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환 마교관-552화 (552/670)

# 552

귀환 마교관

552화

촤아아악!

“퀴아아악!”

악천괴의 손톱에 찢어발겨진 괴물이 비명을 내지르며 쓰러졌다.

뼈가 드러날 정도로 깊이 파인 상처를 보면, 과연 이것이 손톱에 긁힌 자국이 맞는지 의심스러울 정도였다.

검은 비를 맞으며 서 있는 악천괴는 이글거리는 눈동자로 괴물처럼 변해 버린 무인들을 훑어보았다.

“그래, 어쩌면 그것이 너희들의 본 모습인지도 모르지! 그 관주 놈처럼 말이다!”

타다닷!

허공을 날다시피 경공을 펼친 악천괴가 다시 손을 마구잡이로 휘둘렀다.

촤촤촤아아악!

강기를 품은 조공이 난사되자, 그를 향해 달려들던 괴물들이 몸을 뒤집으며 쓰러져 갔다.

치익…! 치치이이익…!

그의 살에 닿는 검은 비는 연신 타들어가는 소리를 내며 연기처럼 증발했다.

악천괴는 무아지경 속에서 끊임없이 조공을 펼쳐 갔다.

그는 어금니를 콱 씹었다.

‘아니라고 했다. 형님은 사공을 익힌 것이 아니라고!’

하지만 자신의 말을 믿어 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이미 마을 사람들에게 존경을 한 몸에 받는 관주였다.

그의 말 한 마디는 곧 마을의 법도였고, 진리였다.

그가 그렇다면 그런 것이었다.

하루아침에 악천후는 배은망덕한 청년으로 변해 버렸다.

강해지는 것에 매료되어 사악한 무공에 손을 대고 관주의 직계 제자들까지 위협한 인간.

결국 관주는 직계 제자 세 명에게 가벼운 벌을 내렸고, 오히려 마을 사람들에게는 찬사를 얻어냈다.

사악한 무공을 익힌 원흉을 일찌감치 제거했고, 절차를 제대로 밟지 않고 무력을 행사한 제자들에게는 엄벌을 내렸다는 이유로.

그날 악천괴는 마을을 떠났다.

아니, 쫓겨났다는 표현이 더 옳으리라.

마을 사람들은 악천괴를 죄인 취급했다.

형이 나쁜 길로 빠지는 것을 보고만 있었을 것이라는 게 이유였다.

그날 악천괴는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검을 들지 않는 무공을 익혀서 언젠간 그들을 갈기갈기 찢어 죽이겠노라고.

제일 먼저 관주를 찾아가 찢어 죽이고, 그 제자들을 차례로 죽이겠노라고.

진짜 사공이 무엇인지 너희들에게 똑똑하게 알려 주겠노라고.

그렇게 마을을 떠난 악천괴가 다시 그곳을 찾았을 때는 무려 삼십 년이 지난 후였다.

마을 사람들은 누구도 악천괴를 알아보지 못했다.

오래 전 자신을 향해 손가락질을 하던 아저씨는 등이 굽은 할아버지가 되어 있었고, 무서운 얼굴로 자신을 나무라던 청년은 나이 지긋한 중년이 되어 있었다.

사람은 달라져 있었지만, 마을의 모습은 그대로였다.

강산이 세 번 바뀌는 동안 마을은 여전했다.

우물이 있던 자리에는 우물이 있었고, 큰 가장이 있던 자리에는 역시나 화려한 가장이 있었다.

그리고 형이 허드렛일을 하면서 권공을 익혔던 무관도 여전했다.

아니, 무관은 과거보다 훨씬 더 규모가 커져서 마을에서 거의 모든 일에 관여하고 있었다.

그렇게 다시 돌아간 악천괴는 객잔에서 주인장에게 말을 건넸다.

“이곳에서 오래 전에 쫓겨난 아이에 대해 알고 있소? 소문에 의하면 그 아이의 친형이 사공을 익혀서 이곳 무관의 제자들이 그 형을 죽이고 아이를 쫓아냈다고 하던데.”

주인장은 이맛살을 구기고 한참을 생각하는 듯하더니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런 일이 있었던가? 잘 모르겠소. 워낙 오래된 일이니.”

악천괴는 순간 손을 뻗어 돌아가려는 주인장의 손목을 낚아챘다.

“잘 생각해 보시오. 그런 일이 없었는지.”

“거참, 모르겠다니까 왜 그러시오?”

주인장은 거칠게 손을 빼내고는 걸어갔다.

악천괴는 피식 웃었다.

아마 자신이 무인이라는 것을 알았더라면 저런 식으로 나오지 못했으리라.

하지만 조공을 익힌 그는 그때까지만 해도 검을 차지 않았다.

오로지 비수 몇 자루만 보이지 않는 곳에 지니고 있을 뿐이었다.

그러니 일반인인 그가 무인이라는 사실을 깨닫기는 어려웠다.

악천괴는 그 자리에서 일어나 성큼성큼 걸어가는 주인장의 뒤통수를 잡았다.

“음…?”

갑자기 머리가 잡힌 주인장이 이맛살을 잔뜩 구기고 돌아서려고 했지만,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그제야 주인장의 표정에 공포가 스쳤다.

그의 등 뒤에서는 악천괴의 서늘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너는 기억했어야 했다. 왜냐하면 내가 너를 기억하기 때문이다. 너는 나를 경멸하듯이 바라보면서 말했다. 괴물 녀석의 동생은 역시나 괴물이 될 거라고. 당장 이 마을을 떠나라고. 그렇지 않으면 네놈이 가만두지 않겠다고. 그때 그 어린 꼬마는 두려움을 안고 마을을 떠났지.”

“대체 무슨…?”

주인장이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말을 꺼내는 순간,

“기억이 안 나면 뒈지는 수밖에.”

퍼억!

순간 객잔 주인장의 머리가 수박처럼 터져 나갔다.

털썩, 쿠웅!

그가 쓰러지고 나자 숙수가 소란을 듣고 나왔다.

악천괴는 숙수 역시 단숨에 죽여 버렸다.

그리고 객잔에서 나오는 길에 근처에서 심부름을 하고 돌아오던 점소이와 마주쳤다.

점소이는 악천괴의 손이 피로 물든 것을 보고는 그대로 굳어 버렸다.

악천괴는 씨익 웃어 보이고는 그 점소이 역시 죽였다.

그렇게 무관으로 가는 동안 만나는 모든 마을 사람들을 죽였다.

통쾌했다.

한 아이가 울면서 이 마을을 떠났던 삼십 년 전이 불과 어제처럼 느껴졌다.

그럼에도 이 마을 사람들은 누구도 자신을 기억하지 못했다.

다시 이 마을에 나타나면 절대로 가만두지 않겠다던 그들이 허무할 정도로 자신을 기억하지 못했다.

응징해야 마땅할 자들이었다.

그렇게 무관으로 들어가서 자신에게 덤비는 모든 관도들을 귀살조공으로 죽였다.

“나는 너희들이 말한 대로 괴물이 되었다! 하지만 너희들은 뭐지? 한 아이를 괴물로 만들어 버린 너희들의 진정한 정체는 뭐냐고 묻는 거다!”

양손이 피로 물든 악천괴가 하늘을 우러러 쩌렁쩌렁 소리쳤다.

정말이지 안타까운 것은 형의 명예를 더럽힌 무관주가 이미 병들어 죽고 없다는 것이었다.

대신 일제자였던 자가 오 년 전부터 관주의 뒤를 잇고 있었다.

이제자와 삼제자는 사범으로 지내고 있었는데, 역시나 악천괴를 알아보지 못했다.

관주가 된 일제자를 제일 먼저 죽였다.

그리고 광분한 이제자를 단숨에 죽였다.

“어떤가? 여전히 맨손이 검보다 약하다고 생각하나? 난 그날 우리 형처럼 맨손인데.”

마지막으로 남은 삼제자가 덜덜 떨면서 악천괴와 마주섰다.

그는 침을 꿀꺽 삼키고는 주춤주춤 물러났다.

악천괴는 귀신 같은 신법으로 삼제자에게 스르르 다가갔다.

그동안 와신상담하면서 이날만을 기다려 왔다.

쉬이이잇, 탁!

순식간에 이동한 악천괴가 삼제자의 목을 움켜쥐었다.

정말이지 이렇게도 약한 녀석들에게 무공 재능이 넘친다는 형이 어떻게 죽었는지 이해가 되지 않을 정도였다.

“살, 살려 주십시오!”

삼제자가 탁하게 쉬어 버린 목소리로 겨우 말했다.

악천괴가 입매를 비틀며 물었다.

“삼십 년 전의 일이다. 네놈은 이 마을에서 쫓겨난 소년을 기억하는가?”

“삼, 삼십 년이나 된 일을… 어찌….”

“그 아이는 삼십 년 동안 단 한 번도 잊은 적이 없는데 너희들은 어찌 그리 쉽게도 잊었나?”

“도대체 무슨 말을….”

“그럼 질문을 바꾸지. 삼십 년 전, 너희들이 죽인 한 청년을 기억하는가? 이곳에서 허드렛일을 하면서 관주에게 무공을 전수 받았던.”

삼제자가 기억을 더듬는 듯 눈살을 찌푸렸다.

악천괴는 기다려 주었다.

그가 기억해낼 때까지.

삼제자는 최대한 빠르게 복기했다.

그러지 않으면 당장이라도 목이 뜯겨 나가 죽을 것만 같았기에.

마침내 그의 머릿속에 하나의 장면이 떠올랐다.

다 쓰러져 가는 집 앞에서 한 청년을 죽였던 기억이.

그리고 그 청년의 동생으로 생각되는 아이가 오열하던 모습이.

삼제자가 놀란 표정으로 악천괴를 보았다.

“그, 그럼 당, 당신이… 그때 그 동생…!”

악천괴의 눈동자에 이채가 서렸다.

“호오, 기억하는가?”

“아아, 살아 있었군. 살아 있었어. 그날 이후로 난 하루도 잠을 편히 잘 수 없었소. 죄책감 때문이었소. 지금도 그때 철없이 행동했던 것을 떠올리면 후회가 되어서 미칠 지경이오. 한데 당신이 그 동생이었다니. 정말이지 미안하오.”

삼제자는 눈물을 글썽이며 말했다.

그는 진심이었다.

실제로 그는 그날 이후 오랫동안 후회를 하며 지냈다.

세 명의 제자들 중 유일하게 그날의 일을 두고두고 후회한 그였다.

악천괴 역시 그의 표정에서 진심을 읽을 수 있었다.

악천괴가 희미하게 웃었다.

“그나마 다행이군. 그날의 일을 떠올렸으니.”

“미안하오.”

“적어도 너는 왜 죽는지는 알고 가니까 앞의 다른 녀석들보다 행복한 편이 됐군. 이제 편히 자라.”

삼제자가 뭐라고 입을 열려는 순간, 악천괴는 손아귀에 힘을 주었다.

부우우욱!

툭, 데굴데굴…!

목이 아무렇게나 찢겨 나가자 삼제자의 목이 몸에서 떨어진 채 바닥을 굴렀다.

츄아아아아!

피가 분수처럼 솟구치면서 삼제자의 몸이 쓰러졌다.

악천괴는 그 피를 다 뒤집어 쓴 채 마을을 배회했다.

그리고 만나는 모든 자들을 죽이고 또 죽였다.

그날 이 마을에서 자신을 위로해 준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기에.

이 마을의 그 누구도 살려 줄 생각이 없었다.

부아아아악!

상념에서 깨어난 악천괴가 눈앞의 괴물을 다시 찢어발겼다.

상하반신이 나눠진 괴물이 바닥에 나뒹굴기 시작했다.

이제 어지간히 늪을 빠져나온 괴물들을 처리했다.

이따금씩 늪 위로 솟구쳐 오르듯 튀어 나오던 무인들도 이제는 완전히 그 아래에 잠긴 채 잠잠했다.

고개를 돌려 보니 구윤이 비령의 호위를 받으며 꾸준히 비탈길을 오르고 있었다.

이제 절반 정도 올랐다.

언덕 위에는 신수처럼 보이는 손바닥이 있지만, 무랑의 부적이 있으니 어쩌면 무사히 통과할 수도 있을 터였다.

“막주님! 가야 합니다!”

어느새 곁으로 달려온 일살이 소리쳤다.

하지만 악천괴의 시선은 다시 단상 위로 향했다.

단상 위에서 굳은 것처럼 움직이지 않던 맹주가 천천히 손을 내리더니 분지를 훑어보았다.

검은 늪으로 잠식당한 분지.

한때의 아름다운 풍광은 이제 눈씻고도 찾아볼 수 없었다.

다음 순간,

우우우우우우우웅…!

묘한 기의 파장이 일어나는가 싶더니 능운파의 신형이 천천히 허공으로 떠오르는 것이 아닌가?

마치 보이지 않는 힘이 그를 허공으로 띄워 올리는 것만 같았다.

구오오오오…!

분지의 허공 정중앙에 떠오른 능운파가 일순간 몸을 활짝 펼쳤다.

그대로 그의 등이 활처럼 휘어지면서 꺾여 버리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

악천괴를 재촉하던 일살 역시 그 기이한 광경에 넋을 놓고 있었다.

다음 순간, 능운파가 몸을 바짝 웅크리더니 몸을 부르르 떨기 시작했다.

곧이어,

꾸물럭, 꾸물럭…!

검은 늪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파문이 일어난 것처럼 잔잔한 파동을 일으키다가 이윽고 파도처럼 결이 일어났다.

그러더니 점점 늪 한 가운데가 회오리치듯 솟구쳐 올라왔다.

쥬쥬쥬쥬주우우…!

검은 늪 복판이 기둥처럼 꾸물꾸물 올라오면서 허공에 뜬 능운파까지 다다랐다.

그야말로 괴이한 광경이었다.

늪의 물질이 능운파를 휘감기 시작했다.

바닥을 가득 채웠던 검은 늪은 어느새 완전히 허공으로 솟구쳐 올라서 능운파를 커다란 구체에 가둬 버렸다.

그리고 늪이었던 바닥에는 여기저기에 크고 검은 바위가 잔뜩 놓여 있었다.

마치 알처럼 보였다.

그 검은 덩어리들 속에는 무인들이 갇혀 있을 터였다.

마침내,

구구구구구구구구구….!

능운파를 집어 삼킨 허공의 검은 구체가 엄청난 기파를 일으키면서 진동하기 시작했다.

정신없이 비탈길을 오르던 구윤과 비령도 강렬한 공명에 주춤거리고는 뒤를 돌아보았다.

다음 순간,

퍼콰아아아아앙!

알처럼 단단하게 뭉쳐 있던 검은 구체가 완전히 깨져 나가면서 그 속에서 한 존재가 모습을 드러냈다.

전신이 온통 검게 물든 능운파.

아니, 그를 더 이상 능운파라고 부르기에는 어딘지 이상했다.

성성했던 수염은 온데간데없어졌고, 깔끔하고 단정하면서도 냉혹한 얼굴, 그리고 이마에서 길게 자라난 두 개의 뿔은 등 쪽으로 휘어져 있었다.

그리고 그의 어께에는 박쥐를 닮은 검은 날개가 돋아나 있었다.

검게 물든 신체는 탄탄한 근육질을 자랑했다.

인간을 초월한 새로운 존재의 탄생.

“맙소사….”

일살이 멍하니 중얼거렸다.

악천괴가 물었다.

“너는 저것이 무엇으로 보이느냐?”

“괴…물… 아닙니까?”

“그렇지. 괴물이지. 시답잖은 정파 나부랭이 놈들. 결국 저놈들이 가진 모습이지! 저것이 이놈들의 본능이라는 거다! 그리고 난 괴물을 사냥하는 괴물이다!”

팟!

순간 악천괴가 바닥을 차고는 능운파를 향해 날아갔다.

“엇! 막주님!”

일살이 소리쳤으나, 이미 악천괴는 오래 전 그날과 비슷한 분노를 품은 채 능운파에게 살기를 쏘아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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