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65
귀환 마교관
565화
마을은 어둠에 잠겨 있었다.
제법 큰 마을이었다.
언덕 위에서 내려다보아도 마을이 한눈에 다 들어오지 않을 만큼 넓었다.
하지만 밤거리를 돌아다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어둡기 때문이 아니었다.
이미 이곳은 마족들이 습격해서 모든 전각을 차지한 상태였다.
땅은 테라포밍이 완료되면서 거무죽죽하게 변해 버렸고, 공기는 마나 특유의 이질감으로 꿉꿉한 느낌이 들었다.
마을 전체에 검은 이끼 같은 것이 잔뜩 끼었고, 전각마다 이름 모를 넝쿨이 뱀처럼 꿈틀거리며 엉겨 붙어 있었다.
마족들은 각종 전리품을 차지했고, 여자들을 겁간했다.
살아남은 남자들과 아이들은 마을에서 가장 큰 무관의 전각에 가둬 놓았다.
그리고 마족들은 그 무관을 자신들의 본거지로 삼았다.
“비명 소리가 들리는군.”
마을이 내려다보이는 언덕 위에서 사비강이 나직이 말했다.
옆에 선 총군사 구윤이 말을 받았다.
“마족들이 아녀자들을 밤마다 겁간하고 있다고 합니다.”
“마족뿐만이 아닐 테지.”
구윤이 씁쓸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예, 장춘무관(長春武館)의 관도들도 가담하고 있습니다.”
말을 뱉는 구윤의 눈빛이 차갑게 식었다.
정말이지 마족보다도 용서하기 힘든 자들이었다.
장춘무관은 원래 정파 무인들을 양성하는 무관이었다.
한데 마족이 지척에 다다르자, 그들 스스로 마족에게 다가가 충성을 맹세했다.
그들은 자카르트가 이끄는 마족들을 무관으로 끌어들였고, 저항하는 마을 사람들을 제압하는 데 적극적으로 힘을 보탰다.
어떤 경우에는 마족보다도 그들이 더욱 악랄하게 사람들을 괴롭혔다.
“준비는 끝났나?”
“예, 천멸대와 신생조 그리고 헬무트 기사단이 선두에 설 것이고, 마을 사방에서 동시에 급습할 계획입니다.”
“바리탄 쪽은?”
“시간차를 두고 공격하기로 했습니다.”
사비강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했다.
“방심하면 안 된다. 확실하게 조져야 해.”
“실수 없도록 하겠습니다.”
구윤이 고개를 숙이며 대꾸했다.
**
“꺄아아아악!”
밤공기를 찢어발기는 비명이 장춘무관 후원에서 솟구쳐 올랐다.
그 비명 소리가 어찌나 처절한지, 귀로 듣는 것만으로도 등골이 오싹해지고 머리끝이 쭈뼛 설 정도였다.
“끄으으으…!”
비명을 터뜨린 여인은 몸을 축 늘어뜨린 채 눈을 허옇게 까뒤집고 있었다.
그녀의 양팔은 양쪽에 세워진 기둥에 사슬로 연결되어 묶여 있었고, 그의 양다리 역시 어깨너비보다 넓게 벌려져서 사슬로 묶인 상태였다.
하지만 그보다 심한 것은 나신이 된 그녀의 몸에 벌써 세 개의 장창이 박혀 있다는 것이다.
한때 꽤나 아름다웠을 얼굴과 무공을 익혀 탄탄했을 몸매는 이제 피투성이가 되어서 엉망진창이었다.
나신의 여인은 피가 섞인 침을 길게 늘어뜨리고는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이를 지켜보던 셀모스가 의자에 앉아 있는 자카르트에게 다가가 고개를 조아리며 말했다.
“아무래도 실험체가 더 이상은 버티지 못할 듯합니다.”
“상관없다. 계속 해라.”
자카르트가 감정이라곤 한 줌도 깃들지 않은 목소리로 말하자, 셀모스가 고개를 숙이고는 말했다.
“알겠습니다, 그럼.”
셀모스가 턱짓을 했다.
그러자 여인을 사방에서 둘러싸고 있던 메이지들이 천천히 마공석을 들어 올려 고대 마계어로 주술을 읊기 시작했다.
그러자,
솨아아아아아아!
그들이 들고 있는 마공석에서 붉은 빛 줄기가 날아가면서 여인의 온몸을 쏘았다.
“끄으으…!”
여인은 여전히 힘 잃은 신음 소리만 내면서 축 늘어진 채 꿈쩍도 하지 않았다.
셀모스가 다시 한 번 더 턱짓을 했다.
그러자 이번에는 여인의 정면에 서 있던 마족이 장창 하나를 들고 다가왔다.
이를 본 여인이 공포에 질린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살려… 주세…! 안… 돼…! 제발…! 끄아아아아아악!”
여인의 간절한 부탁이 허무하도록 마족은 그녀의 가슴에 장창을 찔러 넣었다.
지켜보던 셀모스가 신경질적으로 소리 질렀다.
“너무 빠르다! 천천히 찔러 넣어라! 최대한 고통을 느낄 수 있도록! 공포를 느끼도록! 두려움에 떨면서 고통을 느끼도록 만드는 게 핵심이다!”
“알겠습니다.”
대답을 마친 마족이 더욱 천천히 장창을 찔렀다.
“아아아아아아악!”
여인은 비명을 내지르면서 머리를 마구 흔들었다.
정말이지 당장이라도 혀를 깨물고 죽고 싶을 만큼 고통스러웠다.
그럼에도 그녀가 자결하지 않는 것은 아직 살아있는 어린 아들 때문이었다.
그 아이를 두고 혼자 죽을 수는 없었다.
그렇게 얼마나 지옥 같은 시간이 흘렀을까?
그녀를 둘러 싼 메이지들은 계속해서 주술을 읊으며 마력을 쏘아냈고, 그녀의 몸에 창을 쑤셔 박는 마족은 여전히 느린 속도로 힘을 주고 있었다.
이를 지켜보던 자카르트가 지겹다는 표정으로 셀모스에게 고개를 돌렸다.
“완성된 마괴가 얼마나 되지?”
“현재 서른두 마리가 지하에 갇혀 있습니다.”
“서른두 마리라… 조금 부족하군.”
“죄송합니다.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만, 일급 실험체들은 모두 흑성으로 보낸 터라 질 좋은 인간들이 별로 남지 않아서….”
“우릴 이곳으로 안내해 준 놈들이 남아 있지 않던가?”
장춘무관의 관도들을 말한 것이다.
“하지만 놈들이 충성한 이유가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서인데….”
셀모스의 말에 자카르트가 싸늘하게 조소를 지었다.
“원래 충성이란 대가가 없어야지. 대가가 있다면 그건 충성이 아니라, 거래가 아닌가?”
“알겠습니다. 곧 준비하겠습니다.”
어차피 마족에게 있어서는 벌레나 다름없는 인간들이었다.
벌레와 한 약속을 지킬 필요는 없다.
아니, 애초에 벌레와는 약속이 형성될 수가 없지 않은가?
그때였다.
“끄아아아아아악! 쿠아악! 쿠악!”
여인의 비명 소리가 어딘지 이상해졌다.
자카르트와 셀모스의 시선이 여인에게 향했다.
전신에 장창이 네 개나 박힌 여인이 몸을 마구 뒤틀면서 비명을 고래고래 질러댔다.
급기야 여인의 몸이 활처럼 휘더니,
쩌어어어억…!
가슴 복판이 세로로 갈라지면서 무언가 불쑥 튀어나오는 것이 아닌가?
- 꾸으어어어어엉!
끈적끈적한 액체를 늘어뜨리면서 튀어나온 녀석은 마치 커다란 구더기 같은 모습이었는데, 그 모습이 몹시 흉측했다.
만약 누군가 이 광경을 보았더라면 겁에 질려 기절을 한다고 해도 이상할 것이 없으리라.
- 꾸으으으어엉!
여인의 가슴을 가르면서 튀어 나온 녀석이 마구 꿈틀거리며 괴이한 소리를 내질렀다.
셀모스가 소리쳤다.
“마력을 더 쏘아라!”
“옛!”
메이지들이 일제히 대답하면서 마공석의 기운을 더욱 강하게 발출시켰다.
- 꿔어어어어어엉!
여인의 가슴을 찢으며 튀어 나온 녀석은 연신 꿈틀거리더니 어느 순간 힘을 서서히 잃으면서 축 늘어지기 시작했다.
“아… 안 돼!”
셀모스가 반사적으로 외쳤다.
하지만 결국 바닥까지 늘어진 괴이한 생명체는 다시는 움직이지 않았다.
여인 역시 피범벅이 된 상태에서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셀모스가 허탈한 표정으로 돌아서서 보고했다.
“죄송합니다. 피험체가… 끝내 버티질 못했습니다.”
자카르트가 혀를 차고는 손을 저었다.
“치우고 다음.”
“예.”
셀모스가 고개를 숙여 보이고는 돌아서서 턱짓을 했다.
마족들이 죽어 버린 여인을 풀어서 질질 끌고 갔다.
잠시 후, 마족들은 두 사람을 데리고 왔다.
한 명은 사지가 꽁꽁 묶인 아이였는데, 대략 열네댓 살쯤 되어 보였다.
그리고 그 아이의 아버지로 보이는 사내가 상처투성이가 된 몸으로 끌려나왔다.
“제발, 제 아들은 살려 주십시오! 부탁드리겠습니다! 제발 부탁입니다!”
사내가 나무 기둥에 양손과 발이 묶이면서 소리치자, 셀모스가 짜증난다는 표정으로 버럭 외쳤다.
“시끄럽다! 누가 네 아이를 죽인다고 했더냐?”
“그, 그럼 제 아들은 살, 살려 주시는 겁니까?”
“그건 네 아들에게 달렸지.”
“예?”
하지만 셀모스는 대답하는 대신 다시 한 번 턱짓을 했다.
그러자 마족이 이번에도 장창을 들고 사내에게 저벅저벅 다가가더니 복주에 천천히 쑤셔 넣기 시작했다.
“흐읍! 끄윽…! 끄아아아아악!”
“아버지! 아버지!”
사지가 묶인 아이가 절규하며 소리쳤다.
사내는 고통에 몸부림치며 고래고래 비명을 내질러댔다.
그러는 와중에도 자카르트는 착 가라앉은 표정으로 그들을 보기만 했다.
이 일련의 과정들은 마괴(魔怪)를 만들기 위한 행위였다.
인간에게 극심한 공포나 절망, 슬픔, 환희, 고통 등을 느끼도록 만든 다음 특별한 주술을 이용하는 방법이다.
이 경우 대다수의 인간은 육체가 버티지 못해서 사망한다.
하지만 가끔 성공하는 경우가 생긴다.
바로 지금처럼.
“아버지! 아버지! 제발 그만해요! 아버지를 놔주세요! 아버지를 놔…달란… 말이야아아아악!”
순간 아이의 등이 꼽추처럼 굽는가 싶더니, 등에서 무언가 푹 튀어 나왔다.
마치 거대한 거미 다리 같은 것이었는데, 등에서만 수십 개의 절지가 튀어 나오면서 아이의 몸이 점점 변형되는 것이 아닌가?
그러자 아이를 둘러싼 메이지들이 일제히 목소리를 높이며 마공석의 마력을 최대한으로 발출했다.
- 퀴리리리리리릭!
이내 아이의 신체는 완전히 변형되어서 처음의 모습을 거의 찾아볼 수 없게 됐다.
몸은 세 배 이상 부풀었고, 두 눈은 잠자리의 눈알처럼 커다랗게 변해 있었다.
기괴한 모습으로 탈바꿈한 아이는 곤충처럼 행동하면서 어쩔 줄을 몰랐다.
그 모습을 본 아이의 아버지가 절규하며 소리 질렀다.
“이이익! 이 나쁜 놈들! 내 아들에게 무슨 짓을…! 크와아아아악!”
순간 사내의 벌어진 입에서 팔뚝만 한 애벌레가 꾸물거리며 튀어 나왔다.
그 애벌레가 어찌나 두꺼운지 사내는 급기야 턱이 찢어지고 목이 찢어지면서 피가 줄줄 흘러내렸다.
그의 눈이 허옇게 뒤집히면서 점점 변형이 일어나고 있었다.
마괴화가 진행 중인 것이다.
이번에도 메이지들은 일제히 사내를 향해 마력을 쏘아냈다.
부우욱!
마침내 남자의 옆구리와 복부에서도 굵은 애벌레가 꾸물거리며 기어 나오기 시작했다.
마치 사내의 몸은 그 거대한 애벌레를 품은 알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자카르트와 셀모스는 기대하는 표정으로 사내를 가만히 지켜보았다.
한 번의 의식으로 두 마리의 마괴를 얻는 건 오랜만이었다.
하지만 거대 애벌레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서 몸을 축 늘어뜨리더니 바닥으로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마침내 축 늘어진 거대 애벌레들이 미동도 하지 않았다.
남자 역시 기괴한 모습으로 눈을 까뒤집은 채 절명한 상태였다.
메이지들이 주술을 멈추자, 자카르트가 혀를 찼다.
“이래서 아비보다 아들이 낫다는 말이 있나 보군.”
“저 녀석은 지하로 옮기겠습니다.”
자카르트가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자, 셀모스가 수하들을 향해 턱짓을 했다.
마족 기사 하나가 마괴로 변한 아이를 데려가려고 할 때였다.
“인간들이 마을을 공격해왔습니다!”
마족 한 명이 뚝 떨어져 내리며 보고했다.
자카르트의 눈빛에 이채가 서렸다.
“호오?”
이런 적은 처음이다.
인간이 먼저 마족을 치다니.
적어도 강림지가 완성되고 나서는 이런 적이 없었다.
“내가 가보지.”
자카르트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는 순간,
“아니, 넌 그럴 필요 없어. 내가 왔으니까.”
불쑥 들려온 낯선 목소리.
자카르트가 이례적으로 경각심을 가지며 몸을 돌렸다.
그곳에는 놀랍게도 허리춤에 베르타스를 찬 인간이 버젓이 서 있었다.
‘어느 틈에 여기에…?’
사비강이 입매를 틀어 올리며 말했다.
“고맙지? 수고스럽게 나가지 않게 만들어 줘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