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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 마교관-462화 (462/670)

# 462

귀환 마교관

462화

매설란은 바짝 긴장한 채 눈앞의 중년 사내를 가만히 보았다.

확실히 강하다.

손 끝 하나 조차도 신경을 써서 움직여야 한다.

자칫 방심하면 아니, 방심이라고 표현하기에는 적이 너무 강하다.

자칫 집중력을 잃었다간 차가운 바닥에 드러눕게 될 사람은 자신이 되리라.

‘그럴 수는 없지!’

매설란은 입술을 꼭 깨물었다.

반면 그녀를 마주보고 있는 일신마는 시종 느긋했다.

“제법이군.”

일신마가 주위를 둘러보면서 진심으로 감탄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어깨를 으쓱이고는 말했다.

“사실 관주가 없다기에 식은 죽 먹기 정도로 생각했지. 한데 이렇게까지 버텨낼 줄은 몰랐다. 제법이야. 꽤나 번거롭게 만들었어. 손해도 있었고.”

“사람이 죽은 일을 손해라고 표현하다니. 역시 악랄한 마교놈들 답군.”

매설란이 차갑게 힐난하자, 일신마가 피식 웃었다.

“그런 정직한 발언으로 격장지계를 노리는 거라면 헛수고다. 하지만 그 용기는 칭찬하지. 그리고 지금까지 버텨 낸 뚝심도. 하지만 그것도 여기까지. 너희들은 여기서 전원 죽는다.”

“종알종알 시끄럽게도 떠드네!”

매설란이 날카롭게 소리치고는 바닥을 차고 날아갔다.

취리리리리릿!

두 마리의 쌍두사가 섬뜩한 소리를 울리며 일신마의 상하반신을 동시에 노리고 달려들었다.

“과연 제법이야.”

따다앙!

“큿!”

매설란이 휘청거리며 물러났다.

그녀는 적지 않게 놀랐다.

상대가 강하다는 건 벌써 충분히 짐작한 바였다.

하지만 이렇게 가볍게 자신의 선공을 막아낼 줄은 몰랐다.

휘링… 휘링… 휘링…

‘연도(軟刀)….?’

일신마가 든 대도가 갈대처럼 휘청휘청 휘고 있었다.

‘착시인가…?’

그가 공격을 막아내기 전까지는 저렇게 얇고 유연한 도일 것이라는 걸 짐작조차 하지 못했다.

제법 긴데다가 도면이 무척 넓은 편이었기에.

게다가 도면을 따라 새겨진 무늬들이 일종의 착시 효과를 주어서 얼핏 굉장히 굵은 칼처럼 보이게 만들었다.

한데 이제 보니 자신의 연검만큼이나 가볍고 얇은 도가 아닌가?

그럼에도 지금 받은 충격은 굉장히 묵직했다.

매설란은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자신보다 적이 한 수 위라는 사실을.

‘나보다 강해. 인정할 수밖에 없어! 그럼 이제 어떻게 해야 하지?’

옆에 사비강이라도 있었으면 좋겠다.

목소리만이라도 들을 수 있다면.

그래서 물어볼 수만 있다면.

왠지 사비강이라면 그 해답을 가르쳐 줄 것만 같다.

하지만 지금은 혼자다.

‘어떻게든 혼자 대답을 찾아내야 해! 내겐 수많은 사람들을 책임져야 할 의무가 있으니까!’

어금니를 빠득 간 매설란이 다시 한 번 기합성을 터뜨리면서 일신마의 품으로 파고들었다.

“하아아앗!”

취리리링! 취리리리링!

다시 한 번 두 마리의 뱀이 굽이치며 날아갔다.

휘리리리리링!

이번에는 그보다 굵은 구렁이가 몸을 뒤틀며 마주쳐 왔다.

마치 두 마리의 뱀과 커다란 구렁이 한 마리가 서로 뒤엉키면서 싸우는 듯한 모습이었다.

가느다란 뱀은 무척 빠르고 민첩했지만, 커다란 구렁이는 힘이 좋고 움직임이 컸다.

퀴리리리리리리링!

뱀과 구렁이가 서로 뒤엉켜 있는 동안 매설란은 생각을 멈추지 않았다.

‘빈틈이라도 찾아야 하는데…!’

하지만 일신마의 나른한 표정을 보고 있노라면 오히려 이쪽에서 빈틈을 드러내 보일 지경이었다.

“대충 실력은 확인했다. 흥미롭긴 하지만 아직 부족하군.”

“칫…!”

매설란은 내심 놀랐다.

조곤조곤 말을 꺼내는 일신마는 어지럽게 칼을 휘두르면서도 호흡 하나 흐트러지지 않았던 것이다.

일신마가 눈을 가늘게 뜨고는 말했다.

“총관이 천하절색이라더니 틀린 말은 아니었군. 교주님께서 흡족해하실 지도 모르니 죽이진 않으마.”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피츗!

“크읏!”

피츄츄츗!

“아악!”

매설란이 비틀거리면서 물러났다.

하지만 일신마는 그녀에게 쉴 틈을 주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매설란은 계속해서 연검 두 자루를 정신없이 휘둘러야 했다.

까라라라라라라랑!

불꽃이 튀어 오르면서 세 자루의 도검이 마구 뒤섞였다.

티잉! 푹! 푹!

“악!”

매설란이 외마디 비명을 내지르며 훌쩍 물러났다.

팔뚝을 타고 선혈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가슴 한쪽과 옆구리, 허벅지가 각각 찢어져 피로 물들어 있었다.

특히 옆구리가 불에 덴 것처럼 화끈거렸다.

휘두른 연검이 튕겨져 나오면서 오히려 자신의 옆구리를 찔러 버린 탓이다.

다크번의 날개 뼈를 섞어 만든 연검이었기에 옆구리에는 화상 자국이 남을 터였다.

반면 일신마는 다소 흥미롭다는 듯 매설란을 보았다.

분명 조금 전 공격은 그녀에게 치명상을 입힐 수 있었다.

절대로 피할 수 없는 공격이었다.

한데 놀랍게도 그녀는 그 공격을 막아냈다.

정확히 마혈을 노리고 들어갔는데, 옆구리에 화상만 입고 말았다.

사실 엄밀히 따진다면 막아낸 것이 아니다.

치명상을 피하기 위해 일종의 자학을 한 셈이다.

하지만 그 찰나의 순간 그런 판단을 내릴 수 있다는 건 분명 놀라운 일이었다.

그런 이유로 일신마가 잠시 멈칫한 사이에 매설란은 비로소 한숨 돌릴 수 있었다.

버겁다.

너무 버거워서 손과 발이 떨릴 정도다.

조금 전 마혈을 제압당할 뻔했다.

급히 적의 검을 튕겨 내면서 옆구리를 내어 주었기에 화를 면했다.

그야말로 고육지책(苦肉之策)이었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하지? 생각하자. 생각해 보자. 사비강이라면 어떻게 했을까? 그가 자신보다 강한 상대를 만났다면?’

분명 이길 때까지 싸웠을 것이다.

자신도 그러고 싶다.

하지만 지켜야 할 사람들이 있다.

책임져야 할 수하들이 있다.

그럴 땐 어떻게 했을까?

사비강이라면…!

머리가 복잡하다.

이런 자신을 보면 그가 얼마나 웃으며 놀려댈까?

‘뭘 그리 복잡하게 생각하냐고 놀리겠지. 싸울 땐 머리를 비우라고 잔소리를 할지도. 그래, 단순한 게 최고라며 웃어댈 거야. 그리고… 가만!’

순간 매설란은 몸을 흠칫 떨고는 멍한 표정을 지었다.

생각은 복잡하고 길었지만, 무척 짧은 시간 동안 머릿속에서 일어난 일이었다.

매설란이 멍하니 중얼거렸다.

“단순한 게 최고….”

“뭐?”

일신마가 이맛살을 슬쩍 구기고 물었다.

하지만 지금 매설란은 일신마의 반응을 신경 쓰지 않았다.

그녀는 뒤통수라도 한 대 맞은 듯 눈을 크게 떴다.

왜 진작 그 생각을 못했을까?

문득 자신이 너무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비강은 늘 명쾌했는데.

왜 그렇게 어렵게 생각했단 말인가?

어쩌면 이 또한 무인으로서 가진 허세가 아니었을까?

그 허세를 버리니 답은 너무나 명쾌하지 않은가?

매설란이 갑자기 기수식을 풀며 바로 섰다.

일신마가 미간을 좁히고는 물었다.

“이번엔 또 뭘 보여주려고 그러지?”

“그라면 이렇게 말했을 거야.”

“아까부터 무슨 말을 하는 건가?”

“혼자 힘들면 함께 싸우라고.”

순간 그녀가 품에서 신호탄을 꺼내 던져 올렸다.

삐익, 팡!

날카로운 소리 끝에 작은 폭죽이 허공에서 터졌다.

일신마가 여전히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신호탄? 후퇴를 명하는 건가?”

“아니. 누군가의 시선을 끌 목적이지!”

“누구…!”

그때,

쒸에에에에에에엑!

일신마의 표정이 흠칫 떨리더니 얼른 연도를 앞세웠다.

따아아아아앙!

휘링, 휘링, 휘리잉.

츠츠츠츠츠츠츳!

화살을 막아낸 연도가 휘청거렸고, 일신마는 십여 장이나 미끄러지며 물러났다.

곧이어,

쒸쒸에에에에에에엑!

따다아아아아아아앙!

다시 한 번 두 자루의 화살이 연이어 날아들었다.

츠츠츠츠츠츠츳, 콰당!

미끄러지듯 물러난 일신마가 벽에 부딪치고 나서야 겨우 멈췄다.

다음 순간, 매설란은 품에서 또 다른 무언가를 꺼내서 바닥으로 던졌다.

“그리고 이런 말도 했을 테지. 도저히 안 되면 도망치라고 말이야! 그는 의외로 단순하거든!”

퍼어엉!

자욱한 연무가 사방으로 피어올랐다.

그야말로 한치 앞도 구분하기 힘들 지경이었다.

그러고도 다시 날아드는 화살.

쒸에에에에에엑!

투까아앙!

놀랍게도 어둠을 뚫고 날아든 화살은 정확히 일신마의 이마를 노렸다.

하지만 더욱 놀랍게도 일신마는 그런 화살을 정면으로 내리쳐 두 동강내고 말았다.

뒤이어 일신마가 마기를 사방으로 방출하자, 주변을 가득 메우고 있던 연무가 순식간에 흩어지며 사라졌다.

그러나 매설란은 이미 그 자리에서 떠난 뒤였다.

주변을 둘러보니 여기저기 흩어져서 싸우던 멸마관 무인들이 전부 남문을 향해 안으로 달려 들어가고 있었다.

아마도 연무에 갇힌 잠깐 동안 후퇴 신호가 떨어진 모양이었다.

일신마의 표정이 처음으로 일그러졌다.

“귀엽게 노는군.”

**

“헉, 헉, 허억…!”

곡보옥은 거칠게 숨을 몰아쉬며 눈앞의 삼신마를 노려보았다.

삼신마 역시 숨을 헐떡이고 있었지만, 곡보옥보다는 여유가 있어 보였다.

삼신마가 입가에 흐른 피를 소매로 스윽 닦아내고는 이죽거렸다.

“제법, 주먹 좀 쓰는 녀석이구나.”

“잘 봐 둬라. 이 주먹이 널 저승으로 보낼 거다.”

곡보옥이 주먹을 꽉 말아 쥐고는 들어 보였다.

삼신마가 피식 웃었다.

“하여튼 너희 정파 놈들은 허세만 가득하다니까.”

“닥쳐라!”

탁!

곡보옥이 몸을 붕 날리더니 그대로 삼신마에게 떨어져 내렸다.

꽈아아앙!

곡보옥과 삼신마가 정확히 주먹을 마주쳤다.

순간 기의 파장이 사방으로 훅 불어 나갔다.

곡보옥이 왼손을 내뻗으며 소리쳤다.

“쇼크 웨이브(Shock Wave)!”

순간 그의 주먹에 시퍼런 기운이 맺히는가 싶더니 삼신마의 복부에 그대로 날아가 꽂혔다.

꽈아아앙!

상대의 몸속까지 충격파를 전하는 마법이었다.

“크읍!”

삼신마가 신음을 삼키면서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노옴…! 까불지 마라!”

그가 노호성을 터뜨리면서 그대로 주먹을 위에서 아래로 내리쳤다.

곡보옥이 얼른 팔을 들어올렸다.

꽈아아앙!

마치 쇳덩이가 서로 부딪친 것만 같은 소리가 울렸다.

“크윽!”

이번에는 곡보옥이 신음을 터뜨렸다.

과연 삼신마의 권력은 무지막지한 수준이었다.

철인구를 착용했음에도 뼈에 금이 간 것처럼 지독한 통증이 밀려왔다.

삼신마가 히죽 웃으며 그대로 머리를 부딪쳐 오는 순간이었다.

‘이런 돌대가리!’

철피마공(鐵皮魔功)을 익힌 삼신마는 온몸이 무기나 다름없었기에 곡보옥은 눈을 질끈 감았다.

그런데 다음 순간 삼신마는 등골이 오싹해지는 걸 느끼고는 화들짝 뒤를 돌아보았다.

쒸에에에에에엑!

푸욱!

허공을 가르며 날아든 화살 한 대가 그의 옆구리에 깊숙이 박혔다.

촤아아아아앗!

그가 서너 장을 미끄러지면서 겨우 멈춰 섰다.

“크윽!”

불에 덴 것처럼 화끈거리는 통증에 삼신마가 어금니를 빠득 갈았다.

그때 다시 화살 한 대가 무서운 속도로 날아들었다.

쒸에에에에에엑!

찰나지간 곡보옥도 기합성을 내지르며 날아왔다.

“죽어라! 이 돼지새끼야!”

쑤아아아아아앙!

강기를 품은 화살과 권강이 동시에 날아드니 삼신마는 어쩔 수 없이 하나를 상대해야만 했다.

‘저 화살은 위험하다…!’

멸마관의 신궁은 강호제일이라는 소문이 이미 파다했다.

그렇다고 지금 상황에서 곡보옥의 권강이 만만하다고 볼 수는 없었지만,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피잉!

삼신마는 화살을 아슬아슬하게 피하면서 곡보옥을 향해 일장을 내밀었다.

곡보옥의 권강이 그의 장력과 정면으로 부딪쳤다.

꽈아아아아앙!

슈우우우욱, 콰아앙!

삼신마의 몸이 포탄처럼 튕겨 나가면서 벽을 무너뜨리며 쓰러졌다.

당연한 결과였다.

이미 그는 어깨와 옆구리에 상처를 안고 있었다.

부상이 심했기에 철인구를 사용한 곡보옥을 당해낼 수는 없었다.

삼신마가 게슴츠레 뜬 눈으로 곡보옥을 보았다.

“비겁한… 새끼들…!”

곡보옥이 그에게 저벅저벅 다가오며 싸늘하게 읊조렸다.

“언제 내가 혼자 싸울 거라고 약속이라도 했던가? 그리고 우리 관주님이 그러셨지. 싸움이 시작된 이상 비겁한 건 없다고. 그 말은 즉….”

곡보옥이 주먹을 꽉 쥐더니 한껏 치켜들었다.

만신창이가 된 삼신마도 더 이상의 저항은 포기한 듯 두 눈을 부릅뜬 채 노려보기만 했다.

곡보옥이 소리를 지르며 주먹을 내리쳤다.

“이기면 장땡이라는 거다!”

슈우우우우우욱!

퍽!

순간 곡보옥의 눈이 커졌다.

분명 삼신마의 머리가 박살이 났어야 했다.

한데 자신의 주먹이 누군가의 손에 잡혀 있었다.

‘이럴… 수가?’

뻣뻣하게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돌려보니, 머리카락이 치렁치렁한 사내가 음침한 분위기를 풍기며 서 있는 게 아닌가?

“이기면 장땡이라니. 그것 참 간단하고 좋은 말이군.”

사내가 중얼거리자, 삼신마가 그를 보고 외쳤다.

“교주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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