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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 마교관-520화 (520/670)

# 520

귀환 마교관

520화

절벽에 핀 꽃을 꺾었다.

삼 호가 매달려 있는 절벽은 아래로 구름이 지나가는 까마득한 낭떠러지였다.

매서운 칼바람이 삼 호의 뺨을 할퀴며 지나갔다.

그녀는 입으로 꽃을 물어 뜯어내고는 뿌리만 품에 넣어 두었다.

이 뿌리는 오라버니의 고통을 줄여 줄 것이다.

이 약초의 이름이 정확히 무엇인지는 모른다.

다만 이 약초를 복용하면 오라버니의 고통이 눈에 띄게 줄어든다는 것만은 분명했다.

그래서 삼 호와 십칠 호는 이 약초를 ‘항마초(抗魔草)’라고 불렀다.

삼 호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지어졌다.

‘오늘은 운이 좋은가 봐.’

자칫 작은 실수라도 하면 그녀의 몸은 끈 떨어진 연처럼 저 창공으로 훌훌 날아가 버릴 지도 모를 일이었지만, 그녀는 무척 기분이 좋았다.

며칠 째 오라버니는 고통으로 신음했다.

오늘 아침에는 각혈까지 하며 전신을 부르르 떨었다.

온몸은 식은땀으로 축축하게 젖어 있었다.

오라버니는 늘 슬픈 표정이었다.

그날의 환한 미소는 다시 볼 수 없었다.

그 웃음을 다시 볼 수 있다면.

오라버니를 웃게 하고 싶었다.

세상 때문에, 사람들 때문에 웃음을 잃어버린 오라버니가 자신 때문에 다시 웃음을 찾을 수만 있다면.

오늘은 웃어 줄까?

‘오라버니! 내가 항마초를 구했어!’

항마초는 구하기 어려운 약초다.

한 번 복용하기만 하면 일 년 동안은 고통 없이 지낼 수 있지만, 그것을 구하기란 하늘의 별 따기만큼이나 어렵다.

대체로 구름을 뚫고 솟아오른 절벽에 피는 꽃이다.

눈으로 찾기도 힘들고, 찾았다고 해도 쉽게 캐낼 수 없는 약초.

어쨌거나 오늘은 그 구하기 힘든 약초를 찾아냈다.

정말이지 하늘이라도 날 것만 같은 심정이다.

절벽 위로 완전히 올라온 삼 호는 수풀을 헤치며 달리기 시작했다.

오라버니가 동굴에서 기다리고 있을 터였다.

깊고 깊은 산중의 동굴.

하지만 그 동굴을 따라서 한참 들어가면 거짓말처럼 아름다운 곳이 나타난다.

이곳 인간들의 세상에서 비가 내려도, 눈이 와도 그곳에서만큼은 맑게 갠 하늘을 볼 수 있었다.

사시사철 만발한 꽃을 볼 수 있었다.

오라버니와 자신이 그토록 아름다운 공간을 찾은 것은 분명 하늘의 축복이었다.

어느 날, 그녀가 개미를 눌러 죽이는 모습을 보고 오라버니가 말했다.

“가여운 생명체다. 누군가에게 밟혀 죽어도 모를 우리 숙명과 다르지 않다. 우리라도 그 생명을 아껴 주자꾸나.”

그날부터 그녀는 그곳에 가득한 나비와 벌떼를 보는 게 즐거웠다.

경공을 펼쳐 빠르게 내달리던 그녀는 마침 개울을 보고 잠시 멈춰 목을 축였다.

문득 수면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보니 몹시 초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삼 호는 망설임 없이 물속으로 뛰어들었다.

첨벙!

쌀쌀한 날씨였기에 물은 매우 차가웠다.

하지만 소녀는 내공을 운용하지 않았다.

뼛속까지 시리게 만드는 이 차가움이 왠지 상쾌하게 느껴졌다.

그래, 오늘은 항마초를 구했으니까.

깨끗하고 예쁜 모습으로 오라버니에게 다가가서 항마초를 건네주고 싶었다.

오라버니가 다시 그 환한 미소를 지어 준다면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이나 기쁠 것 같았다.

차가운 물에서 잠시 유영을 하며 목욕을 마친 삼 호는 수면 위로 머리를 내밀다가 얼른 다시 잠수했다.

한 무리의 무인들이 개울가에서 서성이고 있었다.

개울가의 음습한 곳으로 다가가서 살며시 머리를 내밀고 주의를 기울였다.

무인들이 두런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분명 이 근처라고 했더냐?”

“그렇습니다! 목격자가 있었습니다.”

“흐음. 아무리 찾아도 보이지 않는군.”

“혹시 잘못 본 것은 아닐까요?”

“만에 하나라도 진짜 마령이라면 반드시 찾아내서 없애 버려야 한다. 다시 한 번 살펴봐!”

“존명!”

무인들이 다시 흩어졌다.

인기척이 사라지고 나자 삼 호는 조심스럽게 개울가로 올라왔다.

온몸이 축축하게 젖어 있었다.

그녀는 품에 넣어 두었던 항마초를 확인한 뒤 내공을 끌어올렸다.

후우우우웅!

장삼이 부풀어 오르면서 내공으로 뿜어낸 열기가 몸과 젖은 옷을 바짝 말려주었다.

‘흥! 너희들은 절대 우리를 찾아내지 못할 거야!’

삼 호는 경공을 펼쳐 달리기 시작했다.

중간 중간 자신들을 찾는 정도맹 무인들을 피해서 이동하느라 조금 시간이 지체됐다.

마침내 동혈을 찾아 들어선 그녀는 미로 같은 통로를 거침없이 이리저리 찾아가며 이동했다.

그리고 계단을 따라 한참 올랐을 때, 마침내 밝은 햇살이 내리쬐는 분지가 나타났다.

그곳은 꽃이 만개한 곳이었다.

나비와 벌떼가 여유롭게 날아다녔고, 부드러운 바람에 꽃잎과 풀잎이 살랑거렸다.

그 그림 같은 가운데에는 작고 아담한 집이 지어져 있었다.

규모가 크진 않았지만, 지은 지는 오래 되지 않은 듯 깔끔한 인상이었다.

삼 호는 들뜬 걸음으로 아담한 집을 향해 달려갔다.

그녀가 막 울타리를 돌아서 안뜰로 들어서려고 할 때였다.

“크아아아아아아아!”

마침 방안에서 거친 포효가 울려나왔다.

‘오라버니…!’

자신이 없는 동안 고통에 겨운 오라버니가 이성을 잃은 게 분명했다.

그녀가 얼른 달려가려는 그때,

콰장!

요란한 소리와 함께 문짝이 떨어져나가면서 그녀를 덮쳤다.

파팡!

얼른 쌍장을 내질러 날아드는 문짝들을 쳐냈다.

문짝이 산산조각 나면서 안뜰에 아무렇게나 나뒹굴었다.

“으아아아아아아!”

방 안에는 쇠사슬에 묶여 있는 십칠 호가 온통 검은자위로 가득 찬 눈을 부릅뜨고는 광기 서린 짐승처럼 포효하고 있었다.

그의 머리카락이 한 올 한 올 허공으로 솟구쳐 올라 있었고, 옷자락은 이미 내공의 열기에 다 타버리고 말았는지 나신의 모습이었다.

“오라버니! 나 돌아왔어!”

삼 호가 얼른 달려가 십칠 호의 어깨를 붙들었다.

하지만 십칠 호는 이미 완전히 광기에 젖어든 상태.

“크아아아아아!”

철커덩! 철거렁!

쇠사슬에 묶인 그가 마구 몸부림을 쳤다.

쇠사슬이 금방이라도 끊어질 것만 같았다.

이 쇠사슬 역시 십칠 호가 스스로 원해서 묶어 둔 것이었다.

하지만 이성을 잃은 그는 당장이라도 쇠사슬을 풀어 버리라는 듯 거칠게 으르렁거리고 있었다.

“오라버니…! 잠깐만. 이거 먼저…!”

“크아아아아!”

팍!

십칠 호는 삼 호가 내민 항마초를 손으로 쳐내 버렸다.

그는 삼 호를 씹어 삼키기라도 하겠다는 듯 연신 이로 물어뜯을 태세였다.

철커덩! 철그렁!

마침내 그의 몸부림을 견디지 못한 쇠사슬이 툭 끊어지더니,

콰악!

“컥! 오, 오라버니…! 정신을…!”

“으아아아아아!”

두 눈이 온통 시커먼 동공으로 가득 찬 십칠 호는 삼 호의 말을 듣지 못했다.

그가 삼 호의 목을 비틀려는 순간,

퍽!

삼 호가 그의 가슴에 일장을 뻗어내고는 뒤로 훌쩍 물러났다.

“쿠웨에에엑!”

십칠 호가 그 자리에 엎드려 검붉은 피를 토해냈다.

“괜, 괜찮아? 오라버니 제발 정신을…!”

“으아아아아아!”

십칠 호는 다시 바닥을 차고는 삼 호에게 달려들었다.

삼 호가 얼른 몸을 피하며 바닥을 굴렀다.

동시에 그녀는 바닥에 떨어졌던 항마초를 집어 들고는 곧장 십칠 호를 향해 날아갔다.

일단은 강제로라도 먹일 생각이었다.

“미안해! 오라버니!”

그녀가 다리로 십 칠호의 목을 휘어감은 다음 항마초를 입에 쑤셔 박듯 넣었다.

하지만 십칠 호는 곧장 항마초를 손으로 빼내더니 내공의 열기로 태워 버렸다.

화르르르륵!

“안 돼!”

슈우우우욱, 쿠당탕!

십칠 호가 삼 호의 허리춤을 붙들고는 그대로 바닥에 내다꽂았다.

한참이나 바닥을 구른 삼 호는 멍한 표정으로 주저앉아서는 일어설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정말 어렵게 구한 항마초였는데….

오늘은 정말 운이 좋았다고 생각했는데….

그런데 항마초가… 항마초가…

눈시울이 붉어지면서 모든 게 허탈해지고 눈물이 차올랐다.

“쿠와아아아아!”

이성을 잃은 십칠 호가 허공을 부웅 가로질러 삼 호 앞에 떨어졌다.

그가 잔뜩 화가 난 표정으로 삼 호의 멱살을 쥐고 들어올렸다.

삼 호가 쓴 웃음을 짓고는 허탈하게 중얼거렸다.

“이젠 나도 모르겠다….”

이슬을 머금은 눈매가 웃음을 그렸다.

그 순간, 십칠 호가 움찔 떨었다.

그의 표정이 혼란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아직까지 그 사실을 눈치 채지 못한 삼 호가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오라버니. 우리 떠나자. 정말로 아무도 없는 곳으로.”

삼 호가 천천히 손을 들어 올리고는 자신의 멱살을 쥔 십칠 호의 손을 감쌌다.

툭!

십칠 호의 손에서 힘이 풀렸다.

바닥에 떨어진 삼 호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바라보았다.

십칠 호가 주춤주춤 물러났다.

“오라버니…?”

십칠 호는 주변을 한 차례 둘러보고는 자신의 양손을 바라보았다.

세상에서 가장 절망스러운 표정을 지은 그가 고개를 저으며 삼 호를 보았다.

“아아…”

“오라버니… 괜찮아?”

“너를… 내가 너를…”

“오라버니, 콜록, 나, 난 괜찮아.”

“아아…!”

십칠 호가 바닥에 널브러진 문짝 파편을 얼른 주워들었다.

칼날처럼 날카로운 파편이었다.

불길한 예감을 느낀 삼 호가 비명처럼 소리쳤다.

“안 돼!”

하지만 이미 십칠 호는 부서진 파편으로 자신의 목을 그어 버린 후였다.

피츗! 주르르르륵…!

목이 절반이나 찢어진 십칠 호가 그 자리에서 허물어지듯 쓰러졌다.

“안 돼, 안 돼… 오라버니… 왜? 어째서…?”

삼 호가 얼른 달려가 십칠 호의 머리를 안았다.

십칠 호가 힘겹게 삼 호의 허리를 안았다.

“좋은 냄새가… 나는구나…”

잔뜩 쉰 소리가 찢어진 목구멍에서 흘러나왔다.

삼 호가 울음이 가득한 얼굴로 웃었다.

“나… 씻었어… 미안해… 내가 바로 왔더라면….”

“좋은… 냄새야….”

십칠 호는 고개를 저었다.

그가 슬픈 미소를 지었다.

“너를… 위험하게… 더 이상은….”

“오라버니… 말하지 마. 피가… 피가….”

십칠 호의 안색은 백짓장처럼 창백해져 가고 있었다.

십칠 호가 삼 호의 뺨을 타고 흐르는 눈물을 닦아 주기 위해 손을 들었다.

하지만 힘을 잃은 그의 손이 닿기도 전에 다시 떨어졌다.

삼 호가 얼른 그 손을 잡아 자신의 뺨으로 가져갔다.

“오라버니… 오라버니…!”

삼 호의 울먹임이 십칠 호의 미소에 젖어들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가장 슬픈 미소였다.

“가지 마… 오라버니. 이대로 날 두고 가지 마…! 언제나처럼… 내 손을 잡고 같이 가야지… 오라버니… 나한텐 오라버니밖에… 오라버니밖에…!”

“너만은… 지켜주고 싶었다… 우리를 이렇게 만든 자들로부터. 아니… 이, 이 강호로부터… 미안하고… 미안하다….”

“아니야. 오라버니, 내가 미안해. 내가 오늘 바로 왔어야 했는데… 나, 바보같이 나만 생각해서….”

십칠 호가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순간 그의 얼굴에 거짓말처럼 생기가 돌았다.

죽기 직전에 찾아온다는 회광반조 현상이었다.

그가 언젠가 그때처럼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미소를 그리며 말했다.

“오늘… 참 예쁘다.”

십칠 호의 마지막 말이었다.

그렇게 십칠 호는 숨을 거두었다.

삼 호가 십칠 호의 몸을 으스러지도록 끌어안았다.

순간 뜨거운 기풍이 사방으로 훅 불어 나가면서, 꽃잎이 흩날리고, 나비와 벌떼가 어지럽게 날아올랐다.

그렇게 삼 호는 소리 없이 가슴으로 절규했다.

지극히 아름다운 이 장소에서 지독한 슬픔에 휩싸여 얼마나 오열했을까?

저녁쯤이나 되어서야 그녀가 천천히 일어섰다.

그녀의 두 눈은 어딘지 퀭해져 있었다.

“오라버니… 오라버니는 끝까지 나를 지켜 주었어. 이제 내가 다녀올게.”

그녀가 천천히 돌아섰다.

오라버니는 이 강호로부터 자신을 지켜 주었다.

이제 자신이 나설 차례다.

그녀는 그런 오라버니를 죽음으로 내몬 이 강호를….

절대 용서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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