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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 마교관-493화 (493/670)

# 493

귀환 마교관

493화

콰다앙!

포탄처럼 튕겨 날아간 은기륭이 요란한 소리와 함께 건물 벽을 부수며 나뒹굴었다.

“크윽! 쿨럭…!”

그의 입에서 시커먼 핏덩이가 울컥 토해졌다.

“관주님!”

고블린 한 마리를 베어 넘긴 여영이 화들짝 놀라며 은기륭에게 달려왔다.

“괜찮으십니까?”

“난 괜찮네.”

은기륭이 소매로 입가를 훔치고는 저만치 서 있는 자베린을 노려보았다.

자베린은 상필지와 천세명을 보며 차갑게 웃고 있었다.

“너희들이 인간의 능력을 초월한 뭔가를 가진 건 알겠다. 하지만… 벌레가 발악해 봐야 벌레지.”

상필지와 천세명의 표정이 꿈틀거렸다.

두 사람은 뱃속부터 끓어오르는 분노를 느끼면서도 내심 두려움도 느끼고 있었다.

확실히 자베린은 쉽지 않은 상대였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이길 수나 있을지 의문이 든다.

그의 일격에 초절정 고수인 은기륭도 맥없이 나가떨어지지 않았나?

천세명은 식은땀을 흘리면서 주변을 슬쩍 둘러보았다.

그야말로 아수라장.

평소라면 평온하기 그지없을 관주전 안마당이었지만, 지금은 처절한 싸움의 현장이었다.

관주전으로 피신한 생도들을 지키기 위해서 정교관들과 부교관들이 정문으로 뛰어나와 밀려드는 마물들과 맞서 싸우고 있었다.

어떤 이는 팔 하나가 절단된 상태에서도 악착같이 검을 휘둘렀고, 어떤 이는 온통 피를 뒤집어 쓴 채 혈귀처럼 도검을 뿌렸다.

그야말로 처절한 전장.

‘그나저나 흑귀는 괜찮을지….’

천세명이 어금니를 꾹 깨물었다.

흑귀가 카시스를 덮쳐 버렸을 때, 이제 그가 큰 힘이 될 것이라고 여겼다.

한데 뜻밖의 상황이 발생했다.

카시스의 악신을 흡수한 흑귀가 그대로 혼수상태에 빠져든 것이다.

사비강의 말에 의하면 소화를 시키는 과정이라고 했다.

이 과정에서 운이 좋으면 흑귀가 이성을 되찾을 수도 있다고 했다.

두 사람이 이미 알고 있던 사이라는 것도 놀라웠지만, 사비강이 그러한 사실에 대해 정확히 이해하고 있다는 점도 놀라웠다.

아니, 무엇보다 때맞춰 사비강이 이곳에 나타났다는 게 가장 놀라웠지만.

[천 부장, 일전에 나와 맞춰 보았던 대라연동합격술(大羅連同合擊術)을 시도해 보세.]

상필지의 전음이 귓가를 스쳤다.

천세명이 미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은 자베린을 사이에 두고 조심스럽게 거리를 벌려 갔다.

찰나,

[지금!]

상필지의 전음이 다시 한 번 날아들었다.

동시에 두 사람이 자베린을 향해 전광석화처럼 날아갔다.

쉬이이잇, 쉬이이이잇!

두 자루의 검이 유성처럼 날아가며 자베린의 목과 가슴을 위협했다.

자베린이 얼른 몸을 뒤틀면서 피하는데, 마치 두 자루의 검이 살아 있는 뱀처럼 굽이치며 그를 따라가는 게 아닌가?

대라연동합격술의 특징이었다.

상필지가 구상한 합격술이었는데, 몇 사람이 되었던 이 합격술을 펼치게 되면 서로의 기를 융합시켜 유연하게 만든다.

그리고 그 기의 파동 범위 안에서 적이 움직일 때, 자연히 그 움직임을 쫓게 된다.

어찌 보면 상대의 기류에 움직임을 내맡기는 방식으로 굉장히 수동적인 합격술이었다. 그런데 역설적이게도 이러한 수동성이 적의 자유를 구속하는 수단이 되는 것이다.

상필지와 천세명은 동시에 눈을 빛내며 생각했다.

‘됐다!’

‘됐어!’

두 사람의 검봉이 목과 심장을 향해 그대로 질주했다.

그 순간,

쉬쉬이이이잉!

자베린 앞으로 얇은 핏빛 막이 생기는 게 아닌가?

찰나지간 검봉이 혈패(血牌)에 막히면서 튕겨 나갔다.

뚜캉!

투캉!

두 사람의 눈동자가 커졌다.

‘이런 젠장! 이건 뭐…!’

그러는 사이 혈패는 다시 핏빛 연무가 되어 흩어지더니 순식간에 날카로운 화살처럼 변해 버렸다.

뒤이어 혈시(血矢)가 두 사람을 향해 빠른 속도로 날아갔다.

따다앙!

얼른 검을 휘둘러 혈시를 쳐낸 상필지가 대여섯 장이나 주룩 미끄러지며 가까스로 멈췄다.

반면 호신강기를 펼쳐낸 천세명은 어깻죽지를 베이면서 피를 흘리고 말았다.

“크읏!”

두 사람의 기가 흐트러지자, 자베린이 양팔을 활짝 펼치더니 광오한 표정으로 읊조렸다.

“너희들의 생명력은 곧 나의 힘이 되리라.”

다음 순간,

파파파파팍!

“크윽!”

“으읏!”

두 사람이 눈을 부릅뜨고는 비틀거리며 물러났다.

놀랍게도 상필지와 천세명의 전신에서 피가 터져 나온 것이다.

터져 나온 핏방울이 허공에서 생명체처럼 꿈틀거리며 뭉치기 시작했다.

이윽고 수백 자루의 핏빛 암기가 생성되자,

“마음껏 꿈틀거려 보아라! 벌레들아!”

슈슈슈슈슈슈슈슈슉!

암기들이 순식간에 사방으로 쏘아져 나갔다.

상필지와 천세명이 내공을 끌어올려 호신강기를 펼쳤다.

투타타타타타타탕!

마치 철판에 콩을 볶는 것과 같은 소리가 마구 울리고, 암기가 산산이 깨지며 핏빛 연무가 퍼져 나갔다.

그때였다.

타앗!

그림자 하나가 쏜살 같이 연무를 뚫으며 날아가는 것이 아닌가?

자베린이 피식 웃었다.

“쓸데없는 짓….”

그의 손에 핏빛 검이 형성되는가 싶더니, 이내 날아드는 그림자를 향해 내질렀다.

푸욱!

하지만 자베린은 이맛살을 구기고는 심장이 꿰뚫린 적을 보았다.

이제 보니 적이 아니라 부상을 입은 고블린이 아닌가?

그때!

쉬이잇, 쉬이이잇! 쉬쉬이이잇!

사방에서 동시에 날카로운 검기가 날아들었다.

대라연동합격술!

여영과 주유천 그리고 상필지와 천세명이 함께 펼치는 것이었다.

“어림없다!”

자베린이 버럭 고함을 내지르며 다시 양손을 펼치자, 그의 주변으로 순식간에 혈패가 생성됐다.

쩌엉! 쩌저저엉!

검기와 부딪친 혈패가 산산조각 나면서 다시 한 번 자욱한 연무가 생겨났다.

찰나,

쉬이이이이잇!

“노오옴! 진검은 이쪽이다!”

은기륭이 사자후를 쩌렁쩌렁 터뜨리며 빛살 같은 속도로 검강을 내질렀다.

푸욱!

섬뜩한 파육음에 이어 자베린의 눈동자가 찢어질 듯 커졌다.

“이런… 인간 따위가…!”

그의 눈이 붉게 충혈됐다.

은기륭이 차갑게 식은 눈동자로 자베린을 노려보며 말했다.

“인간을 우습게 보지 마라.”

촤아아악!

순간 은기륭이 검을 사선으로 베면서 뽑아냈다.

“크아아악!”

자베린이 비명과 함께 몸을 뒤틀며 쓰러졌다.

상반신이 심장에서부터 옆구리까지 절반가량이나 찢어진 자베린은 그대로 눈을 부릅뜬 채 꿈쩍도 하지 않았다.

“이, 이겼다…!”

천세명이 비틀거리다가 가까스로 중심을 잡았다.

은기륭이 돌아서서 상필지와 천세명에게 다가왔다.

“다들 고생했소. 이제 남은 적들을 처리하세. 생도들을 반드시 지켜야….”

“관, 관주님…!”

순간 여영이 은기륭의 말을 가로지르며 믿을 수 없는 표정을 지었다.

은기륭이 미간을 슬쩍 좁히고는 뒤를 돌아보았다.

놀랍게도 자베린 주변으로 흘러내린 핏물이 점점 모여들더니 자베린의 상처로 다시 되돌아가는 것이 아닌가?

다음 순간, 자베린이 눈자위를 꿈틀거렸다.

곧이어 그의 몸속으로 흡수되는 피의 움직임도 더욱 빨라졌다.

순식간에 상처가 아물어 버린 자베린이 양팔을 활짝 펼치면서 벌떡 일어났다.

“크아아아아아아!”

괴성을 내지른 자베린이 두 주먹을 불끈 쥐자,

부우우욱! 우드드득!

그의 등에서 두 쌍의 팔이 더 자라나는 것이 아닌가?

세 쌍의 팔을 가진 자베린이 마력을 풀풀 휘날리며 말했다.

“건방진 놈들… 이 몸이 그리 쉽게 당할 것이라 생각한 건가?”

자베린이 여섯 개의 팔을 활짝 펼쳤다.

그러자 그의 주변으로 핏방울이 뭉치면서 응고되더니 혈창 여섯 자루가 만들어졌다.

다음 순간,

쒸쒸쒸쒸쒸아아앙!

여섯 자루의 혈창이 사방으로 날아갔다.

“크잇!”

천세명이 얼른 검을 앞세웠지만,

투까앙!

검신이 두 동강 나면서 그대로 혈창이 그의 복부를 관통하면서 지나갔다.

상필지 역시 옆구리가 꿰뚫렸고, 주유천은 어깨를 관통당했다.

여영은 허벅지를 깊이 베어 제대로 설 수조차 없었다.

마지막으로 두 자루의 혈창이 그대로 은기륭을 덮쳤다.

한 자루는 가까스로 쳐냈지만, 뒤이어 날아든 한 자루는 그대로 은기륭의 심장을 노렸다.

꽈아앙!

간발의 차로 펼쳐낸 호신강기 덕분에 혈창이 부서지면서 핏빛 알갱이가 사방에 비산했다.

하지만 다급하게 펼친 호신강기가 깨지면서 은기륭 역시 내상을 깊게 입고 말았다.

“크윽…! 쿨럭! 쿨럭…!”

또 한 번 핏덩이를 토한 은기륭은 비틀거리다가 이내 한쪽 무릎을 꿇어 버리고 말았다.

이미 앞서 내상을 입었던 상황.

이젠 정말이지 몸속이 엉망진창이 되어 있었다.

저벅저벅…!

자베린이 은기륭을 향해 걸어왔다.

죽은 줄 알았던 악마는 이제 아수라처럼 팔이 여섯 개나 늘어나서 절망을 안고 다가왔다.

“재롱도 그만하면 됐다.”

선고하듯 말을 뱉은 자베린이 여섯 개의 손을 들어올렸다.

각각의 손에는 혈창이 생성되면서 진득한 마력을 풀풀 풍겨냈다.

그가 막 여섯 자루의 혈창을 내지르려는 순간,

“헛!”

등 뒤가 서늘해지는 것을 느낀 자베린이 얼른 몸을 뒤틀었다.

동시에 그는 여섯 자루의 혈창을 없애버리고 급히 혈패를 만들어냈다.

따다다다다다다다다당!

요란한 소리와 함께 혈패가 부서지면서 자욱한 혈무가 펼쳐졌다.

다음 순간, 혈무를 뚫으며 그림자 하나가 쑤욱 나타나는 게 아닌가?

“헛!”

자베린이 재빨리 돌아서자, 단검을 내지르며 나타난 그림자가 그대로 스쳐 지나가며 은기륭 앞에 미끄러지듯 멈춰 섰다.

촤아아악!

은기륭의 눈동자가 커졌다.

“자, 자네는…?”

“오랜만에 뵙습니다, 관주님. 특목반 조문탁 인사 올립니다.”

조문탁이 포권을 하며 말하자, 상필지와 천세명도 놀란 표정으로 그를 보았다.

불과 몇 년 사이에 조문탁의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져 있었던 것.

한편, 자베린은 갑자기 나타난 방해자를 보며 콧잔등을 팍 구기며 소리쳤다.

“넌 또 뭐하는 놈이냐?”

“나, 이분들 제자다.”

조문탁이 차가운 표정으로 말을 뱉더니 서서히 기수식을 취했다.

다음 순간, 그의 허리춤에 채워져 있는 검은 벌집에서 새카만 돌기들이 부웅 떠올랐다.

그리고 마치 조문탁을 보호하듯 주변을 윙윙 맴돌았다.

“그리고 널 죽여 버릴… 인간님이시지.”

**

아라니우스는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다.

정도맹 본단이라면 이곳에서 꽤나 먼 곳이었다.

사비강이 텔레포트 마법을 썼을 리는 없다.

블링크 마법을 썼다고 해도 쉽게 납득할 수가 없다.

나름 하이서클 마법인 블링크는 연속해서 쓰기가 매우 어렵다.

한데 어떻게 해서 이렇게 빨리 나타난 거지?

하긴 뭐 상관없다.

어차피 자신이 용천관을 친 것은 베르타스를 취하기 위한 것이었으니.

그런데 계획대로 사비강이 베르타스를 가지고 나타나 주었으니, 달라질 건 아무것도 없다.

아라니우스가 저만치 관주전을 올려다보았다.

그가 관주전에서 조금 떨어진 곳까지 이동한 것은 혹시라도 주변의 방해를 받지 않기 위해서였다.

다행히 사비강은 잘 따라와 주었다.

지금쯤 관주전에서 한창 싸움이 벌어지고 있을 터인데, 크게 신경도 쓰지 않는 듯했다.

“이야기는 많이 들었다. 네가 사비강이라는 녀석인가?”

사비강이 피식 웃더니 차갑게 일렀다.

“그 시건방진 태도는 여전하구나, 아라니우스.”

“뭣이?”

아라니우스의 표정이 격하게 꿈틀거렸다.

세상에 이런 안하무인한 인간을 보았나?

아라니우스가 이를 빠득 갈며 말했다.

“아까부터 자꾸 날 아는 척 하는데, 네놈의 정체는 뭐냐?”

“한때 널 발아래 두던 자라니까.”

“인간들 사이에는 이런 속담이 있다지? 미친놈에게는 매가 약이라는!”

말을 마친 아라니우스가 팔을 번쩍 들어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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