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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 마교관-501화 (501/670)

# 501

귀환 마교관

501화

“현재 토벌대 상황부터 자세히 말해 봐라.”

사비강이 심각한 표정으로 묻자, 홍염이 고개를 숙여 보이고는 대답했다.

“토벌대가 소환지 출입구로 들어가고 두 시진이 지났을 때, 갑자기 출입구가 사라졌다고 합니다.”

“출입구가 사라졌다?”

“예, 혹시 몰라서 출입구가 있던 자리를 더듬어 보았지만, 동혈은 온데간데없고 완전한 암벽이었다고 합니다. 물론 칼을 부리고 장력을 날려 보았지만, 끄떡도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사비강이 눈살을 찌푸렸다.

출입구가 사라졌다는 건 분명 보통의 소환지에서 일어나는 일이 아니다.

그럴 경우는 대체로 진짜 보스가 따로 있다는 뜻이다.

말하자면 그럴싸한 가짜 보스 몹을 내세워서 강하고 질 좋은 먹이를 낚아채려는 함정과도 같은 곳이다.

홍염이 말을 이었다.

“출입구가 사라지기 직전, 토벌대원 한 명이 뛰쳐나와서 위급 상황을 알려 왔습니다. 하지만 그 역시 곧 사망했다고 합니다.”

“진짜 보스가 출현한 거군.”

“보스라면…?”

“수장을 말하는 거다. 우두머리.”

“아… 하면 그 소환지는 함정 같은 곳인 겁니까?”

“말하자면 그렇지. 출입구가 사라진 건 진짜 보스가 나온 후로 결계가 생겼기 때문일 거야. 들어가고 나올 방법은 있지만, 중원인이라면 어렵지.”

“하면 주군께선…?”

“나라면 가능해.”

지금껏 마계 도구를 습득하러 다닌 곳마다 결계가 있었다.

그럼에도 큰 문제가 되지 않았던 건 대부분의 결계 원리를 알고 있었고, 그가 마나를 다룰 줄 알기 때문이었다.

물론 서클이 높기 때문이기도 했다.

제아무리 마나를 잘 다루고, 결계의 원리를 알더라도 마나 량이 부족하거나 서클이 낮으면 시도조차 못할 것이다.

‘일단 소환지 쪽은 구할 수 있는 사람이 나밖에 없겠군.’

마음을 정한 사비강이 홍염을 보았다.

“지금 두정산 쪽 상황은?”

“사천당가와 아미파(峨嵋派) 그리고 청성파(靑城派)를 필두로 인근의 크고 작은 문파들이 결집하여 대항 조직을 꾸리고 있습니다.”

하긴 그럴 수밖에 없을 것이다.

당장 마족이 사천을 휩쓸고 다니면 그 인근 지역의 문파들은 멸문을 각오해야 할 테니.

그래도 그 세 문파가 주도해서 대항 조직을 꾸린다면 효과는 있으리라.

사천당가를 비롯한 아미파와 청성파는 사천을 대표하는 거대 문파다.

구파일방의 명성이 예전만 못할지라도, 여전히 인근 방파를 아우를 수 있을 정도의 권위는 있다.

그나마 그들이 적극적으로 나서 주니 다행이다.

다만 마족 기사까지 참여하는 본격 전쟁이니 결코 쉽지 않으리라.

“이 사실을 현재 누가 알지?”

“총군사님이 알고 계십니다.”

그렇다면 정도맹에서도 곧바로 대책 마련에 들어갈 것이다.

아마도 총군사의 권한으로 직접 지시가 내려지리라.

하지만 발등에 떨어진 불을 끄기 위해서는 좀 더 서둘러야 한다.

사비강이 추량을 돌아보았다.

“량, 너는 지금부터 기동력이 빠른 철혈단과 함께 곧장 사천으로 달린다. 가서 최대한 네 실력 발휘를 하도록.”

“알겠습니다, 관주님!”

“염, 사천 주위의 모든 문파들에게 이 사실을 알리고 정사를 막론하고 결집할 수 있도록 유도해라. 소환지를 관리하는 귀영단의 이름으로 나서면 거부하는 자들은 거의 없을 거다.”

“알겠습니다. 한데… 강호 일부에서 조금 이상한 움직임이 보이고 있습니다.”

“이상한 움직임이라면?”

“마족을 추종하는 세력이 생겨나고 있습니다.”

“이런 미친 새끼들이!”

순간 추량이 발끈해서 버럭 고함을 내질렀다.

하지만 사비강은 별로 놀라지 않았다.

이미 예상된 수순이었다.

전생에서도 인간들 중 상당수가 자발적으로 마족의 앞잡이 노릇을 했으니까.

그 중 대표적인 인물이 전 혈사련주 허무극이었다.

사비강이 착 가라앉은 표정으로 말했다.

“일단 급한 불부터 끄는 게 우선이니 시킨 것부터 하도록.”

“존명!”

“그럼 각자 할 일을 하도록.”

“그럼 토벌대는 어쩔 생각이십니까?”

“내가 직접 간다.”

사비강의 대답에 홍염과 추량이 서로를 바라보았다.

잠깐 놀라면서도 한편 그럴 줄 알았다는 표정.

곧 그들이 신뢰를 가득 담은 얼굴로 포권을 취했다.

“지금 당장 출발하겠습니다!”

**

쉬이익, 탁!

바람 같은 속도로 그림자 하나가 암벽 앞에 내려섰다.

어찌나 빠른 속도로 날아든 것인지 그림자가 멈춘 주변으로 뿌연 먼지가 일어나며 안개처럼 퍼져 나갔다.

먼지 안개가 걷히면서 드러난 얼굴.

바로 사비강이었다.

마침 그를 확인한 귀영단의 오영(五影)이 바로 곁으로 내려섰다.

“주군, 오셨습니까?”

그는 깍듯하게 인사를 올리긴 했지만, 내심 경악스러울 정도로 놀라고 있었다.

가장 빠른 수단을 이용해서 보고를 보냈다고는 하지만, 이렇게 빨리 사비강이 도착할 줄은 몰랐던 것이다.

정말 빨라도 이틀은 지나야 도착할 것이라 생각했다.

한데 보고를 올린 당일에 도착하다니!

사비강이 고개를 돌리고 물었다.

“시체는?”

오영이 얼른 사비강을 시체 앞으로 안내했다.

“출입구가 사라지기 직전에 안에서 뛰쳐나왔습니다만, 곧 목숨을 잃었습니다.”

토벌대원의 시신을 가만히 훑어보던 사비강이 눈살을 찌푸렸다.

‘독에 당했어.’

몇몇 떠오르는 보스급 마물이 있다.

오영이 설명을 덧붙였다.

“출입구가 사라진 후 지금까지 대략 일곱 시진이 지났습니다.”

“서둘러야겠군.”

일곱 시진이면 하루의 절반이 훌쩍 넘은 게 아닌가?

그동안 소환지에 갇힌 무인들이 얼마나 잘 버티고 있을지 알 수 없다.

적어도 한 가지는 분명했다.

출입구가 다시 나타나지 않고 있다는 것은 아직도 살아 있는 사람이 존재한다는 뜻.

오영이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죄송합니다만, 아직까지 다른 곳에서도 출입구를 찾지 못했습니다. 최대한 빨리 수색을….”

“그럴 필요 없어.”

“예?”

“출입구는 여전히 여기에 있으니까.”

“어디에….”

오영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주위를 둘러보는데, 사비강이 대답 대신 저벅저벅 걸음을 옮겼다.

그러더니 놀랍게도 그대로 암벽 속으로 쑤욱 파묻혀 들어가는 게 아닌가?

“어어…?”

오영이 입을 딱 벌리고는 돌처럼 굳어 버렸다.

잠시 후, 그가 얼른 달려가 암벽을 두드려 보았다.

역시나 완벽한 바위.

단검으로 찌르고 장력을 날리고, 발을 차도 마찬가지.

단단한 암벽이었다.

‘대체 어떻게 한 거지? 설마 환영 진법 같은 건가?’

환영 진법 중에는 눈에 보이는 걸 믿는 순간, 현실이 되는 경우가 있다.

만약 이것도 없는 벽이 보이는 것일 뿐이라면 안 믿으면 그만이리라.

그 중 가장 좋은 방법은 역시 눈을 감고 걸어 들어가는 것이다.

‘자아… 눈을 감고…!’

오영이 눈을 질끈 감고는 걸음을 저벅저벅 옮겼다.

쿵!

하지만 그는 결국 암벽에 부딪치고 말았다.

사실 이곳만큼은 일반적인 환영 결계와 달리 한 가지를 더 시도해야 했다.

바로 마나의 주파수를 맞추는 것.

하이 서클인 사비강은 가능했지만, 마나를 다룰 줄 모르는 오영으로서는 죽었다가 깨어나도 불가능한 방법이었다.

**

촤아악!

“퀴에에엑!”

고블린 한 마리가 비명을 내지르며 쓰러졌다.

철퍽!

능운파는 쓰러진 고블린의 머리통을 밟아서 으깨 버리고는 이를 빠득 갈았다.

그의 눈빛이 분노로 이글거렸다.

‘제기랄!’

그는 검을 콱 말아 쥐고는 성큼성큼 걸음을 옮겼다.

동굴은 마치 미로처럼 복잡하게 얽혀 있었다.

그 때문에 토벌대는 처음 이곳에 들어왔을 때 한동안 길을 잃고 헤맬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우습게도 지금은 그 복잡한 길이 오히려 생명줄이 되고 있었다.

삼두마를 극적으로 죽인 후 능운파가 모든 무인들에게 칭송을 받고 있을 때, 생각지도 못한 마물이 튀어나왔다.

마치 바다에 사는 문어를 닮은 거대한 마물.

여덟 개의 굵고 기다란 촉수에는 역시나 문어처럼 커다란 빨판이 있었는데, 공기까지 모조리 빨아들일 만큼 강렬한 흡입력을 보였다.

뿐만 아니라 녀석의 주둥이에서는 먹물이 뿜어졌는데, 그 체액에 닿으면 순식간에 살이 썩어 버렸다.

어떤 이는 그 독향 만으로도 내상을 입고 주화입마에 빠져 미쳐 버리기도 했다.

결국 무인들은 혼비백산 흩어지면서 공동 사방으로 뚫려 있는 통로를 따라 내달리기 시작했다.

뭉쳐 있으면 한꺼번에 죽기 십상이었기에 능운파는 모두 뿔뿔이 흩어져서 우선 몸을 숨기도록 명령을 내렸다.

그 때문에 능운파 역시 지금 혼자 통로를 걷고 있었다.

통로에는 이따금씩 고블린이나 슬라임 같은 마물들이 나타나곤 했는데, 능운파의 적수가 되진 못했다.

‘제길! 삼두마가 이곳 우두머리가 아니었단 말인가?’

자신의 활약이 순식간에 빛바랜 셈이 됐다.

불과 조금 전만 해도 자신을 향해서 만세를 외치던 무인들은 이제 뿔뿔이 흩어져서 목숨을 겨우 부지하고 있을 터였다.

아마 개중 몇몇은 저 문어 마물에게 잡아먹혔거나 독액에 온몸이 썩어 버렸을지도 모른다.

그도 아니면 주화입마에 걸려 미쳐 버렸거나.

마침 저만치 갈림길이 나타났다.

능운파가 오른쪽으로 꺾어 돌아가려는 찰나,

스르르릇!

거대한 구렁이 같은 촉수가 꾸물거리며 기어 나오는 것이 아닌가?

능운파가 얼른 숨을 멈추고는 뒤로 훌쩍 물러났다.

강기로도 쉽게 베어지지 않는 촉수였다.

마치 목검으로 고무를 치는 느낌이랄까?

촉수를 감싸고 있는 특유의 오러가 강기를 막아내고 있었다.

오른쪽 통로에서 나타난 촉수는 왼쪽 통로로 미끄러지듯 나아갔다.

스르르 미끄러지며 지나가는 촉수의 빨판에는 한 무인의 상반신이 빨려 들어가 다리만 버둥거렸다.

‘저런…!’

능운파의 몸이 움찔 떨렸다.

생각 같아서는 당장 달려들어 상반신이 먹힌 무인을 구하고 싶었다.

하지만 자칫하다간 자신도 위험해진다.

뿐만 아니라, 저 무인을 구할 수 있을지 없을지도 모른다.

운 좋게 저 촉수 다리를 잘라낸다고 하더라도, 저 무인이 생존해 있으리란 보장이 없지 않은가?

능운파는 자신의 무기력함에 다시 한 번 좌절감을 느끼면서 어금니를 빠드득 갈았다.

‘결국 이 정도인가? 결국… 이게 나의 한계란 말인가?’

주먹을 콱 말아 쥐던 그는 문득 손바닥 안에서 느껴지는 이물감에 천천히 손을 펴보았다.

‘이건…?’

일전에 이자준이 자신에게 주었던 목걸이였다.

품에 넣고 있었는데, 언제 그걸 꺼내 쥐었는지 기억도 나지 않았다.

다만 목걸이를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으니 참을 수 없는 유혹에 휩싸였다.

왠지 이 목걸이를 목에 거는 순간 아무것도 두려울 것이 없으리란 생각이 물밀 듯 들었다.

하지만 그는 오랜 경험으로 알고 있었다.

이렇게 강한 유혹이 있을 때는 분명 그만한 함정이 도사리고 있다는 것을.

그리고 다행히 아직까지는 그에게도 마지막 이성이 남아 있었다.

‘도대체 이 물건이 무엇이기에 나를 이다지도 흔드는가?’

목걸이는 대답이 없었지만, 마치 뭔가 말하는 것만 같았다.

그건 중요한 게 아니라는 듯.

복잡한 생각 따윈 접어 버리고 자신을 취해서 새로운 도약을 해보라는 듯.

샤아아아…!

목걸이에서 차츰 황금빛 기운이 번져 왔다.

그 기운은 능운파의 콧속을 따라 폐부 깊숙이 침투했다.

이제 목걸이의 속삭임이 더 없이 달콤하게 느껴졌다.

‘나를 걸어라. 나를 목에 걸면 원하는 걸 얻을 수 있다. 더욱 강해져서 중원을 구할 수도 있다. 이보다 좋을 것도 없지 않은가? 당신은 이 중원의 진정한 주인으로 거듭나리라. 만인지상의 위엄을 느끼리라. 인간을 넘어서는 초월적 존재로 거듭나리라.’

정말이지 가슴이 녹아내릴 정도로 달콤한 속삭임.

그것은 귀로 전달되는 언어가 아니라, 머릿속으로 바로 울려오는 느낌 같은 것이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까닭모를 거부감도 조금씩 줄어들기 시작했다.

결국 능운파는 목걸이를 들어 천천히 목으로 가져갔다.

그런데 그때,

“맹주님?”

흠칫거리고 돌아보니 욱청풍이 서 있었다.

“아… 욱 회주.”

“무사하셨군요. 정말 다행입니다.”

욱청풍이 다가오며 말하자, 잠시 정신을 놓았던 능운파도 차츰 이성이 돌아오기 시작했다.

그는 미간에 주름을 잔뜩 새긴 채로 손에 들린 목걸이를 보았다.

‘또 잠깐 이성을…!’

욱청풍이 다가와 목걸이를 보고는 물었다.

“이건… 뭡니까?”

“창신단주가 강림지 전투 때 습득했다는 기물이오. 아마도 마계의 물건일 테지.”

“굉장히 요사스러운 기운을 품고 있군요.”

“욱 회주가 보기에도 그렇소?”

“물론입니다. 어딘지 사람의 마음을 어지럽히는 구석이 있는 것 같습니다.”

능운파가 심각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그런 듯하오. 해서 욱 회주께 부탁이 있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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