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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 마교관-488화 (488/670)

# 488

귀환 마교관

488화

‘흑귀…?’

천세명이 돌아보니 과연 흑귀라는 사내는 거적때기를 덮어 쓴 채 최대한 햇빛을 피하려고 했다.

그러고 보니 지금도 나무 그늘 아래에서 벗어나지 않고 있었다.

햇빛을 보면 살이 타들어 가는 병이라니.

지금까지 살면서 그런 병은 보지도 듣지도 못했다.

천세명의 눈치가 영 못 미더운 것을 확인한 장독수가 말을 이었다.

“믿기 힘들겠지만 사실입니다. 뭐 정 의심스러우면 직접 확인하셔도 좋습니다.”

“그럼, 실례 좀 하겠소.”

천세명은 사양하지 않고 돌아서서는 거적때기 사내에게 저벅저벅 다가갔다.

“크르…!”

사내가 허연 이를 드러내고는 으르렁거렸다.

천세명이 좋은 말로 달랬다.

“난 당신을 해할 생각이 없소. 잠시 맥을 짚어 상태를 보고 싶소.”

그러자 장독수가 다시 소리쳤다.

“맥 따위는 짚어 봐야 알 수 없을 겁니다. 직접 햇빛에 살을 드러내게 하는 게 가장 빠르고 확실한 방법이지요.”

그러더니 그가 단숨에 몸을 날려서 거적때기 사내의 등 뒤로 다가갔다.

거적때기 사내가 얼른 돌아서는데, 장독수가 한 발 먼저 부드럽게 장풍을 날렸다.

퍽!

몸이 떠밀린 거적때기 사내가 비틀거리면서 그늘 밖으로 물러났다.

치이이익…!

놀랍게도 그의 살이 타들어 가는 소리를 내며 연기를 피워 올렸다.

사내가 고통으로 일그러진 표정을 지으며 얼른 거적때기를 덮어 살을 가렸다.

그는 재빨리 그늘 속으로 돌아갔다.

비록 짧은 순간이지만 천세명은 분명히 보았다.

‘정말… 살이 타들어 가잖아?’

장독수가 의기양양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보셨지요? 저 녀석은 매우 희귀한 병을 앓고 있습니다. 한데 정신이 온전치가 않아서 우리가 데려가는데 좀 애를 먹고 있었지요. 그럼.”

장독수와 장독곤이 포권을 취하더니 흑귀라 불린 사내에게 저벅저벅 다가갔다.

사내는 잔뜩 경계하는 눈치였다.

천세명은 잠시 갈등했다.

괜히 남의 일에 끼어들지 말고 그냥 갈 길이나 가야 할지.

아니면 저 불쌍한 사내를 구해 주는 게 좋을지.

‘뉘우치며 살자고 맹세한 것에 대한 시험인가?’

천세명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러는 사이 거적때기 사내는 만물쌍두에게 가볍게 제압당해 질질 끌려가고 있었다.

그를 끌고 가는 과정에서 피부가 햇빛에 노출되어 타들어 가는 소리를 내는데도 만물쌍두는 신경도 쓰지 않는 듯했다.

결국 천세명이 마음을 굳히고는 나섰다.

“잠깐.”

만물쌍두가 멈칫거리고는 돌아보았다.

“뭡니까?”

“가만 생각해 보니 그자를 치료할 만한 사람을 내가 알고 있소.”

“치료할 만한 자를? 그게 대체 누굽니까?”

“본관에서 의생들을 가르치는 분이오. 한때 정도맹 의신각주로 일하시던 분이니 하늘 아래 그분만큼 의술이 뛰어난 사람도 없을 거요.”

진백을 두고 한 말이다.

물론 진백은 지금 용천관에 없었지만, 만물쌍두가 그런 사정까지 알 거라고 생각하진 않았다.

만물쌍두는 일이 뜻밖으로 흐르자 서로를 힐끔 보고는 생각에 잠겼다.

잠시 후 그들은 서로를 보며 고개를 끄덕이더니 천세명에게 다가왔다.

“그렇다면 좋습니다. 이자를 천 교관님께 넘겨 드리지요.”

“그래 주시겠소?”

천세명은 의외로 순순히 나오는 두 사람을 보고는 내심 안도했다.

하지만 이어진 그들의 말에 표정이 굳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교관님께서도 아시다시피 요즘 무책임한 자들이 워낙 많아서 말입니다. 혹시라도 교관님이 이자를 제대로 치료하지 않고 노예로 팔아 버린다거나… 뭐, 물론 그런 일은 절대 없지만 사람 일은 모르는 거니까요.”

“하고 싶은 말이 뭐요?”

“일종의 책임비를 받았으면 합니다.”

“책임비?”

“예, 하다못해 요즘은 기르는 개도 분양할 때 책임비를 받는다고 하죠.”

“얼마를 생각하고 계시오?”

“삼천 냥 정도면 되겠습니다.”

“뭣이?”

천세명의 눈썹이 성큼 추켜 올라갔다.

말이 좋아 책임비지, 결국 인신매매나 다름없는 상황이 아닌가?

천세명이 당황한 표정을 짓자 만물쌍두가 얼른 말을 이었다.

“죄송하지만 그만한 책임비가 아니라면 이자를 넘겨 드리기 어렵습니다.”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릴…!”

천세명은 당장이라도 욕지거리가 치미는 것을 꿀꺽 삼키고는 침착하게 대꾸했다.

“내 수중에 있는 돈은 서른 냥이 전부요. 이걸 전부 드리지.”

“그건 곤란합니다. 사람 목숨 값이 어디 서른 냥으로 되겠습니까?”

“기어이 시끄러운 일을 만들겠다는 거요?”

천세명이 은근히 기를 끌어올리고 말하자, 만물쌍두가 서로를 번갈아보며 잠시 눈짓을 주고받았다.

찰나,

“그렇게는 안 된다니까!”

쉬이이이잇!

장독수가 느닷없이 도를 휘두르며 달려드는 것이 아닌가?

천세명이 바닥을 차며 훌쩍 물러나자, 그의 검이 허공을 날카롭게 베어냈다.

뒤이어 장독곤이 하늘로 솟구쳐 오르더니 혜성처럼 떨어져 내렸다.

천세명이 얼른 검을 뽑아 들고는 막아냈다.

까앙!

청명한 금속성과 함께 불꽃이 튀었다.

천세명이 얼른 왼손으로 일장을 뻗어냈다.

퍼엉!

“크아악!”

장독곤이 비명을 내지르며 바닥에 나뒹굴었다.

장독수가 움찔거리고는 소리쳤다.

“곤아! 괜찮으냐?”

“크윽…! 괜찮습니다, 형님.”

하지만 내뱉는 말과 달리 장독곤은 식은땀을 뻘뻘 흘렸다.

반면 천세명은 자신의 왼손을 보며 침음을 흘렸다.

‘흐음. 과연 내력이 다소 상승한 것 같군.’

뿐만 아니라 확실히 기행을 떠나기 전보다 몸이 가벼워졌다.

여행 중에 깨달음을 얻으면서 무공 역시 상승한 것이리라.

천세명이 두 사람을 보며 호통을 쳤다.

“마족이 이 땅을 침입해서 어수선한 시국에 어찌 사람끼리 인신매매를 하고 다닌단 말인가! 그대들은 하늘 보기에 부끄럽지도 않은가!”

“니미럴, 사람 보기도 바쁜 판국에 무슨 하늘 타령은…!”

“형님, 이제 어쩌지요?”

“어쩌긴 어쩌냐? 이왕 이리 된 것 저치를 처리하고 빨리 떠버려야지.”

“그럽시다!”

말을 맞춘 만물쌍두가 다시 한 번 기합성을 터뜨리며 달려들기 시작했다.

천세명이 혀를 찼다.

“정사지간의 무인이라고 하여 사파보다 나을 것도 없구나. 아니, 지금 시국에선 차라리 사파 무인들이 네놈들보다는 낫겠다!”

“닥쳐라!”

장독수가 벌처럼 날아들면서 도를 수직으로 베었다.

천세명이 몸을 기울여 피하고는 그대로 검을 거꾸로 든 채로 옆을 내질렀다.

쉬까앙!

다시 한 번 불꽃이 튀어 올랐다.

장독곤 역시 빈틈을 노려서 달려들기 시작했다.

깡! 까강! 깡깡!

연신 불꽃이 튀면서 금속성이 날카롭게 울려댔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싸움은 천세명에게 유리한 쪽으로 흐르고 있었다.

베고 찌르고 피하고 다시 베고 찌르고.

두 명을 동시에 상대하는 천세명이었지만, 그는 조금도 밀리지 않았다.

오히려 만물쌍두가 점점 수세에 몰리고 있었다.

마침내 천세명의 검이 장독곤의 허벅지를 깊이 베어냈다.

츄아앗!

“크아악!”

장독곤이 비틀거리면서 물러나자, 장독수가 소리쳤다.

“곤아!”

다음 순간 그는 등골이 서늘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의 등 뒤에서 천세명이 불쑥 솟구치듯이 나타나더니 차가운 금속이 그의 가슴을 뚫으며 튀어나왔다.

푹!

“커억!”

“형님!”

장독곤이 비명처럼 외쳤다.

쑤욱!

장독수의 심장에서 검을 뽑아낸 천세명이 검신에 묻은 피를 한 차례 털어내고는 장독곤을 차갑게 쏘아보았다.

“어떤가? 아직도 삼천 냥이라는 생각에 변함이 없는가?”

“이… 이익…!”

장독곤이 주춤거리며 뒤로 물러났다.

다음 순간 그가 돌연 몸을 돌리더니 거적때기 사내를 향해 단숨에 날아갔다.

“크르르…!”

장독곤이 거적때기 사내 뒤에서 검신을 목에 들이대며 소리쳤다.

“가, 가까이 오면 이 자식은 죽여 버리겠다!”

“역시 추악한 본성이 나오는군.”

“시, 시끄러! 이, 이게 전부 네놈 때문이다! 말없이 갈 길이나 갈 것이지! 왜 남의 일에 상관을…!”

쒸이이이익, 푹!

“컥…!”

장독곤은 눈알을 들어 올려 자신의 이마에 박힌 검을 바라보았다.

잠시 후 그는 스르르 허물어지듯 쓰러지고 말았다.

천세명이 저벅저벅 걸어왔다.

단숨에 절명해 버린 장독곤의 이마에서 검을 뽑아낸 그가 검신의 피를 다시 한 번 털어내고는 갈무리했다.

“괜찮은가?”

“…….”

거적때기 사내가 눈치를 살피면서 잔뜩 경계했다.

그나마 자신을 구해 주었다는 인식은 하고 있는 것인지 다행히 달아나진 않았다.

“자네를 해칠 생각은 없네. 나와 함께 용천관으로 가세. 거기서 지내다가 때가 되면 자네를 치료할 사람에게 데려다 주겠네.”

“그으…”

“도대체 어쩌다 그런 몹쓸 병에 걸린 거지? 위쪽 지방이라면 혹시 마족이 강림한 것과 관련이 있는 건가?”

“그르르…”

“자자, 너무 긴장할 것 없네. 잠깐 자네 맥 좀 짚어 보지.”

천세명이 사내의 손목을 짚었다.

‘흐음, 참으로 묘하구나. 무공을 익힌 것처럼 보이는데… 뭔가에 억눌려 있어. 한데 그게 뭔지 모르겠군. 약을 잘못 먹은 건가? 주화입마의 상태인 것 같지는 않은데… 대체 무슨 일이지?’

마족이 강림하면서 정사연맹의 많은 사람들이 그곳에서 죽었다고 들었다.

그 중 살아 남은 자들도 있지만, 결국 그 당시의 후유증으로 주화입마에 빠진 자들도 여럿 있다는 소문이 돌았다.

혹시 이자도 그런 자가 아닐까?

“그나저나 자네의 사슬을 풀어 주고 싶어도 열쇠를 찾을 수 없으니 방법이 없군.”

평범한 쇠사슬이 아니었기에 검기를 발현하는 정도로는 끊을 수가 없었다.

게다가 만물쌍웅의 품을 뒤져도 열쇠 같은 건 보이지 않았다.

“일단 용천관으로 가면 관주님이 이걸 끊어내실 수 있을 걸세. 가세.”

결국 그는 거적때기 사내를 데리고 다시 길을 나섰다.

곧장 용천관으로 향하려고 했던 그의 계획은 도중에 조금 수정되었다.

마을에 도착했을 때쯤 사내의 뱃속에서 천둥 같은 소리가 들린 것이다.

결국 천세명은 마을 객잔에 들러 사내에게 저녁을 사주었다.

쩝쩝. 와구와구.

사내는 걸신이라도 들린 것처럼 음식을 먹어치웠다.

저러다가 숨을 쉬지 못해 죽는 게 아닌가 걱정스러울 정도로.

‘어지간히도 굶었나 보군.’

보면 볼수록 묘한 사내였다.

**

높은 나뭇가지 위에 선 아라니우스는 저만치 보이는 전각들을 보며 눈을 가늘게 떴다.

“저곳인가?”

“예, 용천관입니다.”

“인근 소환지는?”

“말 한 번 타면 단숨에 닿을 거리입니다. 출입구가 없어서 아직 발견되지 않았습니다만, 아들러 백작이 오늘밤 자정에 완전히 개방하기로 했습니다.”

“좋아. 소환지에서 몬스터가 나오기 시작하면 녀석들을 이끌고 용천관을 친다.”

“알겠습니다.”

“여기서 주의해야 할 자는 누구인가?”

“‘은기륭’이라는 자로, 용천관주입니다. 하지만 큰 문제는 없을 거라 생각합니다.”

“좋아, 용천관에 문제가 생긴다면 그놈이 천리 길을 마다하고 달려오겠지.”

아라니우스가 입매를 비틀어 올렸다.

과연 정도맹 본단까지 가지 않아도 되고, 녀석의 감정을 도발하고, 또 스스로 찾아오게 만들 최고의 방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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