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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 마교관-516화 (516/670)

# 516

귀환 마교관

516화

“이렇게 이별을 해야 하니 영 아쉽습니다.”

추희룡이 예를 갖추며 인사를 건넸다.

사비강이 웃으며 답했다.

“앞으로 멸마궁에 많은 지원 기대하겠습니다.”

“물론입니다. 마족을 물리쳐야 우리 강호도 숨 좀 쉬지 않겠습니까? 언제든 연락만 주십시오. 힘이 닿는 데까지 협력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그럼 잘 머물다 갑니다.”

“살펴 가시길.”

추희룡이 포권으로 답례를 하자, 사비강과 매설란이 마차에 올랐다.

멸마궁의 무인들이 혈사련을 완전히 빠져나가는 것을 확인한 추희룡이 담담한 표정으로 돌아섰다.

하지만 그가 련주전으로 향할 때의 표정은 비열한 웃음으로 가득 차 있었다.

“후후후.”

그는 입술을 비집고 흘러나오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

자신의 예상대로 사비강은 혈사련을 샅샅이 뒤졌다.

하지만 아무것도 찾아내지 못했다.

그만큼 자신이 있었다.

사비강이 절대 찾아내지 못할 거라는.

일부러 감시를 붙이지 않은 이유다.

‘이 지긋지긋한 둘째 놀이도 조만간 끝이다.’

그의 두 눈빛은 열망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는 야망이 큰 자였다.

애초에 혈사련을 세울 때도 언젠간 련주가 되겠노라 마음먹었다.

모든 계획은 차근차근 진행되고 있었다.

한데 뜻하지 않게 훼방꾼이 생겼다.

정도맹에서 온 교관이었다.

처음에는 신경도 쓰지 않았다.

그가 정사대전을 쥐락펴락했다는 소문은 있었지만, 그래봐야 한낱 교관 나부랭이가 아닌가?

온갖 음모와 술수가 판을 치는 혈사련에 볼모로 잡혀 오는 주제에 뭘 할 수 있겠는가?

하지만 사비강은 그의 예상을 완전히 벗어났다.

정도맹이라는 청정수에서 살던 물고기가 혈사련이라는 구정물로 들어와 봐야 오래 버티지 못할 거라고 여겼다.

한데 사비강은 청정수에 살던 물고기답지 않았다.

그는 미꾸라지였다.

오히려 혈사련이라는 구정물을 더욱 엉망진창으로 흐트려 놓았다.

그때까지도 관망만 했다.

한데 자신이 련주의 자리를 노린다는 것을 안 사비강은 회유와 협박을 해왔다.

결국 그는 사비강과 손을 잡았다.

언제든 눌러 죽일 수 있는 미꾸라지가 아니라 이무기였다면….

그렇다면 그 이무기를 이용해서 자신의 야망을 이루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은 계획대로 진행되었고, 추희룡은 끝내 혈사련주가 됐다.

사파에서는 그 누구도 그에게 맞설 수 없는 절대 권좌에 오른 것이다.

하지만…

‘언제나 둘째였다. 언제나…!’

추희룡이 어금니를 까득 갈았다.

혈사련을 세웠을 때도 그는 둘째가는 권력이었다.

한데 기껏 련주가 되었더니 이제는 맹주의 눈치를 봐야 하고, 멸마궁의 눈치를 봐야 하는 사태가 생겼다.

결국은 권력보다도 힘이 중요한 것이다.

그 누구도 함부로 자신을 대할 수 없도록 만드는 힘!

사비강에게 마계 기물을 모두 넘겼을 때, 하나만은 넘기지 않았다.

바로 순간이동이 가능한 두루마리였다.

처음 그가 가졌던 순간이동 두루마리는 모두 서른 장이었다.

구겨도 보고, 찢어도 보고, 씹어 먹어도 보았다.

그러던 어느 날 두루마리를 찢는 순간, 자신이 생각했던 장소로 이동한 것을 확인했다.

그냥 찢었을 때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는데!

다만 거리는 멀지 않았다.

겨우 다섯 보 정도 떨어진 곳으로 이동했으니까.

한데 놀라웠다.

종이를 찢는 행위만으로 순간이동을 하다니?

해서 다시 한 번 시도했다.

이번엔 좀 더 먼 거리를 정확하게 떠올리면서 두루마리를 찢었다.

역시나!

‘순간이동이 가능한 두루마리라니….’

그런 기물이 있을 거라곤 생각도 못했다.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이 기물만큼은 그 누구에게도 알려서는 안 되겠다는 것을.

한 번 가본 장소라면 정확한 위치만 기억을 해도 귀신처럼 이동할 수 있었다.

누군가를 암살하기에도 좋고, 금은보화가 가득한 창고로 단숨에 이동할 수도 있었다.

다만 아쉬운 점은 사용법을 파악하는 데에 열한 장이나 소모해 버렸다는 것이다.

그래도 그걸 이용해서 옹기승을 빼돌렸다.

옹기승의 몸에 심어진 마령혼을 자신에게 옮기기 위해서.

그 마령혼을 자신이 제어할 수 있다면, 사비강이나 마족도 두렵지 않으리라.

전대 혈사련주 허무극과 마령교주가 그 마령혼을 얻기 위해서 부단히도 애쓰지 않았던가?

강호가 마령교를 견제하느라 여념이 없을 때 남몰래 수소문해서 술법에 능한 자를 데려왔다.

이제 그 결실을 얻을 때가 되었다.

‘두고 봐라. 언제까지나 두 번째 자리에 머물진 않을 것이다. 일인지하만인지상의 자리에 오를 것이다. 더 이상은 내 머리 위에 그 누구도 없게 만들겠노라!’

추희룡이 련주전으로 들어가며 자귀에게 전음을 흘렸다.

[누구도 련주전에 얼씬하지 못하도록 해라.]

[존명.]

**

“사비강이 떠나고 있소.”

검은 기사가 시커먼 마력을 풀풀 흘려내며 존야에게 말했다.

존야가 나뭇가지 위에서 고개를 끄덕였다.

“조금 더 기다립시다.”

“당장 움직이지 않고?”

“사비강, 저자는 당신들 생각보다 강한 자입니다. 인간이라고 무시하다간 낭패를 볼 겁니다.”

“그래봐야 인간….”

“바리탄 후작님도 경계하던 자입니다.”

존야가 말을 가로지르자 검은 투구를 쓴 기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존야는 나직이 한숨을 내쉬고는 나무 아래에 포진한 흑기사들을 보았다.

모두 열 명.

바리탄 후작이 친히 그녀를 위해 보내준 기사였다.

사실 그녀로서는 홀로 움직이는 게 더 편할 수도 있었지만, 바리탄의 배려를 거절할 수는 없었다.

오히려 자신을 그만큼 생각해 준다는 것에 무한한 감동을 느꼈다.

“그가 충분히 멀어지면 우리도 움직입니다. 충분히 멀어지면….”

“알겠소. 실수는 없어야 할 것이오.”

“물론.”

존야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착 가라앉은 표정으로 생각했다.

‘그 누구보다도 내가 간절히 원하는 것이야. 절대 실수하지 않을 거다.’

**

“정말 이대로 가도 괜찮겠어?”

“…….”

“구강룡이 잘못 봤을 리는 없을 테고. 추희룡이 관련없는 걸까?”

매설란의 말에도 사비강은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그는 혈사련을 떠나는 순간부터 계속 생각에 잠겨 있었다.

확실히 혈사련은 모든 장소를 공개해 주었다.

추종의 달인인 추량조차도 그 어떤 흔적을 찾을 수는 없었다.

곳곳에 새로 짓는 건물들이나, 새롭게 단장하는 곳이 있었지만 특이점은 아예 발견되지 않았다.

기관장치가 숨겨져 있을 법한 장소는 모두 보았지만 아무것도 찾을 수 없었다.

어차피 텔레포트 스크롤은 워낙 작은 물건이기에 애초에 찾을 생각이 없었다.

하지만 옹기승은 달랐다.

만약 추희룡이 옹기승을 숨기고 있다면, 분명 옹기승을 관리하는 자가 한 명 정도는 더 있을 것이다.

물건을 숨기기보다 사람을 숨기는 게 더 어려운 건 당연지사.

해서 옹기승을 숨길 만한 장소는 샅샅이 뒤졌는데….

“없었어. 어디에도.”

사비강이 혼잣말처럼 중얼거리자, 매설란이 등받이에 기대며 말했다.

“그럼 추 련주는 결백하다는 거네. 그러니 그렇게 당당했겠지.”

“그래서 더 이상해.”

“그건 무슨 말이야?”

사비강이 눈을 가늘게 여몄다.

확실히 추희룡의 반응은 이상했다.

지나치게 당당했다.

과하다 싶을 정도로 모든 밀실을 공개했으니까.

“마치… 기다리고 있었다는 것처럼. 모든 준비를 끝냈다는 사람처럼.”

“의심은 많지만 물증이 없으니 어쩔 도리가 없네. 괜히 심증만 가지고 너무 몰아세우면 나중에 마족과 싸울 때 협조를 구하기 힘들어질 수 있으니.”

맞는 말이다.

지금은 전력 하나하나가 아쉬운 상황.

앞으로 전쟁이 어떻게 진행되느냐에 따라서 혈사련의 협조가 매우 중요해질 수 있다.

매설란이 창밖으로 시선을 던지며 중얼거리듯 말했다.

“그래도 난… 나름 의미 있었어.”

“어떤 의미?”

“당신이 한동안 살았던 곳을 봤으니까.”

사비강이 빙그레 웃으며 물었다.

“보니까 어땠어?”

“생각보단… 사람 사는 곳 같았어. 그냥 머릿속으로만 그릴 땐, 사기가 풀풀 풍기는 괴물 같은 자들만 득실거릴 줄 알았는데… 의외로 평범해서 놀랐지.”

“그렇지. 결국은 다 똑같은 사람이지. 사람 사는 거… 결국 거기서 거기거든.”

하지만 마족은 다르다.

그들은 순수한 악이다.

인간이 느끼는 다양한 감정 중 상당 부분이 결여된.

그래서 그들을 인간처럼 여기고 상대해서는 안 된다.

매설란이 사비강을 돌아보며 싱긋 웃었다.

“그래도 조금 흉흉한 사기를 품어내는 자들을 보면서 이런 생각도 했지. 아, 이런 곳에서 홀로 잘도 버텼구나. 아니, 잘도 신생조를 이끌어 왔구나. 참 대단한 사람이다. 이런 출구도 보이지 않는 곳에 갇혀서 그 정도로 버티다니.”

“이제 알았어? 내가 대단한 사람이라는 걸?”

“진작 알았지.”

매설란이 웃으며 답했다.

그 순간, 사비강이 흠칫거리고는 매설란을 보았다.

“방금 뭐라고 했지?”

그의 표정이 워낙 진중했기에 매설란도 농담할 생각을 하지 못하고 고분고분 대답했다.

“진작… 알았다고.”

“아니, 그 전에.”

“당신 대단하다는 거?”

“그게 아냐! 제길! 왜 그 생각을 못했을까? 오히려 간단한 것을!”

“도대체 무슨 말이야?”

매설란이 더 묻기도 전에 사비강이 창밖을 향해 소리쳤다.

“추량! 알아냈다! 마차 돌려라! 아니다. 내가 먼저 가지!”

사비강이 순간 마차 문을 열더니 돌아서 내달리기 시작했다.

그의 표정이 확신으로 물들었다.

‘옹기승은 분명 련 내에 있어! 출구가 필요 없는 곳에!’

**

얼굴 가득 검버섯이 핀 노인은 어딘지 불안한 표정이었다.

그는 눈동자를 뒤룩뒤룩 굴리며 안절부절 못했다.

추희룡은 그 기색을 놓치지 않았다.

“아직도 완성이 안 됐단 말인가?”

“조, 조금 시간이 걸릴 것 같습니다. 죄송합니다!”

“얼마나 더 걸린다는 거지?”

“이, 이틀 정도면….”

구오오오…!

추희룡의 전신에서 사기가 폭발하듯 우러나왔다.

그의 장삼이 기풍으로 한껏 부풀어올랐다.

숨막힐 듯한 사기에 노인이 온몸을 부들부들 떨더니 바닥에 바짝 엎드렸다.

“최, 최대한 서두르겠습니다! 부디 용서를!”

“이유가 뭔가?”

“무슨…?”

노인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고개를 들자, 추희룡이 차갑게 비웃었다.

“이미 알고 있었다. 저 문신이 완전히 자리를 잡으면 때가 되었다는 것을. 그리고 지금 옹기승의 몸에 새겨진 문신은 조금도 움직이지 않고 있지. 그럼에도 때가 아니라는 이유가 뭐지?”

“그, 그것은… 아직은 불안정할 수 있기에….”

“그게 아니면, 내게 저 마령혼을 이식할 생각이 애초에 없었다는 뜻이겠지. 누구냐?”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건지 도통….”

“나 말고 누구에게 이식할 생각이었나? 혹시 자네도 마령혼을 탐낸 건가?”

“그,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오해이십니다!”

하지만 추희룡의 표정에는 불신이 가득 차 있었다.

“내 이럴 줄 알고 이런 공간을 만들었지. 선택해라. 지금 당장 내게 마령혼을 이식할 것인지, 내 손에 죽을 것인지.”

“련, 련주님. 어째서 제게 이러십니까?”

“그건 자네가 더 잘 알 걸세. 혹여나 의식을 진행하다가 날 죽일 생각은 하지 않는 게 좋을 걸세. 내가 죽으면 자네는 영원히 이곳을 벗어나지 못할 테니.”

추희룡의 입매가 길게 찢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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