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환 마교관-530화 (530/670)

# 530

귀환 마교관

530화

몇 걸음 걸어가던 사비강은 다시 우뚝 멈추더니 거지에게 돌아왔다.

거지가 흠칫거리고 저도 모르게 주춤 물러났다.

“일성검문이 어디에 있는지 아시오?”

거지가 다시 한 번 고개를 끄덕이고 손가락을 들어 한 방향을 가리켰다.

다음 순간,

팟!

사비강의 신형이 눈앞에서 사라지는가 싶더니 창공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주위를 한 번 빙 둘러보더니 사뿐한 몸놀림으로 바닥에 내려섰다.

여전히 넋을 놓고 바라보는 거지에게 사비강이 툭 던지듯 말했다.

“틀렸잖아.”

“예, 예?”

“저쪽이 아니라 이쪽이오.”

사비강이 조금 다른 방향을 가리키자, 거지가 그 자리에서 넙죽 엎드리며 머리를 조아렸다.

“살, 살려 주십시오! 제, 제가 워낙 길치다 보니…! 일, 일부러 속일 생각은 없었습니다요! 부디 자비를….”

거지가 두 눈을 질끈 감았다.

그렇게 얼마나 엎드린 채로 온몸을 떨었을까?

그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을 때, 사비강은 이미 그 자리에서 보이지 않았다.

가까스로 안도의 숨을 내쉰 거지가 투덜거렸다.

“니미럴… 어차피 확인해 볼 걸 왜 물어본담?”

**

단리추는 흔들리는 눈동자로 주변을 훑어보았다.

“끄으으…! 문주님… 달아나십시오…!”

“저놈은… 괴물… 큭…!”

“위험… 합니다… 부디…!”

중상을 입은 수하들이 사력을 다해 목소리를 쥐어짜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힘겹게 말을 꺼내던 수하는 결국 눈을 부릅뜬 채 온몸이 축 늘어지고 말았다.

단리추는 그에게 다가가 눈을 감겨주었다.

“못난 주인 지키느라 고생… 많았다.”

그의 두 눈이 눅눅하게 젖어들었다.

단리추는 천천히 일어나서 헬무트를 보았다.

과연 상대는 무서운 실력을 지니고 있었다.

그가 살기를 보이자, 곳곳에 숨어 있던 호신위들이 일제히 날아들며 그를 한꺼번에 덮쳤다.

뿐만 아니라, 인근에서 대기하고 있던 은영대(隱影隊)가 일제히 헬무트를 노리며 달려들었다.

하지만 결과는 처참했다.

헬무트는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검을 휘둘렀고, 무인들은 불나방처럼 그렇게 쓰러져 갔다.

그야말로 눈 깜빡할 사이에 벌어진 일.

단리추는 천천히 옆으로 걸음을 옮기면서 검의 손잡이를 꽉 움켜쥐었다.

‘좀처럼 빈틈이 보이지 않는군.’

유성검법은 한순간의 빈틈을 찾아 쾌속으로 공격해야 한다.

한데 상대에게서는 어떠한 빈틈도 보이지 않는다.

이런 경우는 처음이었다.

모든 생명체는 빈틈이 있기 마련이다.

다만 그 빈틈을 공략하기에는 이쪽의 역량이 모자라기에 실패할 뿐이다.

그런데…

‘빈틈 자체가 보이지 않는 놈은 정말이지 처음인 것 같군. 아니, 본 적이 있던가?’

어쨌거나 단리추는 내심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그냥 서서 걸음을 옆으로 옮기는 것이 전부인데 아예 빈틈이라고는 찾을 수가 없다.

언젠가 이런 경험을 한 적이 있긴 한 것 같은데….

‘언제였더라?’

잠깐 기억을 더듬는데,

탓!

헬무트가 바닥을 차면서 곧장 단리추를 향해 짓쳐들었다.

“헛!”

단리추가 헛바람을 삼키면서 재빨리 발검을 일으켰다.

차아아아아앙!

따앙!

두 자루의 검이 부딪치면서 서로 물러났다.

단리추는 그 찰나지간을 놓치지 않았다.

언제나 가장 좋은 빈틈은 적의 공격이 끝난 그 시점이기에!

철컥, 타닷!

검을 갈무리하는 것과 동시에 바닥을 차며 앞으로 달려 나갔다.

그리고 발검!

차아아아앙!

쒸이이이이익!

짙푸른 섬광이 그대로 헬무트의 목을 향해 뻗어 나갔다.

그야말로 유성처럼 빠르고 강한 움직임이었다.

하지만 헬무트는 희미한 미소마저 머금으며 몸을 슬쩍 비틀었다.

슈우우욱!

단리추의 검은 크게 빗나갔다.

‘이렇게 큰 차이로…?’

단리추가 두 눈을 크게 뜨는 순간,

슈우우우욱, 꽈앙!

헬무트의 주먹이 단리추의 어깨를 강하게 때렸다.

“크아아아아악!”

단리추가 비명을 내지르면서 그대로 튕겨 나가 벽을 부수며 나뒹굴었다.

“쿨럭, 쿠웩!”

기침을 하던 그가 한 움큼의 피를 토해냈다.

어깨를 맞았는데도 내장이 온통 뒤틀리는 기분이었다.

헬무트가 천천히 고개를 꺾자 우두둑 소리가 울렸다.

“역시 약해빠졌군.”

“닥쳐….”

단리추가 천천히 일어났다.

내상이 생각보다 깊었는지 그의 두 다리가 애처롭게 떨려 왔다.

헬무트가 착 가라앉은 눈동자로 단리추의 두 다리를 보았다.

“떨고 있군.”

“시끄러… 두려움 때문이 아니라, 분노로 떨리는 거다. 너 같은 쓰레기 녀석을 죽이지 못한다는 것이 분해서…!”

“흐음. 알고는 있군.”

“……?”

“네가 날 이길 수 없다는 걸.”

“흐흐. 내가 고집은 세지만 인정할 건 또 인정하지. 확실히 네놈은 나보다 강하다.”

“그런데 왜 싸우려는 거지?”

“말했잖아? 그 고귀한 정신을 너 같은 쓰레기에게 설명할 자신이 없다니까.”

헬무트가 피식 웃었다.

“뭐 이젠 알 것도 같다.”

“뭘?”

“너희 인간들은 약해 빠졌어. 그래서 어차피 절망 속에서 죽어 갈 것을 아니까 명분을 세우는 것이지. 그 명분이라도 있어야 죽음을 위로할 수 있을 테니.”

“뭐? 풋, 크하하하하!”

단리추가 느닷없이 웃음을 터뜨리자, 헬무트가 이맛살을 구기고는 물었다.

“왜 웃나?”

“네놈이 뭘 대단한 깨달음이라도 얻은 것처럼 말하는 것이 개똥철학보다 못해서 웃었다. 크하하하!”

“역시 허세가 가득하군.”

“시끄럽고! 이번엔 내가 물어보자.”

“……?”

“왜 한 번에 우릴 치지 않은 거지? 네놈들이 한꺼번에 밀어닥쳤다면 우린 벌써 전멸했을 텐데.”

헬무트가 무신경한 표정으로 어깨를 으쓱였다.

“그거야 간단한 이유가 아닌가?”

“간단해?”

“인간들은 어렸을 때, 잠자리 날개를 왜 찢으면서 노는 거지? 한 번에 짓눌러 죽이면 간단할 텐데.”

“……!”

“같은 이유다. 그냥 그게 더 재미있으니까. 뭔가 한 번에 없애 버리기엔 아쉬우니까.”

단리추는 순간 전신에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다.

헬무트가 한 말이 무서워서가 아니다.

저런 말을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한다는 것에 대한 위화감 때문이었다.

헬무트가 회색빛 눈동자로 단리추에게 다시 한 번 못을 박았다.

“이해했나? 그냥 나는 너희들을 가지고 놀다가 죽일 생각을 한 것뿐이야. 거기에는 아무런 이유도 없지. 단지 너무 쉽게 죽여 버리면 재미없으니까.”

“이노오오옴!”

순간 섬광을 이끌며 단리추가 쏘아지듯 날아갔다.

차아아아앙!

쒸이이이이이잇!

발검과 동시에 검봉이 헬무트의 심장을 향해 파고들었다.

하지만 그의 검은 이번에도 신기루를 내찌르고 말았다.

후우우웅!

검에 걸리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대신,

콰악!

“커억!”

어느새 뒤로 돌아간 헬무트가 단리추의 목을 움켜쥐었다.

얼른 호신강기를 끌어올리려고 했으나, 목 줄기를 파고드는 헬무트의 마력이 내공의 흐름을 완전히 끊어 버리고 있었다.

‘이대로 죽겠구나!’

단리추는 생의 마지막을 직감했다.

그래도 최선을 다해서 싸웠다.

마지막에 이놈의 말에 흥분해서 몸을 날리지 않았다면 조금은 더 버틸 수 있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래, 내 성격에 그러긴 힘들었을 테지.’

그런 걸 감안하면 아들 녀석이 제 엄마를 닮은 게 참 다행이라면 다행이다.

‘정아, 이 아비는 후회 없다! 네가 내 복수를 대신 해다오!’

헬무트가 착 가라앉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두렵나?”

“전혀. 단지 네놈을… 죽이지 못한 게 못내 아쉬울 뿐.”

“그렇다면 실현 불가능한 꿈을 꾼 거군.”

“원래… 인간이라는 게 실현 가능한 꿈만 꾸는 게… 아니거든. 그리고… 그런 꿈을 꾸는 이상… 언젠간 실현되기도 하지.”

“약해빠졌는데 참으로 오만하고 교만하군. 이제 재미도 없으니 그만 죽여 버려야겠다.”

“노옴…! 내 아들이 반드시… 네놈을….”

“아들이 있었나?”

“그렇다! 나보다 훨씬 강하고! 훨씬 훌륭한 녀석이다! 내 아들이 반드시 네놈을… 커억!”

“알려 줘서 고맙군. 네 아들에게 너의 이야기를 전해 주지. 그것도 제법 흥미로울 것 같으니까.”

그 말을 끝으로 헬무트가 손에 힘을 주려는 찰나였다.

“……!”

등골이 서늘해지는 감각에 헬무트가 흠칫거리고는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놀랍게도 자신의 뒤에 한 남자가 서 있는 것이 아닌가?

어마어마한 마력을 뿜어내는 검을 들고 뒷목을 툭툭 치면서 서 있는 사내.

“인간…?”

헬무트가 미간을 잔뜩 좁히고는 사내를 노려보았다.

“확실히 약해 빠졌군. 그냥 죽이기에는 재미가 없을 것 같긴 해.”

사내가 툭 던지듯 말했다.

그는 바로 사비강이었다.

헬무트가 다시 손에 힘을 주려고 하자,

“……!”

등 뒤에서 쏘아져 오는 강렬한 살기!

헬무트는 온몸이 사슬에 얽매이기라도 한 듯 움직일 수가 없었다.

헬무트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사비강의 목소리가 등을 때렸다.

“어디 한 번 손가락 하나 까딱해 봐. 아주 재미있는 경험을 하게 될 테니까.”

“건방진…!”

“입 조심해라, 헬무트.”

“……!”

털썩!

순간 헬무트는 저도 모르게 손을 놓고 말았다.

“쿨럭, 쿨럭! 헉, 헉…! 멸마궁주님!”

바닥에 떨어진 단리추가 목을 움켜쥐며 겨우 목소리를 쥐어짰다.

그는 놀란 토끼 눈으로 헬무트와 사비강을 번갈아보았다.

조금 전 사비강은 분명 이 자의 이름을 부르지 않았던가?

둘이 초면이 아니란 뜻인가?

아니, 그보다 멸마궁주가 어떻게 이 시간에 여기에 나타났단 말인가?

정말 빨라도 자신이 보낸 급보가 지금쯤에나 각지에 도착할 터였다.

거리상 급보를 받자마자 이곳으로 이동했다는 뜻인데….

“대체 어떻게…?”

하지만 단리추보다 더 놀란 자는 헬무트였다.

그는 사비강이 내뱉은 말에 자신의 귀를 의심하고 있었다.

“방금… 뭐라고 했나?”

“헬무트 드 자일린. 내가 그깟 이름을 아는 게 그렇게 놀랄 일인가?”

순간 헬무트의 눈이 길게 찢어졌다.

“어떻게 네깟 놈이 감히 내 이름을…!”

팟!

순간 헬무트가 사비강의 등 뒤에 나타났다.

하지만 사비강은 뒤도 돌아보지 않았다.

쒸에에에에엑!

헬무트의 검이 그대로 사비강의 뒷목을 베려는 순간,

따앙!

사비강의 손을 떠난 베르타스가 그대로 헬무트의 검을 튕겨 냈다.

“크읏!”

헬무트가 이맛살을 팍 구기고는 그대로 회전하면서 사비강의 옆구리를 베어 갔다.

사비강이 몸을 빙글 돌리면서 손을 뻗었다.

척!

순간 헬무트의 두 눈이 찢어질 듯 커졌다.

‘어떻게 이런…!’

놀랍게도 헬무트의 검신을 사비강이 손가락으로 낚아챈 것이 아닌가?

이건 말도 안 된다.

상대는 인간이다!

아니, 마족이라고 하더라도 말이 안 된다!

전투 능력에 있어서 자신을 뛰어넘는 마족은 몇 되지 않는다.

한데…!

“도대체 네놈 정체가…?”

“헬무트. 기억하지 못하겠지만, 나는 네 주인이다. 내게 무릎을 꿇어라.”

“무슨 미친 소리냐!”

헬무트가 버럭 소리치며 검을 빼냈다.

사실 빼낸 것이 아니라 사비강이 손을 놓아 준 것이나 다름없었다.

때문에 그가 중심을 잡지 못하고 튕겨 나가듯 휘청거리며 멀어졌다.

팡!

그가 바닥을 차고는 다시 한 번 혜성처럼 날아들었다.

“죽어라! 건방진 인간!”

쒸에에에에엑!

검붉은 오러가 사비강을 향해 거침없이 날아들었다.

이번에야말로 상대는 자신을 막지 못할 터였다.

‘끝이다!’

헬무트의 입매가 치켜 올라갔다.

그런데…

척!

사비강의 검지와 중지 사이에 딱 끼어 버린 검신.

헬무트는 경악했다.

이럴 수는 없었다.

대신 이번엔 사비강의 입매가 히죽 치켜 올라갔다.

“다른 마족이라면 혹시 몰라도… 너는 절대로 나한테 안 돼.”

“이, 이럴 수는…!”

헬무트가 이를 악물고 검을 빼내려고 했지만,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야말로 아이가 어른 앞에서 용을 쓰는 꼴.

어찌 이럴 수가 있단 말인가!

제아무리 강한 인간이더라도 이럴 수는 없다.

아니, 마족도 이럴 수는 없다.

“오랜만에 만나서 이러고 싶진 않지만… 어쩔 수 없군.”

다음 순간, 사비강이 그대로 검신을 손가락에 끼운 채로 휘둘렀다.

슈우우우우욱!

꽈다아아앙!

그대로 포탄처럼 날아간 헬무트가 벽을 부수면서 나동그라졌다.

그리고 그 모습을 단리추가 입을 딱 벌린 채 바라보았다.

그래, 이제 생각났다.

언젠가 만났던 빈틈이 없던 상대.

바로 사비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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