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환 마교관-566화 (566/670)

# 566

귀환 마교관

566화

자카르트의 미간이 씰룩였다.

‘이 인간은 뭐지? 어떻게 여기까지 들어온 거지?’

제일 먼저 떠오른 의문이었다.

그 다음으로 이어진 의문은….

‘인간이긴 한 건가?’

그도 그럴 것이 상대가 눈앞에 나타날 때까지 조금의 기척도 눈치 채지 못했다.

목소리를 듣고 나서야 존재를 확인했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나?

자카르트가 눈살을 구기고는 사비강을 빤히 응시했다.

“넌 누구냐?”

“그래도 내가 나름 유명한 줄 알았더니… 아직도 물어보는 놈들이 있네. 아무래도 좀 더 분발해야겠어. 아니면 그쪽이 영 감이 떨어지는 건가?”

자카르트가 멍한 표정을 지었다.

상대의 반응이 너무 어이가 없어서 화도 나지 않았다.

‘도대체 이 인간은….’

마침 그의 머릿속에 하나의 인물이 스쳐 지나갔다.

‘혹시…?’

“네놈이 그 말 많고 탈 많은 사비강이냐?”

그러자 사비강의 표정이 활짝 밝아졌다.

“오, 이제 알아보는 건가? 하마터면 크게 실망할 뻔했잖아.”

“그랬군. 네놈이 그놈이었군.”

자카르트의 표정이 차갑게 식었다.

다음 순간 그의 전신에서 차가운 한기가 휘몰아쳤다.

그가 냉소를 지으며 말했다.

“차라리 내가 널 알아보지 못하는 쪽이 좋았을 것을. 이미 알게 된 이상 네놈은 나에게 반드시 죽는다.”

사비강이 귀를 후비며 투덜거렸다.

“거참, 말이 많네. 뭐, 어차피 내가 온 이유는 알 것이고….”

찰나,

쒸이이이이잉!

사비강의 허리춤에서 베르타스가 저절로 쑤욱 뽑혀 나오더니 그대로 허공을 가르며 날아가는 것이 아닌가?

그와 동시에,

짜자자자자자작!

허공의 공기가 차갑게 식는가 싶더니 이내 반투명한 얼음막이 형성되면서 자카르트의 앞을 막아섰다.

하지만 베르타스가 노린 것은 자카르트가 아니었다.

그를 그대로 스쳐간 검이 마괴로 변한 아이의 중심부를 관통하며 날아가는 것이 아닌가?

푸우욱!

“퀘에에에에에엑!”

괴성을 지른 마괴가 몸을 뒤집으며 그대로 쿵 쓰러졌다.

단번에 급소가 꿰뚫린 것인지 마괴는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허공을 한 바퀴 선회한 베르타스가 사비강의 손에 잡혔다.

“애가 불쌍하잖아.”

자카르트가 다시 어이없는 표정을 짓더니 피식 웃어 버렸다.

그가 얼음장처럼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남을 동정할 처지가 아니란 걸 곧 알게 될 거다. 셀모스, 나가서 인간들을 쓸어라. 나는 이 주제 파악 못하는 인간을 상대할 테니.”

“예, 백작님!”

셀모스가 꾸벅 고개를 숙이고는 밖으로 달려나갔다.

사비강은 그러거나 말거나 베르타스를 들어 자카르트를 가리켰다.

“긴장해라. 다음은 너니까.”

“이런 미친…!”

자카르트의 미간이 팍 구겨졌다.

다음 순간,

파앙!

“그 주둥이부터 찢어발겨 주마!”

그가 바닥을 차면서 곧장 사비강을 향해 날아갔다.

쩌저저저저저적…!

그가 손을 뻗자 주변의 공기가 빠르게 식어 가는가 싶더니 허공에서 얼음알갱이가 맺히면서 기다란 칼날을 만들어냈다.

쒸쒸쉬쒸쒸잉!

자카르트가 손을 한 차례 휘젓자 얼음 칼날이 무서운 속도로 사비강을 향해 날아갔다.

뻐캉!

사비강이 베르타스를 휘젓자 얼음 칼날이 산산조각나면서 사방으로 튕겨 날아갔다.

푸푸푸푸푸푹!

“컥!”

“윽!”

후원에 있던 메이지들과 마족 기사들이 단말마 비명을 터뜨리며 쓰러졌다.

곧이어 이번에는 사비강이 바닥을 차며 쇄도했다.

쉬이이이이잇!

베르타스가 빛살처럼 날아가 자카르트의 목을 노렸다.

“어림없다!”

일갈을 터뜨린 자카르트가 순간 양손을 활짝 펼치자,

쫘자자자자자작!

사방의 공기가 얼어붙으면서 다시 한 번 실드와 같은 반투명한 막을 만들어냈다.

이는 아주 얇은 얼음막이었는데, 마력과 악신의 권능이 더해져 어지간한 실드 이상의 효력을 발휘했다.

쩌까앙!

청명한 금속성과 함께 베르타스가 튕겨 나갔다.

사비강이 재빨리 보법을 밟으며 물러나자, 이번엔 자카르트의 신형이 번쩍 하며 사라졌다.

다음 순간 그는 사비강의 등 뒤에 나타나서는 그대로 손을 내려찍었다.

쫘자자자작!

떨어지는 손에서 거짓말처럼 얼음 칼이 생겨났다.

하지만 사비강 역시 블링크를 이용해서 순식간에 십여 장 밖으로 물러났다.

퍼콰아앙!

그대로 바닥을 내려찍은 얼음칼이 가루처럼 부서졌다.

‘노옴!’

생각보다 사비강이 기민하게 움직이자, 자카르트는 이를 빠득 갈고는 곧바로 달려갔다.

파바바밧!

스으으읏!

사비강 역시 천해심보를 이용해서 맞부딪쳐 갔다.

퍼캉! 쩌엉! 쩡! 꽈자자자자작!

정말이지 정신없는 싸움이었다.

둘은 동에 번쩍 서에 번쩍 싸웠는데, 일반인이 본다면 그저 여기저기에서 번개가 번쩍거린다고만 느낄 정도였다.

이따금씩 자카르트가 휘두르는 손에서는 날카로운 얼음 칼날이 생겨났다가 곧 부서지며 사라지곤 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자카르트는 조금씩 조바심이 생겨났다.

싸우는 내내 그의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은 단 하나였다.

‘이게 정말 인간 맞아?’

지금껏 이런 인간은 본 적이 없었다.

헬무트가 배신했다는 소리를 들었을 때도 사비강을 그리 높게 평가하진 않았다.

원래 인간이었던 헬무트가 배신을 했다는 것이 그리 이상할 것도 없었기에.

한데 지금 사비강을 상대해 보니, 헬무트가 어쩌면 단순히 힘에 굴복한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때마침 사비강이 하늘로 솟구치더니 유성처럼 떨어져내렸다.

“치잇!”

혀를 찬 자카르트가 얼른 얼음 막을 형성하는 것과 동시에 허공에서 얼음 비수를 생성해 날렸다.

쉭쉭쉭쉭쉭쉭쉭!

따다다다다다당!

얼음 비수가 산산이 부서지면서 자욱한 연무처럼 흩날렸다.

허연 안개를 뚫으며 떨어진 사비강이 그대로 자카르트를 베었다.

콰장!

얼음 막이 깨지면서 자카르트가 뒤로 튕기듯 날아갔다.

슈우우우우우욱, 꽈자앙!

포탄처럼 튕겨나간 그가 전각을 부수며 나동그라졌다.

사비강은 몸을 추스릴 틈도 주지 않은 채 곧바로 달려가 다시 베르타스를 휘둘렀다.

쉬이이이이익!

쩌어엉!

베르타스와 얼음 칼이 부딪쳤다.

하지만 이번에는 얼음 칼이 부서지지 않았다.

키기기긱…!

듣기 싫은 마찰음을 내지르며 한기를 풀풀 풍기는 얼음 칼이 조금씩 깎여 나가고 있었다.

“과연 악신의 권능은 언제 봐도 대단하군.”

“네깟 놈이 악신의 권능에 대해 뭘 안다고 떠드는 거냐?”

자카르트가 이를 빠득 갈며 으르렁거렸다.

그는 지금의 상황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어째서 인간 따위가 자신과 비등한 싸움을 벌일 수 있단 말인가?

사비강이 히죽 웃었다.

“적어도 너보단 많이 알고 있다, 자카르트.”

“네놈이 내 이름을 어떻게…?”

“그게 중요한가? 싸움에 집중만 해도 모자랄 텐데.”

말을 마친 사비강이 그대로 몸을 돌리면서 자카르트에게 발을 내질렀다.

퍼어엉!

그의 발이 얼음 막을 때리면서 또 한 번 자욱한 연무가 흩날렸다.

콰자아앙!

튕겨나간 자카르트는 벽을 부수면서 전각 뒤편까지 날아갔다.

사비강이 얼른 바닥을 차고는 그 뒤를 쫓았다. 아니, 쫓으려고 했다.

한데….

‘한기…!’

사비강은 흠칫거리고는 자신의 발을 내려다보았다.

발끝에서부터 새하얀 서리가 내려앉으면서 쩌저적 굳어 가고 있었다.

‘칫!’

사비강이 혀를 차고는 얼른 극양의 기운을 운기하기 시작했다.

아마도 조금 전 발을 내질러 얼음 막을 깨부수면서 자카르트가 뿜어낸 한기 때문에 몸이 굳어가는 모양이었다.

‘이 정도의 한기라면… 악신의 권능을 거의 바닥까지 소모했다는 뜻일 텐데….’

당장 반격이 들어오지 않는 것을 봐도 그 짐작이 틀리지 않았으리라.

자카르트는 알고 있으리라.

지금 자신의 발이 한기의 영향으로 굳어 있지만, 들어오는 공격을 막을 정도의 힘은 충분하다는 것을.

한편, 자카르트는 그 틈에 재빨리 몸을 돌려 다른 전각으로 달려갔다.

인간을 상대로 이렇게까지 궁지에 몰릴 줄은 정말 몰랐다.

하지만 자신을 무시한 대가는 톡톡히 치르게 해주리라.

악신의 권능을 바닥까지 긁어내서 뿜어낸 한기였다.

보통의 인간이었다면 그대로 뼛속까지 얼어붙어서 조각상이 되어 버렸을 것이다.

하지만 상대는 그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사비강이었다.

실제로 상대해 보니 마족들 사이에서 악명을 떨칠 만 했다.

지금도 겨우 하반신만 얼렸을 뿐이었다.

이대로는 사비강과 정면 승부하기가 어려웠다.

‘이렇게 빨리 이것들을 써먹게 될 줄이야.’

마침내 그가 다다른 곳은 또 다른 전각이었는데, 창문이라고는 보이지 않는데다 정문이 쇠사슬로 친친 감겨 있었다.

그가 손을 뻗자 정문이 꽁꽁 얼어붙더니,

콰자자장!

이내 산산조각 나며서 부서져 나갔다.

어두컴컴한 전각 안으로 들어선 그는 곧장 지하로 향하는 계단을 따라 달렸다.

지하에 다다르자 다시 철문이 나타났다.

이번에는 손을 뻗으면서 그가 나직이 주문을 읊조렸다.

“언 락!”

순간 문 전체에서 미묘한 빛이 흘러나오더니, 그가 손잡이를 잡아당기자 손쉽게 철문이 열렸다.

“라이트!”

다시 한 번 마법을 캐스팅하자 허공에서 환한 빛 무리가 나타났다.

철문 안으로 들어선 그는 눈앞에 있는 것들을 훑어보았다.

만약 이곳에 범인이 따라 들어왔더라면 아마 그 자리에서 정신을 잃고 기절해도 이상할 것이 없으리라.

그의 눈앞에 가득한 것은 온통 기괴한 모습으로 서성거리는 마괴들이었다.

그 마괴들을 본 자카르트가 입매를 뒤틀면서 혀로 입술을 핥았다.

“그럼 포식을 시작해 볼까?”

시리도록 푸른빛을 뿜어내던 그의 눈동자가 이번에는 노랗게 물들었다.

그를 가호하는 주 악신이 바뀐 것이다.

기아와 추위의 악신에서 포식과 폭주의 악신으로!

다음 순간 그가 광기 서린 눈으로 입을 쩌억 벌렸다.

놀랍게도 그의 입은 점점 커지더니 턱이 뱀처럼 찢어지면서 마괴를 삼키는 것이 아닌가?

우적… 우적…!

기괴하게 늘어난 그의 입이 마괴를 거침없이 삼켜갔다.

정말이지 소름끼치는 광경이었다.

거침없이 마괴들을 집어 삼키는 그의 몸집이 빠르게 부풀어 오르기 시작했다.

**

‘달아난 건 아닐 테고.’

사비강이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이제 막 한기에서 풀려나 몸을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었다.

하지만 다리가 완전히 정상이라고는 할 수 없었다.

아직까지 묵직한 느낌이 남아 있었다.

어지간히 강한 냉기를 쏟아 부은 모양이었다.

‘이 정도로 악신의 권능을 사용했다면 다른 악신으로 갈아탔다는 말일 텐데. 녀석을 가호하는 악신이 뭐였더라?’

사비강이 기억을 더듬으며 장원을 이리저리 살피고 있을 때였다.

드드드드드드드…!

갑자기 바닥이 지진이라도 일어난 것처럼 떨리는 것이 아닌가?

그 떨림은 점점 격해지고 있었다.

꾸드드드드드득…!

꾸구구구구… 꽈자아앙!

마침내 전각 하나가 통째로 박살이 나면서 거대한 그림자가 지하에서부터 솟구쳐 올라왔다.

사비강이 고개를 꺾어들고 갑자기 나타난 상대를 올려다보았다.

거대한 애벌레처럼 생긴 몸통.

몸통 곳곳에 수십 개의 얼굴이 일그러진 채로 박혀 있었다.

그리고 수천 개의 촉수가 흐느적거리면서 마구 꿈틀댔다.

얼굴들이 사비강을 보고는 동시에 소리쳤다.

“역겨운 인간. 분수를 모르고 덤볐으니 그 대가를 치르게 해주마.”

수십 개의 목소리가 동시에 울렸다.

사비강이 거대 애벌레를 보면서 가만히 중얼거렸다.

“이제 기억이 날 것 같군. 그래, 처묵처묵 악신이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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