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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 마교관-554화 (554/670)

# 554

귀환 마교관

554화

자운룡은 따끈따끈한 만두 두 접시를 들고는 견신각(堅信閣)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견신각은 멸마궁에서 각종 정보를 수집하고 전서구를 관리하는 곳이었다.

그가 이곳을 찾아가는 이유는 하나였다.

얼마 전부터 유정이 이곳에서 일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저도 멸마궁에 작게나마 힘을 보태고 싶어요.”

어느 날 유정이 매설란을 찾아가 불쑥 꺼낸 말이었다.

물론, 자운룡은 반대했다.

더 이상 그녀가 다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었다.

그녀는 이미 아픈 상처가 있었다.

몸의 상처는 다 나았다지만, 마음의 상처가 남아 있을 터였다.

게다가 정상의 몸을 되찾고 나서는 이렇다 할 무공을 익히지도 못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초환당주 진백은 그녀가 무공을 익히기에 적합한 체질이 아니라고 얘기했다.

애초에 그녀는 꽤나 재능이 있었다.

하지만 신체가 개조된 후로 체질이 많이 변해 버린 것이다.

그러니 그녀가 멸마궁에서 할 일은 거의 없었다.

한데 매설란은 선뜻 그녀를 받아들여 주었다.

“정말 고마워요. 그렇잖아도 일손이 필요한 곳이 있었는데.”

“정말인가요? 어디죠? 제가 돕고 싶어요!”

“견신각이에요. 중원 각지에서 날아드는 정보를 관리하는 곳이죠. 전서구나 전서응을 관리하기도 하고요.”

“그럼 절 그곳으로 보내 주세요!”

유정은 매우 기뻐했다.

자신이 작게나마 힘을 보탤 수 있다는 사실에 흥분하고 있었다.

자운룡은 나중에 매설란을 따로 찾아가 사례했다.

“감사합니다. 저는 정아를 감싸기만 했더군요. 총관님 덕분에 정아가 한층 더 밝아진 것 같습니다.”

“별 말씀을요. 저는 정말 필요한 곳에 그녀를 배치한 것뿐이랍니다.”

매설란이 대수롭지 않게 말했지만, 자운룡은 잘 알고 있었다.

그녀의 속 깊은 뜻을.

게다가 유정이 자연과 동물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고는 일부러 전서구나 전서응을 관리하는 쪽으로 보낸 것이리라.

고마웠다.

혹시라도 그녀가 험한 일을 맡게 될까봐 내심 마음을 졸였는데.

그렇게 그가 견신각으로 막 들어서려고 할 때였다.

문득 그림자가 그 앞을 막아서는 것이 아닌가?

자운룡이 슬쩍 물러나며 상대를 보았다.

“아, 위 단주님이시군요.”

그의 앞을 가로막은 사람은 다름 아닌 위검종이었다.

원래 호남으로 파견 갔던 그였지만, 헬무트가 멸마궁에 복속되면서 그 역시 멸마궁으로 귀환한 상태였다.

자운룡은 겉으로 내색하지 않았지만 내심 불편했다.

자신이 마령교의 간자였다는 사실이 밝혀지고 나서부터 위검종은 노골적으로 자신에게 혐오감 어린 시선을 보내고 있었기에.

자운룡이 고개를 주억거리고는 옆으로 지나치려고 하자, 위검종이 같은 방향으로 걸음을 옮기며 막아섰다.

자운룡이 고개를 들었다.

“무슨 하실 말씀이라도…?”

“비무합시다.”

“예?”

대뜸 튀어 나온 뜻밖의 말에 자운룡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위검종이 다시 한 번 딱딱한 표정으로 말했다.

“나하고 비무합시다.”

“갑자기 왜….”

“당신이 싫으니까.”

‘뭐야? 꽤나 솔직하게 나오잖아?’

자운룡은 맥이 빠지면서도 괜히 오기가 생겼다.

“혹시 제가 마령교 출신이기 때문입니까?”

“그렇소.”

‘정말 솔직하군.’

다른 변명이라도 할 줄 알았다.

그런데 이렇게까지 솔직하게 말할 줄은 몰랐다.

자운룡이 나직이 한숨을 내쉬고는 말했다.

“제가 마령교 출신이긴 하지만 이제는 아닙니다. 오히려 저는 마령교를 섬멸할 수 있도록 매 총관님께 협조도 했고, 지금은 누구보다도 마족을 물리치길 원하는….”

“그딴 건 상관없소. 난 마족보다 마령교를 더 싫어하니까.”

이건 또 의외다.

마족보다 마령교가 싫다?

무슨 사연이라도 있는 건가?

하지만 구체적인 것을 따져 묻기에는 위검종의 적대감이 너무 강렬했다.

자운룡은 그의 눈빛을 보면서 비무를 거절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만약 비무를 거절하면, 지금 이 자리에서 당장 칼이라도 뽑아들 기세였기에.

“좋습니다. 하죠. 언제 어디서….”

“여기서 지금.”

말을 마친 위검종이 순간 발검을 일으키는 것이 아닌가?

샤아아아악!

“헛!”

자운룡이 헛바람을 삼키면서 성큼 물러났다.

쩌엉!

금속성이 울리면서 기의 파동이 사방으로 훅 뻗어 나갔다.

검을 맞댄 위검종과 자운룡의 머리카락이 세차게 휘날리다가 제자리를 찾아갔다.

바닥에는 접시와 만두가 아무렇게나 나뒹굴었다.

자운룡의 표정이 굳었다.

방금 일격은 정말이지 죽일 작정으로 날린 공격이었다.

만약 조금만 대처를 늦게 했더라면, 위검종의 검신이 때린 것은 자신의 검이 아니라 목이었으리라.

등줄기를 타고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자운룡이 억눌린 음성으로 물었다.

“도대체 왜 이러시는 겁니까?”

하지만 위검종은 말하지 않았다.

그는 오히려 아까보다 더욱 화가 난 듯 빠르게 보법을 밟으면서 후속 공격을 해왔다.

까강! 깡!

까라라라라라랑!

두 사람 사이에서 격렬한 공방이 이어졌다.

정말이지 범인의 눈으로는 쫓기도 힘들 만큼 빠른 공격과 방어였다.

순식간에 수십 합이 흘러갔다.

누구도 예측하지 못했으리라.

한적한 검신각 안마당에서 이런 고수들의 싸움이 벌어질 줄은!

당사자인 자운룡조차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으니 말이다.

자운룡은 위검종의 검을 정신없이 막아내면서 내심 혀를 내둘렀다.

‘과연 위 단주의 무공은 기상천외하구나! 절대 얕잡아 볼 수 있는 무공이 아니다!’

한편 위검종은 시간이 흐를수록 짜증이 솟구치고 있었다.

“장난하지 말고 좀 더 보여주시오! 당신의 진짜 모습을! 겨우 이깟 검술로 마령교도라고 할 수 있겠소?”

“대체 무슨 말을 하는 겁니까? 저는 지금 목숨을 걸고 최선을 다해 막고 있는 중입니다!”

“헛소리!”

위검종은 더욱 매섭게 자운룡을 몰아붙여 갔다.

자운룡은 정말이지 답답해 미칠 지경이었다.

실제로 그는 최선을 다해서 검술을 펼치고 있는데, 위검종은 그걸 인정하지 않는 모양이었다.

그렇게 한참이나 격렬한 공방이 이어졌다.

어느 한쪽도 우월하다고 표현하기 힘든 수준.

그야말로 용호상박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스럽게 우위가 가려지기 시작했다.

그동안 멸마궁에 머물면서 특별한 실전을 겪지 않았던 자운룡과 달리, 위검종은 여러 곳을 전전하면서 실전을 겪어 왔다.

게다가 얼마 전 사비강이 준 영약도 그의 기량을 높이는데 큰 몫을 했다.

결국 삼백 합을 넘겼을 때부터는 자운룡이 조금씩 허점을 드러내기 시작했고, 마침내 삼백구십칠 합이 이루어지는 순간,

까아아앙!

휘리리릭, 콱!

자운룡의 손을 떠난 검이 그대로 날아가면서 견신각의 기둥에 꽂히고 말았다.

척!

위검종의 검봉이 그대로 자운룡의 목젖에 와 닿았다.

“제가 졌습니다….”

자운룡이 씁쓸한 표정으로 패배를 인정했다.

하지만 위검종의 표정은 처음보다 더욱 굳어져 있었다.

“겨우 이 정도로… 우리 가문을….”

“예? 그건 무슨 말씀입니까?”

자운룡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자, 위검종이 무서운 표정으로 노려보다가 검을 거두어 들였다.

그가 한숨을 탁 내쉬며 말했다.

“소주위가. 한때 소주에서 명성을 떨친 명문 정파였지. 아버지는 소주위가의 이공자였소. 한데… 당신들이 신봉하던 그 존야에게 멸문지화를 당했소. 당시 어렸던 아버지는 호위무사와 함께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부지하셨고.”

“아… 그래서 마령교를…!”

자운룡이 씁쓸한 표정으로 한숨을 쉬었다.

정말이지 강호의 은원관계는 참으로 복잡하게도 얽혀 있다.

그제야 위검종의 검술이 기묘했던 것도 이해가 됐다.

기운만 보자면 굉장히 정순해 보이는데, 그가 펼치는 검술은 무척 패도적이었다.

위검종의 뿌리가 정파인데, 익힌 검술이 사공이기 때문이리라.

위검종이 검을 갈무리하며 말했다.

“아버지는 돌아가실 때까지 내게 귀에 못이 박히도록 말씀하셨소. 마령교를 섬멸해야 한다고. 그것이 가문의 복수를 이루는 것이라고.”

“…….”

“하지만 이젠 다 부질없는 일이 되어 버렸군. 가문의 멸망은 들먹이기도 힘든… 세상의 멸망이 눈앞에 도래했으니.”

“위 단주….”

“됐소. 어설픈 위로 따위는 들을 생각 없소. 사실… 얼마 전 사비강 궁주님이 귀환했을 때, 존야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소. 그녀가 어떻게 그리 된 것인지. 왜 우리 가문이 멸망할 수밖에 없었던 것인지.”

말을 이어 가던 위검종이 피식 실소를 터뜨렸다.

“가만 보면 우리 궁주님 정말 무서운 분이시지. 그분은 내가 소주위가 출신이라는 정보까지 다 알고 계셨던 거요. 그래서 날 일부러 찾아와서 그런 이야기를 하신 거겠지.”

위검종이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았다.

지독히도 맑은 날씨다.

마족 따위는 생각도 나지 않는.

복수 따위는 한쪽 구석에 던져 버리고 싶은.

과연 소주위가는 떳떳하게 말할 수 있을까?

사람의 도리를 다한 것이라고.

문득 아버지가 불쌍하게 느껴졌다.

평생 피해 의식을 가지고 사신 분.

만약 아버지에게 궁주의 말을 그대로 전해 주면, 어떤 대답이 돌아올까?

아마 믿지 않으시리라.

전부 꾸며낸 이야기라고 소리칠 것이다.

위검종이 발걸음을 돌렸다.

그가 한 마디 툭 던졌다.

“어쩌면 굳이 마족이 이 강호를 덮치지 않았어도… 우리는 이미 스스로 지옥 같은 환경을 만들어 가고 있었던 건 아닌지 모르겠소.”

자운룡은 멍한 표정으로 위검종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는 지금 위검종이 무슨 말을 한 것인지 하나도 이해할 수 없었다.

소주위가는 무엇이며, 멸문지화는 또 뭐란 말인가?

존야에 대한 이야기는?

다만 사비강 궁주와 그 사이에서 어떤 대화가 오고 갔으리란 것만 알 수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그가 남긴 마지막 말에 깊이 공감할 뿐이었다.

‘그래, 어쩌면 우린 이미 인간들끼리 지옥을 만들고 있는 지도….’

자신부터 그러지 않았던가?

괜히 오늘따라 유정이 더 보고 싶었다.

그가 막 돌아서려고 할 때였다.

마침 누군가 견신각에서 달려 나오며 부딪치는 것이 아닌가?

“아앗!”

“엇!”

깜짝 놀라서 보니 유정이었다.

“정아?”

“아, 사부님? 죄송해요! 지금 몹시 급한 일이 생겨서요!”

유정이 꾸벅 인사를 건네더니 어디론가 쏜살 같이 달려가는 것이 아닌가?

결국 인사도 제대로 나누지 못한 자운룡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녀석, 뭐가 저리 급한 거지?’

하지만 유정이 지었던 그 표정은 정말이지 다급해 보였다.

“무슨 일이 있는 건가?”

**

콰당!

문이 벌컥 열리면서 요란한 소리가 울렸다.

사비강과 대화를 나누던 매설란이 깜짝 놀라서 돌아보았다.

사비강 역시 미간을 좁히고는 갑자기 나타난 유정을 보았다.

“헉, 헉, 헉…! 죄송해요. 갑자기 나타나서. 하지만 너무 급박한 사안이라서…!”

“뭐지?”

사비강이 진중한 표정으로 되묻자, 유정이 겨우 호흡을 고르고는 소리쳤다.

“대운산! 지금 당장 궁주님이 대운산으로 가셔야 할 것 같아요!”

“대운산?”

“네! 아무래도 거기에서 큰일이 벌어질 것 같아요! 살막주가 만리응을 통해 서신을 보냈습니다!”

유정이 얼른 다가와 서신을 건네 주었다.

사비강이 빠르게 서신을 훑어보았다.

그의 표정이 점점 굳어졌다.

마침내 사비강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지금 바로 가야겠어.”

“대운산으로? 가본 적은 있어?”

“아니. 가까운 곳으로 이동한 다음에 천해심보로 달려가야지.”

“늦지 않을까?”

말을 꺼내 놓고도 매설란은 아차 싶었다.

그런 가정은 쓸데없는 것이다.

일단 해볼 수 있는 데까지 해보는 것.

그게 중요한 거니까.

사비강은 언제나 그렇게 작은 기적들을 모아서 큰 기적을 만들어 냈으니까.

결국 매설란이 얼른 말을 정정했다.

“조심히 다녀와. 여긴 걱정 말고.”

“그래.”

고개를 끄덕인 사비강이 품에서 텔레포트 스크롤을 꺼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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