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환 마교관-547화 (547/670)

# 547

귀환 마교관

547화

멸마궁으로 돌아온 매설란은 천멸대와 신생조를 다시 불러들였다.

마나에 대해서 가장 잘 이해하고 있는 그들이 섬서에만 묶여 있으면 비효율적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비교적 중원의 중앙에 위치한 멸마궁에 머물러야 어디로든 곧바로 파견할 수 있을 터였다.

대신 사천회는 섬서에 계속 머물게 했고, 새로 합류한 양비웅이 이끄는 흑수단(黑手團)과 만약상 노파가 이끄는 만적단(滿積團)을 섬서에 머물도록 했다.

그렇게 신생조를 이끌고 멸마궁으로 귀환한 맹가숙은 곧장 옹기승부터 찾았다.

옹기승은 무랑과 진백이 지극정성으로 돌본 덕분에 거의 완전한 몸 상태로 돌아와 있었다.

맹가숙은 신생각 후원에서 운기행공을 하는 옹기승을 보자마자 버럭 소리 질렀다.

“이놈아! 이젠 어르신이 와도 본 체 만 체 하는 거냐?”

“죽어 간다는 소리를 듣고 달려왔는데, 멀쩡하군.”

맹가숙에 이어 석탄강이 무뚝뚝하게 말을 뱉었다.

그제야 옹기승이 눈을 가늘게 뜨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가 돌아보니 연신 싱글벙글 미소를 짓는 신생조원들이 보였다.

그들 모두 겉으로 표현하진 않았지만 지금 이 순간이 마냥 감격스러웠다.

그도 그럴 것이 틀림없이 죽었다고 생각한 옹기승이 이렇게 멀쩡히 돌아왔으니 어찌 반갑지 않으랴.

마치 멸마관에서 죽어 갔던 동료들이 옹기승 만큼은 다시 살려서 돌려보내 준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유송령이 눅눅하게 젖은 목소리로 말했다.

“다행이야. 살아있어서.”

“오랜만인데 인사는 안 해? 설마 또 졸고 있는 건 아니지?”

설서린의 말에 다른 조원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옹기승이 빙그레 웃으며 답했다.

“다들 오랜만이야.”

그 한마디가 신생조원들의 마음을 울렸다.

사실 따지고 보면 그리 오랜만도 아니었다.

일 년도 지나지 않았으니까.

다만 옹기승이 죽었다고 생각했다가 다시 만나게 되니, 그간의 시간이 유난히 길게 느껴진 것이다.

마침 천멸대도 후원에 나타났다.

“집으로 돌아온 걸 환영한다.”

연우경이 먼저 말을 건넸고, 다른 이들도 한 마디씩 인사를 건넸다.

어찌 보면 무미건조한 말투였지만, 그들의 목소리에 진심이 묻어 있다는 것을 분명히 알 수 있었다.

대략적인 인사가 끝나자, 유송령이 옹기승에게 다가가며 물었다.

“몸은 좀 어때?”

“아주 가뿐해. 무랑전주님과 초환당주님이 애써 주셨지.”

“그러고 보니 이젠 별로 졸지 않네?”

“마령혼을 어느 정도 다스리게 되고 나서부터는 졸지 않게 되더라고.”

맹가숙이 혀를 차며 끼어들었다.

“그동안 대체 어디에 있었던 게야? 조금만 더 일찍 나타났으면 좀 좋아? 아니, 살아 있다는 사실만 알았어도.”

“왜?”

“네놈이 없는 동안 궁주님이 만약상을 터셨다. 아니, 만약상이 이제 우리 편이 됐으니 털었다는 말도 이상하네. 아무튼 우린 그동안 만약상이 가진 온갖 영약을 장기간 복용했단 말이지.”

맹가숙이 진심으로 안타깝다는 듯 말했다.

실제로 만약상이 보유한 영약은 어마어마한 양이었다.

사비강은 그 영약들을 강호인들에게 고루 나눠 주었는데, 특별히 천멸대와 신생조에게 신경을 썼다.

당연한 일이었다.

천멸대와 신생조는 앞으로도 그가 가장 가까이에 두고 부릴 조직이었으니까.

해서 천멸대와 신생조는 최근까지도 그 영약들을 복용법에 따라 섭취했던 것이다.

맹가숙의 말에 석탄강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 덕에 우리 공력이 크게 늘었다. 섬서에 머무는 동안 몇 군데의 소환지를 공략했는데, 확실히 예전보다 수월하더군.”

곡보옥도 거들었다.

“암! 확실히 괜히 비싼 영약이 아니더군. 만약 네가 살아 있는 줄 알았더라면 만년설삼 한 뿌리 정도는 우리가 남겨 뒀을 텐데. 참 아쉽네.”

“그러게 말이야. 내가 먹은 천년설삼이라도 남겨 줄 걸.”

조문탁의 말에 옹기승이 빙그레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괜찮아. 너희들이 먹었으면 됐지, 뭐.”

“아냐. 네가 정말 그 영약의 효험을 몰라서 그래. 하루아침에 강해지는 그 기분을 느껴 봐야 아는 건데.”

방각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말하자, 다른 이들도 안타까운 목소리로 말을 이어 갔다.

“맞아. 네가 살아 있는 줄 알았더라면 공청석유 한 방울이라도 남겨 놨을 거야.”

“그러게. 나도 천년설삼을 반 뿌리만 먹고 네 몫을 남겨 놨을 텐데.”

“나 역시 대환단을 너에게 양보했을 거야. 아쉽게도 이젠 다 먹어서 없지만.”

“나도 네가 살아 있는 줄 알았더라면 천보기단(天寶氣團)을 남겨 뒀을 거야. 하지만 다 먹어 버린 게 너무 아쉽네.”

“정말이지 영지환(靈芝丸)을 열 알만 남겨 뒀어도. 스무 알을 나 혼자 다 먹었지, 뭐야?”

“말도 마. 난 만천화령단(滿天火靈丹)을 며칠씩이나 복용했는지 몰라. 그런데 이렇게 기승이 살아 있을 줄 알았다면 조금이라도 남겨 뒀을 텐데. 남김없이 다 먹어 버린 게 너무 아쉽다.”

“그러게. 옹기승이 살아 있는 줄만 알았더라면….”

그때였다.

그늘진 얼굴로 웃음을 짓던 옹기승의 뒤로 막강한 기운이 거대한 형체를 만들어 내면서 나타나는 것이 아닌가?

마령혼이었다.

갑자기 나타난 마령혼을 보면서 천멸대원과 신생조원들이 그제야 입을 다물었다.

마령혼이 목을 우두둑 꺾는 시늉을 하더니 나직한 목소리를 울렸다.

- 그래… 맛있더냐?

**

타란트가 미간을 좁혔다.

“어떻게 된 건가?”

“죄송합니다, 설마 헬무트가 배신을 할 줄은….”

“조짐이 보였을 텐데.”

“제 불찰입니다.”

자콕 백작이 식은땀을 뻘뻘 흘리며 고개를 숙였다.

헬무트의 배신은 누구보다도 그가 눈치 챘어야 했다.

그를 가호하는 악신이 바로 예지와 변화의 악신이기 때문이다.

물론, 예지의 악신이 언제나 명확한 신탁을 던져 주는 것은 아니다.

때론 비교적 명확한 정보를, 때론 모호하고 애매한 정보를 던져 준다.

한데 이번에는 비교적 명확한 신탁을 받았다.

그가 받은 신탁을 그대로 풀이하자면, ‘등을 돌린 마족이 반격을 해온다.’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 상대가 바로 ‘바리탄’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다만 바리탄에 대해서는 이미 신탁을 받은 바가 있었다.

그때는 예지몽으로 받았다.

당시 꿈속에서 마왕 타란트는 검을 거꾸로 쥐고 있었다.

그 검은 바리탄이 사용하던 것이었다.

결국 바리탄이 반역을 계속해서 꿈꾸고 있다는 것을 신탁으로 받은 것이다.

그런데 이번에도 비슷한 신탁이 내려와서 당연히 바리탄에 대한 내용인 줄 알았다.

한데 그게 헬무트를 뜻하는 것일 줄이야…!

헬무트는 누구보다도 충성스러운 자였다.

인간 출신이라는 열등감 때문에 더욱 마왕에게 충성하는 자였다.

순수 혈통인 마족보다도 더 마족다웠던 자.

한데 그런 헬무트가 배신을 했다.

게다가 그의 전투 능력은 매우 우수하다.

여러모로 타격이 심하다.

타란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대신 그는 생각에 잠긴 눈빛으로 허공을 가만히 응시할 뿐이었다.

이윽고 그의 무거운 입이 열렸다.

“사비강에 대한 신탁은 어떤 내용이라고 했지?”

“‘시간을 거스른 자가 검을 취한다.’는 것이었습니다.”

“흐음. 시간을 거슬렀다… 혹시 고대의 주술 중에 그런 것이 있던가?”

그러자 이번에는 한쪽에서 가만히 듣고만 있던 아들러가 한 걸음 나서며 답했다.

“있긴 합니다. 하지만 그 뜻이 매우 심오하여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내용은 아닙니다.”

“하나 신탁이 내려왔다. 적어도 ‘사비강’이라는 자가 회귀자일 가능성은 매우 높겠지. 인간은 하등한 생물이지만, 때론 놀라울 정도로 이변을 일으키곤 하지.”

타란트의 말에 누구도 반박하지 못했다.

이미 그들은 사비강 때문에 적지 않게 놀라고 있었으니까.

자콕 백작이 무릎을 꿇으며 소리쳤다.

“폐하, 신에게 기회를 주신다면 배신자 헬무트를 처단하고 사비강이라는 놈의 목도 베어 오겠습니다.”

“흐음.”

하지만 타란트는 즉답을 하지 않았다.

그는 여전히 생각에 잠긴 표정으로 눈을 가늘게 떴다.

한참 후에야 그가 입을 열었다.

“아직 때가 아닌 듯하다. 헬무트도 사비강이라는 인간에게 당했다. 전투력 하나 만큼은 뛰어난 그였음에도. 우선 애초의 계획대로 차근차근 진행하도록 하지. 아들러.”

“예, 폐하.”

“맹주 쪽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가?”

“곧 결과가 나올 것입니다.”

“잘 됐군. 하나를 빼앗겼으면… 이쪽에서도 하나 이상을 빼앗아 와야지.”

“철저히 준비해서 차질 없도록 진행하겠습니다.”

타란트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야지. 더 이상의 차질이 생겨서는 안 될 거다.”

“명심하겠습니다, 폐하.”

아들러 백작이 허리를 깊이 숙였다.

**

끝없이 펼쳐진 막사.

능운파는 추마회를 토벌하기 위해 무인들을 대규모로 소집했는데, 지원자들을 모두 끌어 모은 결과 장장 오 만 명에 달했다.

그래도 아직까지는 강호에서 정도맹주의 힘이 통한다는 증거였다.

다만, 추마회 역시 최근 들어 급격히 세가 불어나면서 그 수가 오만여 명에 달했다.

머릿수만 본다면 그야말로 박빙.

어쨌거나 능운파는 오만 명의 무인들을 이끌고 출정했다.

그리고 지금, 구윤은 초조한 심정으로 진영 입구에서 능운파를 기다리고 있었다.

“전쟁을 벌이기 전에 마지막으로 모사성을 설득하고 싶네.”

능운파의 말이었다.

마족이 코앞에서 시퍼렇게 날을 벼르고 있는 상황인데, 같은 강호인끼리 칼을 겨누는 것을 용납할 수 없다는 이유였다.

그 높은 뜻은 충분히 존중할 만한 것이었지만, 너무 위험하다는 게 문제였다.

더구나 능운파는 혈혈단신으로 찾아가겠다고 했다.

구윤은 끝까지 반대했다.

하지만 능운파도 고집을 꺾지 않았다.

무릇 상대를 포용하려면 이쪽에서 빈손을 보여야 하는 법이라며.

결국 능운파는 창신단주 이자준만 데려가겠다고 했다.

그렇게 능운파가 추마회주를 만나기 위해 나선지가 벌써 여섯 시진이 지났다.

새벽 같이 나가서, 이젠 날이 저물고 있으니 그야말로 하루가 꼬박 흘러간 셈이다.

그럼에도 아직 능운파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맹주님… 무사하신 겁니까?’

초조함이 밀려들 때마다 구윤은 마음을 다잡았다.

지금껏 능운파를 보필하면서 많은 어려움이 있었지만, 그는 진정으로 강한 사람이었다.

추마회주 모사성 역시 강한 자지만 능운파에게 비할 바는 못 됐다.

다만…

‘말로 통할 자들이어야 할 텐데.’

이미 심상을 깊이 입은 추마회주가 얼마나 호의적으로 나올까?

마족을 추종한다는 그들이 과연 능운파의 몇 마디 말로 설득이 될 수 있을까?

만약 거절의 뜻을 나타냈다면, 지금쯤 추마회 쪽에서는 사달이 나고도 남았으리라.

어쩌면 지금쯤 능운파와 이자준이 생존을 걸고 싸우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런 생각이 들 때마다 병력을 움직여 추마회로 가봐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불쑥불쑥 치밀었다.

그리고 또 한 번 그런 생각이 들려는 찰나,

“군사님! 맹주님이 오고 계십니다!”

망루에서 천리경을 들어 살피던 수하 하나가 소리쳤다.

‘아, 무사하셨구나! 천만 다행이다!’

구윤의 표정이 대번에 밝아졌다.

과연 능운파와 이자준은 멀쩡한 모습으로 정도맹 진영에 도착했다.

구윤이 한달음에 달려가 능운파를 맞이하면서 물었다.

“어찌 되었습니까?”

“일이 잘 풀렸네.”

“하면…?”

“내일 정오에 추마회주와 대운산(大雲山)에서 모든 병력을 이끌고 집결하기로 했네.”

“전 병력을 이끌고 말입니까?”

“그렇네. 모든 병력을 한 자리에 모으고 내가 직접 연설을 할 생각이네.”

갑작스런 진전에 구윤이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자 곁에 있던 이자준이 말을 거들었다.

“맹주님께서 모사성과 직접 손을 섞으셨습니다. 그 과정에서 모사성에게 기를 불어넣어 그의 심상을 치유하셨지요. 그 덕에 겨우 설득이 될 수 있었습니다.”

“그런 일이… 하마터면 위험할 뻔하지 않았습니까?”

“아닙니다. 오히려 그들은 맹주님의 신위에 감탄했습니다. 그들은 단지 마족에 대한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었던 것이지요.”

이자준의 말에 능운파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이 단주의 말이 맞네. 그들은 그저 살 궁리를 했을 뿐이지. 다만 그게 옳지 않은 길이었을 뿐. 하지만 이제 바른 길을 알게 되었으니, 내일 우리는 대동단결하여 마족에 맞서 싸울 결의를 다지게 될 걸세.”

구윤이 진심으로 감탄한 듯 말했다.

“정말 대단하십니다. 큰일을 해내셨군요.”

“그럼 차질 없이 준비하게나.”

“알겠습니다!”

구윤이 힘차게 대답했다.

하지만 그는 보지 못했다.

돌아선 맹주의 얼굴에 서늘한 미소가 번져 가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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