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77
귀환 마교관
577화
모두의 시선이 연우경에게 향했다.
그들의 머릿속에는 같은 생각이 떠올랐다.
‘저걸… 말하다니! 정식 명칭을…! 저렇게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맹가숙이 얕게 한숨을 내쉬고는 중얼거렸다.
“이거, 원. 너희들끼리 싸워라. 그 정식 명칭을 듣는 순간 낯 뜨거워서 전력을 상실했다.”
“그러게 말이야. 설마 그 오글거리는 명칭을 입에 담을 줄이야.”
방각의 투덜거림에 석탄강이 무뚝뚝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확실히 정도맹 것들의 생각은 이해하기가 어렵군.”
그러자 듣고만 있던 곡보옥이 두 주먹을 팡팡 부딪치며 말했다.
“어이, 정도맹 모두가 저런다고 일반화시키지 말라고. 우리도 썩 맘에 드는 명칭이 아니니까.”
“하지만 우리도 그 이름을 듣는 순간 갑자기 힘이 쭉 빠지면서 사기가 떨어진 건 사실이야.”
조문탁이 고개를 푹 숙이며 중얼거렸다.
곡보옥도 그 말에는 반박하지 못하겠다는 듯 어깨를 으쓱이고는 뒤통수를 긁적였다.
한편 루시달은 자신을 앞두고 너스레를 떠는 무인들을 보며 연신 뺨을 씰룩였다.
‘이 개 같은 것들이 나를 무시해?’
촌각이 급한 상황인데 계속해서 이런 잔챙이들이 나타나서 어이없는 방법으로 길을 막아대니 짜증이 솟구쳤다.
“뭣들 하냐! 다 쓸어버려!”
“옛!”
가디언들과 마족 기사들이 일제히 무인들을 향해 달려 나갔다.
그러자 천멸대와 신생조가 이끄는 멸마궁도들 역시 일제히 기합성을 내지르며 마족 기사들에게 부딪쳐 갔다.
“와라!”
“영혼까지 소멸시켜 주마! 이 쓰레기 같은 마족들아!”
곧 주변은 아수라장이 되었다.
싸움의 범위는 점점 넓어졌다.
소환지에서 튀어 나온 수백 명의 마족 기사들과 천여 명의 궁도들이 난잡하게 어우러졌다.
루시달은 뭣도 모르고 자신에게 달려드는 무인의 목을 단칼에 베어 버린 후 걸음을 돌렸다.
이런 시시한 싸움은 수하들에게 맡겨 둘 일이었다.
적의 도발에 걸려들어 이런 곳에서 시간을 낭비할 정도로 어리석진 않았다.
“언젠간 이 수모를 갚아 주지.”
쉬르르르르!
그의 신형이 다시금 연기처럼 변하면서 흩어졌다.
그가 아수라장이 된 전장을 벗어나려는데.
후우우우우우우우우웅!
갑자기 느닷없이 강렬한 바람이 불어오는 게 아닌가?
그 바람이 어찌나 거센지 도저히 앞으로 나아갈 수 없을 지경이었다.
특히나 입자가 가벼운 연기로 변했으니 이러한 강풍에는 더욱 힘을 못 쓸 수밖에 없었다.
“크읏!”
결국 어쩔 수 없이 모습을 드러낸 루시달이 마력을 끌어올리면서 바닥에 두 발을 박아 넣었다.
한 차례 강풍이 지나가자, 저만치 앞에서 메이스를 들고 길을 막아 선 여인이 보였다.
바로 청의봉을 든 능소소였다.
루시달은 그녀의 어깨 위에 내려앉은 푸른빛의 맹금을 보았다.
‘정령술사?’
루시달의 눈이 찢어질 듯 커졌다.
이런 중원에 정령술사가 있단 말인가?
도대체 이 멸마궁은 어떻게 만들어진 곳이지?
루시달이 곧 입매를 비틀었다.
“하찮은 계집년이 제법 재주를 부리는구나.”
그러자 능소소 앞을 막아서며 나서는 두 여인.
바로 목단화와 설서린이었다.
설서린이 발끈하며 소리쳤다.
“이 쳐 죽일 마족이 감히 누구보고 하찮은 계집이래? 너 지금 여자라고 무시한 거냐?”
루시달이 피식 웃었다.
“여자? 나는 그저 인간을 무시할 뿐이다. 뭐, 그중에서도 암컷이라면 더욱….”
그 순간, 목단화가 불쑥 나서며 소리쳤다.
“이 개 잡것이 뭐가 어쩌고, 어째? 살 껍데기를 홀랑 벗겨서 소금 쳐 구워 먹어도 맛대가리 하나 없을 것 같은 놈이 감히 여자라고 무시를 해? 네가 여자의 무서움을 알아? 어디 같잖은 거시기 하나 믿고 설쳐대는 찐따 마족 새끼가 뚫린 주둥이라고 아무렇게나 나불대고 있어? 거시기 잘라내면 자존감 하나 없어 곧 울며불며 뒈질 놈이. 네놈의 거시기를 얇게 포 썰어서 육포로 만들어 주마.”
“…….”
속사포처럼 퍼부은 그녀의 말끝에 침묵이 찾아왔다.
설서린이 얼이 빠진 표정으로 목단화를 돌아보았다.
“야. 울겠다….”
“흥! 질 나쁜 아이랑 어울리다 보니 말버릇이 이렇게 변한 걸 어쩌라고.”
“그 질 나쁜 아이가 나?”
“그럼 따로 있다고 생각하는 거야?”
“난 그래도 그 정도는 아닌데….”
“이년이 또 어디서 착한 척이야? 재수 없게.”
“뭐? 말 다 했어? 이년아!”
“그래, 다 했다! 어우, 진짜 수민 오라버니 유언만 아니었어도 너 같은 건 내 따까리나 하고 있었어야 하는 건데….”
“뭐가 어쩌고 어째? 그리고 누구 맘대로 수민 오라버니야! 오라버니는 내 오라버니야!”
“누가 뭐래?”
“이년이 진짜…!”
두 사람이 옥신각신하며 싸우는 것을 한참이나 멍하니 쳐다보던 루시달이 고개를 푹 숙였다.
“쿡쿡. 하하하하하!”
그가 갑자기 웃음을 터뜨리자, 머리카락이라도 휘어잡을 것처럼 싸우던 두 여인이 미간을 좁히고는 돌아보았다.
“저게 왜 처 웃지? 미쳤나?”
“글쎄. 그런 것 같기도 하고.”
다음 순간, 루시달이 싸늘한 표정으로 돌아와서는 나직이 읊조렸다.
“아무래도 내가 터무니없이 만만하게 보였나보군. 네년들의 도발이라면 성공했다. 와라. 존재의 차이가 무엇인지 증명해 주마.”
목단화의 표정이 흠칫거렸다.
그녀가 설서린을 슬쩍 돌아보고는 말했다.
“방금 저 말은 좀 멋있는데?”
“그러게. 존재의 차이를 증명해 준다라… 뭔가 느낌 있다.”
“하아, 나도 한때는 저런 고급스러운 말만 사용했는데. 어쩌다가 이런 미친년이랑 엮여서….”
“미치긴 누가 미쳐!”
“누구긴 누구냐? 너….”
찰나,
“가소로운 것들!”
루시달이 버럭 소리치더니 시커먼 잿더미로 변하면서 두 여인을 향해 날아들었다.
“실레스틴!”
능소소가 얼른 소리치자, 푸른빛의 맹금이 수십 마리로 쪼개지더니 잿더미를 향해 마주쳐 갔다.
팟!
하지만 순식간에 코앞까지 다다른 루시달이 제 모습을 드러내는 것과 동시에 검을 뽑아 들어 사선으로 베었다.
“남은 잡담은 저승에서나 해라!”
쒸아아아아아앙!
그 순간,
파밧!
설서린이 바닥을 차며 훌쩍 물러났다.
뒤이어,
촤라라라라라라락!
마칸의 꼬리가 굽이치며 날아오는 것이 아닌가?
콰드드드득!
마칸의 꼬리가 순식간에 검신에 엉겨 붙으면서 거침없이 불길을 피워 올렸다.
“지금이야!”
설서린의 외침에 목단화가 바닥을 차며 날아들었다.
그야말로 쏜 화살보다 빨랐다.
두 여인이 이처럼 빠르게 대응할 수 있는 것은 능소소가 실레스틴을 이용해서 둘의 움직임을 도와주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쏜살같이 날아든 목단화가 그대로 사심자를 뿌렸다.
취리리리리리릿!
마치 독사가 먹잇감을 채갈 때처럼이나 맹렬한 공격이 이어졌다.
퍼퍼퍽! 퍽!
사심자가 연이어 루시달의 몸에 날아가 꽂혔지만, 그때마다 그의 몸은 연기처럼 흩어졌다.
휘르르르륵!
마침내 전신이 연기로 변한 루시달이 다시 한 번 옆으로 이동하면서 모습을 드러냈다.
찰나,
“기다렸다!”
곡보옥이 우렁찬 고함소리를 터뜨리면서 그대로 포탄처럼 날아들었다.
콰아아아앙!
그의 주먹이 그대로 바닥에 꽂혔다.
이번에도 루시달은 연기처럼 변해서 곡보옥을 그대로 통과했다.
“어딜 달아나려고!”
이번에는 조문탁이 버럭 소리치더니 검은 벌집을 날려 보냈다.
쉬쉬쉬쉬쉬쉬쉿!
퍼퍼퍼퍼퍼퍼퍽!
수많은 돌기들이 연기로 변한 루시달을 관통했다.
그 뒤를 이어 맹가숙의 구절창이 날아들었고, 석탄강의 사슬낫과 유송령의 거신도가 따라왔다.
하지만 그때마다 루시달은 번번이 연기로 변하면서 모든 공격을 허무하게 흘려보냈다.
마침내 천멸대와 신생조가 그를 완전히 에워싸며 쉴 새 없이 공격을 퍼부었다.
하지만 허공에 대고 휘두르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렇게 한참이 지났을 때.
“불나방들이 이제 다 모였나보군.”
싸늘하게 읊조린 그가 입매를 비틀더니 순간 기합성을 내질렀다.
“하앗!”
다음 순간 그의 전신이 붉게 물드는가 싶더니.
꽈아아아아아아앙!
온몸이 순식간에 터져 나가면서 확 흩어지는 것이 아닌가?
만약 그가 가진 악신의 권능을 모르는 사람이 보았다면, 폭약이라도 삼켜서 온몸이 터진 것이라 생각했으리라.
“크아악!”
“우아악!”
천멸대와 신생조가 어마어마한 폭발력에 휩쓸리면서 추풍낙엽처럼 날아갔다.
폭발의 범위가 어찌나 센 지 반경 십여 장이 초토화 될 정도였다.
“끄으으….”
“제길…!”
온몸이 시커멓게 그을린 염자량이 비틀거리며 일어서다 말고 다시 풀썩 넘어졌다.
연기처럼 흩어졌던 루시달이 다시 한자리에 모여들면서 완전한 형상을 이루었을 때, 뿔뿔이 흩어져 있던 가디언 다섯 명이 그의 곁으로 날아왔다.
두 명은 전투 중에 목숨을 잃은 듯했다.
“가자. 지체할 시간이 없다.”
“예!”
생각 같아서는 쓰러진 무인들을 모조리 죽여 버리고 싶었지만, 그런 사사로운 일에 힘을 쓸 필요는 없었다.
그렇게 루시달이 수하들과 함께 우거진 숲속으로 들어가고 나자, 한쪽 구석에 찌그러져 있던 곡보옥이 끙, 소리를 내며 몸을 일으켰다.
“진짜 더럽게 센 놈이네… 하마터면 죽을 뻔했다.”
그러자 한쪽에서 방각이 피를 한 움큼 토해내고는 대꾸했다.
“쿠웨엑! 제길, 우리가 다 달려들어도 감당이 안 되는군.”
“만약 저놈이 여유를 가지고 싸웠다면, 우린 전부 뒈졌을 게다.”
맹가숙이 말을 받으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루시달이 서 있던 자리는 마치 분화구처럼 구덩이가 움푹 파여 있었다.
조문탁이 퉁퉁 부어오른 눈으로 헤실헤실 웃었다.
검은 벌집을 사용하면서 내공을 많이 소모한 그는 유달리 부상이 깊은 상태였다.
“그래도… 이만하면 우리도 할 만큼 하지 않았을까?”
설서린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낭군님이 알아서 처리해 주실 거야.”
“이년 또 이러네. 누가 네 낭군님이냐?”
목단화가 톡 쏘아붙이자, 설서린이 발끈하며 받아쳤다.
“나한테 양보한다며! 네가 첩실이 되기로 했잖아!”
“혼자 멀쩡한 척 할 때는 언제고. 또 미친 소리를 하네.”
“너야말로 이제 와서 왜 멀쩡한 척이야!”
“난 원래 멀쩡했거든?”
“아니거든? 너도 만만찮게 미친년이거든?”
“뭐야?”
두 여인이 목소리를 높이자, 조문탁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저 둘 또 시작이네.”
**
“어딜 그리 급히 가나?”
낯선 목소리.
다급히 달려가던 루시달의 발걸음이 딱 멈췄다.
정면에서 한 남자가 팔짱을 낀 채 도도한 자세로 서 있었다.
척 보기에도 그의 전신에서 뿜어지는 기운이 예사롭지 않았다.
인간 중에서 이토록 자신을 긴장하게 만드는 자가 있을 수 있나?
상대가 누군지는 단번에 알 수 있었다.
아마도 그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사비강이리라.
사비강이 저벅저벅 걸어왔다.
“오랜만이군. 루시달.”
“나를 안다?”
루시달이 이맛살을 찌푸리면서 묻자, 사비강이 피식 웃었다.
“난 다 알지. 특히 넌 내게 잘 보이려고 온갖 애교를 떨던 놈이니까.”
“뭣이?”
루시달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하지만 사비강의 도발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지금이라도 무릎 꿇고 빌어 봐. 그럼 내가 생각이 바뀌어서 살려 줄 지도 모르지. 아니면, 헬무트처럼 내 수하로 거둬 줄 수도 있고.”
“이런 미친 인간이…!”
다음 순간,
쑤아아아앙!
사비강이 든 베르타스에서 검강이 솟구쳐 올라왔다.
마치 용이 솟아오르는 것처럼 연신 꿈틀거리는 검강.
“그럴 맘이 없다면 빨리 덤비고.”
루시달이 어금니를 꽉 씹고는 천천히 물러났다.
테라포밍 지역이 아닌데다, 상대가 뿜어내는 기운이 예사롭지 않았다.
지금은 적의 도발에 넘어가서 쓸데없이 힘을 빼지 않는 게 좋으리라.
“네놈의 도발은 나중에 받아 주마.”
말을 마친 그가 휙 몸을 돌리는 순간이었다.
“그럼, 내 도발은 어떠신가?”
이번엔 낯익은 목소리.
반대쪽에 나타난 상대를 확인한 루시달이 미간을 팍 구기며 소리쳤다.
“바리탄!”
“마계에서 아득히 떨어진 이곳에서 싸우게 될 줄은 나도 몰랐군.”
“네놈이 결국 폐하를 배신….”
“뭘 새삼스럽게 따지시나? 어차피 애초에 날 믿은 적도 없던 양반이.”
루시달의 표정이 와락 일그러졌다.
그야말로 진퇴양난.
뒤늦게 소환지 안에서 버틸 때까지 버텼어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후회가 밀려들었다.
그러다 보면 게이트가 복구되었을 지도 모를 일이 아닌가?
바리탄이 루시달 뒤에 선 사비강에게 말했다.
“루시달 공작은 내가 맡을 테니 다른 곳으로 가 봐도 될 것 같은데.”
“내가 마족 놈들에 대한 믿음이 부족해서. 그 사이에 또 둘이 작당할 지도 모르니 그냥 여기서 싸우도록 하지.”
사비강이 입매를 비틀며 대꾸하자, 바리탄이 싸늘하게 웃었다.
“그러시든지.”
찰나,
“나를 우습게 보지 마라!”
루시달이 버럭 고함을 내지르며 달려 나갔다.
그가 먼저 몸을 날린 상대는 사비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