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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 마교관-538화 (538/670)

# 538

귀환 마교관

538화

하운트와 두란이 주위를 두리번거리면서 촉각을 곤두세웠다.

다른 마족들 역시 경계 태세를 갖추고는 사방을 두리번거렸다.

하지만 어딘지 특정할 수 없는 목소리는 약이라도 올리듯 계속해서 이어졌다.

[그렇잖아도 이쪽에서 먼저 찾아갈까 생각했는데, 수고를 덜었군.]

하운트가 발끈해서 소리쳤다.

“이익! 어디냐? 당장 모습을 보이지 못할까?”

[원한다면야.]

다음 순간 바람 한 줄기가 부는가 싶더니,

픽, 픽, 픽…!

두리번거리며 서 있던 마족들이 하나 둘 쓰러져 나가는 것이 아닌가?

하운트가 눈에 불을 켜고 이를 갈았다.

“이 건방진 인간이…!”

찰나,

“뭐가 그리 두렵나? 하찮은 벌레만도 못한 인간인데.”

“……!”

하운트가 두 눈을 부릅떴다.

어느새 사비강이 자신의 코앞에 나타난 게 아닌가?

“노옴!”

하운트가 일갈을 터뜨리며 그대로 검을 내질러 왔다.

하지만 사비강이 한 박자 더 빨랐다.

쑤아아아앙!

그의 검에서 검강이 솟구쳐 올라왔다.

따앙!

검과 검이 부딪치면서 하운트가 뒤로 주르륵 밀려났다.

그의 눈동자가 커졌다.

‘어째서 이런 인간 따위가…!’

하지만 그는 미처 알지 못했다.

인간은 결국 환경에 적응하는 동물이라는 것을.

마계와 마족을 모를 때의 인간과 이미 마계에서 숨을 쉬며 살고 있을 때의 인간은 질적으로 다르다.

특히 사비강처럼 중원에서 내로라하는 모든 무공을 두루 섭렵한 경우라면 더욱 그럴 수밖에.

갑자기 사비강이 나타나자, 거의 포기 직전까지 이르렀던 헬무트 역시 마지막 힘까지 쥐어짜며 칼부림을 시작했다.

“이놈들을 어서 죽여!”

“방심하지 마라!”

하운트와 두란이 소리치며 헬무트와 사비강에게 달려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사비강은 그들의 생각보다 훨씬 강했다.

쑤아아아아앙!

거대한 줄기처럼 솟아오른 검강이 숲을 한 차례 휘젓자, 나무기둥과 함께 마족들의 상하반신이 갈라지며 속수무책으로 쓰러져 나갔다.

하운트와 두란은 두 눈으로 보고도 믿을 수가 없었다.

중원인이 원래 이렇게나 강했던가?

아니다.

그렇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의 사비강은 자신이 만난 그 어떤 인간보다 강했다.

마왕의 총애를 받고 나서, 각종 혜택을 누리더니 도대체 그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놀라기는 헬무트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는 그야말로 젖 먹던 힘까지 짜내어 대항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미 부상이 깊은 데다 출혈이 심해서 의식이 가물가물 흐려지고 있었다.

그런 와중에도 사비강의 무위는 정말이지 대단해 보였다.

‘저게… 인간인가?’

다시 또 짜증이 일어났다.

인간으로서 저 정도의 경지에 오른 사비강.

그리고 자신을 섬기던 숱한 인간들을 팔아서 지금의 경지에 오른 자신.

대체 무엇이 다르고, 무엇이 같은가?

머릿속이 혼란스러워졌다.

그리고 손발이 어지러워진다 싶을 때,

퍼억!

누군가 그의 뒤통수를 쇠망치로 내려쳤다.

뒤통수에서 뜨끈한 피가 배어 나오는 것을 느끼면서 헬무트는 그렇게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

차가운 바닥에 엎드리자마자, 또 다른 시체가 그의 얼굴 옆에 털썩 쓰러졌다.

아무래도 자신의 뒤통수를 가격했던 그 마족인 듯했다.

그 와중에도 사비강은 적들 사이를 종횡무진하며 화려한 검술을 보이고 있었다.

**

헬무트가 다시 눈을 떴을 때는 사비강이 곁에 앉아서 고기를 뜯고 있었다.

“끄윽…!”

신음을 흘리면서 겨우 상체를 일으켜 보니 주위에 시체들이 즐비했다.

마침 사비강이 손에 든 것을 휙 던졌다.

툭!

야쿤 고기였다.

어제와 달리 불에 바싹 익힌 것이었다.

“네가 좋아하는 익힌 고기다. 먹어라.”

헬무트가 사방에 널린 시체를 보며 중얼거리듯 물었다.

“이건… 다 네가 해치운 것이냐?”

사비강은 말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그리고 턱짓으로 한쪽을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네 몫은 남겨 뒀다.”

헬무트가 시선을 옮겨 보니 하운트가 무릎을 꿇은 채 눈을 부라리고 있었다.

뭘 어떻게 한 것인지 하운트는 꼼짝도 하지 못한 채 사비강과 헬무트를 노려보기만 했다.

아마도 중원에서 사용하던 점혈에 당한 모양이었다.

하지만 마족은 점혈이 통하지 않을 텐데 어떻게…?

헬무트의 의문을 풀어 주겠다는 듯 사비강이 주절주절 말을 이어 갔다.

“마족은 인간과 기의 흐름이 조금 다르더군. 아무래도 마나를 이용하기 때문이겠지. 하지만 마계에서 오랜 세월을 지내다 보니 마족들의 혈맥도 대략 파악이 되더군.”

헬무트는 해쓱한 표정으로 사비강을 보았다.

‘이 녀석… 언제 이렇게 괴물이 된 거지?’

얼떨떨한 표정으로 시선을 돌려보니 하운트 곁에는 두란이 가슴에 자상을 입고 쓰러져 있었다.

상처의 깊이와 출혈 양을 보아서는 즉사한 게 틀림없었다.

헬무트가 비척거리며 일어나서는 하운트에게 다가갔다.

하운트는 뭔가 할 말이라도 있는 듯 헬무트를 사나운 눈동자로 쏘아보았다.

“입을 열게 할 수 있나?”

사비강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손가락을 튕겨 지풍 몇 줄기를 날렸다.

퍽, 퍽, 퍽!

몇 차례 몸을 움찔거린 하운트가 숨을 토해내듯 소리쳤다.

“이런다고 해서 네놈들 처지가 달라질 것 같으냐? 이곳 마계에서 너희 같은 미천한 출신이 발 뻗고 잠이라도 잘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느냐! 어차피 지금 살아서 돌아간다고 해도 너희들은 끊임없이 마족들의 견제를 받게 될 거다.”

헬무트가 눈을 가늘게 뜨고는 하운트를 보다가 입을 열었다.

“반역자인 주제에 잘도 떠드는군.”

헬무트가 검을 치켜들자, 하운트가 다시 소리쳤다.

“잠깐! 헬무트, 다시 생각해라. 지금이라면 늦지 않았다.”

“뭐가 말이냐?”

“어차피 붉은 늑대를 이끌던 두란은 죽었다. 만약 네가 이대로 눈감아 준다면 앞으로 평생 내가 네 뒤를 봐주겠다. 너는 나의 약점을 잡은 셈이지. 어떤가?”

하운트가 절박한 눈동자로 헬무트를 올려다보았다.

동시에 그는 곁눈질로 은밀히 사비강을 가리켰다.

지금이라도 자신과 함께 사비강을 처리하고 흑성으로 복귀하자는 뜻이었다.

그렇게만 하면 헬무트는 큰 공을 세우게 될 테고, 자신은 약점이 잡혔으니 헬무트를 위해서 무엇이든 할 것이라는.

짧은 순간 많은 의미를 담은 눈빛이 그렇게 전해졌다.

“정말이지… 혐오스럽군.”

헬무트의 눈동자에 경멸감이 스쳐 지나갔다.

인간이나 마족이나.

하나 같이 왜 다 이 모양인가?

한때나마 자신이 우러러보던 마족의 민낯이 겨우 이 정도였단 말인가?

“비겁하다 못해 비열하구나. 차라리 악랄하기만 하지 그랬나?”

“그게 무슨…?”

하운트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올려다보자, 헬무트가 입술을 콱 씹고는 검을 치켜들었다.

“더 이상은 말을 섞고 싶지 않다. 냄새나는 마족.”

“안, 안 돼! 잠까아아아…!”

서컥!

하운트의 목소리는 더 이상 이어지지 않았다.

마치 헬무트가 검을 내리쳐서 세상의 소리를 끊어낸 것처럼 주위는 갑자기 적막에 휩싸였다.

츄아아아아!

이윽고 피를 분수처럼 터뜨린 하운트의 상체가 쿵 소리를 내며 넘어갔다.

헬무트가 무감한 표정으로 하운트의 시신을 보았다.

그가 발치에 구르는 하운트의 머리를 걷어찼다.

퍽!

저만치 날아간 하운트의 머리가 아무렇게나 굴러가다가 개울가에 첨벙 떨어졌다.

그의 피가 개울물에 번져 나갔다.

그는 생전에 알았을까?

자신이 저토록 비참한 죽음을 맞이하게 될 줄.

인간을 벌레 취급하면서 온갖 잘난 척은 다했으면서, 결국 그 역시 죽어버리면 한낱 미물만도 못하다는 것을 알았을까?

저벅저벅…

발걸음 소리에 고개를 들어보니 어느새 사비강이 자리에서 일어나 개울가로 걸어가고 있었다.

그는 물가에 빠진 하운트의 머리를 주워들더니 커다란 보자기로 감싸며 중얼거렸다.

“이렇게 씻어 놓을 것까지는 없었는데.”

“뭐하는 거지?”

헬무트가 미간을 잔뜩 좁히고 묻자, 사비강은 시체 한 구의 망토를 뜯어내며 대꾸했다.

“가져가야 할 것 아닌가? 이 둘의 머리를. 하나는 반역 잔당의 우두머리. 그리고 또 하나는 그 잔당과 손을 잡은 배신자. 증거라도 내밀어야 우리말을 믿어 줄 테지.”

담담하게 대꾸하는 사비강을 보면서 하운트는 기가 찼다.

이 와중에도 저런 생각을 할 수 있다는 게 신기했다.

“분하지도 않은가?”

“뭐가? 하운트가 배신자여서? 아니면 인간을 무시해서? 그도 아니면 마계라는 곳까지 납치되어서 이러고 있는 내 신세가?”

“전부 다.”

사비강이 어깨를 으쓱이고는 망토에 두란의 머리를 감쌌다.

“별로. 이미 지나간 일에 얽매여 봐야 앞으로 나아가질 못할 뿐이지. 그러고 보면 너희 마족들은 가끔 멍청할 때가 있군.”

“뭣이?”

“감정이라곤 마른 논바닥처럼 메말라 있으면서 어째서 분노만큼은 그렇게 잘 느끼는 거지?”

“그야… 분노는 모든 힘의 원천이 되기 때문이지!”

헬무트가 주먹을 콱 말아 쥐며 말했다.

사비강이 수급을 싸맨 꾸러미를 들고 일어섰다.

“그런가? 힘의 원천이라… 하지만 인간은 다르다.”

“뭐가 다르다는 거지?”

“인간의 힘은 분노에서 나오는 게 아냐.”

“……?”

“인간은 태생이 약하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에서 그 강함이 우러나온다.”

“약하다는 걸 인정하면 강해진다?”

“그래, 약해빠진 인간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더욱 많은 생각을 해야 하거든. 태어나자마자 마력으로 보호되는 마족과도 다르고, 태어나자마자 바로 일어서서 걸을 수 있는 짐승과도 다르지. 약하고 약한 인간이 강해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바로, 사고하는 것이다. 분노하기 전에, 절망하기 전에, 포기하기 전에. 한 번 더 사고하는 것.”

“사고하는 것이라니….”

“하긴. 아무 생각 없이 왕국과 백성을 덥석 팔아넘긴 너에겐 어려운 이야기였나?”

순간 헬무트가 발끈해서 소리쳤다.

“네놈 따위가 뭘 안다고 함부로 지껄이는 거냐! 믿었던 자에게 부모님이 살해당하고, 목숨까지 위협받는 그 심정을 네놈이 알기나 하는가! 그때의 분노와 절망을…!”

“그래서?”

“뭐…?”

“그래서 분노와 절망에 몸을 맡긴 넌, 악마와 뭐가 다르지?”

“……!”

“휘몰아치는 감정에 모든 걸 내걸었던 너는. 그 순간 이미 인간이 아니었던 거야. 어쩌면 거의 모든 인간이 제멋대로 춤추는 감정을 다스리지 못하는 순간, 반쯤은 악마가 되는 건지도 모르지.”

헬무트는 뒤통수를 쇠망치로 얻어맞은 것처럼 두 눈을 크게 떴다.

그러고 보니 자신은 언제부터 마족이었던가?

타란트가 제물을 받아들인 순간부터?

아니면 정말로 사비강의 말대로 그에게 모든 걸 바치겠다고 소리치는 순간부터?

말을 마친 사비강이 꾸러미 하나를 휙 집어 던졌다.

얼떨결에 그것을 받아든 헬무트가 뭐냐는 듯 바라보자,

“하나는 네 몫이잖아. 나는 두란을 처리했고, 너는….”

사비강의 시선이 바닥에 쓰러져 있는 하운트의 사체로 향했다.

“이 정도는 가져가야 위에서도 우리말을 믿을 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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