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환 마교관-568화 (568/670)

# 568

귀환 마교관

568화

“아직도 상황 파악을 못하는 모양이구나.”

수십 개의 얼굴이 동시에 소리쳤다.

하지만 사비강은 비릿한 웃음만 머금을 뿐이었다.

“글쎄, 상황 파악을 못하는 쪽이 누군지 한 번 보자고!”

말을 마친 그가 바닥을 차고 쏜살 같이 날아갔다.

“어림없다!”

자카르트의 몸에 박힌 수십 개의 얼굴이 버럭 외치면서 수천 가닥의 촉수를 뻗어왔다.

츄리리리리리릿!

따다다다다당!

사비강이 검강을 일으키고는 날아드는 촉수를 마구 쳐냈다.

눈 깜빡할 사이에 자카르트의 몸통까지 접근한 그가 기합성을 터뜨려냈다.

“하아아아앗!”

순간 검강이 솟구쳐 올랐다.

그런데 이번에는 그 모양이 어딘지 이상했다.

원래 검강은 칼날 모양으로 곧게 뻗어나오기 마련이다.

한데 이번에 솟아오른 검강은 마치 살아있는 생명체처럼 꿈틀거리면서 제멋대로 솟구치는 게 아닌가?

용이 승천하듯이 솟구쳐 오른 검붉은 강기!

퀴오오오오오오!

거대한 강기가 자카르트의 몸을 가르며 하늘을 찢어발길듯 치솟았다.

촤아아아아아악!

자카르트의 몸통이 세로로 길게 갈라졌다.

갈라진 몸통에서 진득한 체액이 늘어지면서 꾸물꾸물 엉겨 붙기 시작했다.

마치 세로로 찢어진 거대한 입처럼 변한 상처가 그대로 사비강을 덮칠 듯 달려들었다.

수십 개의 얼굴이 소리쳤다.

“소용없는 짓이라고 했다!”

그때였다.

“지금이다!”

사비강이 버럭 소리쳤다.

내공을 실은 외침이었기에 하늘에서 천둥이 치듯 마을 전체가 쩌렁쩌렁 울렸다.

그 소리가 어찌나 큰지 사비강을 덮치던 자카르트마저 움찔거릴 정도였다.

그리고 그 짧은 순간,

파앙!

사비강이 천해심보를 극한으로 펼치면서 순식간에 멀어졌다.

더 빠른 이동이 가능한 블링크를 쓰지 않은 것은, 자카르트가 마력에 대한 적응력이 상당히 뛰어나다는 것을 전투를 통해 깨달았기 때문이다.

만약 블링크를 사용했다면, 자카르트가 이동 위치를 거의 동시에 포착할 수 있을 지도 몰랐다.

때문에 자카르트에게는 익숙하지 않은 천해심보를 이용해서 물러났다.

동시에,

쒸쒸쒸에에에에에엑!

세 자루의 화살이 허공을 길게 가르며 자카르트의 벌어진 상처로 날아갔다.

과연 자카르트는 포식자답게 길쭉하게 찢어진 입으로 날아드는 화살을 꿀꺽 삼켜버렸다.

꾸물꾸물…!

갈라진 상처가 봉합되면서 연신 꿈틀거렸다.

“후후. 쓸데없는 짓을…!”

수십 개의 얼굴이 비웃음을 짓더니,

“크으읍!”

갑자기 안색이 창백하게 굳으면서 인상을 잔뜩 찌푸리는 것이 아닌가?

동시에 자카르트의 몸통이 시뻘겋게 물들기 시작했다.

곧이어 수십 개의 얼굴이 절규하듯 고통으로 몸부림쳤다.

“끄으으으읍! 네 이놈! 나에게 무엇을…!”

사비강이 베르타스로 뒷목을 툭툭 치며 비아냥거렸다.

“그러게. 아무거나 함부로 처먹다간 배탈난다니깐.”

“이 노오오오오옴!”

자카르트가 분노의 고함을 내지르며 촉수 수천 개를 동시에 뻗어왔다.

하지만 결국 촉수가 사비강의 몸에 닿기도 전에,

“끄으으으윽!”

“안 돼에에엑!”

“우아아아아악!”

수십 개의 얼굴이 저마다 비명을 내지르며 고통에 울부짖었다.

이윽고 자카르트의 몸이 점점 크게 부풀어 오르더니,

꾸우우우우우우웅!

억눌린 폭음이 그의 몸속에서 들리면서 온몸이 시뻘겋게 변하는 것이 아닌가?

다음 순간,

쩌어어어어어억!

자카르트의 몸이 세로로 길게 갈라지면서 기괴한 모습을 한 마괴들이 진득한 액체와 함께 마구 토해져 나왔다.

“쿠웨에에에엑! 크웨에에엑!”

갈라진 배로 토해진 마괴들은 진득한 타액에서 허우적거리다가 이내 축 늘어진 채 움직이지 못했다.

그렇게 쉴 새 없이 토한 자카르트는 어느새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와 있었다.

사비강이 저벅저벅 걸음을 옮겨 자카르트에게 다가갔다.

“그래도 변이한 것보다는 원래 모습이 훨씬 보기가 좋군.”

“노오옴!”

격분한 자카르트가 그대로 사비강에게 달려가며 입을 쩌억 벌렸다.

뱀처럼 길쭉하게 찢어진 입이 그대로 사비강의 머리를 덥석 물려는 순간,

“냄새나는 입 좀 닥쳐라.”

싸늘하게 읊조린 사비강이 그대로 자카르트의 안면에 주먹을 꽂았다.

꽈아아아앙!

권강을 정면으로 얻어맞은 자카르트가 그대로 포탄처럼 튕겨나가면서 전각을 부수며 나뒹굴었다.

쿠당탕탕!

둘의 싸움으로 장원은 이제 초토화된 상태였다.

무너진 잔해 더미를 헤치고는 자카르트가 비척거리며 일어났다.

“크읍…!”

그는 지금의 상황을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도대체 인간이 어째서 이렇게까지 강할 수 있단 말인가!

주변을 둘러본 그는 더 이상 승산이 희박하다는 것을 확실히 깨달았다.

믿을 수 없는 데다 인정하고 싶지도 않았지만, 사비강은 분명 자신보다 월등히 강했다.

자존심보단 일단 살고 봐야할 일.

자카르트는 심장에 남은 마지막 마력을 최대한 끌어모았다.

모든 마족들이 만약을 대비해서 남겨둔다는 코어 마력이었다.

다음 순간,

“키햐아아아앗!”

자카르트의 입에서 괴이한 기합성이 터져나오자,

쫘자자자자자자자자작!

주변이 순식간에 얼어붙으면서 새하얗게 변해갔다.

그 한기가 어찌나 강한지 공기 중의 습기마저 얼음 알갱이로 변하면서 후두둑 떨어졌다.

바닥을 차고 달려나가려던 사비강도 이번에 퍼져나온 한기만큼은 피할 방도가 없었다.

쫘자자자작!

찰나지간에 사방을 휩쓴 한기는 사비강도 예외 없이 덮쳤다.

이제 막 바닥을 차던 사비강이 그 모습 그대로 얼어붙었다.

그 직후, 자카르트가 블링크를 펼쳐 곧바로 몸을 빼냈다.

그는 빠른 속도로 장원을 벗어나 뒷산의 숲을 관통하면서 내달렸다.

코어 마력은 평상시에 사용하는 마력에 비하면 그 강도가 월등히 세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이 코어 마력이 바닥을 드러내면 악신의 권능은 거의 사라진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쩌저저저저적…!

자카르트가 지나간 자리마다 새하얀 서리가 내려앉는가 싶더니 꽁꽁 얼어붙어버렸다.

‘저놈은 평범한 인간이 아니다! 우리가 알던 그런 인간이 아니야!’

아무리 코어 마력을 사용했다고 하더라도 사비강의 실력이면 금방 풀려날 것이다.

사비강이 얼어붙은 것을 보고도 섣불리 공격하지 않고, 오히려 달아나기로 마음먹은 것 또한 같은 이유다.

일격에 그를 제거할 자신이 없었다.

자칫하다가는 공격에 실패해서 오히려 그에게 죽을 수도 있다는 위기감이 밀려들었기에.

그렇게 얼마나 달렸을까?

정신없이 달려가던 중에 저만치 폭포수가 흐르는 계곡이 나타났다.

한데 그 계곡 옆에 우두커니 서 있는 그림자가 보였다.

“누구…?”

자카르트는 곧 그 그림자가 다름 아닌 바리탄 후작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다른 때였다면 어째서 이런 곳에 그가 있는 것인지 의아하게 생각했으리라.

하지만 목숨이 경각에 달린 위기 상황에서 마족인 그를 보자 반가운 마음부터 치솟았다.

그저 막연히 같은 종족이니 아군이라고 인식한 건지도 모르겠다.

어쨌거나 자카르트는 바리탄을 구원자처럼 여기며 얼른 달려가 소리쳤다.

“후작님! 도와주십시오! 지금 사비강이 인간들을 이끌고 습격해서…!”

푸욱!

바리탄 앞에 멈춰 선 자카르트가 두 눈을 찢어질 듯 부릅떴다.

그가 천천히 고개를 숙여 자신의 가슴을 파고 든 바리탄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가시처럼 삐죽하게 변해 버린 바리탄의 손이 그대로 자카르트의 심장을 움켜쥐고 있었다.

바리탄이 부드러운 미소를 머금으며 말했다.

“이런, 너무 뛰었나보군. 자네 심장이 굉장히 격동하는 것을 보니.”

“크윽…! 바리탄… 후작… 어째서…?”

“큰 뜻을 이루기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아야지. 그것이 우리 마족의 생리가 아니던가?”

“대체 당신의 그 큰 뜻은… 설마 아직도 반역의 꿈을…?”

“꿈이라… 안타깝게도 자네는 이제 그 꿈조차도 꿀 수 없겠군. 결국 꿈이라는 것도 산 자의 특권이니.”

“실패… 할 겁니다… 당신은… 폐하가 얼마나 무서운 분인지 모르….”

“쉿…! 그만 쉬어라. 이천삼백 년 동안 별 쓸모도 없는 목숨 연명하느라 고생 많았다.”

부우우욱!

“끄아아아악!”

바리탄이 가슴에서 심장을 뽑아내자, 자카르트가 비명을 내지르고는 그 자리에 풀썩 쓰러졌다.

바리탄이 손 안에서 힘차게 박동하는 심장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거뭇한 기운과 붉은 기운이 뒤엉키며 심장 주변을 배회하고 있었다.

“그럼 감사한 마음으로.”

나직이 읊조린 바리탄이 손에 힘을 주자,

푸스스스스…!

자카르트의 심장이 검붉은 잿더미로 변하더니 이내 실바람에 실려 날아가듯 바리탄의 콧속으로 흡입되기 시작했다.

슈우우우우우욱!

검붉은 잿더미를 완전히 흡입한 바리탄이 감고 있던 두 눈을 번쩍 떴다.

순간 그의 눈동자가 검고 붉은 색으로 변하다가 다시 푸르고 노란색으로 변했다.

한동안 눈동자의 색깔이 수시로 변하던 바리탄 후작이 깊은 심호흡을 한 후에야 빙그레 미소 지었다.

“과연 좋군.”

그는 양손을 펼쳤다 오므리기를 반복하면서 흡족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잠시 후, 그곳으로 한 줄기 바람이 불어 닥치는가 싶더니 사비강이 거짓말처럼 나타났다.

그는 바닥에 쓰러진 자카르트를 보고는 바리탄에게 시선을 던졌다.

“심장을 뽑았군.”

바리탄이 어깨를 으쓱이며 대꾸했다.

“그랬지. 뭐, 이참에 조언을 해주자면, 마족은 심장을 파괴했을 때 즉사할 확률이 가장 높다.”

“그런가?”

원래 알고 있는 내용이었지만 사비강이 모른 척 묻자, 바리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 인간들은 모가지만 썰어버려도 쉽게 죽어 버리지만, 마족은 그 정도는 재생이 가능한 녀석들도 꽤 많지.”

“과연. 한데 뽑아낸 심장은 안 보이는군. 어디에 있지?”

바리탄이 다시 한 번 어깨를 으쓱이고는 계곡물을 힐끗 보았다.

“굳이 쓸모도 없는 걸 계속 들고 있을 필요는 없지 않나? 진즉 버렸지.”

“그렇군. 버렸군.”

사비강이 바리탄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말했다.

둘의 시선이 허공에서 잠시 뒤엉켰다.

마치 서로의 속을 한 번 들여다보겠다는 듯 깊이가 느껴지는 눈빛이었다.

마침내 사비강이 피식 웃으며 몸을 돌렸다.

바리탄에게 등을 보인 것은 그만큼 상대를 신뢰하고 있다는 걸 간접적으로나마 드러내기 위해 계산된 행동이었다.

사비강이 바리탄을 등진 채 말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좀 늦었군. 적어도 나와 함께 자카르트를 공격할 줄 알았는데.”

“잘도 이 녀석의 이름을 알고 있군.”

“인간의 정보력을 무시하면 큰 코 다칠 거야.”

“하긴. 뭐, 오해는 하지 말도록. 혹시라도 너와 자카르트의 싸움에 섣불리 끼어들다간 방해가 될까봐 참은 거니까. 어쨌든 결정적인 순간 목숨을 끊어놓는 게 무엇보다도 중요하지 않겠나? 게다가 이미 내 수하들은 그 마을에서 제대로 활약을 하고 있으니까.”

“방해라….”

사비강이 나직이 중얼거리고는 입매를 비틀었다.

당연히 그는 바리탄의 말을 믿지 않았다.

‘그게 아니라, 자카르트의 악신을 흡수하려는 꼼수였을 테지.’

심장을 뽑아낸 것도 그 때문이리라.

하지만 바리탄은 꿈에도 모를 것이다.

자신이 일부러 자카르트를 놓아주었다는 것을.

사비강은 이곳에 오기 전, 구윤과 나눈 대화를 떠올렸다.

“궁주님이 직접 자카르트를 제거해서는 안 됩니다.”

“그럼?”

“바리탄이 제거하도록 해야 합니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놈은 자카르트의 악신을 흡수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 좋은 먹이를 놓치려고 하지 않겠지.”

“제가 원하는 것도 바로 그겁니다.”

“이유는?”

“거물을 잡으려면 칼부터 갈아야 하는 게 당연하지 않겠습니까?”

“하지만 그 칼에 우리가 베일 수도 있어.”

“그렇다고 무딘 칼을 들면 의미가 없습니다. 그 칼을 잘 다룰 능력을 가지는 게 더 중요하지요.”

이러한 까닭으로 사비강은 구윤의 작전을 전적으로 수용했다.

‘자, 이제 칼은 갈았다. 이제 이 칼을 마왕에게 겨누는 건 너에게 달렸다.’

생각을 정리한 사비강이 막 걸음을 떼려고 할 때였다.

“이제 다음 계획은 뭐지?”

바리탄의 질문에 사비강이 멈칫거리고는 답했다.

“이쪽에서 움직였으면, 그쪽도 반응이 올 테지. 질문은 우리가 먼저 던졌으니 이젠 답을 기다린다.”

말을 마친 사비강이 천해심보를 펼쳐 빠르게 날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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