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환 마교관-521화 (521/670)

# 521

귀환 마교관

521화

까강! 깡!

여기저기에서 연신 불꽃이 터지면서 치열한 사투가 벌어졌다.

소천악은 마족 기사 열 명의 전투력을 보며 내심 혀를 내둘렀다.

‘정말이지 지독한 놈들이로다!’

마족 기사들은 그야말로 일당백이었다.

그들은 마법이라는 것을 이용해서 없는 벽도 만들어냈고, 허공에서 불덩이를 소환하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스스로를 복제해서 분신처럼 많은 실체를 만들어내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 혈사련 무인들의 머릿수가 아무리 많아도 녀석들에게는 소용이 없었다.

낯선 전투 방식도 문제였지만, 그들 자체가 워낙 강하기도 했다.

하나하나가 초절정을 넘어서는 수준이었다.

‘그나저나… 저건 대체 뭔지….’

소천악은 마족 기사의 분신 하나를 베어서 연기처럼 흩어지게 만들고는 고개를 들어보았다.

허공에 뜬 검은 구체.

검은 줄기들이 실타래처럼 겹겹이 쌓이면서 둥근 구체를 만들었다.

저 안에 분명 사비강과 존야가 들어있으리라.

‘어떻게든 이겨내 주시오!’

그가 다시 마족 기사의 분신을 향해 몸을 날렸다.

**

푹!

“끄어어억…!”

무인이 입을 쩍 벌리고 쓰러졌다.

삼 호가 천천히 돌아섰다.

“히익…!”

뒤에 서 있던 무인이 헛바람을 집어삼키고는 주춤거리며 물러났다.

그는 완전히 전의를 상실했다.

눈앞의 이 여인은 도저히 인간 같지가 않았다.

이제 겨우 일류 고수가 된 자신이 상대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뎅그렁!

무인은 들고 있던 검을 놓쳐 버렸다.

그가 무릎을 꿇고 바닥에 머리를 찧었다.

이대로 맞섰다간 무조건 죽을 것이다.

그렇다면 차라리 엎드려 빌었을 때 살 확률이 높지 않을까?

“살, 살려 주십시오! 목숨만은… 살려 주십시오! 집에 처와 갓난아기가….”

푹!

삼 호는 일말의 망설임조차 없이 그대로 검을 거꾸로 세우고 그의 뒷목에 쑤셔 박았다.

간절히 목숨을 구걸하던 사내는 그 자리에 고꾸라져서는 절명했다.

그녀가 무감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알 게 뭐야?”

너희들은 내 사정을 다 알고 덤벼 왔던가?

오라버니가 그 고통을 감내하며 작은 집에 틀어박혀 지옥 같은 시간을 보낸다는 걸 알았더냐?

그리고 방금 그 오라버니를 아주 먼 곳으로 떠나보낸 걸 알았더냐?

부질없다. 모든 것이….

그때,

처처처처처척!

“꼼짝 마라!”

어디서 나타난 것인지 무인들이 대거 몰려들면서 그녀를 완전히 포위했다.

그들이 앞세운 병장기에서 날카로운 살기가 금방이라도 그녀를 죽일 듯 쏘아져 왔다.

삼 호는 빙그레 웃었다.

그 웃음이 어찌나 섬뜩한지 포위한 자들이 오히려 위기감을 느낄 정도였다.

그녀가 반쯤 혼이 나간 사람처럼 중얼거렸다.

“많이 왔네? 나 하나 죽이려고…?”

“시, 시끄럽다! 저항한다면….”

“저항하면? 살려는 줄 거야? 수년 간 나를 쫓았던 너희들이 나를 살려 줄 거야?”

“…….”

“아니면 또 이상한 대법을 이용해서 날 가지고 실험하려나?”

“뭐, 뭣들 하느냐! 저년을 죽엿!”

“존명!”

파바바밧!

무인들이 일제히 삼 호를 향해 달려들기 시작했다.

삼 호가 입매를 찢었다.

“그래, 서로 긴 말 할 필요 없어.”

슈아아아아악!

삼 호의 신형이 귀신처럼 미끄러지면서 적들에게 부딪쳐 갔다.

그녀는 무아지경 속에서 검을 휘둘렀다.

마치 벌떼가 날아오르고, 나비가 펄럭이는 듯했다.

어쩔 때는 개미가 기어가듯 조심스러우면서도 은밀했고, 어느 순간에는 꽃잎처럼 이리저리 흔들거리면서 검을 후렸다.

어느 순간에는 바위처럼 묵직했고, 어느 순간에는 바람처럼 가벼웠다.

변화무쌍한 그녀의 검을 무인들은 견딜 수 없었다.

그렇게 한 식경이 지났을 때, 그녀를 포위했던 무인들은 단 한 명을 빼고 모두 죽어 널브러졌다.

살아남은 자는 무인들을 이끄는 수장이었다.

“커윽…!”

삼 호의 손에 목이 틀어 잡힌 수장이 입가에 피를 흘리며 신음을 뱉었다.

“왜 그렇게 우리를 괴롭히지?”

처연한 표정으로 묻는 삼 호.

순간 수장 무인은 아주 잠깐 혼란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이 사악한 마령이 얼핏 인간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여인은 반드시 제거해야할 마령이다.

이 세상에 존재해서는 안 될!

“그건… 네, 네년이… 이런 말도 안 되는 짓을… 저지를 수 있는… 절대 악이기… 때문이다!”

“절대 악….”

삼 호는 가만히 그 말을 중얼거렸다.

그녀의 주변으로 시체들이 가득 널브러져 있었다.

그녀는 여전히 이해할 수 없는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이해할 수 없었다.

이 모든 일을 저지르도록 만든 건 결국 너희들이 아니더냐?

어째서 생각이 이렇게도 다르단 말인가?

같은 현상을 두고도!

왜 이렇게 다른 생각을 한단 말인가!

“왜….”

그녀가 멍하니 중얼거리자, 무인이 재빨리 허리춤에서 비수를 꺼내 삼 호의 가슴을 내질렀다.

따앙!

하지만 비수는 삼 호의 심장을 찌르지 못했다.

대신 호신강기에 막히면서 튕겨 나갔다.

우두둑!

수장은 목이 꺾여 그 자리에서 죽고 말았다.

수장 무인이 털썩 쓰러지자, 삼 호가 멍하니 중얼거렸다.

“너희들이… 우릴 먼저 버렸잖아. 왜 같은 인간인데… 인간 취급을 해주지 않는 거야? 왜 우리를 벌레 취급하는 거야? 왜….”

그녀는 시체 사이를 저벅저벅 걸어갔다.

그녀의 목소리에서 들릴 듯 말 듯한 말이 흘러나왔다.

“그렇다면… 내가 먼저 인간이 되지 않으리라.”

**

세월이 흘렀다.

꽃이 몇 번이나 피고 지었고, 눈이 몇 번이나 내렸다가 녹았다.

이제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세월이 흘렀다.

삼 호의 칼날에도 무수히 많은 피가 묻었다가 말랐다.

그러다가 어느 때부턴가 서서히 싸움은 줄어들었다.

그녀를 잊은 것인지, 포기한 것인지 더 이상 찾아오는 자들이 없었다.

그렇게 정처 없이 떠돌았다.

그리고 그녀는 잊어 갔다.

모든 것을….

그녀조차도.

너무 자주 마공을 사용한 것인지도 몰랐다.

어쨌거나 그렇게 그녀는 강호에게도, 스스로에게도 잊혀 갔다.

강호는 정도맹이 평정한 이래 내내 평화롭기만 했다.

하지만 고인 물은 언젠가 썩기 마련.

곳곳에서 마찰이 일어났고, 조금씩 뭔가가 일어날 것처럼 꿈틀거렸다.

암암리에 결성된 마령교 역시 그런 자들 가운데 하나였다.

마공을 익힌 자들이 모이기 시작했고, 그들은 다시 한 번 마교를 일으켜 세울 음모를 꾸몄다.

하지만 수십 년 전, 정마대전에서 이미 뿌리째 뽑힌 마교를 다시 일으켜 세우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들은 자신들을 이끌 좀 더 강렬한 존재가 필요했다.

이미 죽어 버린 마교주가 환생이라도 한다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그런 기적은 불가능했다.

그러다가 마령을 떠올렸다.

그들은 어릴 적 달아났던 마령을 찾아 헤맸다.

그러던 중, 정신을 잃고 방황하던 삼 호를 만났다.

당시 그녀는 세월을 피하지 못해 온몸에 주름이 가득한 할머니였다.

그녀는 허름한 객점 앞에서 구걸을 하고 있었다.

다행히 그날은 인심 좋은 객점 주인을 만나서 손님이 먹다 남긴 만두를 두 개나 얻을 수 있었다.

하지만 사흘 밤낮을 꼬박 굶은 그녀에게 만두 두 개는 턱없이 부족했다.

게걸스럽게 만두 두 개를 먹어치웠지만 여전히 뱃속은 허기로 아우성치고 있었다.

그때 누군가가 갓 지은 따끈한 만두를 내밀었다.

“더 드시겠습니까?”

삼 호는 멍하니 고개를 들었다.

그녀의 이마에 잡혔던 주름이 더욱 깊어졌다.

중년의 남자는 부드럽게 웃었다.

“어르신을 모시고 싶습니다. 허락해 주십시오.”

“어어….”

삼 호는 그 뜻을 알아듣지 못했다.

그저 굶주림에 허겁지겁 만두를 먹어치울 뿐이었다.

중년의 남자가 허리를 깊이 숙였다.

“허락의 뜻으로 알겠습니다. 당신이 온전한 힘을 가질 때까지 저는 없는 존재나 마찬가지입니다. 이제부터 저는 무명(無名)입니다.”

“어어…? 아아….”

중년의 남자가 정중하게 그녀를 부축해서 일으켰다.

두 사람은 그렇게 어딘가로 걸음을 옮겼다.

**

무명은 장원을 옮기기 위해 서둘렀다.

힘을 잃고 늙은 삼 호를 안전하게 모시기 위해서는 최대한 서둘러야 했다.

“어서 짐을 챙겨라! 곧 사파 놈들이 이곳을 휩쓸고 지나갈 거다. 본교가 맞서면 막을 수는 있겠지만, 지금의 존야를 지켜내지 못할 수 있다! 게다가 지금 본교의 정체가 드러나면 모든 것이 수포로 돌아간다!”

“알겠습니다!”

그때였다.

수하 하나가 달려오더니 소리쳤다.

“급보입니다! 사파 놈들이 방향을 우회했다고 합니다! 이곳으로 오지 않습니다.”

“뭣이? 갑자기 왜…?”

“그것이… 정보에 의하면 정도맹에서 ‘사비강’이라는 자가 갑자기 나타나서 전세가 다소 꼬인 모양입니다.”

“사비강…? 처음 듣는 이름이군.”

“혈사련에서도 당황한 모양입니다. 아무튼 이제 안전할 것 같습니다.”

“다행이구나.”

무명은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는 몰랐다.

오늘 그가 아무리 서둘렀어도 혈사련이 이곳을 지나갔더라면, 마령교는 피기도 전에 쇄락의 길을 걸었으리란 것을.

존야는 이성을 되찾기도 전에 죽어 버렸을 것이라는 걸.

사비강이 회귀하지 않았더라면 장대한 그의 계획은 여기서 멈췄으리란 것을.

**

“어디에 계시냐?”

장원으로 들어선 무명이 수하를 향해 날카롭게 물었다.

수하가 감개무량한 표정으로 고개를 푹 숙이며 답했다.

“지금 내전에 계십니다.”

무명은 수하의 말을 끝까지 다 듣지도 않고 내전을 향해 휘적휘적 걸어갔다.

마침내 그가 내전 안으로 들어서자, 주렴을 늘어뜨린 너머로 한 여인이 다소곳이 앉아 있는 모습이 보였다.

한데 체구가 조금 작아진 듯했다.

하지만 분명 그녀에게서 뿜어지는 기운이 어딘지 달라져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존야…!”

그가 털썩 무릎을 꿇었다.

주렴 너머의 그림자가 천천히 돌아서더니, 주렴을 젖히며 나왔다.

무명은 그대로 머리를 조아린 채 꼼짝도 하지 않았다.

그녀가 그를 가만히 내려다보며 입을 열었다.

“고개를 들라.”

놀랍게도 존야의 목소리는 소녀처럼 맑았다.

무명이 떨리는 표정으로 고개를 들었다.

“존야시여…!”

“고생했다. 모든 것이… 기억났다.”

앳된 소녀의 모습을 한 삼 호.

그 옛날, 화마가 마교를 집어삼킬 때 눈물을 흘리던 소녀의 모습으로 그녀는 그렇게 서 있었다.

반로환동이었다.

무명의 눈동자가 감격으로 일렁였다.

소녀가 희미한 미소를 머금고 말했다.

“너희들이 그동안 모았던 기물에 관심이 간다. 그 하오문의 종자를 다시 볼 수 있겠느냐?”

“물, 물론입니다!”

“행하라.”

“존명!”

무명이 바닥에 이마를 쿵 찧었다.

존야가 창밖의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중얼거리듯 말했다.

“그를 만난 다음에는… 갈 곳이 있다.”

“어디로….”

“아주 아름다운 곳이니라. 그곳에 총타를 두겠다.”

“명 받들겠습니다!”

무명이 다시 이마를 찧었다.

**

존야는 상자 안에 든 구슬을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역시….

울림이 있다.

그간 마령교도들이 모은 기물을 하나로 엮을 수 있는 뭔가가 이 구슬 안에 들어 있다.

눈을 가늘게 뜨고 구슬을 가만히 응시했다.

- 찾았구나.

머릿속으로 울림이 들어왔다.

깜짝 놀랄 만도 하건만 존야는 전혀 놀라지 않았다.

오히려 그 목소리에서 따뜻함을 느꼈다.

모든 것이 차가웠던 옛날, 마교의 전각을 집어삼키는 화마에 둘러싸여 느꼈던 그 따스함과 흡사했다.

- 나 또한 너를 찾았다.

다시 한 번 머릿속으로 울림이 들어왔다.

“감사합니다.”

존야가 나직이 말했다.

구슬은 계속해서 그녀에게 말을 걸었다.

많은 대화가 오고갔다.

하지만 실제로 겉으로 볼 때는 무척 짧은 시간에 지나지 않았다.

마침내 그녀의 입이 열렸다.

“바리탄 후작님… 제 미천한 육신이라도 괜찮으시다면 화신으로… 삼으십시오.”

- 그리하겠노라.

울림이 전해지는 것과 동시에 구슬에서 강렬한 마력이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쉬아아아아아아아앙!

그런데 그 순간!

존야는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느꼈다.

왠지 모를 위화감!

그녀가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비스듬히 열려 있는 문틈.

하지만 밖에는 아무도 없었다.

뭘까?

갑자기 그녀는 자신의 행동과 생각에 대해 괴리감을 느꼈다.

나는 무엇에 분노하는가?

나는 무엇을 잃어서 절망하는가?

나는… 나는 누구인가!

그러는 사이에 검은 연기처럼 화한 마력이 그녀를 덮치려고 했다.

찰나,

“잠깐만.”

그녀의 입에서 뜻밖에도 냉정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녀의 몸에 흡수되듯 스며들려던 검은 마력이 멈칫거리고는 물러났다.

- 무슨 일인가?

사람의 형상을 한 검은 연기가 물었다.

존야가 입매를 비틀었다.

“깜빡하면 속을 뻔했지, 뭐야? 나는 내가 아니었어.”

- 무슨….

“내가 너라고 생각했는데… 난 존야가 아니야.”

- 정신 차리고….

“다행히 정신은 차렸다. 사실 동화될 뻔했다. 너에게. 너의 절절한 인생 역시 잘 겪었다. 많은 세월을 겪어서 피곤할 정도야. 하지만 알아 버렸다. 나는 네가 아니라… 내가 바로… ‘사비강’이라는 것을!”

소녀, 존야의 모습을 한 사비강이 버럭 소리치며 양팔을 활짝 펼쳤다.

그의 전신에서 강렬한 빛이 뿜어져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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