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환 마교관-563화 (563/670)

# 563

귀환 마교관

563화

속살이 훤히 드러나 보이는 여인들이 나비처럼 하늘하늘 움직이면서 달려들었다.

“어머, 오라버니, 놀다가세요.”

“오라버니들, 오늘은 꽃밭에 물 좀 뿌려 주셔요. 호호호!”

분향을 풍기며 호객하는 여인들이 간드러지는 웃음을 터뜨렸다.

하지만 죽립을 푹 눌러 쓴 두 명의 사내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그들은 죽립 아래로 차가운 눈빛을 발하며 주변을 슬쩍 둘러보았다.

사방이 홍등가였다.

죽립인 중 한 명이 실소했다.

“정말이지 독특한 인간이군요. 약속 장소를 이런 곳으로 잡을 줄이야.”

“평범하지 않으면 둘 중 하나지. 단순히 미친놈이거나, 비범하거나.”

“미친놈이 아니길 바라야겠군요.”

대답을 한 자는 다름 아닌 하운트였다.

그리고 그 곁에서 같이 걸음을 옮기는 사람은 바로 바리탄이었다.

그들은 일살이 전한 약속 장소를 찾아가는 길이었다.

처음 일살에게 전음을 들었을 때만 해도 약속 장소가 홍등가 복판의 기루일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으슥한 숲속이나 버려진 던전을 밀회 장소로 삼을 줄 알았다.

한데 막상 와보니 헐벗은 여인들이 연신 호객 행위를 하면서 분향을 풀풀 풍기는 것이 아닌가?

이곳은 특히나 기루가 잔뜩 모여 있는 마을 같았다.

“이런 곳을 약속 장소로 정한 이유가 뭘까요?”

하운트의 물음에 바리탄이 입매를 비틀며 말했다.

“주변에 인간이 많으면 우리가 함부로 움직일 수 없을 것이라 판단한 거지.”

“하긴. 목격자가 많으면 마왕의 귀에 들어갈 확률도 높아질 테니까요. 확실히 단순히 미친놈은 아니군요. 물론, 후작님을 그 정도로 묶어 둘 수 있다고 생각한 게 가소롭긴 합니다만.”

“사비강은 나를 가장 피곤하게 만들었던 자다. 물론, 그래봐야 인간일 뿐이지만 다른 벌레들과 비슷하게 취급해도 곤란하다.”

“명심하겠습니다.”

하운트가 고개를 숙여 보였다.

마침내 그가 저만치 보이는 전각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곳인 듯합니다.”

그가 가리킨 곳에는 ‘춘몽루(春夢樓)’라고 적힌 현판이 내걸려 있었는데, 다른 어떤 기루에 비해서도 무척이나 화려한 곳이었다.

“춘몽루라….”

바리탄이 잠깐 발걸음을 멈추고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왜 그러십니까?”

하운트가 주변을 경계하면서 묻자, 바리탄이 고개를 저으며 다시 걸음을 옮겼다.

“아니다. 단지 좀 신경 쓰이는 게 있군.”

“무엇이…?”

“아직 모르겠다. 뭔지 모를 위화감이 드는데, 곧 알게 되겠지.”

“혹시 놈들이 함정을 팠을까요?”

“그럴 지도.”

“뭐, 그렇더라도 이쪽에도 가디언들이 은신해 있으니 상관없겠지요.”

바리탄이 슬쩍 고개를 끄덕이고는 기감을 펼쳐 보았다.

확실히 곳곳에 몸을 숨긴 채 따라오는 가디언들의 마력이 미세하게 느껴졌다.

사비강은 그에게 혼자 오라고 했지만, 애초에 그럴 생각은 전혀 없었다.

사비강이 두려워서가 아니다.

단지….

“시험을 해봐야지. 그자가 얼마나 좋은 칼이 되어 줄 수 있는지.”

말을 마친 바리탄은 하운트와 함께 춘몽루 앞에 멈춰 섰다.

마침 속살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여인들이 나긋나긋 발걸음 옮기며 다가왔다.

“오라버니들, 찾는 아이라도 있으세요?”

“가장 예쁜 춘화를 꺾어다가 옆에 장식해드리겠어요. 호호.”

하운트가 피식 웃고는 여인에게 싸늘한 목소리로 말했다.

“몽마(夢魔)의 꽃을 꺾으러 왔다.”

순간 여인이 흠칫거리더니 표정이 싹 굳어 버렸다.

이는 사비강이 일살을 통해서 알려준 암어였다.

그녀가 곧 뒤로 물러나며 나직이 말했다.

“안내해드리지요.”

바리탄과 하운트가 서로를 슬쩍 바라본 후 곧 여인의 뒤를 따라 들어갔다.

**

실내는 무척 고급스러웠다.

화려하게 꾸며진 장식장 안에는 값비싼 청자가 있었고, 벽에는 커다란 그림이 걸려 있었다.

화분마다 생화가 피어 있었고, 은은한 꽃향기가 실내에 풍겼다.

깔끔한 요리가 마련되어 있는 탁자에는 두 사람이 나란히 앉아 있었는데, 바로 사비강과 구윤이었다.

두 사람은 거의 말이 없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구윤이 흠칫거리고는 고개를 들었다.

“지금 막 도착했다고 합니다.”

사비강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들었다.”

“혹시… 눈치를 채진 않겠지요?”

“눈치를 채도 어쩔 수 없지. 아니, 오히려 그 정도의 능력이 된다면 환영할 일이야. 마왕을 죽이기에 좋은 칼이 되어 줄 테니까.”

하지만 마왕을 죽일 가능성은 희박하리라.

마왕은 강하다.

사비강은 그가 얼마나 강한지 직접 싸워 봤기 때문에 잘 알고 있다.

바리탄도 잘 알 것이다.

그러니 지금 자신을 만나러 오는 것이고.

그때 마침 문밖에서 기녀의 부드러운 목소리가 들렸다.

“손님이 오셨습니다.”

“안으로 모셔라.”

구윤이 말하자, 문이 스르륵 열리더니 죽립을 눌러 쓴 두 사내가 들어섰다.

여인이 물러가고 나자 둘은 죽립을 벗었다.

바리탄과 하운트였다.

사비강은 일어나지도 않은 채 두 사람을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어서 오시오. 거기 앉으시오.”

순간 하운트는 이마에 핏대가 서는 것을 느꼈다.

‘이런 건방진 인간 같으니라고!’

이곳이 마계였다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어디 감히 인간 주제에 마족을 오라 가라 하며, 앉으라마라 한단 말인가?

당장 일어나서 바닥에 머리를 찍어도 모자랄 판에!

하지만 바리탄은 시종 미소를 지우지 않았다.

그가 자리에 앉으며 말했다.

“사비강, 이렇게 정식으로 만나는 건 처음이군.”

그러자 구윤이 미간을 좁혔다.

“이분은 멸마궁주님이십니다. 예를 갖추시오.”

“뭐, 이런 시건방…!”

참다못한 하운트가 뺨을 씰룩이며 나서려는데, 사비강이 손을 들어 올리고는 구윤을 제지했다.

“괜찮아. 나도 반말하면 되니까. 인간의 예법은 인간에게만 따져야지. 우리가 짐승을 대할 때 예를 갖추라고 나무라진 않잖아?”

‘허!’

하운트는 정말이지 기가 찼다.

흑성에 잠입했던 그 살수 녀석도 시건방지기가 짝이 없더니, 이 멸마궁주라는 놈도 똑같지 않은가?

마족을 짐승 취급하다니!

사실 흑성에 잠입했던 일살 역시 사비강이 빙의한 것이었기에 말투나 행동이 똑같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 사실을 모르는 하운트는 이곳 중원인들이 극심한 공포 때문에 반쯤은 미친 게 아닌지 의심스러울 지경이었다.

반면 바리탄은 여전히 싱글싱글 웃고 있었다.

과연 매혹적인 미소였다.

“서로 편한 게 좋지.”

사비강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하운트를 힐끔 보며 말했다.

“그런데… 혼자 오라고 했는데 너희들은 둘이 왔군.”

“그쪽도 둘인 것 같은데.”

바리탄이 미소를 지우지 않은 채 말을 받았다.

사비강이 구윤을 힐끗 보며 말했다.

“이쪽은 무공도 익히지 않은 군사야.”

“그래도 둘은 둘이지.”

“애초에 난 혼자 나오겠다고 말한 적도 없어.”

“그래도 어쩔 수 없는 일이 아닌가? 이미 둘이 나와 버린 것을.”

바리탄이 능글맞게 웃으며 말을 이어 갔다.

“이쪽도 군사라고 생각하게.”

“아니지. 처음부터 이렇게 신뢰를 깨면 내가 어떻게 너희들을 믿겠나? 어쨌거나 너희들 역시 마족인데.”

“우습군. 우리를 먼저 찾은 것은 그쪽이 아니던가?”

“그랬지. 그래서 그만한 믿음을 주었다. 내 수하를 죽여 가면서까지.”

“흐음. 그럼 내가 어떻게 해야 믿겠나?”

사비강이 입매를 비틀며 말했다.

“그쪽도 그만한 성의를 보여야겠지.”

“어떻게?”

사비강의 시선이 하운트에게 향했다.

“죽여.”

“……!”

하운트가 흠칫거리고는 사비강을 보았다.

그는 자신이 잘못 들은 줄 알았다.

하지만 이어지는 사비강의 목소리는 확실히 제대로 들었다는 것을 증명했다.

“네 손으로 직접 죽여라. 내 수하를 죽였듯이.”

바리탄도 생각지 못한 얘기에 미간을 슬쩍 구겼다.

동시에 하운트는 눈썹을 성큼 치켜 올리더니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소리쳤다.

“이런 미친놈을 봤나! 뭐가 어쩌고 어째? 이 버르장머리 없는 인간이 감히 누굴…!”

쉬이이이잉!

섬뜩한 예기가 날아들었다.

하운트는 말을 마저 잇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굳어 버린 것처럼 멈춰 버렸다.

허공에 둥실 뜬 채로 자신의 목젖에 바짝 다가선 검신.

바로 베르타스였다.

베르타스가 뿜어내는 살기는 그야말로 등골이 오싹할 지경이었다.

마치 검이 살아있는 것만 같았다.

하운트가 마른 침을 꿀꺽 삼키자,

“경거망동하다간 눈 깜빡할 사이에 모가지가 날아가는 수가 있어. 뭐, 어차피 그 모가지는 오늘 날아가겠지만. 내 손으로 날리는 건 계획과 다르잖아. 믿음의 증거를 내 손으로 없애 버릴 수는 없으니까.”

“이익…!”

하운트가 어금니를 빠득 갈고는 사비강을 노려보았다.

하지만 그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일단 사비강이 베르타스를 이렇게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다는 사실에 내심 경악했다.

손도 대지 않고 베르타스를 조절할 수 있다니!

아마 마족 중에서도 이 정도로 베르타스를 잘 다룰 수 있는 사람은 마왕 밖에 없으리라.

바리탄 역시 허공에 뜬 베르타스를 보면서 적잖게 놀랐다.

자신의 생각보다 사비강이 훨씬 강했던 것이다.

‘원래 이 정도였나? 아니면 그 사이에 또 강해진 건가?’

정말이지 사비강이라는 자의 한계가 어디까지인지 알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만큼 써먹기에 좋은 칼이라는 뜻이니 나쁘진 않았다.

실컷 사용하고 나서 무뎌진 칼날은 버리기도 쉬운 법이니까.

사비강이 싸늘하게 읊조렸다.

“자, 어떻게 할 생각인가? 그 믿음을 보여 줄 건가?”

바리탄이 사비강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돌연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하! 과연 배짱 하나는 두둑하군. 널 보면 마치 마족 같단 말이야. 마족이 되어 볼 생각은 없나?”

사비강이 입매를 비틀었다.

“글쎄. 그딴 게 되어서 좋을 게 뭐지?”

“흐음.”

“뭐, 그래도 그쪽이 내 제안을 받아들인다면 한 번 진지하게 고려해 보지.”

사비강이 턱짓으로 하운트를 가리켰다.

더 이상 시간 끌지 말고 하운트를 죽이라는 뜻이었다.

실내에 팽팽한 긴장감이 흘렀다.

바리탄은 천천히 손을 뻗어 술잔을 들어 마셨다.

“이게 인간들이 마시는 술인가?”

“좀 싱거울 거야.”

“그렇군. 싱겁군. 이런 싱거운 도발로 날 어찌해 볼 생각을 하다니.”

“내 제안을 거절한다는 건가?”

“미안하지만 그건 받아들일 수 없다. 이래봬도 난 내 수하를 꽤나 아끼거든. 그리고… 내 입장에서도 네가 쓸 만한 칼인지 검증을 해봐야 하고.”

바리탄이 말을 마치자마자,

슈슈슈슈슈슉!

순간 탁자를 가득 에워싸면서 그림자들이 비처럼 떨어져 내렸다.

모두 열두 명.

그들은 일제히 검을 뽑아 들고는 사비강을 겨누었다.

바로 바리탄을 호위하는 가디언들이었다.

사비강이 눈을 가늘게 떴다.

“혼자 오랬더니. 말을 안 듣는군.”

“이들의 공격을 막을 수 있다면 네 제안을 진지하게 고려해 보지. 만약 못 막는다면… 뭐, 그땐 너와 저 샌님은 여기서 죽게 될 거고.”

“이런 식으로 날 시험하시겠다?”

“인간 세상에는 겉만 번지르르한 물건이 많더라고. 보검인 줄 알고 휘둘렀는데, 무뎌빠진 쇠붙이면 기분 나쁘잖은가? 검증을 위한 과정이라고 생각해 주게.”

바리탄이 술잔을 내려놓았다.

다음 순간, 가디언들이 살기를 끌어올리면서 사비강에게 검을 뻗어 왔다.

그들의 공격에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었다.

그 순간,

“검증에는 한 가지 방식만 있는 게 아니지!”

사비강이 차갑게 조소를 날리더니 그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탁자를 손으로 내리쳤다.

찰나,

퍽!

마치 설탕 덩어리가 부서지는 것만 같은 소리가 나더니 탁자가 먼지처럼 흩날리며 사라지는 것이 아닌가?

바리탄과 하운트가 깜짝 놀라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곧이어,

퍽! 퍽! 퍽퍽, 퍽퍽퍽…!

놀랍게도 주변의 모든 것들이 가루처럼 부서지면서 연기가 되어 흩날리기 시작했다.

청자도, 그림도, 벽도, 창문도 모든 것이 거짓말처럼 부서져 나갔다.

그렇게 모든 사물들이 자욱한 연기로 변하며 풀풀 흩날렸다.

이윽고 시야가 밝아지자 바리탄과 하운트는 인적이 드문 야산의 낡은 정자에 서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둘의 맞은편에는 사비강과 구윤이 차분한 표정으로 마주보고 있었다.

화려했던 기루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마을도 감쪽같이 증발했다.

대신 호객 행위를 하던 여인들은 어느새 경장을 갖춰 입은 무인들로 탈바꿈해 있었다.

마을 주민처럼 보였던 수백 명의 무인들이 일제히 검을 꺼내 들고는 바리탄과 하운트를 겨누었다.

처처처처처척…!

사비강이 씨익 웃었다.

“내 이럴 줄 알고 좀 더 많이 준비해 뒀거든.”

바리탄이 미간을 좁히고는 가만히 사비강을 응시했다.

그는 그제야 알 수 있었다.

이 마을에 들어서면서 느꼈던 모종의 위화감이 무엇이었는지.

무엇이 그를 그토록 신경 쓰게 만들었는지.

바리탄의 입매가 뒤틀렸다.

“그랬군. 마을이 통째로 가짜였을 줄이야. 과연 대단한 실력이다. 칭찬하지 않을 수가 없군.”

“칭찬은 됐고. 이제 어쩔 거냐? 죽여야지?”

사비강이 하운트를 힐끔거리고는 능글맞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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