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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 마교관-553화 (553/670)

# 553

귀환 마교관

553화

눈동자가 온통 시커멓게 물든 능운파가 두 손을 내려다보았다.

흑요석처럼 검었다.

손도, 팔도, 다리도.

전신이 검고 탄탄하게 변했다.

손을 들어 이마에서 돋아난 두 개의 뿔을 만져 보았다.

길게 뻗은 뿔은 등 쪽으로 유려한 곡선을 그리며 휘어져 있었다.

그리고 뿔 안쪽으로 접혀 있는 날개를 활짝 펼치면 자신의 몸을 완전히 감쌀 수 있을 만큼 컸다.

‘완벽한… 존재! 초월적 존재!’

손이 떨려 왔다.

마침내 이뤄냈다.

그토록 갈망했던 힘을 품었다.

“쿡, 크하하하하하하하!”

그가 허리를 꺾어 들고 앙천광소를 터뜨렸다.

그 웃음이 천둥처럼 하늘에 쩌렁쩌렁 울렸다.

그때,

“음?”

자신을 향해 쏘아지는 살기를 느끼고는 고개를 돌렸다.

허공답보를 펼치면서 날아드는 악천괴가 보였다.

능운파의 눈매가 부드럽게 휘었다.

매력적인 미소였다.

외형으로만 보자면 능운파의 나이는 이제 청년 정도로 보였다.

“쯧… 가소로운.”

능운파가 혀를 차고는 점점 다가오는 악천괴를 가만히 보았다.

너무 느렸다.

저렇게 둔하고 느린 몸뚱이로 자신에게 살기를 쏘아 보내고 있다는 사실이 애처롭게 느껴질 지경이었다.

“이쪽에서 가볼까?”

능운파가 목을 우둑 꺾는 순간,

스팟!

그의 신형이 순식간에 악천괴 앞에 나타났다.

악천괴의 눈이 커졌다.

“노옴…!”

악천괴가 그대로 귀살조공을 펼치며 갈퀴 모양의 손을 휘둘렀다.

조공의 가장 유리한 점은 바로 근접전에 있다.

게다가 도검창보다 빠르다.

즉각적인 반격이 가능하다.

그런 점에서 볼 때, 코앞에 나타난 능운파는 큰 실수를 한 것이다.

하지만…

스팟!

쑤아아아앙!

능운파의 신형이 감쪽같이 사라졌고, 악천괴의 손은 허공을 할퀴며 허무하게 지나쳤다.

다섯 줄기의 강기가 그대로 허공을 찢는 순간,

꽈앙!

악천괴는 등짝을 때리는 묵직한 충격에 그대로 포탄처럼 날아가며 바닥에 쓰러졌다.

쿠당탕탕!

“끄으으윽…!”

악천괴가 비척거리면서 일어나더니 울컥 피를 토했다.

등이 찢어질 듯 아팠다.

그는 주변에 널브러져 있는 수많은 알들을 보았다.

아교처럼 끈적끈적한 표면에서 검은 액체가 줄줄 흘러내렸다.

“제길…!”

촤아아아악!

악천괴가 신경질적으로 귀살조공을 펼치면서 거대한 알을 할퀴었다.

하지만 거대한 알은 한 차례 움찔거릴 뿐 더 이상의 변화가 없었다.

그때, 바닥으로 능운파가 내려섰다.

“아름답지 않은가?”

능운파가 미성으로 말을 건네 왔다.

거대한 알을 둘러보는 능운파의 표정에는 애정이 듬뿍 담겨 있었다.

“이들은 다시 태어나는 과정 중에 있다. 어떤가? 자네도 다시 태어나는 것이?”

“크크크. 본좌는 이미 괴물이었다. 네놈들이야 그 본능을 숨기고 선한 척! 정의로운 척하면서 살아온 거겠지!”

“흐음. 그런가?”

“당연하고 말고!”

파밧!

악천괴가 버럭 소리치면서 다시 능운파에게 달려들었다.

이번에야말로 능운파의 숨통을 끊어 놓겠다는 듯 강렬한 살기를 뻗으면서 손을 휘둘렀다.

쑤아아아아아앙!

다섯 줄기의 강기가 허공을 할퀴었다.

스팟!

능운파의 신형이 또 한 번 사라졌다.

“어림없다!”

악천괴가 버럭 소리치며 그대로 돌아서면서 다시 손을 휘둘렀다.

그는 사방팔방으로 손을 휘저었다.

쑤아아앙! 쑤앙! 쑤앙! 쑤쑤아아앙!

수십 줄기의 강기가 사방팔방을 날아가면서 허공을 미친 듯이 찢어발겼다.

하지만 손에 걸리는 것은 없었다.

그러던 중 등골이 서늘해지는 것을 느낀 악천괴가 어금니를 빠득 갈면서 돌아섰다.

“크이이익!”

역동작에 걸린 그가 최대한 공력을 끌어올려 몸을 뒤틀었다.

우두두둑…!

근육이 뒤틀리면서 끊어지는 것만 같은 고통이 찾아왔다.

그런 가운데에서도 그는 최후의 일격을 가하기 위해 강기를 일으켰다.

쑤우우우…!

귀살조공의 강기가 발출되려는 순간,

탁!

악천괴의 눈동자가 커졌다.

놀랍게도 능운파가 자신의 손목을 낚아챈 것이다.

이건 단순히 손목을 잡았다는 표현으로 설명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악천괴의 특기는 귀살조공이었다.

귀살조공을 펼치게 되면 팔꿈치 아래로는 완전히 무기나 다름없어진다.

그런 만큼 지금 능운파는 맨손으로 초절정 고수의 칼날을 낚아챈 것과 다름없는 상황이었다.

능운파가 부드럽게 웃음 지었다.

“아무래도 그대는 이 손이 자랑거리인 모양이군.”

능운파가 천천히 손아귀에 힘을 주었다.

꽈드드득…!

능운파의 시커먼 손등에 힘줄이 불거졌다.

동시에 그의 손톱이 매의 발톱처럼 단단하게 자라나오기 시작했다.

놀랍게도 악천괴가 귀살조공을 펼칠 때보다도 더욱 단단하고 날카로운 손톱이었다.

악천괴가 식은땀을 흘리면서 이를 빠득 갈았다.

“크읍…! 노오옴…!”

다음 순간,

부우우우욱!

“크아아아아아악!”

악천괴의 입에서 끔찍한 비명이 터져 나왔다.

그의 팔을 찢어내 버린 능운파가 그것을 아무렇게나 집어던졌다.

“시시하군.”

“크으으읍…!”

악천괴가 얼른 혈을 짚어 지혈했다.

능운파는 어깨를 으쓱이고는 몸을 돌렸다.

악천괴가 버럭 소리쳤다.

“노옴! 기다려라! 어딜 가느냐!”

하지만 능운파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그는 저만치 비탈길을 오르고 있는 구윤과 비령 그리고 살수들과 몇몇 무인들을 보았다.

능운파의 의도를 눈치 챈 악천괴가 비틀거리면서 일어났다.

“본좌를 무시하지 마라! 능 맹주!”

파바바밧!

부상을 입은 몸임에도 불구하고 악천괴는 놀라울 정도로 빠르게 달려나갔다.

능운파의 배후에 거의 다다랐다고 생각하는 순간,

쒸아아아아앙!

그가 귀살조공을 펼치면서 다시 한 번 강기를 휘둘렀다.

한데 이번에는 능운파의 등 뒤로 시커먼 그림자가 갑자기 나타나는 것이 아닌가?

스팟!

“음?”

악천괴의 눈동자가 커진 순간,

쒸이이잇, 푸욱!

“커억!”

악천괴가 눈을 부릅뜨고는 자신의 복부를 꿰뚫은 장창을 보았다.

얼굴에 거뭇한 문신이 새겨진 자.

능운파의 배후로 기다렸다는 듯이 나타나며 기습 공격을 펼친 자는 바로 창신단주 이자준이었다.

그 역시 원래의 얼굴이 조금은 남아 있었지만, 전체적으로 체형이 커지고, 손발이 짐승처럼 굵게 변한 상태였다.

쿠당탕탕!

그대로 튕기듯 날아간 악천괴가 바닥을 한참이나 구르다가 울컥 피를 토해냈다.

“쿠웨에엑!”

악천괴는 죽음을 직감했다.

이제는 회복이 불가능한 수준의 부상이었다.

하지만 이대로 능운파가 구윤과 살수들의 발목을 잡게 놔둘 수는 없었다.

이렇게 된 이상 자멸공이라도 사용해야 했다.

‘그래, 이 빌어먹을 인생! 괴물이 되어서 진짜 괴물을 사냥하면서 마감하는 것도 나쁘지 않지!’

파밧!

악천괴는 마지막 젖 빨던 힘까지 짜내어 능운파의 배후를 향해 달려갔다.

그의 눈동자가 시뻘겋게 물들기 시작했다.

“죽어라! 이 괴물새끼들아!”

하지만 그는 이번에도 뜻한 바를 이루지 못했다.

타닷, 쉬이이잇, 푸욱!

이자준이 내지른 창이 그대로 단전에 박혀드는가 싶더니 그의 내공을 모조리 흡수해 가는 것이 아닌가?

그의 눈동자를 물들이며 발동하던 자멸공이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말았다.

“이런… 젠장…!”

창에 단전이 뚫린 악천괴의 몸이 축 늘어지기 시작했다.

쑤욱!

털썩…!

악천괴가 그 자리에서 무릎을 꿇었다.

그는 이제 자리에서 일어날 기력조차 없었다.

이자준이 돌아서서 능운파의 뒤를 따르기 시작했다.

“킬킬킬…!”

악천괴가 웃었다.

그 웃음이 거슬렸던 것일까?

능운파와 이자준이 미간을 슬쩍 구기고는 돌아섰다.

능운파가 물었다.

“왜 웃나?”

“장담컨대… 네놈은 절대로… 저들을 막지 못해. 저들은 살아서 여길 벗어날 거다….”

“확신하는군?”

“당연하지.”

능운파가 재미있다는 듯 보며 물었다.

“그 어리석은 생각에도 이유가 있을까?”

“네놈이… 아무리 강해져도… 절대로 넘지 못할… 벽이 있지….”

“넘지 못할 벽?”

“그래… 그 벽이… 곧 네 앞을 가로막을… 거다.”

말을 맺은 악천괴가 다시 한 번 엎드려서 피를 토해냈다.

능운파가 팔짱을 꼈다.

“재미있군. 그 벽은 뭐지?”

악천괴의 입매가 비틀렸다.

“평생을 두고 너를 괴롭힐 이름이다. 사.비.강.”

그의 도발이 먹혀든 것일까?

아주 잠깐 능운파의 미간이 흠칫거렸다.

하지만 그는 곧 온화한 표정으로 돌아왔다.

아니, 오히려 뭔가를 기대하는 듯 들뜬 표정에 가까웠다.

“사비강이라… 잠시 그 이름을 잊고 있었군. 그 이름을 들으니 과연 다시 만나고 싶군.”

“킬킬킬. 아마 네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빨리 만나게 될 게야.”

“얼마나?”

“곧.”

“왜지?”

“내가… 어젯밤 전서를 보냈으니까. 만리응(萬里鷹)을 보냈거든.”

만리응이란, 하루에 만 리를 날아간다는 영물이다.

살막이 보유하고 있는 가장 빠른 전서응이기도 했다.

“과연. 그런 짓을 했군. 하지만 사비강이 여기에 오려면 꽤나 시간이 걸릴 텐데.”

“그런데 왠지… 사비강 궁주라면 그런 기적도 일으킬 것 같단 말이야.”

“과연 인간은 어리석구나. 허황된 믿음에 운명을 거는 것을 보면. 즐거운 대화였다. 화려한 죽음을 겪도록.”

말을 마친 능운파가 빙그레 웃으며 몸을 돌렸다.

다음 순간 그의 등에서 날개가 활짝 펼쳐졌다.

후우웅!

그가 날개를 한 차례 휘젓자 그의 몸이 순식간에 창공으로 날아올랐다.

능운파가 만족스러운 듯 미소를 지으며 읊조렸다.

“이 날개가 없어도 나는 것에는 문제가 없지만… 보기엔 아주 좋구나.”

그는 입매를 틀어 올리고는 저만치 달아나는 구윤 일행이 있는 곳으로 날아갔다.

그 뒤를 이자준이 따랐다.

홀로 남은 악천괴는 거친 숨을 몰아쉬며 그 자리에서 꿈쩍도 하지 못했다.

‘사비강…! 와 주게…! 이제 본좌는 더 이상 가망이 없네. 부디… 늦지 않길 바라지.’

그때였다.

쩌적…! 쩌억…!

주변에서 묘한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알처럼 굳어 있던 검은 구체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한 것이다.

마침내,

쩌어어어억! 쩡!

커다란 균열이 간 알 하나가 정확히 반으로 쪼개지면서 그 속에서 끈적끈적한 액체가 늘어났다.

그리고 거미줄처럼 엮인 액체를 헤집으며 시커먼 존재가 성큼성큼 걸어 나왔다.

악천괴는 눈을 휘둥그레 뜨고 녀석을 보았다.

온통 시커먼 피부에 한쪽 어깨에는 여러 개의 촉수가 꿈틀거렸고, 다른 한쪽 어깨에는 마치 가재처럼 크고 단단한 집개 손이 달려 있었다.

‘저건… 마병인가?’

하지만 그보다는 어딘지 훨씬 강해보였다.

그런데 다음 순간,

쩌적…! 쩌억…!

쩍쩍…! 쩌저적…!

주변의 시커먼 알들이 균열이 가면서 흔들리더니 하나 둘 쪼개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수만 개의 알이 부화하고 있었다.

마침 그 중 한 녀석이 무릎을 꿇은 채 축 늘어져 있는 악천괴를 보더니 어딘지 어눌한 음성을 흘려냈다.

“인간…! 하등한… 인간…! 밟아… 죽여라.”

“인간… 벌레… 죽인다….”

악천괴의 표정이 비소가 스쳤다.

“씨벌… 화려한 죽음은 개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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