 빌겠네!’
**
시체처럼 누워 있던 사비강이 두 눈을 번쩍 떴다.
그 직후 온몸이 찢어질 것 같은 통증이 찾아왔다.
“끄으으으읍!”
사비강이 복부를 쥐며 겨우 몸을 일으켰다.
몸이 한순간에 뜨거워졌다가 차가워지길 반복하고 있었다.
당장 얼어 죽을 것만 같은 고통에서 불에 타 죽을 것만 같은 고통으로 이어졌다.
“제기일…! 크으읍!”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으드득!
어찌나 세게 깨물었는지 어금니가 완전히 부러져 버렸다.
입가에서 피 섞인 침이 질질 흘러내렸다.
사비강은 까무러칠 것만 같은 고통 속에서 얼른 주변을 둘러보았다.
‘영약…! 영약을 먹어야 한다!’
오로지 그 일념만이 머릿속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나머지는 온통 고통이었다.
저만치 나무 상자가 보였다.
사비강은 헐레벌떡 달려가서 상자 안에 담긴 영약을 주워 들고 먹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복용한 것은 만년설삼이었다.
마치 사람의 형태를 꼭 닮은 인형설삼(人形雪蔘)이다.
만년설삼을 단숨에 우적우적 먹어치운 사비강은 곧이어 진백이 만든 단환을 복용하기 시작했다.
그야말로 무아지경 속에서 손에 잡히는 대로 복용하고 있었다.
그렇게 상자 가득 채워진 영약을 전부 먹어치웠을 때였다.
거짓말처럼 고통이 사라지고 있었다.
거친 파도처럼 온몸을 휘젓고 다니던 감각이 잔잔한 호수처럼 변해 버렸다.
갑자기 몸이 나른해지니 잠이 쏟아질 지경이었다.
하지만 사비강은 이럴 때일수록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얼른 가부좌를 틀고 운공을 시작했다.
조금이라도 정신이 있을 때, 체내에 들어온 이 이질적인 기운들을 모두 흡수해야만 했다.
전신의 혈맥을 따라 상당히 이질적인 기운이 휘돌기 시작했다.
극음과 극양의 기운들.
그리고 악신의 권능이 담긴 특별한 힘들.
아직 제대로 융합되지 못한 기운들이 무척이나 투박스럽게 체내를 휘젓고 다녔다.
사비강의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태어나서 이렇게 이질적인 기운을 한꺼번에 다스려 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생각보다 몸이 안정적이라는 것이다.
이 정도라면 충분히 할 만하지 않은가?
이대로 만해경의 경지에만 이를 수 있다면!
흑귀와 옹기승은 본인들의 삶을 모두 내려 둔 것이나 다름없었다.
두 사람이 그런 결심을 했다는 소리를 들었을 때, 사비강은 내심 놀랐다.
그들의 희생을 헛되이 할 순 없었다.
‘반드시…!’
사비강이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기경팔맥을 따라 강한 기운이 휘몰아치듯 뻗어 갔다.
정말이지 엄청난 기운이었다.
그렇게 얼마나 집중했을까?
운공을 하면 할수록 기운이 무거워지는 게 느껴졌다.
그리고 마침내.
꾸우우웅!
정좌한 사비강의 몸이 흠칫 떨릴 정도로 강한 충격이 있었다.
“끄음…!”
사비강이 저도 모르게 신음을 흘렸다.
그때 또 다시.
꽈아아아앙!
제일 먼저 백회혈에서 무언가 강한 기운이 폭발하는 듯 소리가 났다.
“아악!”
사비강은 저도 모르게 비명을 내질렀다.
한순간 정신을 잃을 만큼 고통이 찾아들었다.
곧이어.
꽈아아앙!
다시 한 번 단전에서 폭발이 일어났다.
어마어마한 기의 충돌!
사비강은 다시 이가 부서져라 턱을 악 다물었다.
하지만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꽝! 꽈꽈앙! 꽈아앙!
몸 전신에서 기가 충돌하면서 어마어마한 폭발이 일어나는 것이 아닌가?
이대로 전신이 터져 나가 죽어도 이상할 게 없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크으윽!”
사비강은 이제 손톱이 손바닥을 파고 들 정도로 주먹을 꽉 쥐었다.
꽈아앙! 꽈과아앙!
“크아아아악!”
마침내 사비강이 참지 못하고 몸을 뒤틀며 비명을 터뜨렸다.
더 이상 운공하는 것이 불가능할 지경.
꽈앙! 꽈과아앙!
“크억! 아악!”
사비강은 이제 바닥에 엎드려서 구르기 시작했다.
운공을 완전히 포기했다.
지금은 오로지 이 고통에서 살아남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실제로 사비강의 단전은 금방이라도 터져 나갈 것처럼 부풀어 있었다.
“끄으으으윽!”
꽈아아아앙!
다시 한 번 체내에서 기의 폭발이 일어났다.
사비강의 눈이 뒤집어졌다.
“크으으윽! 크아아아!”
사비강은 짐승처럼 울부짖었다.
누군가 보았더라면 그가 틀림없이 주화입마에 빠진 것이라 생각했을 것이다.
실제로 사비강은 주화입마에 빠진 것과 다를 바 없는 것처럼 행동했다.
“크아아아!”
벌떡 일어난 사비강은 미친 사람처럼 이곳저곳을 휘저으며 휘청거렸다.
단전이 연신 부풀어 올랐다가 폭발과 함께 가라앉길 반복했다.
스스스스스슷…!
그의 전신에서 피어오르는 기운이 묘하게 일렁거리더니, 사비강의 머리카락을 하얗게 물들이기 시작했다.
사비강은 자신의 머리를 쥐어뜯으며 고통을 참았다.
머리카락이 숭숭 빠졌다.
하지만 그런 것을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그렇게 얼마나 긴 고통의 시간이 흘렀을까?
꽈과과과과과앙!
“크아아아악!”
사비강은 전신의 혈맥이 완전히 터져 나가는 고통을 느끼면서 그대로 쿵 쓰러지고 말았다.
그렇게 의식을 잃은 그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
감시조장 여달량은 모퉁이를 막 돌아서다가 갑자기 튀어 나온 유정과 부딪치고 말았다.
“엇, 괜찮으십니까?”
유정이 그를 알아보고는 꾸벅 인사했다.
“아, 죄송해요. 제가 너무 급해서.”
“저도 죄송합니다. 한데 어딜 그리 바쁘게 가시는지….”
“견신각에요. 부군사님으로부터 군사님의 지시를 전달받았거든요. 할 일이 갑자기 많아져서요.”
“그렇군요. 그럼 살펴 가십시오.”
“네, 그럼!”
유정이 얼른 대답하고는 달려갔다.
여달량이 부드러운 미소로 그 모습을 보았다.
“언제나 성실하다니까. 그런 반면 우리 애들은….”
그가 눈살을 푹 찌푸리고는 감시탑을 올려다보았다.
‘이놈, 보나마나 자고 있을 테지.’
여달량은 한숨을 푹 내쉬고는 감시탑을 올랐다.
아니나 다를까 무인 하나가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인마! 번을 서려면 제대로 서야지! 빠져가지고!”
화들짝 놀란 무인이 여달량을 향해 꾸벅 머리를 숙였다.
“오셨습니까, 조장님.”
“짜샤, 궁주님도 지금 폐관수련에 들어가신 마당에 뭐라도 나타나면 어쩌려고 잠이나 처자는 거냐?”
“궁주님은 왜 폐관수련에 들어가셨습니까?”
“더 강해지시려고.”
“와, 거기에서 더 강해지면 도대체 뭐가 되는 겁니까?”
“인마, 그걸 내가 아냐? 그리고 궁주님이 더 강해지시면 좋은 일이지. 뭔 말이 많아?”
“쩝. 아무튼 뭐 설마 여기까지 뭐가 나타나겠습니까? 그래도 강호의 중심인 멸마궁 아닙니까?”
“그래도 모를 일이지! 빠져가지곤. 안 되겠다. 너 정신교육 좀 받아야겠다.”
“아닙니다. 제대로 번을 서겠습니다.”
“너 다음에 내가 올라왔을 때도 졸고 있으면 영원히 재워 버린다.”
“명심하겠습니다!”
무인이 포권을 하며 조금은 장난스레 대꾸하자, 여달량도 피식 웃어 버렸다.
무인은 곧 천리경을 눈에 대고 얼른 살피는 시늉을 했고, 여달량은 사다리를 타고 내려갔다.
아니, 막 내려가려고 할 때였다.
“저어… 조장님?”
“또 뭐냐?”
“저기… 뭔가 이상한대요?”
“인마, 자꾸 장난칠래?”
평소 워낙 장난기가 많은 수하였기에 여달량이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하지만 이어진 수하의 목소리는 무척 진지했다.
아니, 어딘지 두려움마저 배어 있었다.
“장난이 아닙니다. 저기 좀… 보십시오.”
그제야 여달량이 뭔가 심상치 않다는 것을 눈치 채고는 다시 올라왔다.
그가 천리경을 넘겨받아서 먼발치를 보았다.
잠시 후.
“맙소사… 저게 다 뭐야?”
처음에는 땅거미가 지는 건 줄 알았다.
하지만 이제 막 정오가 지난 시간이 아닌가?
한데 대략 십 리 정도 떨어진 곳의 땅이 시커멓게 물들면서 변해 가고 있었다.
“저런 현상을 언젠가 들은 적이 있는 것 같은데….”
그러자 옆에 있던 수하가 난간을 탁 치며 소리쳤다.
“아! 마계화! 마계화가 되는 겁니다!”
그랬다.
멸마궁으로부터 십 리 정도 떨어진 그 지역은 현재 테라포밍이 진행되고 있었다.
땅거미처럼 시커멓게 변한 땅은 점점 멸마궁을 향해 오고 있었다.
그리고 그 끄트머리….
“씨벌, 좆 됐네.”
여달량이 떨리는 음성으로 중얼거렸다.
셀 수도 없는 마족들과 마물들이 바글바글 모여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