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94
귀환 마교관
494화
꾸드드드득!
순간 땅이 지진이라도 일어난 것처럼 흔들리더니 이내 거대한 손이 튀어 올라왔다.
쿠구구구구궁!
집채 보다 더 큰 손이 순식간에 사비강을 덮쳐 왔다.
콰다앙!
거대한 손이 전각 일부를 부수면서 바닥에 처박혔다.
조금 전까지 사비강이 서 있던 자리에 커다란 손자국이 생겨났다.
곧이어,
꾸드득! 드드득!
슈슈슈슈슈슈슉!
지면에서 뾰족한 돌창이 생성되더니 사비강을 향해 빠른 속도로 날아드는 것이 아닌가?
“실드!”
타다다다다다당!
사비강이 실드를 펼치는 것과 동시에 베르타스를 휘둘러 날아드는 돌창을 전부 쳐냈다.
베르타스에 부딪치며 깨진 돌 부스러기가 사방으로 비산했다.
한 차례 요란한 공방전을 펼치고 나자 사비강이 베르타스를 들고는 싸늘하게 웃었다.
“역시 여전하군, 아라니우스.”
아라니우스가 눈썹을 꿈틀거렸다.
“하찮은 인간 주제에 자꾸 아는 척하지 말란 말이다!”
다음 순간, 그가 손을 아래로 내리치는 시늉을 했다.
그러자,
쿠파파파파파파파파!
지면이 불룩불룩 솟구치며 튀어 오르더니 파도가 치듯 그 여파가 사비강을 향해 나아갔다.
마치 그라운드 웨이브 마법을 썼을 때와 닮은 모습이었다.
땅이 뒤집히며 다가오는 광경을 보면서도 사비강은 전혀 당황하지 않았다.
대신 그는 베르타스를 내리치며 마법을 캐스팅했다.
“그라운드 웨이브!”
쿠파파파파파파파파파!
아라니우스가 펼친 지면의 파동과 사비강이 펼친 마법이 둘의 중간 지점에서 맞부딪쳤다.
꽈과아앙! 콰콰콰콰콰콰아앙!
마치 화산이 터지듯 지면끼리 부딪치며 그 파편이 허공으로 솟구쳐 올랐다.
아라니우스의 눈자위가 꿈틀거렸다.
‘어떻게 인간 주제에 이 정도까지…!’
그를 가호하는 악신 중에서 가장 강한 존재가 바로 타락한 대지의 정령왕, 루이노아스였다.
비록 타락하면서 고대의 정령왕 자리를 넘겨주고 그 권위가 실추했지만, 악신으로 변모하면서 여전히 강력한 힘을 가진 존재였다.
한데 인간의 마법이 루이노아스의 가호에 비등할 정도로 맞서다니!
아라니우스가 놀라고 있을 때,
슈슈욱!
놀랍게도 사비강이 바로 코앞에 불쑥 나타나는 것이 아닌가?
블링크 마법이 아니었다.
바로 천해심보를 이용한 이동이었다.
사비강이 들어올린 베르타스가 무서운 속도로 아라니우스의 목을 내리쳤다.
“크익!”
깜짝 놀란 아라니우스가 이를 빠득 갈면서 손가락을 딱 튕겼다.
그 순간 바닥에서 거짓말처럼 돌무더기가 불쑥 치솟았다.
꽈앙!
베르타스와 돌무더기가 부딪치면서 요란한 소리를 울렸다.
잠깐의 시간을 번 아라니우스가 뒤로 성큼성큼 물러나서는 다시 손을 한 차례 휘저었다.
그러자 여기저기에서 돌무더기가 솟구쳐 올라왔다.
쿠드드득! 드드드득!
사비강은 순식간에 주변을 에워싸는 돌무더기를 바라보았다.
‘골렘이군.’
그의 짐작대로 돌무더기는 사람의 형태를 하고 있었는데, 마력의 영향을 받은 것인지 두 눈 부위가 형형하게 빛나고 있었다.
사비강이 싸늘하게 웃으며 말했다.
“역시 골렘을 잘 부리는군.”
“중원인 주제에 아는 게 제법 많구나. 그 사실만은 인정 안 할 수가 없군.”
아라니우스의 말에 사비강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곧 다른 사실도 인정하게 될 거다.”
“확실히 흥미로운 녀석이야. 곱게 죽이기에 아까울 정도로. 하지만 오늘은 네게 볼일이 있는 게 아니니, 빨리 끝내도록 하지!”
다음 순간,
파파파팟!
골렘들이 일순간 사비강을 향해 날아들었다.
사비강이 재빨리 검격을 뿌렸지만, 마력을 품은 골렘들은 상처 하나 나지 않았다.
꽈과아앙!
요란한 소리와 함께 골렘이 그대로 사비강을 짓눌렀다.
콰콰콰콰콰콰앙!
스무 기의 골렘들이 일제히 사비강을 덮쳤다.
이대로라면 압사를 당하고도 남을 지경이었다.
몸을 날린 골렘들은 마치 봉분을 만들 것처럼 그 위에 차곡차곡 쌓여 갔다.
그럼에도 아라니우스는 공격을 멈추지 않았다.
꾸드드드득! 우드드드득!
마치 무덤을 파고 일어난 시체처럼 주변에서는 골렘들이 끊임없이 땅 위로 솟구쳐 올라왔다.
그리고 사비강을 덮어 버린 골렘 무덤 위로 끝없이 몸을 날렸다.
쿠웅! 쿠쿠쿵! 쿠쿠웅!
그렇게 얼마나 많은 골렘들이 나타나면서 몸을 던졌을까?
아라니우스의 시야에 거대한 돌 더미가 쌓였다.
녀석들이 뿜어내는 마력만으로도 일반인은 질식할 정도였다.
저 골렘 무덤 안쪽에는 사비강이 압사당한 채로 널브러져 있으리라.
‘그래봐야 결국 인간인 것을.’
그는 자신이 인간의 농간질에 놀아났다는 생각에 잠깐 부끄러움을 느끼고는 한 차례 손을 휘저었다.
다음 순간, 사비강이 있던 자리가 눅눅하게 젖어들면서 늪처럼 변하더니 이내 높이 쌓인 골렘들을 통째로 집어 삼키는 것이 아닌가?
사비강과 골렘을 완전히 집어삼킨 늪은 다시 원래대로 평평한 땅으로 돌아와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단단하게 굳어 버렸다.
이렇게 사비강을 영원히 땅속에 묻어 버리고, 베르타스만 끌어내어 움켜쥐기만 하면 그만이었다.
그런데 그때!
꽈과아아앙!
마치 분화구가 터지듯이 땅바닥이 갈라지는가 싶더니 조금 전 지하로 끌려 내려간 골렘들이 밤하늘로 마구 튀어 오르는 게 아닌가?
쿠웅, 데굴데굴…!
골렘 머리 하나가 아라니우스의 발아래에 굴러와 멈췄다.
아라니우스의 뺨이 씰룩였다.
“이게 대체…!”
찰나,
팟!
아라니우스의 눈동자가 커졌다.
사비강이 코앞에 거짓말처럼 나타난 것이다.
쒸이이이이잇!
사비강이 가차없이 검을 휘두르자, 아라니우스는 블링크 마법을 쓰면서 뒤로 훌쩍 물러났다.
정말이지 인간을 상대로 이렇게까지 궁지로 내몰릴 줄은 꿈에도 몰랐다.
한데 사비강은 그의 반응을 처음부터 예상이라도 했다는 듯 그대로 베르타스를 손에서 놓아 버렸다.
쒸아아아아아아앙!
강기를 품은 베르타스가 곧장 아라니우스를 향해 뻗어 왔다.
‘이건 또 무슨…!’
아라니우스는 적잖게 당황했다.
검을 그저 던졌다는 수준이 아니라, 무형의 인간이 검을 쥐고 달려드는 것만 같은 느낌!
아라니우스가 급하게 몸을 뒤틀자, 베르타스가 그의 뺨을 스치며 지나갔다.
피츗!
아라니우스의 표정이 팍 구겨졌다.
“네놈도 곱게 죽을 운명은 아니구나!”
그가 양팔을 활짝 펼치자, 땅속에서부터 반짝이는 빛 알갱이들이 허공으로 솟구치기 시작했다.
한데 자세히 보면 그것은 빛이 아니라 광물의 아주 작은 입자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 입자들이 아라니우스의 전신에 자석처럼 달라붙기 시작했다.
척… 척… 척…! 척척…! 척척척!
마치 갑옷을 착용하는 것처럼 아라니우스의 온몸이 금속으로 둘러싸이기 시작했다.
이는 악신 루이노아스의 권능으로 땅속 광물의 원소를 추출해 최강의 갑옷을 조합하는 과정이었다.
이윽고 눈을 제외한 전신이 반짝이는 금속으로 둘러싸인 아라니우스가 솟아오르는 땅을 디딘 채 허공으로 천천히 올라왔다.
마치 대지의 권좌에 올라선 신의 경지를 보는 듯했다.
그의 외형을 한 마디로 표현하라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단어가 ‘완전무결(完全無缺)’이리라.
그저 보는 것만으로도 어느 곳 하나 빈틈이 없다는 것이 느껴졌다.
아라니우스가 감정이라곤 조금도 깃들지 않은 눈으로 사비강을 내려다보았다.
“이렇게까지 하진 않으려고 했으나, 더 이상 널 그저 그런 인간으로 보지 않기로 했다.”
그 말인즉슨, 다른 마족과의 대결을 할 때처럼 최선을 다하겠다는 뜻이었다.
사비강이 피식 웃었다.
“진작 그랬어야지. 하지만 이제 와서는 많이 늦었어. 적어도 칠십 년 전에 그랬어야 했다.”
팟!
사비강이 전광석화처럼 날아가 베르타스를 휘둘렀다.
쉬이이이이잇!
찰나지간 그 앞으로 석벽이 솟구치며 막아섰다.
쿠드드득!
퍼카앙!
석벽이 산산조각나면서 베르타스는 그대로 아라니우스의 목을 쳤다.
투까아앙!
금속성과 함께 불꽃이 튀어올랐다.
사비강이 미간을 좁히자 아라니우스가 피식 웃었다.
“실망스러운가? 하지만 어디를 친들 결과는 마찬가지일 것이다. 가장 단단한 광물의 원소들로만 이루어진 이 갑옷을 네놈이 뚫을 방법은 없다. 너는 결국 나를 베지 못한다.”
말을 마친 아라니우스가 오른손을 들어 올리자, 그의 손바닥 위에서 빛 알갱이들이 모여들며 날카로운 검신을 만들어냈다.
역시나 대지에 섞여 있는 광물 중에서 가장 단단한 것들만으로 융합시켜 만든 검이었다.
찰나지간 아라니우스가 세차게 검을 휘둘렀다.
쉬이이이잇, 까아앙!
또 한 번의 금속성과 함께 불꽃이 터지면서 사비강이 뒤로 물러났다.
“과연 훌륭하군.”
“건방진. 누가 누굴 평가한단 말인가?”
사비강은 대답 대신 그대로 바닥을 차고 날아올라 아라니우스에게 쇄도했다.
그가 어지럽게 검격을 뿌리자, 허공에서 연신 불꽃이 터졌다.
까라라라라라라랑!
몇 차례의 공격은 아라니우스가 검으로 막아냈다.
하지만 그는 애써 막을 생각도 하지 않았다.
어차피 사비강이 난잡하게 뿌려대는 검격은 전부 그의 몸에 부딪쳐 아무런 효과도 내지 못했다.
아라니우스의 말대로 그는 완전무결한 상태였다.
그 어떤 곳을 공격하더라도 베르타스는 아라니우스를 벨 수 없었다.
한바탕 눈으로 일일이 쫓기도 힘들 만큼 빠르고 강렬한 공격을 퍼부은 사비강이 훌쩍 물러나 자세를 고쳐 잡았다.
아라니우스의 얼굴에 여유로운 미소가 떠올랐다.
“이제 너와 나의 차이를 알겠느냐?”
“아앗! 어째서 내 검이 통하지 않는 거지? 이런 건 절대 있을 수가 없는 일이야! 도대체 네놈은 몸에 무슨 짓을 한 거냐? 이대로 도저히 널 벨 수 없겠구나! 젠장! 이제 망했어!”
짐짓 과장된 호들갑에 아라니우스가 눈살을 찌푸리자, 사비강이 씨익 웃으며 말을 이었다.
“…라고 말해 주면 되는 건가?”
“뭐?”
사비강이 어깨를 으쓱이고는 말했다.
“한 번 시험해 봤다. 오래전 네가 말한 대로 정말 완전무결한 갑옷인지.”
“오래 전 내가…?”
“일단 인정하겠다. 확실히 훌륭한 갑옷이야. 하지만 넌 오래전 네 입으로 직접 말해 주었지. 그 갑옷의 유일한 약점을.”
아주 잠깐 아라니우스의 표정이 흔들렸다.
정말이지 찰나에 지나지 않았지만, 사비강은 그 반응을 놓치지 않았다.
“물론 넌 기억도 못하겠지. 지금의 넌 이해할 수 없는 일일 테니까.”
“아까부터 무슨 소리를….”
“말해 볼까? 약점?”
“웃긴 소리. 내게 그런 건 없다. 설령 있다고 해도 네놈 따위에게 내가 그런 말을 했을 리가….”
“있어. 너의 뒷목 중앙.”
“……!”
아라니우스의 눈이 급격히 커지는 순간,
팟!
사비강이 시야에서 사라졌다.
블링크를 눈치 챈 아라니우스가 곧바로 몸을 돌렸다.
“약은 수작을…!”
하지만 사비강은 곧바로 천해심보를 펼쳐 그대로 아라니우스의 배후로 돌아갔다.
뒷목 중앙.
척추가 지나는 자리에 아주 작은 틈이 있다.
손톱만한 공간인데, 전신에서 유일하게 그 부분만이 가장 약한 금속으로 만들어져 있다.
마력을 발산하고 흡수하기 위한 일종의 숨구멍이라고 보면 된다.
사비강의 목소리가 등 뒤에서 서늘하게 들려왔다.
“내가 왜 이런 걸 알고 있는지 아나?”
“……?”
아라니우스는 꿈쩍도 할 수 없었다.
이 순간 손가락 하나라도 잘못 까딱하다간 정말이지 생각도 못한 상황에 직면할 것만 같았다.
잠시 후 사비강의 입에서 놀라운 말이 튀어나왔다.
“사실 난 마계에서 회귀했거든. 너희들만이 알고 있는 고대 흑마법을 이용해서”
아라니우스가 꿈틀거리고는 말했다.
“뭔 개소리를…!”
“세상의 모든 흐름을 거스르는 고대의 악신 노이제룬. 그 권능에 대해 알려 준 자가 바로 아라니우스 폰 로렌탈 멜가논이지. 개인적으로 아주 감사하게 생각한다고. 아라니우스 공.”
“……!”
사비강의 입매가 사악한 미소로 찢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