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76
귀환 마교관
576화
콰자자장!
쾅, 콰앙!
소환지 곳곳에서 폭음이 들리고 쉴 새 없이 진동이 느껴졌다.
푸스스스…!
돌가루가 머리 위로 부서져 내렸다.
“쿠와아아!”
“크아악!”
통로마다 마물들과 마병들이 뒤섞여 혈투를 벌이고 있었다.
마병들은 능운파가 이끄는 병력이었다.
능운파는 눈을 가늘게 뜨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통로가 비교적 넓긴 했지만, 소환지는 미궁처럼 복잡하게 얽혀 있었다.
‘루시달 공작을 찾아야 하는데.’
바리탄은 흑성에 있는 수하들을 이용해서 이곳 소환지에서 이어지는 게이트를 차단했다고 했다.
루시달은 어쩔 수 없이 소환지 밖으로 나와야만 할 것이다.
그럼에도 능운파가 직접 소환지로 뛰어들어 선봉으로 나선 이유는 단 하나다.
악신의 권능을 흡수하기 위해.
이제 막 마족이 된 그는 어떠한 악신의 가호도 받지 못한 상태.
악신의 가호를 받기 위해서는 정식으로 작위를 수여받거나, 다른 마족을 죽이는 수밖에 없었다.
우습게도 이 사실을 알려 준 사람은 바로 구윤이었다.
구윤은 아마도 사비강을 통해서 얻은 정보이리라.
촤아아악!
마침 능운파는 자신을 향해 달려드는 마족의 가슴을 대각선으로 갈랐다.
순간 피가 분수처럼 솟구쳤다.
그는 유연한 동작으로 피분수를 피해서 보법을 밟아 다른 마물도 처리했다.
“쿠와아아악!”
그렇게 얼마나 많은 마족과 마물들을 베어 넘기면서 미궁을 헤맸을까?
마침내 그가 다다른 곳은 커다란 공동이었다.
그곳에서는 이미 먼저 와 있던 마병들과 루시달 공작이 지휘하는 마족들이 어지럽게 뒤섞인 채 혈투를 벌이고 있었다.
“이놈들! 마병들이 왜 여기에…!”
“능운파와 바리탄이 배신했다고 한다! 다들 정신 차리고 놈들을 족쳐!”
“제기랄! 반쪽짜리 마족은 하나 같이 왜 그 모양인 거야?”
마족들의 입에서 거친 욕설이 튀어 나왔다.
마침 마병 하나를 베어낸 마족이 이제 막 공동으로 들어서던 능운파를 발견하고는 손가락질을 했다.
“엇! 저기 능운파다!”
“저놈부터 죽여라!”
마족들이 일제히 능운파를 향해 달려들었다.
능운파의 입가에 싸늘한 미소가 걸렸다.
“훗, 가소로운.”
순간 그의 전신이 거뭇하게 변하더니, 등에서 날개가 돋아났다.
후우우웅!
그가 한 차례 날갯짓을 하자, 그의 신형이 순식간에 허공으로 날아올랐다.
“내가 인간이었을 때도 네놈들 정도는 가볍게 상대할 수 있었다.”
능운파가 허공에 뜬 채 광오한 표정으로 읊조리더니 손을 불쑥 뻗으며 외쳤다.
“블래스트 아이스(Blast Ice)!”
순간 공동 전체에 뼛속까지 시리게 만드는 한기가 휘몰아치더니 허공에 커다란 얼음 구체가 형성되는 것이 아닌가?
마족이 되고 나서 기본적인 흑마법을 자연스럽게 인지하게 된 능운파였다.
다음 순간,
꽈꽈아아앙!
얼음 구체가 터져 나가면서 그 날카로운 파편들이 사방으로 날아갔다.
쉭쉭쉭쉭쉭쉭쉭쉭!
퍽! 푸푸푸푹! 퍽퍽퍽!
“크아악!”
“으아악!”
마병과 마족을 가리지 않은 채 주변의 모든 존재들을 위협하는 얼음 파편이었다.
물론 개중에는 실드를 사용해서 파편을 막아내거나, 간발의 차이로 피해낸 자들도 있었다.
하지만 대략 삼 할 정도의 마족과 마병들이 얼음 파편을 피하지 못한 채 그대로 얼어붙거나, 몸이 둔화되어 간신히 움직이고 있었다.
입매를 비튼 능운파가 검을 뽑아 들고 그대로 허공을 휘저었다.
쒸아아아아앙!
시퍼런 강기가 마족들을 향해 거침없이 날아갔다.
슈카카카카카캉!
얼음 조각상이 되어 버린 마족들은 속절없이 강기에 베여 몸이 절단되고 말았다.
간신히 살아남은 마족들 역시 능운파의 막강한 무위에 놀라움을 금치 못하고 있었다.
이제 막 마족이 된 인간이라기에는 상대가 너무 강했다.
능운파가 천천히 지상으로 내려선 채 자신을 견제하는 마족들을 보며 목을 우두둑 꺾었다.
“너희 주인은 어디에 있나?”
“시, 시끄럽다! 감히 반쪽짜리 마족 주제에….”
“시끄러운 건 네놈들이지. 반쪽짜리 마족도 감당 못해서 지금 이 지경이 아닌가?”
능운파가 죽어 널브러진 마족들을 힐끗 둘러보며 도발했다.
“이익…!”
그때였다.
“과연 기고만장한 인간다운 태도로구나.”
바로 옆에서 속삭이기라도 하는 것처럼 탁한 목소리가 조곤조곤 들리더니,
스스스스스슷…!
능운파 코앞에서 검은 연기가 뭉치면서 누군가 나타나는 것이 아닌가?
연기는 곧 마족의 형상을 만들어냈는데, 바로 루시달 공작이었다.
그를 가호하는 안개와 미지의 악신 권능으로 연기처럼 움직이는 것이 가능했던 것이다.
“호오, 지금 사용한 게 악신의 권능인가?”
“그렇다면?”
“내가 가져야겠다.”
“가소로운.”
“가소로운지 아닌지는 저승에서 생각해 보라고.”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능운파가 검을 뽑아 들면서 대각선으로 그어 올렸다.
퍽!
순간 둔탁한 소리가 들리는가 싶더니 루시달의 몸이 대각선으로 갈라졌다.
한데 자세히 보니 그의 몸이 대각선 부위만 연기처럼 흩어지면서 그대로 검신이 통과해 버린 게 아닌가?
잠시 후, 루시달의 신형이 처음처럼 완전히 회복됐다.
능운파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과연, 더욱 가지고 싶군!”
“그럴 자격이나 있다면.”
“흥! 반드시 내가 취하겠다!”
온몸이 검게 변한 능운파가 빛살 같은 속도로 날아가 재차 검을 휘둘렀다.
퍽! 퍼퍼퍼퍼퍽!
검신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빠른 공격을 이어 갔지만, 그가 휘저을 때마다 루시달의 몸 일부는 번번이 검은 연기로 변하고 말았다.
“노오오옴!”
능운파가 격분하며 그대로 루시달의 목을 쳤다.
하지만,
퍽!
이번에도 루시달의 목 부위가 부서지는 것처럼 소리가 나더니 연기처럼 풀풀 흩날리는 것이 아닌가?
루시달이 입꼬리를 틀어 올렸다.
“잔재주는 여기까지다.”
쉬이이이잇!
연기처럼 변한 루시달의 주먹이 그대로 능운파의 복부로 향했다.
뻐어어억!
둔탁한 소리와 함께 루시달의 주먹이 분명히 드러났다.
“커어억!”
능운파는 그대로 포탄처럼 튕겨 날아갔다.
꽈다아앙!
공동 한쪽 벽까지 날아간 능운파는 큰대자로 처박힌 채 의식을 잃은 것처럼 보였다.
루시달이 냉소를 지었다.
“시답잖은 반쪽짜리….”
하지만 그는 말을 마저 잇지 못했다.
부스럭… 푸스스…!
마치 부조처럼 박혀 있던 능운파가 천천히 벽에서 떨어져 나오더니 천천히 아래로 내려서는 것이 아닌가?
그가 목을 우두둑 꺾고는 싸늘하게 웃음 지었다.
“과연 쉽진 않겠어.”
루시달의 표정이 슬쩍 굳었다.
아들러가 일생의 역작이라고 하더니, 정말이지 능운파는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다.
그가 한 걸음 나서려는데,
“공작님, 저희에게 맡기시고 먼저 가십시오. 만약을 대비해 힘을 아끼십시오.”
그의 가디언 중 절반이 앞으로 나섰다.
루시달이 가볍게 한숨을 내쉬고는 물러났다.
이들의 충언은 일리가 있었다.
저 반쪽짜리 마족의 목숨은 별로 중요하지도 않다.
당장 이 사태를 마왕에게 알리는 것이 급선무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이곳을 벗어나야만 했다.
“만만한 녀석이 아니니 방심하지 마라.”
“명심하겠습니다!”
열 명의 가디언이 대답을 하며 검을 뽑아 들고는 능운파를 막아섰다.
슈르르르르!
다시 연기처럼 변한 루시달이 나머지 가디언들과 함께 미로처럼 얽힌 통로를 따라 빠른 속도로 이동했다.
이곳은 테라포밍이 된 지역이었기에 악신의 권능을 아낌없이 쓸 수 있지만, 밖으로 나가는 순간 마력을 최대한 아껴야만 했다.
마침내 저만치 빛이 보이자 가디언들이 앞장섰다.
“출구입니다. 앞장서겠습니다!”
열 명의 가디언들이 먼저 동혈을 막 빠져나갔을 때였다.
쒸쒸쒸쒸쒸에에에에엑!
푸푸푸푸푸푸푸푹!
“크억!”
“악!”
가디언들이 몸을 뒤집으면서 쓰러져 나가는 것이 아닌가?
눈 깜빡할 사이에 세 명의 가디언들이 부상을 입고 쓰러졌다.
그러고 보니 먼저 빠져나왔던 마족들이 전부 고슴도치처럼 화살에 몸을 관통당한 채 널브러져 있었다.
소환지 밖으로 나올 것을 대비해서 매복한 궁수들이리라.
“이 인간 벌레들이…!”
뒤늦게 나온 루시달이 어금니를 까드득 가는데,
쒸쒸쒸에에엑!
바람을 가르면서 세 자루의 화살이 시퍼런 강기를 머금은 채 날아드는 것이 아닌가?
이번에 날아드는 화살은 앞서 날아든 것들과는 차원이 달랐다.
바로 단리정이 쏜 것이었다.
찰나지간,
퍼퍼퍽!
세 자루의 화살이 그대로 루시달의 몸을 관통하면서 벽에 꽂혔다.
하지만 루시달이 관통당한 부위는 어느새 시커먼 연기처럼 흩어진 상태였다.
루시달은 내심 식은땀을 흘렸다.
의지가 조금만 늦었어도 화살이 자신의 몸을 제대로 관통했으리라.
그때,
쒸쒸쒸쒸에에에에엑!
다시금 하늘을 새카맣게 매우면서 화살비가 쏟아져 내렸다.
그리고 어김없이 그 사이에 섞인 세 자루의 강맹한 화살!
퍼퍼퍼퍼퍼퍼퍼퍼퍽!
쏟아지는 화살비가 그대로 루시달의 몸을 관통하면서 바닥을 빽빽하게 채웠다.
타타타타타탕!
다른 마족 기사들과 가디언들 역시 일제히 실드를 펼치면서 화살을 막아냈다.
하지만 개중에는 이미 마력을 소진할 대로 소진해 버려 미처 화살 세례를 피하지 못한 자도 있었다.
한편 완전히 연기로 변한 루시달은 바람에 실려 날아가듯 빠르게 그 자리를 벗어났다.
그의 주변을 에워싸듯 다섯 명의 가디언들이 따라 붙었다.
가소로운 인간들을 상대로 줄행랑을 치는 이 상황이 영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우선은 흑성에 가서 배신자들에 대해 알려야 했다.
이따금씩 화살이 날아들거나 공격해오는 인간들이 나타날 때마다 가디언들이 방어하면서 이동했다.
포위망을 벗어난 루시달은 모습을 드러낸 채 숲을 따라 달리기 시작했다.
테라포밍 지역을 벗어났기 때문에 이제부터 마력을 사용하는 건 최대한 자제해야 했다.
여기서 반나절 거리에 있는 또 다른 소환지까지만 갈 수 있다면, 게이트를 이용할 수 있으리라.
그런데 일 리도 채 이동하지 못했을 때였다.
쏴아아아아아!
갑자기 숲을 관통하는 바람이 불었다.
곧이어,
타앗! 타타타앗!
양쪽 숲에서 그림자들이 무수히 튀어 나오면서 그대로 루시달을 덮쳐 내리는 것이 아닌가?
그들은 바로 천멸대와 신생조였다.
그리고 그들이 이끄는 멸마궁도들이 함께 있었다.
“막앗!”
루시달이 외치자, 일곱 명의 가디언과 대략 서른 명 정도 되는 마족 기사들이 앞장서며 검을 뽑아 들었다.
차차차앙!
마침내 마족과 인간들이 부딪쳤다.
따다당! 깡! 까가가강!
여기저기에서 금속성이 터지면서 비명과 고함소리가 난잡하게 어우러졌다.
루시달은 이를 빠드득 갈고는 소리쳤다.
“물러나라!”
그의 명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인간들을 상대하던 마족들이 일제히 썰물처럼 빠져나왔다.
찰나,
쉬르르르르르르!
시커먼 재로 변해 버린 루시달이 안개처럼 퍼져 나가면서 무인들을 덮쳤다.
곧이어,
쾅! 콰콰콰콰콰콰콰아앙!
“크아악!”
“아악!”
연이어 폭발하는 잿더미에 무인들이 몸을 뒤집으며 쓰러졌다.
호기롭게 몸을 던져 오던 멸마궁도들도 이 기이한 상황에 등골이 서늘해지고 말았다.
“제길! 실체가 있어야 공격을 하든 말든 하는 거 아냐?”
“도대체 저건 뭔 사술이지? 몸이 연기처럼 변해 버리다니!”
멸마궁도가 당황하고 있을 때, 염자량이 버럭 소리치며 달려 나왔다.
“다들 비켜!”
순간 멸마궁도들 역시 썰물처럼 빠져나가면서 공간을 만들어 주었다.
그 일련의 동작만 보더라도 그들이 그동안 얼마나 열심히 훈련을 한 것인지 알 수 있었다.
염자량이 바닥으로 떨어져 내리기가 무섭게 소리쳤다.
“그라운드 웨이브!”
쿠콰콰콰콰콰콰콰콰콰아앙!
지상이 들썩이는가 싶더니 땅바닥이 바닷물처럼 출렁이며 루시달과 마족을 향해 덮쳐 가는 것이 아닌가?
그 위력이 어찌나 센지 주변의 나무와 수풀들이 모조리 뽑혀 날아갔다.
그라운드 웨이브는 염자량이 가장 좋아하고 자주 써먹는 마법이기도 했다.
언덕 하나를 통째로 폭파시킬 듯한 강력한 힘은 커다란 흑패도와도 잘 어울렸다.
“크웃!”
“크윽!”
마족 기사들이 저마다 마력을 최대한으로 끌어올려 검을 휘저었다.
콰콰콰콰아앙!
한 차례 치솟아 오른 땅바닥과 격돌이 끝나고 나자, 주변은 온통 흙먼지로 자욱했다.
생각보다 마법을 무난하게 구사하는 것을 본 루시달의 표정이 슬쩍 일그러졌다.
먼지가 차츰 걷히고 나자, 마족들에게 맞서 나란히 선 무인들이 보였다.
멸마궁도들을 배후에 두고 앞장 선 자들.
천멸대와 신생조였다.
“이 하찮은 인간 벌레들이…!”
루시달의 미간이 팍 구겨지는데, 연우경이 앞으로 척 나서며 말했다.
“말 조심해. 우린 하찮은 인간이 아니라, 천상천하유아독존혈풍멸살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