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환 마교관-485화 (485/670)

# 485

귀환 마교관

485화

퍼억!

“꺄아아악!”

목단화가 비명을 내지르며 나가떨어졌다.

연무장 여기저기에 사람들이 시체처럼 널브러져 있었다.

그들 모두 꿈쩍을 하지 않으니 죽은 것인지 산 것인지 확인할 길이 없었다.

다만 무인들을 향해 퍼붓는 사비강의 공격은 그야말로 무시무시한 강공이었다.

가볍게 생각했다간 한 순간 저승 강을 건널 수 있었다.

‘흐음. 연우경은 예상치를 충분히 채웠는데, 목단화가 좀 부족하군.’

그래서일까?

조금 전에 사비강의 일격을 맞고 튕겨 날아간 목단화는 쓰러진 채로 꿈적도 하지 않았다.

그때였다.

“방심하지 마시죠!”

머리 위에서 날카로운 목소리와 함께 위검종이 혜성처럼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그와 동시에,

“관주님만 강해진 건 아니지요!”

“우리도 무시할 수 없다고요!”

정면에서는 자운룡이 검을 내질러 왔고, 좌우 측면에서는 곡보옥과 적무린, 후방에서는 서래향이 쇄도해 왔다.

빈틈을 찾을 수 없는 완벽한 합격술.

블링크를 시전한다면 빠져나갈 수도 있겠지만, 사비강은 순간 심호흡을 하면서 눈을 부릅떴다.

찰나,

파아아앙!

“크웃!”

“꺄아악!”

사방으로 기파가 터져 나가는 것과 동시에 무인들이 저마다 멈칫거리며 신음을 흘렸고, 서래향은 외마디 비명을 내질렀다.

놀랍게도 사비강은 발걸음을 움직이지도 않고 그 자리에 선 채로 순식간에 십여 장을 물러선 것이었다.

오로지 내공을 운용하는 것만으로!

이는 내공을 이용해서 물에 뜬 배를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것과 비슷한 원리였다.

하지만 지면의 마찰이 존재하는 땅에서는 지극히 어려운 일.

뿐만 아니라 사비강은 튕기듯 뒤로 날아가면서 서래향을 스칠 때 재빨리 혈까지 점했다.

서래향이 그대로 쓰러지자 적무린이 화들짝 놀라서 달려왔다.

“홍묘님!”

그가 얼른 쓰러진 서래향을 안아 들었다.

목에 손을 가져다댔지만 맥이 느껴지지 않았다.

“……!”

한편 사비강은 매우 만족하는 중이었다.

‘완성됐군! 천해심보(天解心步)!’

사실 이번 대련은 멸마관 무인들의 수련이자 성취도를 알아보는 과정이기도 했지만, 사비강 자신의 수련이기도 했다.

천해심보는 사비강이 만든 보법으로, 일종의 경공술이라고 볼 수 있었다.

하지만 그 경지에 있어서는 가히 모든 보법 위에 있다고 자부할 수 있었다.

보법의 최고 경지가 허공답보라면, 천해심보는 그보다 한 단계 위라고 보면 된다.

허공답보 역시 이름처럼 허공을 밟아 가면서 이동하는 것이다.

하지만 천해심보는 오로지 기의 흐름만을 이용해서 몸을 허공에 띄우는 것은 물론, 전후좌우로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다.

블링크처럼 순간 이동의 경지까지 이를 수는 없지만, 그것만큼이나 빠르게 이동할 수 있다.

기의 흐름으로 몸을 움직일 수 있다 보니 허공에 부유하는 것 또한 가능하다.

다만 비슷한 플라이 마법을 쓸 때 소모되는 마나의 양보다는 천해심보를 사용할 때 소모되는 내공의 양이 훨씬 적다.

당연히 블링크를 사용할 때의 마나 소모량보다도 적은 내공이 소모된다.

혹시라도 마법을 사용하기 힘든 순간이 오면 천해심보야말로 목숨을 구할 수단이 될 수 있으리라.

그야말로 천해경에 이른 자만이 사용할 수 있는 보법이었다.

그것도 천해경의 이 해량에 이르러야만 천해심법을 온전히 사용할 수 있었다.

‘만년설삼을 복용한 효과를 이제 보는군.’

물론 만년설삼만 복용했다면 천해심보를 완성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

지금처럼 극한의 상황 속으로 스스로를 몰아넣고 제한된 상황 속에서 사투를 벌이다 보니 기적처럼 발현이 된 것이다.

반면 서래향의 호흡이 멈춘 것을 확인한 적무린이 벌겋게 충혈된 얼굴로 소리쳤다.

“정말… 정말… 죽인 겁니까!”

“내가 가짜로 한다한 적 있었나?”

사비강의 대답은 시종 싸늘했다.

적무린의 눈이 완전히 뒤집혔다.

“아무리 그래도 어떻게 이럴 수가 있습니까?”

“미리 경고해 두었어. 방심한 너희들 잘못이지.”

“절대! 절대! 용서할 수 없소!”

파앙!

적무린이 눈물을 뿌리며 사비강을 향해 무서운 속도로 달려들었다.

하지만 이미 이성을 잃은 그가 천해심보까지 완성한 사비강을 제압할 수는 없었다.

슈아아아아악!

검강이 그대로 사비강의 뺨을 아슬아슬하게 스쳐 지나갔다.

사비강은 여전히 꼿꼿하게 선 자세로 부드럽게 움직이더니 순식간에 적무린 품으로 다가와 주먹을 올려쳤다.

퍼억!

“쿠우욱!”

적무린이 피를 토해내면서 그대로 튕겨지듯 날아갔다.

슈우우우욱, 꽈당탕탕!

바닥에 쓰러진 그는 간헐적으로 몸을 꿈틀거릴 뿐이었다.

사비강이 손을 탁탁 털고는 중얼거렸다.

“일 갑자하고도 반 갑자가 더 늘었군. 그래, 그 정도는 되어야 만년설삼을 준 보람이 있지.”

하지만 그 일 갑자 반이나 늘어난 주인공은 바닥에서 벌레처럼 꿈틀거리며 의식을 잃어 가고 있었다.

이쯤 되자 몇 남지 않은 무인들이 모두 아연실색한 표정으로 사비강을 보았다.

그들의 머릿속에는 같은 생각이 떠올랐다.

‘도저히… 이길 수가 없다!’

그런 생각을 아는지 모르는지 사비강이 시큰둥한 표정으로 물었다.

“뭘 그렇게 멀뚱멀뚱 서 있어? 덤벼야지? 먼저 덤비지 않겠다면 내가 먼저 가지!”

슈우우우웃.

사비강이 이번에도 꼿꼿하게 선 채로 귀신처럼 빠르게 이동했다.

**

아라니우스는 이글거리는 눈동자로 허공을 빤히 응시했다.

그가 씹어뱉듯이 중얼거렸다.

“사비강이란 말이지….”

그는 바리탄이 했던 말을 떠올리고 있었다.

강림 의식을 처음부터 끝까지 방해했던 인간.

게다가 드래곤 하트는 물론 마왕의 검인 베르타스까지 갈취해 간 인간!

꽈드득…!

그가 주먹을 힘주어 말아 쥐었다.

인간이 감히 마족의 위업을 방해하다니!

한낱 인간 주제에!

물론 이따금씩 소드 마스터 따위를 내세워 마족에게 대항하는 녀석들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껏 그 어떤 인간도 마족을 이기진 못했다.

그야말로 분수를 모르는 불나방이었을 뿐.

그런데 이곳 중원에도 그런 불나방이 있단 말이렷다.

물론 이곳에서 무공을 익힌 인간들은 남다르다는 것을 알게 됐다.

하지만 그렇다고 한들….

“어떻게 베르타스를 취할 수 있는 거지?”

베르타스의 마성은 어지간한 인간이라면 절대로 이겨내기 힘들다.

적어도 한 번이라도 악신의 축복을 받은 적이 있지 않은 이상에야.

하지만 단 한 번 악신의 축복을 받는다고 해서 베르타스를 쥘 수 있다는 보장은 없다.

아라니우스 자신도 베르타스를 손에 쥐고 있으면 가슴이 뛰기 마련이다.

한데 인간이 그 베르타스를 감당해?

좋다.

많이 양보해서 드래곤 하트를 복용했기 때문이라고 하자.

그런데 드래곤 하트는 어떻게 복용한 거지?

중원인들은 단전에 내공을 쌓는 걸로 아는데….

심장으로 마나를 모아야 하는 드래곤 하트는 어찌 소화했단 말인가?

의문투성이다.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만약 공작님이 그 녀석에게서 베르타스를 빼앗아 온다면 폐하께서는 더 없이 기뻐하시겠지요.”

바리탄이 한 말이다.

이거야말로 귀한 정보였다.

베르타스가 사비강에게 있다는 정보.

바리탄의 말에 의하면 그 누구에게도 아직 알리지 않았단다.

사실은 그 베르타스를 자신이 되찾은 다음 마왕에게 직접 바치려고 했단다.

하지만 그는 반역의 전력을 가진 마족이다.

자칫 섣불리 움직이면 다시 한 번 역모의 누명을 쓸 수도 있었다.

그런 점을 감안해서 아라니우스에게만 이 사실을 털어놓는 거라고 했다.

대신 아라니우스가 마왕의 인정을 받아 대공의 위치까지 오르게 되면, 바리탄의 작위를 어느 정도 회복하는데 도움을 달라는 조건이었다.

나쁘지 않았다.

대공이 된다면 적어도 여섯 악신에서부터 많게는 아홉 악신까지 가호를 받을 수 있다.

물론 그 범위 안에서 얼마나 많은 악신의 가호를 받는지는 아라니우스의 역량에 달려 있었다.

아니, 여섯 악신만 해도 충분하다.

마계대공은 아무나 차지하는 지위가 아니니까.

하지만 잃어버린 베르타스를 회수한다면야…!

그때 허공에서 탁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다녀왔습니다.”

아라니우스의 심복 자베린이었다.

“알아보았는가?”

“예, 아들러 백작을 통해서도 확인은 해보았으나 특별한 점은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다만 그를 끌어들일 방법은 있을 듯합니다.”

“끌어들일 방법이라….”

확실히 정도맹 본단에 있는 사비강을 곧바로 치는 건 부담이 있었다.

아무리 벌레 같은 인간들이라지만, 그 중에서도 독기를 품은 벌레들이 떼로 버글거리면 귀찮아지는 법이다.

그러니 가장 맹독을 지닌 한 녀석만 끌어내면 된다.

“말하라.”

“사비강이라는 자는 용천관이라는 학관 출신인 것으로 파악됐습니다.”

“학관이라면 무공을 가르치는 학교 같은 곳인가?”

“그렇습니다.”

아들러 백작과 바리탄의 설명으로 대략적인 중원의 사정을 알고 있는 마족들이었다.

“한데?”

“조사한 바에 의하면 사비강을 따르는 많은 이들이 그 학관 출신이며, 사비강 역시 그 학관에 애정을 가지고 있을 것으로 파악됩니다.”

“하긴 인간들은 태생이 미천해서 난 곳에 집착하는 버릇이 있지.”

“그래서…”

“용천관을 치자는 말이군.”

“그렇습니다.”

“하지만 인간은 의심이 많은 법. 갑자기 우리가 용천관을 치게 된다면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 않겠나?”

“좋은 방법이 있습니다.”

“뭔가?”

자베린의 자신만만한 대답이 이어졌다.

**

“후우…”

사비강의 전신이 땀에 흠뻑 젖었다.

오른쪽 어깨 부위가 찢어져 피가 배어 나왔고, 왼쪽 허벅지에도 검상이 있었다.

손바닥에는 화상도 약간 입었다.

어깨는 조문탁이 부린 검은 벌집에 당한 것이었고, 허벅지는 당이협이 내지른 검에 입은 상처였다.

마지막으로 손바닥의 화상은 단리정이 쏜 화살을 낚아채다가 입었다.

반면 대연무장에는 그를 제외하곤 두 다리로 멀쩡하게 서 있는 자들이 없었다.

그야말로 누군가 본다면 학살의 현장이라고 봐도 될 만큼 처참한 광경이 펼쳐져 있었다.

다만 조금 특이한 점이 있다면,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쓰러진 것치고는 혈흔이 거의 없다는 점이었다.

어쩌다가 보이는 혈흔도 대부분 각혈에 의한 것이지, 살이 베이거나 찢어진 것은 아니었다.

물론 사비강도 지칠 대로 지쳐 있었다.

마법을 사용하지 않는다는 제약과 무기를 들지 않는다는 제약 때문에 지친 것은 아니다.

그가 이렇게 힘든 것은 비무를 하면서 특별히 신경 쓴 부분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이번 무차별 비무의 핵심이었다.

터벅터벅…!

사비강이 무거운 걸음을 이끌고 한참 걷다가 우뚝 멈췄다.

그가 널브러져 있는 무인들 중 한 명을 물끄러미 응시하더니 툭 던지듯 말했다.

“거기.”

순간 쓰러져 있던 무인이 흠칫거렸다.

아주 미세한 반응이었지만 사비강은 놓치지 않았다.

“내가 넌 안 때린 것 같은데?”

“…….”

몸을 뒤집은 채 쓰러져 있는 자는 다름 아닌 등자경이었다.

그는 두 눈을 질끈 감으며 속으로 소리쳤다.

‘아, 왜 이럴 땐 알아보는 겁니까! 제발 좀 모른 척 좀 해달라고요!’

하지만 사비강의 목소리는 계속 이어졌다.

“뭐, 생존을 위한 방법으로는 나쁘지 않지. 하지만… 확인 살인이라는 것도 있다는 거.”

‘히익…!’

푸푸푹!

다음 순간 등자경은 등을 가격하는 지풍을 얻어맞고는 그대로 의식을 잃고 말았다.

사비강이 다가와서 기절한 그를 뒤집고는 눈살을 잔뜩 찌푸렸다.

“음? 그런데 이놈은 누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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