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환 마교관-562화 (562/670)

# 562

귀환 마교관

562화

하운트는 기가 찬 표정으로 일살을 보았다.

평소 그는 인간을 보면서 죽을 줄도 모르고 거침없이 달려드는 불나방 같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한데 이 정도로 미친 것들인 줄은 정말 몰랐다.

감히 여기가 어디라고 찾아왔단 말인가?

물론, 상대의 은신술은 혀를 내두를 만큼 감쪽같긴 했다.

만약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그대로 돌아갔다면, 자신은 그의 존재를 눈치 채지 못했으리라.

그렇다고 해도 상대가 기습을 노렸다면 절대 당하진 않았을 것이다.

어디까지나 상대가 살기를 전혀 띄지 않고 있었기에 은신에 성공한 것일 뿐이니까.

어쨌거나 은신술 하나 만큼은 상상 이상이긴 했다.

“멸마궁주라면 사비강이라는 자를 말하는 건가?”

하운트가 눈을 가늘게 뜨고 묻자, 일살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소.”

그러자 이번에는 바리탄이 관심을 보였다.

“무슨 용무로 찾아왔나?”

“조금 전까지 당신들이 나눈 대화와 일맥상통한 내용이오.”

“우리에게 도움을 요청하러 왔다?”

“아니지. 잠시 손을 잡자는 거지.”

일살이 어딘지 광오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 건방진 반응에 하운트가 발끈해서 나서려는데, 바리탄이 손을 들어 그를 제지했다.

대신 그는 재미있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사비강이 시키던가?”

“그렇소.”

“하하. 네 주인도 참 어지간하군. 우리가 들어 줄지 안 들어 줄지도 모를 제안을 하려고 수하를 사지로 보내다니.”

“그분은 훌륭하신 분이오. 장담컨대 당신들 중 누구도 그분을 털끝 하나 건드리지 못할 거요. 인격이면 인격, 무공이면 무공, 외모면 외모. 어느 것 하나 빠지지 않지.”

물론 마지막 말들에는 사비강의 사심이 담겨 있었다.

한편 바리탄은 미간을 좁히고는 가만히 생각에 잠겼다.

사실 그는 일살의 존재를 진즉 눈치 채고 있었다.

하운트와 달리 그는 일살이 실내로 들어선 순간부터 기척을 감지했던 것이다.

다만, 상대의 의도가 무엇인지 알아낼 때까지 일부러 모른 척했다.

그렇다고 해도 놀라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그로서는 은신한 상대가 인간일 것이라는 생각은 전혀 하지 못했기에.

그저 마왕이 보낸 그림자이거나, 마족들 중에서 자신을 여전히 경멸하는 누군가가 염탐꾼을 보낸 것이라 지레짐작한 것이다.

한데 놀랍게도 인간이라니.

게다가 마왕을 제거하기 위해 손을 잡자고?

분명 그가 기다리던 상황이었다.

인간이 먼저 이런 제안을 해오는 것을.

한데….

이야기가 너무 잘 돌아간다.

마치 짜고 치는 카드 게임처럼.

언제나 일이 너무 순탄하게 흘러가면 경계를 해야 한다.

그건 불안 요소가 완전히 제거됐다는 게 아니라, 깊은 곳에 잠재되어 있다는 뜻이니까.

여기서 불안 요소는 무엇일까?

자신도 겨우 눈치 챌 정도로 뛰어난 은신술?

아니다.

겨우 그 정도로 자신을 위협할 만한 수준은 되지 못한다.

그럼 시기상조이기 때문에?

그것도 아니다.

만약 인간과 손을 잡는다면, 지금이 적기다.

여기서 너무 늦어 버리면 인간의 힘이 너무 약해져 쓸모가 없어질 수 있다.

그렇다면 뭘까?

그때 일살이 불쑥 입을 열었다.

“만약 당신들이 원한다면, 궁주님은 충분히 협력할 뜻이 있다고 하셨소.”

바리탄은 떠올릴 수 있었다.

무엇이 불안 요소인지.

‘그렇군. 사비강. 그자가 가장 불안요소였군.’

자신이 마령교를 좌지우지할 때부터 눈엣가시 같은 존재였다.

그래도 지금까지는 ‘대단한 인간’일 뿐이었다.

그 말은 결국 인간이라는 뜻이다.

아무리 날고 기는 인간이라고 하더라도 마족의 입장에서는 맹독을 지닌 벌레 정도에 불과했다.

벌레가 아무리 무서워 봐야 결국 벌레인 것이다.

한데….

‘이제부터는 좀 생각을 바꿔야겠군.’

사비강은 다르다.

무엇보다….

“마치 우리 입장을 이미 알고 있었다는 것처럼 말하는군.”

바리탄의 말에 일살이 조소를 머금은 채 대꾸했다.

“당신들도 마왕의 모가지를 노리는 것 아니었소? 나는 궁주님께 그리 듣고 왔소만.”

“과연. 그런 정보는 어디서 들은 거지?”

“굳이 그런 출처까지 알려 줄 필요는 없을 것 같소만. 인간의 정보력을 무시하지 마시오.”

일살의 말을 들으면서 하운트는 바리탄에게 건넨 제안을 후회했다.

인간이 이렇게 건방진 종족일 줄은 몰랐다.

아니, 지금껏 자신이 보아온 인간들은 분명 이렇게까지 건방지지 않았다.

보통은 둘 중 하나였다.

감정을 앞세워서 불나방처럼 달려들다가 불꽃처럼 사라지거나, 두려움에 벌벌 떨거나.

한데 이건 뭐….

‘대가리에 든 게 없는 건가?’

하운트는 인간을 이용하려던 계획을 철회하고 당장 이 건방진 벌레를 짓눌러 죽이고 싶었다.

어쨌거나 놀라운 사실은 사비강이라는 자가 이미 바리탄의 반역 속셈에 대해 꿰고 있다는 점이다.

도대체 어떻게 알았을까?

일살이 바리탄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대화를 원한다면 궁주님께서 제안한 장소로 오시오. 단, 혼자 와야 하오. 우리 궁주님께서 말씀하시길, 떨거지들을 데려오면 재미없을 거라고 하셨소.”

하운트는 이제 웃음도 나오지 않았다.

바리탄이 일살을 보며 빙그레 웃었다.

매혹적인 미소였다.

남자가 보더라도 혼을 빼앗길 만큼이나 매혹적인.

아마 어지간한 자라면 그의 미소를 본 순간 충성심이 절로 일어나리라.

하지만 일살은 전혀 동요하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현재 일살은 사비강이었으니까.

그는 바리탄의 실체를 누구보다 잘 아는 자이기도 했다.

“만약 내가 거절한다면?”

“마왕에게 당신에 대한 정보를 흘릴 생각이오.”

“협박인가?”

“그다지. 우리도 그 정도의 수는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알리는 것일 뿐.”

“재미있군.”

바리탄이 툴툴 웃더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하운트는 드디어 바리탄이 저 시건방진 인간을 죽이나 보다 하고 생각했다.

하지만 바리탄은 그의 기대를 저버리고 창가로 걸어가서 밖을 내다보았다.

“증거라도 있나?”

“증거가 중요하오?”

일살이 바리탄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바리탄이 눈을 가늘게 떴다.

과연 보통내기가 아니다.

증거가 없다면 만들어낼 수도 있다는 배짱이 여실히 느껴진다.

바리탄이 미소를 머금은 채 돌아섰다.

“폐하께서 내가 반역을 계획하고 있다는 사실을 모를 거라고 생각하는가?”

이번에는 하운트가 놀랐다.

그가 흠칫거리고는 바리탄을 보았다.

일살은 눈살만 살짝 찌푸릴 뿐이었다.

일살보다 먼저 하운트가 물었다.

“후작님. 그게 무슨 뜻입니까? 폐하께서 설마….”

“아마 다 알고 있을 거다. 단지 눈을 감고 있는 거지. 내가 어디까지 설치는지. 나는 그런 자만심을 최대한 이용하는 것일 뿐이고. 애초에 이 아슬아슬한 줄타기는 어느 쪽이 먼저 줄을 끊어 버리는가의 문제지.”

“그런… 폐하께서….”

“하지만 자네가 나와 같은 배를 탔다는 건 모를 테니 안심해라.”

반면 일살의 모습을 한 사비강도 이번에는 약간 놀랐다.

‘이미 마왕이 눈치 채고 있다는 건가?’

하긴 생각해 보면 그리 놀랄 일은 아니다.

마왕은 의심이 많은 자다.

아니, 그냥 강한 자다.

그래서 아랫것이 설쳐도 당장 급한 게 아니라면 지켜본다.

자신에게도 그러지 않았던가?

대공의 작위까지 내리면서 간이고, 쓸개고 다 빼 줄 것처럼 대하다가 어느 날 예고도 없이 목을 쳤다.

마왕은 그런 자다.

이용할 수 있을 때까진 최대한 이용하는 자.

결국…

“사실 우리는 패를 모두 까고 싸우는 중이라고 볼 수 있지.”

한 마디로 그런 협박은 통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오히려 바리탄의 음모를 마왕에게 공공연하게 알릴 경우 마왕은 어쩔 수 없이 줄을 먼저 끊어 버리게 될 것이다.

그런 정보를 공식적으로 입수하고도 마냥 모른 척할 수는 없을 테니까.

결국 마왕의 입장에서도 원하지 않는 순간에 먼저 줄을 끊게 되는 셈이다.

일살이 어깨를 으쓱였다.

“그렇다면 이쪽도 패를 다 까도록 하지.”

“아직도 깔 패가 남아 있나?”

“내가 이곳에 들어오는 동안 경비병을 포함해 몇몇 마족을 죽였소.”

하운트가 입을 척 벌렸다.

뭐, 저런 미친…?

반면 바리탄은 여전히 흥미로운 표정으로 일살을 보았다.

“그래서?”

“지금쯤 그 사체들이 발견됐을 거고, 아마 이쪽으로 오고 있을 거요.”

“일부러 이곳으로 오도록 흔적을 남겼단 말이냐?”

“그렇소.”

“계속 말해 봐라.”

“만약 궁주님을 한 번 만나보겠다면, 그들이 들이닥쳤을 때 날 죽이시오.”

하운트가 움찔거리고 쳐다보았다.

이건 또 뭔 소린가?

자신을 죽이라니?

바리탄이 입매를 비틀며 물었다.

“이유는?”

“내가 당신을 암살하려고 온 자객이라고 둘러대면 될 일 아니겠소? 내 죽음은 당신에게 여러모로 유리한 정황이 될 수 있을 거요.”

“내가 제안을 거절한다면?”

“뭐, 어쩔 수 없는 일이지. 다만 나는 여기서 사라질 거요.”

일살이 품에서 두루마리 하나를 꺼내들었다.

텔레포트 스크롤이었다.

“나에게는 당신의 일격을 피할 만한 은신술이 있고, 이 종이 한 장을 찢을 정도의 시간은 벌 능력이 있소.”

한 마디로 이곳에서 순식간에 벗어날 수 있다는 뜻.

“대신 마왕은 당신의 도발이 시작되었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 테지.”

“과연.”

“아슬아슬한 줄타기라고 하셨소? 아직 그 줄을 끊어 버릴 때가 아니라면 내 말을 듣는 게 좋을 거요.”

바리탄은 감탄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무엇보다 그는 인간의 집념에 놀랐다.

목숨마저 저리 가벼이 던져가며 목적한 바를 이루고자 하다니.

마침내 바리탄이 입을 열었다.

“좋아, 약속 장소는 어딘가?”

그때였다.

누군가 문을 쾅쾅 두드렸다.

하운트가 화들짝 놀라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일살이 재빨리 전음으로 약속 장소를 알려 주었다.

다음 순간,

콰당!

문이 벌컥 열리면서 한 무리의 마족들이 들이닥쳤다.

가장 앞장 선 사람은 다름 아닌 루시달 공작이었다.

그와 동시에,

탓!

일살이 전광석화처럼 날아가면서 바리탄을 기습했다.

“엇!”

이제 막 들어선 루시달 공작이 소리쳤다.

바리탄이 재빨리 몸을 뒤틀며 일살의 일격을 피하고는 수도로 뒷목을 내려찍었다.

퍼억!

“커억!”

그대로 목이 꺾여 버린 일살이 피를 토해내면서 그 자리에 고꾸라지고 말았다.

그야말로 눈 깜빡할 사이에 일어난 일이었다.

순식간에 상황이 정리되자, 바리탄이 루시달 공작을 보며 물었다.

“루시달 공작님이 여긴 어쩐 일이십니까?”

“그자는…?”

“보셨다시피 제 방에 잠입해서 갑자기 절 기습한 놈입니다. 그나저나 대단하군요. 인간 주제에 이렇게까지 접근하다니.”

루시달 공작이 잔뜩 인상을 찌푸리고는 이미 숨을 거둔 일살을 보았다.

“흑성에 침입자가 있었네. 그 자의 행적이 이곳으로 향하기에 급히 와보았네. 자네가 무사해서 다행이군.”

“흐음. 그랬군요. 그나저나 이 자가 왜 하필 내 방에 침입한 걸까요?”

“그걸 내가 어찌 알겠나?”

“이상하군요. 인간 주제에 흑성까지 왔다는 것도 그렇고, 하필 내 방에 찾아온 것도 그렇고.”

“무슨 뜻인가?”

“아, 아닙니다. 그저… 요즘 절 탐탁지 않게 여기는 자들이 많은 것 같아서 말입니다. 인간이나 마족이나.”

“그 말은 지금 내부의 소행이라고 의심하는 건가?”

“설마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바리탄이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

루시달 공작이 시선을 돌려 하운트를 바라보았다.

“한데 자네는 왜 여기에 있나?”

“아, 저 역시 침입자를 추적하다가 이곳에 들어선 차였습니다.”

“흐음.”

루시달은 어딘지 미심쩍은 표정으로 둘을 번갈아 보다가 말했다.

“어쨌든 둘 다 무사하니 다행이군. 저 자의 시체는 수거하도록 하지.”

“그러시지요.”

루시달의 명령에 수하들이 서둘러 일살의 시체를 수거하기 시작했다.

**

정좌를 하고 있던 사비강이 눈을 떴다.

구윤이 그에게 얼른 다가가며 물었다.

“어떻게 됐습니까?”

“약속 장소에서 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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