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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 마교관-508화 (508/670)

# 508

귀환 마교관

508화

싸늘한 밤바람이 매설란의 뺨을 스쳤다.

그녀가 하늘의 별을 올려다보다가 문득 옆에 선 사비강을 돌아보고는 입을 열었다.

“언제 이렇게까지 진행한 거야?”

생각하면 할수록 정말 대단한 남자다.

강림지 전투에서 돌아온 후 정신없이 시간이 흘렀다고 생각했는데, 사비강은 벌써 멸마궁을 준비하고 있었다니.

바로 곁에서 지켜보던 자신조차도 모르게.

사비강이 웃으며 답했다.

“강림지 전투에서 돌아오는 길에 생각한 거야.”

“갑자기 그런 생각을 한 이유라도 있어?”

“이유라….”

사비강이 가만히 중얼거리더니 저만치 언덕 위로 보이는 맹주전을 물끄러미 보았다.

잠시 후 그가 시선을 거두며 말했다.

“그냥 앞으로의 행보에서 자유로워져야 할 것 같아서.”

이곳에 있어도 자유롭지 않느냐고 물어보려던 매설란은 곧 속뜻을 짐작하고는 입을 다물었다.

생각해 보니 요즘 맹주의 태도와 언행이 조금 이상하긴 했다.

예전에는 든든한 지원군을 등 뒤에 둔 것만 같았는데, 언제부턴가 맹주의 눈치를 보게 됐다.

그러고 보면 맹주의 태도가 변한 것도 강림지 전투 이후였던 것 같다.

매설란이 사비강을 돌아보며 물었다.

“혹시 강림지 전투에서 맹주님이 심상을 입은 거야?”

“그럴지도 모르지.”

사비강은 두루뭉술하게 대답했다.

이 부분은 까다롭다.

왜냐하면 맹주의 지위는 어쨌든 강호에서 가장 존경받는 자리다.

자칫 흠집을 내는 듯한 언행은 사람들의 오해를 받기 쉽다.

더구나 사비강처럼 인지도가 급상승한 경우에는 예기치 않은 오해를 불러올 수도 있다.

매설란이 미간을 슬쩍 좁혔다.

“설마 맹주님이 방해하리라 생각하는 거야? 당신이 앞으로 하고자 하는 일을?”

“아직 모르겠어. 다만… 그럴 가능성도 있다고 봐.”

어디선가 변화가 시작되고 있는 것만은 분명했다.

사비강이 걱정스런 표정을 짓는 매설란을 돌아보며 부드럽게 웃었다.

“내려가면 바빠질 거야. 마족들이 본격적으로 침공하기 시작했으니, 멸마궁도 대책을 세워야겠지.”

“조직도 개편하고 체계도 갖춰야겠네.”

“그렇지. 각 조직의 이름을 새로 지어야 할지도.”

순간 매설란이 흠칫거리고는 말했다.

“나, 다른 건 욕심 안 낼게. 대신 나한테 이 권한만은 꼭 줬으면 해. 아니, 꼭 내게 주지 않아도 괜찮아. 당신이 직접 하지만 않으면 돼.”

“그게 뭔데?”

“적어도 조직명은 당신이 직접 짓지 말아줘.”

매설란의 진지한 얼굴에 사비강이 낙담어린 표정이 되었다.

“그런…! 난 이번에 멸마궁의 첫 번째 조직으로, 지상최고유일무이지존(地上最高唯一無二至尊)….”

“그마안! 빨리 약속해줘. 나에게 모두 맡기기로!”

“쩝… 당신이 그렇게 원한다면 어쩔 수 없지, 뭐.”

그제야 매설란이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고마워. 이제야 제대로 된 조직명이 되겠어.”

“뭐야? 그럼 그동안은….”

“그보다 이렇게 사람들을 모으게 되면 언젠간 맹주님도 불편한 기색을 드러내실 거야. 괜찮을까?”

매설란의 표정이 사뭇 진지해졌다.

사비강 역시 더는 농을 하지 않고 말을 받았다.

“그래도 어쩔 수 없어.”

“혹시 정말 맹주 자리를 노리는 건 아니지?”

사비강이 피식 웃었다.

“자리는 아무래도 상관없어. 다만… 강호가 날 필요로 한다면 거절할 생각도 없지.”

마지막 말을 마친 사비강의 시선이 저만치 맹주전을 빤히 바라보았다.

**

같은 시각.

어두컴컴한 맹주실 창가에서 능운파가 뒷짐을 진 채 서 있었다.

그의 시선은 저만치 아래에 내려다보이는 임시 멸마관에 머물러 있었다.

“사비강 관주가 사흘 안에 떠난다고?”

“그렇습니다.”

능운파 뒤에 시립한 이자준이 고개를 숙여 보이며 답했다.

능운파가 수염을 한 차례 쓸고는 읊조리듯 말을 이었다.

“오늘… 멸마관 연무장에서 비무가 있었다지?”

“예, 청성파와 아미파, 사천당가의 장문인들이 사비강 관주와 비무를 치렀습니다.”

“세 명과 동시에 치렀다고 들었네.”

“맞습니다. 결과는….”

능운파가 차갑게 웃었다.

“알고 있네. 이미 본단에 그 일에 대한 소문이 자자하니까. 나도 듣는 귀가 있네. 또 한 번 인기몰이를 제대로 한 모양이더군.”

“…….”

“이걸로 강호는 사비강의 행보에 대해 더욱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겠지. 그리고 더욱 많은 사람들이 사비강을 따를 테지. 결국 이 강호는 두 부류로 나뉘게 될 것이야.”

“어떻게 말씀입니까?”

“사비강을 따르는 강호인들과 마족을 따르는 강호인. 결국 맹주의 자리는….”

자연히 지워진다.

유명무실한 자리.

이미 정도맹의 명칭이 무색한 상황이다.

한데 그마저도 유지하기가 어렵게 될 터다.

거기에 사비강은 멸마궁을 지었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진행된 일이다.

‘결국 그가 날 지우려고 하는군.’

능운파의 표정이 차갑게 식었다.

하지만 상관없다.

어떤 일이든 예측 범위를 벗어날 경우 문제가 된다.

아직까지는 모든 일이 예상 범위에서 일어나고 있다.

언젠간 사비강이 자신을 위협할 순간이 오리라 생각했다.

그리고 그 순간은 이렇게 점점 다가오고 있다.

알고 있는 위기는 진정한 위기가 아니다.

대책을 세워서 잘 대처하면 된다.

오히려 지금처럼 사비강이 눈에 띄는 행동을 해준다면, 자신이 하는 일에 더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

“이자준 단주.”

“예, 맹주님.”

이자준이 깍듯한 태도로 답하자, 능운파가 그를 돌아보며 깊어진 눈으로 말했다.

“최근 들어 내 마음을 가장 잘 이해해주는 사람은 자네뿐이라고 생각하네.”

“더욱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좋아. 자네가 총군사와 함께 변절자를 처리할 토벌대를 구성하도록. 가장 능력 있고, 훌륭한 인재들을 긁어모아 주게.”

“명 받들겠습니다.”

“특히… 옳은 일이라면 목숨도 버릴 수 있는 자들이 좋겠지.”

“명심하겠습니다.”

능운파가 기분 좋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마족을 상대하는 동안, 우리는 강호를 상대한다.”

이자준의 표정에 의미심장한 미소가 스쳤다.

“물론입니다.”

**

어둠 속에서 그림자 하나가 귀신처럼 스르르 나타났다.

그는 바로 살막주 악천괴였다.

악천괴는 집무 책상 위에 가득 쌓인 짐 꾸러미들을 바라보며 눈살을 슬쩍 찌푸리곤 혀를 찼다.

“쯔쯔. 역마살이 끼인 게야. 어찌 이리도 자주 옮겨 다니누?”

당연히 사비강을 두고 한 말이었다.

벌써 몇 번째인가?

용천관에서 정도맹, 혈사련을 거쳐 멸마관에 머무는가 싶더니 이번엔 다시 정도맹으로 돌아왔다가 또 떠난다.

집무 책상에 앉아 있던 사비강이 피식 웃었다.

“영감이 내 역마살을 걱정해 줄줄은 몰랐군.”

“흥! 걱정은 무슨. 인간이 할 일이 없어서 괴물 걱정을 다할까?”

“괴물이라… 아직 진짜 괴물을 보지 못해서 하는 말이라고 생각하지.”

“잡설은 됐고. 이번엔 또 왜 불렀나?”

“바쁘면 굳이 안 와도 괜찮았는데.”

“니미… 불러 놓고 자꾸 지랄하는 이유는 또 뭔고?”

“불러서 와 놓고 자꾸 지랄하니까 하는 소리야, 영감.”

“커험!”

“말했다시피 난 살막에게 자유를 줬어. 내가 주문을 외운다고 해서 영감을 죽일 수 없다는 거지. 약속은 지킨다.”

“염병할. 자유고 나발이고 마족에게 강호인들이 다 죽어 나갈 판인데, 그깟 자유가 주어진들 뭔 소용이야? 일단 마족 놈들이나 다 조지고 나서 자유를 누리던가 말던가 해야 할 것 아닌가?”

“그래도 머리는 돌아가는 모양이네.”

“아, 그래서 자유를 줬다는 사람이 왜 자꾸 불러대는 거야?”

“누굴 좀 감시를 해줬으면 해.”

악천괴가 이맛살을 찌푸리고는 사비강을 노려보았다.

“감시? 누구를?”

다음 순간 사비강의 입에서 뜻밖의 인물이 튀어나왔다.

“맹주.”

악천괴가 눈을 휘둥그레 떴다.

그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맹주라면…? 정도맹주 능운파 그 영감을 말하는 건 아니겠지?”

“그자 말고 또 다른 맹주도 있었나?”

“허어! 정말 나보고 그 맹주를 감시하라는 건가?”

“그래.”

악천괴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재차 물었다.

“서로 지지고 볶으며 알콩달콩할 때는 언제고 이제 와서 왜?”

“모든 인간관계는 가변성을 지니지.”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일단 그건 그렇고. 맹주를 감시해서 어쩌라는 건가?”

“일단 감시해. 감시하다 보면 나한테 보고를 해야 할 뭔가가 생기겠지.”

사비강의 눈빛이 깊어졌다.

**

“살막을 내게 넘기시겠다?”

대회의장의 태사의에 앉은 능운파가 이맛살을 슬쩍 구기고는 사비강을 내려다보았다.

사비강 곁에는 악천괴가 서 있었다.

좌우로 늘어선 수뇌 인사들이 술렁거리며 얘기를 나눴다.

사비강이 부드러운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예, 맹주님. 이미 맹주님은 알고 계시다시피 그간 살막은 저를 위해서 헌신해왔습니다. 최고의 은신과 감시, 암살에 특화된 자들입니다. 강호의 변절자를 상대하기에는 이들보다 더 뛰어난 조직도 없을 겁니다. 해서, 마족을 상대하는 저보다 맹주님께 더 필요한 조직이라 생각했습니다.”

능운파가 사비강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웃음 지었다.

“허허, 떠나는 순간에도 내게 너무 과분한 선물을 남기는군.”

“별 말씀을요. 자, 악 막주는 맹주님께 정식으로 인사 올리시오.”

사비강의 말에 악천괴가 떨떠름한 표정으로 한 걸음 나서더니 포권했다.

“살막주 악천괴요. 내게 너무 과한 충성을 바라진 마시오. 다만, 죽여야 할 녀석이 있다면 그 누구라도 쥐도 새도 모르게 제거해 주겠소. 이유 따위는 묻지 않겠소.”

능운파가 가만히 바라보다가 슬쩍 미소 지었다.

“누구라도… 말이오?”

“그렇소.”

“가령 내가 여기에 있는 누군가를 죽이라고 하더라도?”

악천괴의 표정이 흠칫 굳으면서 능운파를 올려다보았다.

뜻밖의 질문에 수뇌 인사들도 당황한 듯 장내가 술렁거렸다.

능운파는 대답을 기다리는 듯 여전히 희미한 웃음을 지은 채 악천괴를 바라보고 있었다.

“물론이오. 누구라도.”

악천괴가 다시 한 번 못을 박았다.

그러자 능운파가 파안대소하며 말했다.

“하하하! 다들 뭘 그리 굳은 표정을 짓고 있소? 농이었소. 예컨대 여기 있는 자들 중에서도 변절자가 생긴다면 처리할 수 있을지 물어본 것일 뿐이오.”

그제야 수뇌 인사들도 표정이 풀어지며 툴툴 웃음을 터뜨렸다.

다만 사비강만은 능운파를 가만히 바라볼 뿐이었다.

능운파가 악천괴를 바라보며 흡족한 듯 웃었다.

“과연 든든하군. 그럼 악 막주께서 앞으로 내 힘이 되어 주시오.”

“좋소.”

능운파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예의 그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사비강을 보았다.

“그간 정이 들었는지 오늘따라 섭섭하군. 왠지 이대로 자네를 떠나 보내면 다시 보기 어려울 것이란 생각이 들어. 하지만 가야 할 길이 있으니 망설임은 없어야겠지. 먼 길 조심해서 가시게. 그대의 앞길이 평탄하기를.”

“감사합니다. 맹주님도 늘 몸조심하십시오.”

사비강이 포권을 하고는 미련 없이 돌아섰다.

내딛는 그의 발걸음에서 강단이 느껴졌다.

반면 사비강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맹주의 미소가 차츰 비소로 번져 갔다.

‘후후, 내게 감시를 붙이시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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