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60
귀환 마교관
560화
“이간지계라?”
사비강의 말에 구윤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현재 마족은 양분되어 있다고 들었습니다. 바리탄 후작이 마족의 강림을 앞당겼지만, 정작 그는 마계의 반역자라고 들었습니다.”
사비강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는 말이다.”
“하면 지금도 야심이 있는 바리탄 후작은 왜 이곳에 마왕을 불러들였을까요?”
“왜라고 생각하지?”
“이곳은 바리탄 후작에게 더 익숙하기 때문입니다. 그는 존야의 몸을 빌려 한동안 이곳에서 생활했으니까요. 결국 마왕에게는 낯선 장소지만, 그에게는 익숙한 장소. 환경이 그에게 유리한 것이지요. 거기에 마왕의 신임을 얻을 수 있는 기회. 신임은 곧 방심을 불러올 것이고요.”
“그 말은 마족이 인간과 전쟁을 끝내면 결국 바리탄이 움직이게 될 거라는 건가?”
“분명히 그럴 겁니다. 그는 마족이 인간 사냥을 끝내 갈 무렵 반드시 또 한 번 반란을 일으킬 겁니다.”
사비강이 수긍한다는 표정을 지었다.
충분히 가능한 추론이었다.
아니, 그 역시 그 부분에 대해서 전혀 생각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무랑을 통해서 바리탄이 아라니우스를 죽였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결국 그가 마왕을 배신할 것이라는 걸 짐작하고 있었다.
다만 중원에서 반역을 시작하리라는 것까지는 생각하지 못했다.
적어도 마계로 돌아간 후에 일을 벌일 거라고 짐작했다.
한데 듣고 보니 구윤의 추론이 일리가 있다.
굳이 마계로 돌아갈 때까지 기다릴 필요가 없는 바리탄이었다.
적어도 중원이라는 장소는 바리탄에게 더 유리한 환경이 되어 줄 테니까.
“하면 어떻게 이간지계를 사용한다는 거지?”
“그의 입장에서는 마왕을 상대하기 쉽겠습니까? 인간을 상대하기 쉽겠습니까?”
“당연히 인간이지.”
“그럼 역시 마왕을 먼저 제거하고 싶지 않겠습니까? 그에게 있어서 인간은 그저 언제든 처리할 수 있는 먹잇감에 지나지 않을 테니까요.”
“그래서?”
“먼저 찾아가는 겁니다. 바리탄에게. 그리고 잠시 손잡을 것을 제안하는 거지요.”
“계속해 봐.”
사비강이 흥미를 보였다.
구윤이 냉정한 표정으로 말을 이어갔다.
“바리탄의 입장에서는 거절할 이유가 없지요. 오히려 그는 우리를 적극적으로 도울 겁니다. 그래서 최대한 마왕의 힘을 약화시키려고 할 겁니다.”
“결국 바리탄도 우리를 이용할 테지.”
“그렇습니다. 서로가 서로를 이용하는 거지요. 여기서 우리의 최대 무기는 바리탄의 방심입니다. 인간을 무시하는 그 마음.”
“과연. 우리는 바리탄의 협조로 마왕을 무찌르기가 수월해질 거라는 거군.”
“물론 그렇겠지요. 하지만 그보다 우린 바리탄과 마왕이 싸우도록 판을 짜야 합니다. 맹수 두 마리가 서로 물어뜯으며 싸우도록 해야지요. 그리고 하나가 살아남는다면….”
“상처 입은 맹수의 숨통을 우리가 끊어 놓는다.”
“그렇습니다.”
“좋은 계획이군.”
사비강이 인정했다.
사실 그는 마왕이든 바리탄이든 무조건 쳐부술 생각만 하고 있었다.
좀 더 진지하게 생각했더라면 구윤과 같은 고민도 했을 테지만, 그러기에는 마족에 대한 증오심이 지나치게 깊었다.
게다가 다른 사람들 역시 감히 마족을 먼저 찾아간다는 건 생각도 하지 못했을 것이다.
한데 구윤은 사고를 뒤집은 것이다.
언뜻 쉽게 보여도 쉬운 일이 아니다.
자칫 터무니없는 주장으로 보일 수 있다.
그리고 가장 큰 문제는….
“바리탄을 찾아가는 게 제일 어려운 부분이지요.”
구윤의 말에 옆에서 가만히 기록만 하던 담우기도 크게 공감하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네요. 흑성에 머물고 있을 바리탄에게 접선하는 게 쉬운 일이 아닐 텐데요. 자칫 마왕 쪽에 들키기라도 하면 모든 계획이 수포로 돌아갈 테고요.”
이간질 계획을 떠올렸다고 하더라도 실행하지 못하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무슨 수로 바리탄을 찾아간단 말인가?
찾아간다고 해서 바리탄이 순순히 협조할 거라는 보장 역시 없다.
사비강이 무덤덤한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가지.”
그러자 구윤과 담우기가 동시에 말했다.
“그건 안 됩니다.”
어찌나 똑같은 반응을 보이는지, 마치 한 사람이 이야기한 것만 같았다.
사비강이 미간을 좁히자, 구윤이 말을 덧붙였다.
“궁주님은 좀 더 몸을 소중히 하실 필요가 있습니다. 이제 이 강호에는 정말 마지막 남은 희망이니까요.”
옆에 선 담우기가 열렬히 고개를 끄덕였다.
사비강이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했다.
“괜찮다. 난 자신 있으니까.”
“아뇨. 그래도 안 됩니다. 지금껏 궁주님은 단 한 번도 위기가 없었습니까?”
“그야….”
사비강이 말꼬리를 흐렸다.
왜 위기가 없었겠나?
숱한 위기를 겪었다.
당장 며칠 전만 해도 자신의 의식 세계에 영원히 갇혀서 평생 식물인간으로 살 뻔하지 않았던가?
그나마 매설란과 추량의 도움을 받아서 위기를 모면할 수 있었다.
구윤이 마치 다 안다는 듯 말했다.
“아무리 궁주님이 강하셔도 혼자서 모든 것을 해결할 수는 없습니다. 그게 인간입니다.”
하긴 그 말이 맞다.
마족과 인간이 다른 점.
자신이 지금껏 그렇게 말하고도 정작 자신은 모든 걸 혼자 해결하려고 했다.
‘오래 된 습관 같은 것일까?’
사비강의 입가에 쓴 웃음이 걸렸다.
마계에서 지내던 시절, 그 누구도 믿지 못했던 버릇이 나온 모양이다.
사비강이 어깨를 으쓱이고는 말했다.
“하지만 내가 가지 않으면 방법이 없을 텐데.”
“다른 사람을 보내야 합니다. 이쪽의 입장을 전달할. 그게 보기에도 좋고요.”
“하지만 누가 흑성에 몰래 잠입해서 바리탄을 찾는단 거지? 일단 바리탄의 외모를 아는 사람도 드물 테고. 그가 머물고 있는 방을 찾아갈 수 있는 사람은 없을 텐데.”
맞는 말이었다.
옆에서 듣고 있던 담우기가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그럼… 궁주님만큼이나 바리탄에 대해서 잘 알아야 하고, 은신과 잠입에 뛰어난 자가 있어야 한단 말인데….”
구윤이 빙그레 웃으며 담우기를 돌아보았다.
“그렇다. 떠오르는 자가 있느냐?”
담우기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없습니다. 전혀 없어요.”
“확실한가?”
“확실합니다. 적어도 웬만한 정보는 여기에 다 들어 있습니다.”
담우기가 자신의 머리를 손가락으로 톡톡 두드렸다.
“그럼 어떻게 해야겠나?”
구윤은 마치 정답을 아는 사람처럼 묻고 있었다.
실제로 그는 지금 담우기를 시험하는 중이기도 했다.
그가 얼마나 훌륭한 재목인지.
적어도 앞으로 혜수각을 이끌면서 자신을 도우려면 내심 세워 둔 기준을 넘어서야만 했다.
담우기가 또 중얼거리듯 말했다.
“뭐, 그런 인간을 만들 수밖에 없겠네요.”
“합격이다.”
구윤이 진심으로 말했다.
보통 사람들은 여기서 생각이 막힌다.
해당하는 사람이 없다면 포기한다.
하지만 사고의 전환.
없으면 만들어 버린다.
둥근 계란을 세우지 못하면 밑동을 깨서라도 세우면 된다는 사고의 전환.
알고 나면 무척 간단하지만, 알기 전까지는 보이지 않는 법칙에 얽매여 생각하지 못하는.
하지만 한 번 깨기 시작하면 쉬워진다.
그리고 담우기는 이러한 사고 전환이 습관처럼 굳은 게 분명했다.
그게 마음에 들었다.
구윤이 말했다.
“거의 다 왔다. 그럼 어떻게 만들어야 할까?”
“흐음…!”
담우기가 미간에 내 천 자 주름을 새기고는 골몰히 생각에 잠겼다.
그렇게 얼마나 고개를 갸웃거리며 시간을 보냈을까?
마침내 그의 눈동자가 점점 커졌다.
이윽고 그가 ‘설마’ 하는 표정으로 구윤을 보았다.
구윤은 직감했다.
그가 정답을 찾았음을.
아니나 다를까, 담우기의 입에서 그 정답이 흘러나왔다.
“마전혼의대법(魔傳魂依大法)…!”
구윤이 희미한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맞았다.”
“하지만 마전혼의대법은 사악한 마교의 대법으로 사람을 일회용으로…!”
“나도 알고 있다.”
구윤이 딱딱한 표정으로 말을 잘랐다.
담우기가 당황한 듯 말을 꿀꺽 삼켰다.
적어도 지금의 구윤은 자신이 알던 사람이 아닌 듯했다.
사비강이 구윤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설명을 바라는 눈치였다.
그는 현재 중원의 갖가지 무공을 두루 섭렵한 몸이었지만, 마전혼의대법이 무엇인지는 정확히 알지 못했다.
전생에서는 마령교 자체가 나타나지 않았었기에.
구윤이 사비강을 가만히 바라보다 말했다.
“마교의 대법입니다. 쉽게 말해 한 사람의 몸을 잠시 빌려 쓰는 겁니다.”
사실 이는 몹시 순화해서 전한 말이다.
애초에 마전혼의대법은 대상자의 몸을 딱 하루 정도 빌려 쓴 다음 죽이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었다.
만약 사비강이 마전혼의대법을 사용해서 누군가의 몸을 하루 빌려 쓰게 되면, 그 상대는 빙의가 풀리는 순간부터 열두 시진 이내에 사망하게 된다.
과거 마교주가 포로들을 대상으로 심심찮게 써먹던 대법이었다.
이 대법의 최대 장점은 상대의 몸에 빙의되어 활동하다가 죽임을 당해도 시전자의 영혼에는 아무런 해가 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대략의 설명을 들은 사비강은 다소 놀란 표정으로 구윤을 보았다.
“지금 그걸 사용하겠다고?”
“안 될 것 있습니까?”
구윤은 차분하게 반문했다.
그래서 더욱 차갑게 들렸다.
예전 같았으면 아니, 불과 며칠 전만 하더라도 이런 건 상상도 할 수 없었으리라.
정도맹의 총군사가 마교의 대법을 사용하자고 말하다니!
탄핵감이다.
아니, 참수감이다.
한데도 구윤은 지나칠 정도로 차분하고 침착했다.
“상대는 마족입니다. 그들을 이기기 위해서는 악랄해져야 합니다.”
사비강이 빙그레 웃었다.
“마음에 드는 소리군. 하지만 나는 그 대법을 사용할 줄 몰라.”
“무랑 도사님이 계시지 않습니까? 게다가 멸마궁에는 마령교도 중에서도 최고 수뇌부였던 자가 있지 않습니까?”
“흐음.”
“하면 누굴 대상으로?”
“그야 은신과 잠입 능력이 뛰어난 자여야겠지요. 기본적인 신체 능력이 탁월해야 할 테니까요. 평범한 사람의 몸에 빙의되어 봐야 아무것도 못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니까 그게 누구…. 설마?”
“예, 우리에게는 중원 최고의 살수들이 항시 대기 중이지요.”
사비강의 표정이 살짝 굳었다.
그가 구윤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마전혼의대법을 사용한 후에는 대상자가 열두 시진 내에 죽는다고 하지 않았나?”
“그렇습니다만.”
문제될 게 있느냐는 표정이다.
잠시 그를 바라보던 사비강이 실소를 터뜨려 버렸다.
정말이지 사람이 하루아침에 이렇게까지 독해질 수 있는 건가?
마교의 대법을 사용하는 것도 모자라, 사람의 생명을 일회용 도구처럼 취급하다니.
정말 자신이 알던 그 총군사 구윤이 맞나?
사비강의 귀에 구윤의 목소리가 차분하게 날아들었다.
“말씀드렸다시피 제 잔에 담긴 술은 바닥에 버리기로 했습니다.”
그 술이 곧 인정(人情)이리라.
결국 사비강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다. 추진해 봐.”
“알겠습니다. 그럼 첫 작전을 빠른 시간 내에 진행하겠습니다.”
**
구윤의 작전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정말이지 구윤은 거침이 없었다.
지시를 받은 자운룡은 마령교주가 생전에 지내던 장소로 가서 마전혼의대법의 비기가 담긴 책자를 구해 왔다.
과거 마령교도 중에서도 정확히 동면인까지만 공개된 장소였다.
자운룡은 그곳에서 마전혼의대법 이외에도 마령교의 각종 대법과 무공서들을 모두 가져와 멸마궁에 기증했다.
만약 마령교가 하루아침에 증발하듯이 패망하지 않았더라면, 절대 불가능한 일이었으리라.
“허참, 오래 살고 볼일일세. 내가 마교의 대법을 다 익히게 되다니.”
책자를 받아든 무랑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하지만 학구열이 대단한 그가 이런 좋은 기회를 놓칠 리는 없었다.
결국 그는 비서를 독파한지 정확히 열흘 만에 사람들을 무랑전으로 불러 모았다.
드디어 본격적인 반격의 순간이 찾아온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