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환 마교관-505화 (505/670)

# 505

귀환 마교관

505화

먼발치에 마족 기사들과 마물들이 잔뜩 모여 있었다.

그들이 뿜어내는 마력이 언덕 위까지 고스란히 전해질 정도로 강렬했다.

청성파의 문주인 건곤신검(乾坤神劍) 유자양(劉紫陽)이 성성한 수염을 쓸며 눈을 가늘게 떴다.

“큰일이로다. 마족과 마물에 대해서 소문으로만 들었건만, 저치들이 진짜로 나타날 줄이야.”

“저놈들은 강호인들만 집중적으로 노리는군요. 무공에 대한 호기심 때문인지 뭔지는 모르겠으나, 이대로라면 사천을 전부 내줘야 할지도 모르겠어요.”

아미파의 장문인 혜현사태(慧顯師太)가 중얼거리자, 곁에 있던 사천당가의 가주 당무열(唐武烈)이 고개를 끄덕였다.

“분하지만 일단은 후퇴를 해야 할 듯합니다. 여기선 더 이상 승산이 없습니다.”

그의 시선이 언덕 위의 진영을 한 차례 휩쓸었다.

사천의 크고 작은 문파들이 모두 모여서 격전을 치렀지만 득보단 실이 많은 싸움이었다.

그나마 멸마관에서 지원군을 보내지 않았더라면 이마저도 버티지 못하고 전력의 팔 할 이상을 잃었으리라.

마침 저만치 막사에서 걸어 나오는 추량을 보고는 세 사람이 동시에 포권을 취하며 사례했다.

“두 분의 은공으로 큰 피해를 막을 수 있었습니다.”

“고맙소!”

“멸마관 소속이라 들었어요. 이 도움은 잊지 않을 겁니다.”

그러자 추량이 손사래를 쳤다.

“별 말씀을요. 사부님의 지시에 따른 것일 뿐입니다. 큰 피해를 막을 수 있어서 다행입니다.”

“사부님이라면 역시 사비강 관주님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하하! 그렇습니다. 제가 바로 그분의 수제자인 추량입니다.”

“과연. 어쩐지 무위가 남다르다 생각했습니다. 특히 그 기묘한 강기를 발현하시는 걸 보고 정말이지 놀랐습니다.”

“아… 강기… 하하! 감사합니다.”

사실 강기가 아니라 마나검이었지만, 추량은 굳이 그 개념을 설명할 필요가 없었기에 대충 넘어갔다.

대신 진중한 표정으로 말을 이어 갔다.

“우선 본맹에서도 이번 일을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총군사님이 곧 대책을 세우시겠지만, 당장은 사천에서 물러날 수밖에 없을 듯합니다.”

“그렇잖아도 우리 역시 같은 생각이었소. 희생자들을 추모할 여유도 없이 물러나야 한다는 게 분하지만 어쩔 수 없지. 마령교가 뿌리 뽑히고 나니 이번엔 마족이라니… 허참….”

유자양의 한탄에 당무열이 말을 이었다.

“일단 중경(重慶)의 바위산들이 완충 역할을 할 것 같으니 호북성까지 물러나야 할 것 같습니다. 호북에는 무한의 신월문과 만검세가가 있고, 무당파가 아직 건재하니 마족들이 쉽게 치고 오진 못할 겁니다.”

“호북으로 물러나더라도 언제까지 이렇게 임시 막사로 버티고 있을 수는 없겠지요. 대책을 심도 깊이 논의해야 할 필요가 있어요.”

혜현사태의 말에 유자양이 고개를 끄덕였다.

“옳은 말씀이오. 해서, 우선은 맹의 본단으로 가서 맹주님과 함께 대책을 논의해 보는 것이 어떨까 싶소만.”

“그것도 좋은 방법이군요. 그런데 그 전에 우리 사천의 문파들이 하나의 대응 조직을 구성하는 것은 어떻습니까? 섬서회(陝西會)처럼 우리 모두 사천에 적을 두고 있었으니 조직명은 사천회(四川會)가 어떻습니까?”

당무열의 말에 혜현사태가 고개를 끄덕였다.

“간단하고 좋네요. 나는 찬성이에요.”

“나 역시 찬성이오. 이렇게 된 이상 우리가 뭉쳐야 할 수밖에 없지 않겠소?”

“좋아요. 우리 세 사람이 뜻을 모은다면 다른 문파도 함께 하리라 생각합니다.”

혜현사태가 말하자, 당무열이 다시 입을 열었다.

“하면 사천회의 회주를 정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렇군요. 우리 중에서 가장 경험이 많은 유 문주님이 하시는 건 어떨까 싶은데.”

혜현사태가 선뜻 제안하자, 당무열도 큰 반론 없이 받아들였다.

“저 역시 같은 생각이었습니다. 어떻습니까? 유 문주님께서 사천회를 이끌어 주시겠습니까?”

“여러분들이 미천한 나를 믿고 따라준다면 최선을 다해 저 마족들을 몰아내고 사천을 되찾을 수 있도록 노력하리다.”

유자양의 대답에 두 사람이 서로를 보며 고개를 끄덕이더니 곧 포권을 취했다.

“회주님, 앞으로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나 역시 잘 부탁드리오.”

유자양이 얼른 포권하며 인사를 받았다.

**

푸욱!

“꺼어억…!”

폐부 깊숙이 검신을 쑤셔 박은 무인이 눈을 부릅뜨고는 능운파를 바라보았다.

“맹주…님?”

“…….”

“어째서…?”

쑤우우욱!

츄아아아아!

피를 분수처럼 터뜨린 무인이 호숫가에 첨벙 쓰러졌다.

가슴에서 흘러나온 피가 수면을 따라 번져 나갔다.

“훅, 후욱, 후욱…!”

능운파는 거칠게 숨을 몰아쉬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호숫가에 온통 즐비한 시체.

고개를 숙여 보니 핏물에 자신의 얼굴이 비쳤다.

감정이라곤 깃들지 않은 얼굴.

한데 그 얼굴을 뚫고 또 다른 얼굴이 불쑥 솟구치며 올라왔다.

“맹주! 어째서 나를 죽였소!”

치렁치렁한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물속에서 불쑥 솟구친 자는 다름 아닌 욱청풍이었다.

그가 귀신같은 얼굴로 달려들더니 뼈밖에 남지 않은 손으로 능운파의 목을 콱 틀어쥐었다.

“맹주! 난 도저히 억울해서 혼자 죽을 수 없소!”

“큭…! 으아아아압!”

능운파가 소리를 버럭 내지르면서 상체를 벌떡 일으켰다.

“헉, 헉, 헉…!”

뺨과 턱을 따라 땀이 비오듯 흘러내렸다.

그는 가까스로 정신을 차리고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어두컴컴한 침실.

자신이 죽였던 무인들로 채워진 핏빛 호수는 보이지 않았고, 방안의 건조한 공기만 느껴졌다.

‘꿈… 인가?’

능운파는 미간을 좁히고는 침상에 걸터앉았다.

목을 어루만져 보니 목걸이가 매만져졌다.

별 모양의 장식.

샤아아아…!

장식에서는 여전히 감미로운 속삭임이 들려오고 있었다.

능운파가 나직이 입을 열었다.

“너는 대체 누구냐?”

- …너다.

“뭐?”

능운파가 흠칫거리고는 다시 물었다.

지금까지 알 수 없는 느낌만은 계속 받았지만, 이렇게 또렷하게 대화를 나눠 본 것은 처음이었다.

- 나는 곧… 너다.

“나라니…”

- 네 욕망의 집약체. 그것이 바로 나다.

머릿속을 울리는 웅혼한 목소리.

잠시 후,

샤아아아아아!

목걸이에서 강렬한 빛이 뿜어져 나왔다.

능운파가 눈살을 잔뜩 찌푸렸다가 뜨자, 맞은편에 시커먼 존재가 서 있었다.

놀랍게도 그는 바로 능운파 자신이었다.

다만 입은 옷이 온통 검은 색이었고, 그의 눈동자도 검은자밖에 없었으며, 피부도 마치 어둠에 묻혀 버릴 것처럼 검었다.

그럼에도 두 눈빛만큼은 흑요석처럼 영롱해서 그 시선을 바로 알 수 있었다.

- 운명을 거부하지 말라. 너는 일마지하만인지상(一魔之下萬人之上)의 존재가 될 수 있으니.

“일마…지하…?”

- 선택받은 존재는 갈등이 필요 없다. 인간으로 태어나 궁극의 존재로 승화할 기회가 주어졌다.

“궁극의 존재…”

- 어둠을 정면으로 마주한 자. 달아나지 않고 운명을 받아들인 자. 초월적인 존재로 거듭날 수 있으니….

다음 순간, 검은 능운파의 몸이 연기처럼 퍼져 나가는가 싶더니 이내 능운파의 전신으로 흡수되기 시작했다.

“헛…!”

어느 순간 능운파가 눈을 부릅떴다.

어떤 개념들이 능운파의 머릿속으로 끊임없이 주입되고 있었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검은 연기를 모두 흡입하고 나자, 능운파의 눈동자가 온통 새카맣게 변했다.

잠시 후, 그가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그런 거였군. 일마지하만인지상이라….”

그의 가슴에 매달린 목걸이가 일순 빛을 반짝였다.

**

“멸마궁을 만들겠다?”

능운파가 눈을 가늘게 뜨고는 물었다.

사비강이 희미하게 웃음 지으며 답했다.

“그렇습니다.”

“하면 기존의 멸마관과 무엇이 다른가?”

“멸마관보다 좀 더 포괄적인 개념이지요.”

“포괄적이라…?”

“멸마궁 안에 멸마관이 존재하는 겁니다. 멸마관에서는 인재를 키우고, 멸마궁은 본격적으로 마족과 싸우는 무인들로 구성될 겁니다.”

“한 마디로 세를 좀 더 키워 보겠다는 거군.”

능운파가 피식 웃으며 말하자, 장내의 공기가 일순간 싸늘하게 식었다.

옆에 선 구윤도 조금은 긴장한 얼굴로 두 사람을 번갈아보았다.

최근 들어 능운파의 심기가 불편해 보인다는 건 이미 눈치 채고 있었다.

한데 그것이 지난 출정 이후로 좀 더 심해졌다.

위기에 빠진 능운파를 구한 후, 사비강의 명성은 전보다 더욱 높아져 있었다.

맹주의 입장에서는 사실 썩 달가운 현상은 아닌 것이다.

사비강이 말했다.

“마족들이 사천을 장악했습니다. 그들이 본격적으로 나온 만큼 이쪽에서도 철저한 준비를 해두기 위함입니다.”

“하긴. 그래야지. 그럼 보다 마족에 대해서 잘 아는 자네가 나서야 할 테고. 자네를 따르는 자들도 많아졌으니까.”

“이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사비강이 빙그레 웃자, 구윤은 속이 바짝바짝 타들어 가는 듯했다.

‘사 관주님, 지금은 아닙니다. 정녕 맹주님의 속뜻을 모르시겠습니까?’

분명 맹주가 사비강을 보는 시선은 달라져 있었다.

처음에는 장로회주인 욱청풍이 죽어서 그 슬픔을 못이긴 것이라고만 여겼다.

하지만 지금은 확실히 알 수 있었다.

맹주는 지금 사비강을 견제하고 있다!

한데 사비강은 눈치가 없는 건지 오히려 맹주의 심기를 거스르는 말만 하고 있지 않은가?

“하면 멸마궁은 어떤 건물을 쓰고 싶은 건가?”

“아, 맹의 본단에 있을 생각은 없습니다.”

“그럼?”

“호북으로 갈 생각입니다.”

“무한에 다시 터를 잡을 생각인가?”

“그건 아닙니다. 실은 이미 형주(荊州)에 멸마궁을 건설 중에 있습니다.”

사비강의 말에 다시 한 번 장내가 술렁거렸다.

구윤은 이제 눈을 지그시 감아 버렸다.

맹의 본단도 모르게 그런 대업을 추진하고 있었으니, 아무리 마음이 넓은 맹주라도 불편한 심경이 될 수밖에 없으리라.

한데 요즘처럼 심기가 어지러울 때라면 절대로 곱게 보이지 않을 터.

아니나 다를까, 능운파가 눈살을 찌푸리며 물었다.

“그런 일을 진행하고 있으면서 어찌 내게 말 한 마디 하지 않았는가?”

“그저 당연한 수순이라 보고를 드리지 않았습니다. 멸마관은 현재 임시로 맹의 본단에 머물러 있는 처지니까 언젠간 떠나야 하지 않겠습니까?”

결국 구윤이 넌지시 나섰다.

“관주님, 지금은 혼돈의 시기인 만큼 좀 더 신중하게 결정해야 할 듯합니다. 아직은 본단에 머무시면서….”

“아닐세.”

능운파가 돌연 구윤의 말을 끊으면서 나섰다.

모두의 시선이 능운파에게 향했다.

능운파가 수염을 한 차례 쓸고는 입매를 치켜 올리며 말했다.

“그렇잖아도 나 역시 자네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네. 마족에 대해 자네만큼 잘 아는 자도 없지. 그러니 그들을 전담할 조직을 맡는 건 당연한 일이지. 더구나 본단에 머물면서는 여러 가지 불편한 점도 많을 테니. 이렇게 갑작스럽게 보내게 되어서 아쉽지만 강호가 더 안전해지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지.”

의외로 이야기가 쉽게 풀리자, 오히려 구윤이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

“맹주님, 유사시엔 그의 도움이 필요할 지도….”

“군사.”

“예, 맹주님.”

“내겐 그대가 있지 않은가?”

능운파의 시선이 구윤에게 향했다.

그 눈빛에서 어딘지 모를 위화감을 느낀 구윤이 속으로 뇌까렸다.

‘대체… 무슨 생각이십니까?’

그가 속말을 삼키고는 차분하게 대꾸했다.

“절 믿어 주시는 것만은 영광스러운 일입니다만….”

“실은 이번 토벌대 출정을 겪고 나서 나 또한 생각해 둔 것이 있네.”

“생각하신 것이라면…?”

“정도맹을 이원화 하자는 거지.”

다시 한 번 장내가 술렁거렸다.

구윤이 뜨악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정도맹을 둘로 나누자는 말씀이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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