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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 마교관-497화 (497/670)

# 497

귀환 마교관

497화

“반역이라?”

태좌에 앉은 마왕 타란트가 실눈을 떴다.

우우우우웅!

그의 전신에서 뿜어져 나오는 강렬한 마력 때문에 앞에 서 있던 존야는 숨도 쉬기 힘들 지경이었다.

그래도 인간들 사이에서는 초절정의 경지에 올라 반로환동까지 이룬 그녀였다.

한데도 마왕 타란트가 뿜어내는 기운은 그녀가 온전히 감당하기에 너무나 벅찬 것이었다.

바리탄이 고개를 조아리며 보고했다.

“예, 베르타스의 행방을 찾아낸 아라니우스 공작이 독단적인 행동을 벌이다가 발각되었고, 그가 모든 것을 실토했습니다. 열 명의 기사들이 함께 확인했습니다.”

“그리고… 자결을 했다?”

“예, 폐하. 마지막까지 죗값을 치르고 뉘우칠 기회를 받으라고 설득해 보았으나… 끝내 반역의 뜻을 굽히지 않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워낙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어서.”

바리탄은 눈빛 하나 흔들리지 않고 말했다.

“그대는 어째서 베르타스의 존재를 알지 못했는가?”

“다소 의심은 들었으나, 검의 모양새가 달랐습니다. 신이 아둔하여 미처 눈치 채지 못한 점 깊이 반성하고 있습니다.”

타란트는 가늘게 뜬 눈으로 바리탄을 빤히 응시했다.

잠시 후 그가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알겠다. 그만 물러가도 좋다.”

바리탄이 깊이 읍소를 하고는 물러났다.

잠시 후 허공에서 음침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결국 그가 저질렀군요.”

“어디까지 설칠지 기대가 되는군.”

타란트가 대꾸하자 그의 옆 허공에서 검은 기운이 스르르 맺히더니 묘한 분위기를 풍기는 존재가 나타났다.

그는 바로 자콕 백작이었다.

“아라니우스 공작이 가지러 갔던 것은 베르타스가 맞을 겁니다.”

“그렇겠지.”

타란트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반역은 새빨간 거짓말일 것이다.

아마 바리탄이 수를 쓴 것이리라.

아라니우스는 바보스러울 정도로 충직한 신하였다.

오히려 그 바보스러움이 짜증이 날 정도였다.

때문에 타란트는 아라니우스의 죽음에 일말의 아쉬움도 느끼지 않았다.

물론 마족 특유의 성격상 동정심과 같은 연민의 감정은 거의 느낄 수가 없다.

다만 충직했던 신하가 죽으면 아쉬운 마음이 들 수는 있었다.

그럼에도 타란트는 오히려 냉소적이었다.

“그리 무능하니 바리탄 같은 녀석에게 죽을 수밖에.”

배신보다 나쁜 것은 무능이라 생각하는 타란트였다.

배신은 자신이 짓눌러 버리고 굴복시키면 된다.

하지만 무능은 고칠 방법이 없다.

자콕이 나직한 소리로 말을 이었다.

“역시… 그는 돌아온 자군요. 사비강.”

타란트가 고개를 끄덕였다.

“마계에서 돌아온 자, 사비강이라… 재미있군.”

그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걸렸다.

**

찻잔을 들어 올리던 능운파가 멈칫거렸다.

그가 가늘게 뜬 눈으로 마주 앉은 매설란을 빤히 보았다.

“토벌대에 참여하고 싶다고 하셨소?”

“네.”

매설란이 단호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맑게 빛나는 눈과 오뚝한 코, 꽉 다문 입술. 거기에 홍조가 살짝 도는 뺨과 가는 목선.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그녀를 한 번 보면 넋을 놓는다는 말이 실감났다.

‘과연 아름답구나.’

매설란을 이렇게 가까운 곳에서 오랫동안 본 것은 처음이었다.

능운파가 내심 감탄하는 사이, 매설란이 조곤조곤 말을 이어 갔다.

“맹주님이 직접 참여하는 소환지 토벌대가 구성된다고 들었습니다. 소환지 중에서도 가장 높은 등급을 친다는 말까지요. 거기에 참가하고 싶습니다.”

“흐음. 갑자기 이런 부탁을 해오는 게 무엇이오?”

“당연히 마족들을 섬멸하는데 도움이 되고 싶어서 입니다.”

매설란이 또박또박 대꾸했다.

하지만 좀 더 깊이 따지고 들자면, 그런 대의적인 이유보다는 개인적인 이유가 더 강했다.

지금껏 그녀는 단 한 번도 마물과 싸운 적이 없었다.

만약상을 만나러 갔다가 마물들이 어찌 생겼는지 겨우 보았을 뿐이었다.

소환지 토벌에도 참여한 적이 없었고, 강림지 근처도 가보지 못했다.

‘시험해 보고 싶어. 내 실력을.’

그녀의 솔직한 심정이었다.

강호를 위기로부터 구하겠다는 대의명분보다는, 스스로가 얼마나 강해졌는지 확인해 보고 싶었다.

게다가 어제처럼 가까운 사람들에게 위기가 닥쳤을 때, 지체 없이 나서서 도와줄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싶었다.

맹을 떠나는 사비강과 조문탁의 뒷모습만 바라봐야 하는 심정은 생각보다 더 비참했다.

마치 그런 생각을 엿보기라도 한 듯 능운파가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매 총관께서는 지금도 충분히 강하오.”

“과찬이십니다. 저는 아직 마족들에 대해 잘 모릅니다.”

“그건 나 또한 마찬가지요.”

“그럴 리가요. 맹주님과 저를 비할 수는 없지요.”

“흐음. 그럼 나와 대련을 한 번 해보겠소?”

“예?”

“괜찮다면 대련을 통해 내가 매 총관의 무공 실력을 한 번 가늠해 보고 싶소. 좋게 생각해서 면접 정도라고 합시다.”

능운파가 농담처럼 말하며 껄껄 웃었다.

매설란은 이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초절정의 극에 달해 있는 능운파였다.

그런 절대 고수와 대련을 할 기회는 결코 흔치 않다.

결과를 떠나서 그 자체만으로도 매설란에게는 큰 도움이 될 터였다.

매설란이 감격한 표정으로 포권했다.

“기회를 주신다면 영광으로 생각하겠습니다.”

“허허, 영광까지야. 그럼 연무장으로 갑시다.”

능운파가 수염을 쓸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

취리릿! 취리리릿!

두 자루의 연검이 은빛 섬광을 이끌며 매섭게 날아갔다.

능운파는 고개를 젖혀 한 자루의 연검을 피하고는 손을 뻗어 다른 한 자루의 연검을 쳐냈다.

따앙!

손과 연검이 부딪쳤음에도 금속성이 울렸다.

취리리리리릿!

튕겨 나간 연검은 집요하게 달려들었다.

“하앗!”

콰직!

능운파가 기합성을 터뜨리며 검을 거꾸로 내찌르자 사방으로 기파가 훅 불어 나갔다.

따다앙!

날아들던 두 자루의 연검이 모두 기파에 튕겨 나갔다.

‘역시 강해!’

매설란은 속으로 감탄하면서도 주눅 들진 않았다.

대신 더욱 매섭게 공격을 가다듬고 연검을 뿌려 갔다.

취리리릿! 취리리리릿!

은빛 비늘을 가진 뱀이 쉴 새 없이 능운파의 요혈을 노리며 날아들었다.

어느 순간에는 화살처럼 곧게 뻗어 왔고, 또 어느 순간에는 부드럽게 휘어 들어왔다.

그 변화무쌍한 초식에 능운파는 내심 놀라고 있었다.

‘과연 명불허전이로군! 매 총관의 실력이 일취월장했다는 소문이 헛소문은 아니었구나!’

허초와 변초가 난무하니 능운파는 섣불리 공격을 시도하기도 애매했다.

그렇게 수십 합을 겨루던 끝에 마침내 빈틈이 드러났다.

능운파가 바닥을 차며 순식간에 거리를 좁혔다.

쉬이이이이잇!

그의 검이 빛살처럼 날아가면서 매설란의 목을 노렸다.

‘헛!’

매설란이 화들짝 놀라며 보법을 밟았다.

타다닷!

동시에 그녀가 실드를 펼쳤다.

따앙!

결국 능운파의 검은 그녀에게 어떠한 위협도 주지 못한 채 튕겨 나가고 말았다.

능운파의 미간이 팍 구겨졌다.

‘이건 무슨…?’

그제야 천멸대 출신 무인들이 마법을 사용할 줄 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그간 매설란도 사비강과 함께 있었으니, 당연히 그녀 역시 사용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어야 했는데!

‘방심했군!’

감정이 살짝 상하자 그의 검격이 훨씬 더 날카롭게 변했다.

쉿! 쉬이잇! 쉿!

이번에는 능운파가 매설란을 궁지로 내몰기 시작했다.

한 번 물러서기 시작한 매설란은 좀처럼 반격의 기회를 찾기 어려웠다.

두 마리 뱀도 날아드는 검신을 휘감거나 쳐내며 방어하기에 여념이 없었다.

따다당! 키기이익!

검과 검이 서로 마주쳐 미끄러지면서 불꽃이 일어났다.

‘크읏! 한번 시도해 볼까?’

매설란은 잠깐 갈등했다.

만약 그 시도에 실패한다면, 이 대련은 자신의 완벽한 패배로 끝날 터였다.

하지만 시도하지 않는다면 좀 더 대련을 길게 끌고 갈 수 있을 터였다.

그녀는 곧 사비강처럼 생각하기로 마음을 굳혔다.

‘그래, 그였다면 했을 거야.’

생각을 마친 그녀가 자신을 향해 쇄도하는 능운파를 보며 나직이 읊조렸다.

“블링크.”

찰나,

팟!

“헛!”

검을 내질러 오던 능운파가 헛바람을 삼키며 멈칫거렸다.

매설란이 눈앞에서 온데간데없이 사라진 것이다.

매설란 역시 내심 놀랐다.

‘됐어! 블링크가!’

만년설삼을 복용하고 나서 내공이 크게 늘었다.

한데 거기에 사비강과 대련을 하면서 다시 한 번 도움을 받았다.

그 결과 블링크까지 쓸 수 있는 경지가 된 것이다.

한편 능운파는 당혹감을 느끼며 뒤로 돌아서는데, 은빛 뱀 두 마리가 그의 뒷목을 향해 매서운 속도로 날아들었다.

취리리리릿!

“크읏!”

능운파가 얼른 돌아서며 검을 휘둘렀다.

따앙!

한 자루는 쳐냈다.

하지만 다른 한 자루가 날아들면서 그의 뺨을 스쳤다.

피츗!

“큭!”

하필 다크번의 날개 뼈를 갈아 만든 연검이었다.

능운파는 뺨이 화끈거리자 순간 분노가 끓어올랐다.

‘이런…!’

매설란 역시 깜짝 놀라면서 움찔거렸다.

상처를 낼 생각은 없었다.

대련 중 일어난 사고였다.

“죄송…!”

그녀가 말을 꺼내는 순간, 능운파가 내공을 한껏 끌어올리면서 휙 돌아섰다.

쒸에에에에엑!

강기까지 머금은 검신이 무서운 속도로 매설란의 심장을 향해 날아들었다.

그녀는 순간 온몸이 돌덩이처럼 굳어 버리는 것을 느꼈다.

능운파의 살의가 거미줄처럼 뻗어와 전신을 옭아매는 듯했다.

척!

매설란의 심장에서 종이 한 장 차이로 멈춘 검.

어느새 검신을 둘러싼 강기도 사라지고 없었다.

대신 능운파의 차가운 눈빛만이 매설란을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과연 매서운 솜씨였소.”

“아… 죄송합니다. 상처는 괜찮으신지요?”

매설란이 그제야 입을 뗐다.

능운파가 검을 갈무리하고는 대수롭지 않은 듯 말했다.

“대련 중에는 언제든 일어날 수 있는 일. 이깟 상처가 대수겠소? 그 정도로 검을 멈추어서는 안 되지.”

“죄송합니다.”

“토벌대 출정은 닷새 후가 될 거요. 그때까지 준비를 해두시오.”

“감사합니다!”

매설란이 포권하며 말했다.

걸음을 옮기려던 능운파가 멈칫거리고는 돌아섰다.

“사비강 관주가 용천관으로 갔다지?”

“네, 오늘 새벽에 출발했습니다.”

“흐음. 쓸데없는 짓을….”

“쓸데없다고… 생각하시나요?”

매설란이 나직이 중얼거리듯 반문하자, 능운파가 이맛살을 슬쩍 구기고는 돌아보았다.

“아, 다른 뜻은 아닙니다. 다만… 저는 왠지 그가 나서면 안심이 된다고나 할까요? 늘 기적 같은 일을 보여준 사람이니까요.”

“기적이라….”

능운파가 냉소를 지었다.

기적이 어디 그리 쉽게 일어난다던가?

그때였다.

무인 하나가 달려오더니 능운파 앞에 무릎을 척 꿇으며 보고했다.

“사비강 관주가 용천관을 위기에서 구했다고 합니다!”

“뭐라?”

능운파는 믿을 수 없는 표정으로 입을 딱 벌렸다.

매설란이 다가오며 말했다.

“역시 이번에도 그가 해냈네요.”

“과연 대단하구려. 사비강 관주는.”

능운파도 인정할 수밖에 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매설란이 포권을 취해 보이며 말했다.

“오늘 가르침을 주셔서 감사했습니다.”

“별 말씀을.”

매설란이 자리를 뜨고 나자, 능운파가 심각한 표정으로 상처 난 뺨을 손으로 쓰다듬었다.

그의 표정은 그 어느 때보다도 복잡하게 일그러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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