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60
귀환 마교관
460화
내관 남문 광장은 그야말로 시산혈해였다.
시체들이 겹겹이 쌓여 갔고, 곳곳에서 부상자들이 신음하며 바닥을 기어 다녔다.
마령교 혈풍단주(血風團主) 유백호(劉伯虎)는 쓰러진 수하들을 보고 이를 빠득 갈았다.
“이 병신 같은 것들…!”
수하들의 죽음이 안타까워서 내지른 소리가 아니었다.
조금이라도 더 살아서 자신에게 도움을 주지 못한 것이 짜증나서 내뱉은 말이다.
그는 눈가에서 흐르는 피를 소매로 훔치고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쾅! 콰콰콰아앙!
“크아아악!”
“우아악!”
여기저기에서 마령교도들이 몸을 뒤집으며 쓰러져 갔다.
그야말로 기관 장치는 영원히 작동할 것처럼 끝없는 공격을 퍼부었다.
벽에 난 구멍에서는 쉴 새 없이 화살이 날아들었고, 바닥의 창은 쌓인 시체마저 꿰뚫고 올라와 마령교도들을 내찌르며 위협했다.
경공을 펼쳐 창을 건너간 자들은 곧바로 화공에 맞서야만 했다.
특히 바닥에서 화산이 폭발하듯 일어나는 불길과 뜨거운 돌덩이들은 마인들을 당황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사실 이는 조신량이 볼케이노 마법을 본떠서 만든 기관 장치였다.
어쨌거나 그 외에도 투창, 투검, 독, 연무, 폭약 등으로 남문 광장은 아수라장이 되어 있었다.
콰콰콰콰아앙!
취이이이!
“크아악!”
연신 눈이 따갑고, 고막은 찢어질 것처럼 시끄러웠다.
유백호는 이를 빠득 갈고는 뒤를 돌아보았다.
‘아직 인겁니까?’
전각 위에서 팔짱을 낀 채 지켜보는 일신마는 여전히 꿈쩍도 하지 않았다.
자신들이 나설 때가 아니라고 판단한 것이리라.
어쩔 수 없다.
그들이 자신들을 화살받이로 내몰았다면, 그 임무에 충실하면서 최선을 다해 살아남아야 할뿐이다.
‘반드시 살아남아 주겠다! 이 멸마관 새끼들아.’
이를 빠득 간 유백호는 귀신같은 얼굴로 남문 위의 매설란을 노려보았다.
만약 저 남문을 뚫게 되면, 가장 먼저 매설란을 사로잡아 교주님께 바치리라.
운이 좋다면 자신에게도 차례가 돌아올 지도 모른다.
그의 두 눈빛에 광분과 색욕이 뒤섞였다.
“카악, 퉤!”
침을 뱉어내고는 저벅저벅 걸음을 옮겼다.
순간,
철컥, 취이이이이!
갑자기 검은 연무가 자욱하게 피어올랐다.
한 치 앞도 구분하기 힘든 연무 속에서 비명소리가 난무했다.
방향을 잃은 마령교도들이 미처 기관 장치를 피하지 못하고 당하는 소리가 계속 울렸다.
“흐이익! 더 이상은 위험해!”
“돌, 돌아가야 해!”
연무가 희미해지자 몇몇 수하들이 몸을 돌리고 달아나는 모습이 보였다.
“이 병신 같은 것들! 맞서 싸우지 못하겠느냐!”
유백호가 일갈을 터뜨리며 날아가서는 달아나는 수하들의 머리를 일격에 날려 버렸다.
쒸이이이잇!
서컥, 서컥!
마인들이 그의 검에 픽픽 쓰러져 나가자, 달아나던 자들이 저마다 움찔거리고는 물러났다.
유백호가 전신의 마기를 폭사하듯 발출하며 소리쳤다.
“누구든 물러서는 자는 내 검에 죽게 될 것이다! 너희들이 살 길은 무조건 남문을 뚫는 거다!”
“존, 존명!”
마인들이 다시 돌아서서는 악착같이 남문으로 돌진했다.
그야말로 인해전술이었다.
콰콰콰콰콰콰아앙!
쒜에에에에엑!
푸푸푸푸푹!
제일 처음 투입되었던 광마단은 이미 전멸한지 오래였다.
그 뒤를 이은 혈풍단과 암마대 역시 상당수가 죽어 나갔다.
“정말이지 지독한 자들이군요.”
남문 위에서 매설란이 입술을 씹으며 중얼거렸다.
이래서야 마치 사람을 한낱 쓰고 버리는 도구로 보는 게 아닌가?
아무리 죽여야 할 적들이라지만, 이렇게 대책 없이 달려드는 자들이 무자비하게 당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도 마음이 편치만은 않다.
동시에 조급함도 생겼다.
그건 조신량도 마찬가지였다.
‘그래도 이틀은 버틸 거라고 생각했건만.’
그가 어금니를 꾹 씹었다.
이틀도 짧게 잡은 것이었다.
적들이 인해전술로 밀고 올 때, 기관 장치가 일찍 무너진다면 이틀 정도라고 봤다.
한데 이래서야….
앞으로 한 시진은 더 버틸 수 있을까?
그야말로 불나방들이 아닌가?
문제는 이 불이 언젠가는 꺼질 불이라는 것이다.
지금도 그의 눈에는 몇몇 기관 장치에 문제가 생긴 게 보였다.
잠시 쉬어 갈 틈도 없이 계속해서 작동을 했으니 탈이 나지 않는 게 오히려 이상할 지경이었다.
“슬슬 준비를 해야 할 것 같네.”
조신량의 말에 매설란이 고개를 끄덕였다.
마침 고적산이 돌아와 그녀에게 보고했다.
“초환당 부상자들을 모두 관주실 지하로 옮겼습니다.”
“수고했어요. 이제 저들이 곧 들어올 것 같으니 싸울 준비를 해주세요.”
“알겠습니다!”
고적산이 다부진 표정으로 대답하고는 돌아갔다.
“만약을 대비해 무랑도사께서는 내관에도 간단한 미로를 설치해 주세요.”
“오래 끌진 못할 걸세.”
“약간의 시간만 벌 정도면 충분할 거예요.”
“알겠네.”
매설란은 두 자루의 검을 힘주어 잡았다.
예상보다 빠르긴 했지만, 조신량이 만든 기관 장치는 버틸 만큼 버텨 주었다.
어지간한 규모의 병력보다도 훨씬 많은 적들을 섬멸하지 않았나?
이젠 자신의 차례다.
“지금부터 이차 방어 나섭니다! 기관의 위치를 잘 파악해 두고 조심해서 싸우세요! 어디까지나 이차 방어는 기관의 빈틈을 메우는 겁니다!”
“알겠습니다!”
그녀 뒤로 도열한 교관들이 굳은 표정으로 대답했다.
매설란이 입술을 꽉 깨물었다.
‘절대로 패하지 않겠어!’
**
‘드디어 열렸다!’
유백호는 자신을 향해 날아든 화살을 쳐내고는 남문에서 쏟아져 나오는 멸마관 무인들을 보았다.
끝없이 작동될 것 같던 기관 장치도 이제 서서히 삐걱거리고 있었다.
벽면에 난 구멍에서는 더 이상 화살이 날아들지 않았고, 바닥에서 솟구치는 창은 겹겹이 쌓인 시체 덕분에 처음만큼 위협적이진 못했다.
유백호가 사자후를 터뜨렸다.
“놈들이 나왔다! 조져 버려!”
“존명!”
마인들이 사기를 끌어올리면서 멸마관 무인들에게 부딪쳐 갔다.
“막아라!”
멸마관 무인들 역시 투기를 끌어올리고는 맞부딪쳐 왔다.
차차차차차창!
카가가강! 캉캉!
곳곳에서 병장기 부딪치는 금속성이 불꽃과 함께 날카롭게 튀어 올랐다.
비명과 욕설, 기합성과 급속성이 어지럽게 뒤섞였다.
유백호는 그야말로 귀신 들린 사람처럼 싸웠다.
그가 일검을 뻗으면 멸마관 무인 하나의 목이 날아갔고, 일장을 내지르면, 배가 터져 죽었다.
마침 누군가 용기 있게 기합성을 터뜨리며 유백호의 배후를 노리고 달려들었다.
“하아앗! 죽어라, 이 마령교 새끼!”
하지만 그는 상대를 잘못 골랐다.
유백호가 귀신처럼 돌아서며 상대의 목을 일격에 그어 버렸다.
츄아아아아!
결국 달려들던 멸마관 무인은 피가 분수처럼 터지면서 목을 잃은 채 쓰러지고 말았다.
“기관 뒤에서 몸이나 사리던 것들이…!”
유백호가 검 손잡이를 콱 움켜쥐고는 이를 갈았다.
지금까지 손 한 번 제대로 써보지도 못하고 당한 것을 생각하면 쉬이 분이 가라앉질 않았다.
그가 씨근거리며 돌아서는데, 마침 맞은편에서 착 가라앉은 눈으로 자신을 노려보는 자가 있었다.
마령교도 중 하나가 그의 배후를 치려고 했지만,
쉬컥!
한순간 돌아서며 상대의 목을 베어 내는 것이 아닌가?
놀랍게도 그가 보인 대응은 유백호가 조금 전 멸마관 무인을 상대로 보여준 것과 똑같은 방식이었다.
명백한 도발.
유백호가 뺨을 씰룩이고는 그에게 다가갔다.
주변에서는 온통 비명과 고함소리가 난무했지만, 이 순간 두 사람은 명백하게 독립된 공간에 존재하는 것처럼 서로에게만 집중했다.
유백호가 상대를 보며 싸늘한 비소를 지었다.
“사파 나부랭이가 어째서 정파 놈들과 소꿉장난을 하는 거지?”
유백호가 상대의 전신에 짙게 배인 사기를 읽은 것이다.
적무린 역시 차갑게 조소를 지었다.
“내가 사파지만 정파보다 마령교를 더 싫어하지. 왜 그런 줄 아나?”
“……?”
“네놈들은…!”
탁!
순간 적무린이 바닥을 차고는 유백호를 향해 정면으로 부딪쳐 갔다.
따앙!
금속성이 울리면서 두 사람의 검이 마주쳤다.
유백호가 얼른 왼손을 뻗으며 소리쳤다.
“화염구!”
쉬이이잇, 퍼엉!
하지만 모처럼 사용한 마법은 그대로 적무린을 스치면서 지나가 뒤편의 기관 장치에 작렬했다.
이미 멸마관에서 마법을 상대하는 방법에 대해서는 숱하게 연습한 그였다.
옆으로 몸을 비튼 적무린이 빠르게 검을 휘두르면서 유백호의 목을 그었다.
피츗!
유백호의 목에 한 줄기 선혈이 생기면서 피가 주르륵 흘러내렸다.
“치잇!”
목을 쥔 유백호가 혀를 차며 훌쩍 물러나자, 적무린이 착 가라앉은 시선으로 노려보며 말을 마저 이었다.
“…멋이 없어.”
“뭐?”
“네놈들은 사고의 수준이 너무 떨어진단 말이다!”
순간 적무린이 그대로 쏜살같이 튀어 나가며 검을 내질렀다.
쩡!
“크읏!”
유백호가 어금니를 빠득 갈며 물러났다.
쉬까앙! 깡! 쩡! 깡!
‘큭, 젠장… 뭔 힘이 이렇게…!’
유백호는 연신 검을 휘둘러 공격을 막아내면서 온 팔이 저릿하게 떨려 오는 것을 느꼈다.
중검(重劍)을 사용하는 적무린은 시종 강공 일변도였다.
그에게 있어선 최선의 공격이 곧 최선의 방어인 셈.
실제로 유백호는 정신없이 검을 막아내면서도 제대로 된 반격의 기회조차 잡을 수 없었다.
워낙 강맹한 공격을 막아내다 보니 몸의 균형을 잡기 위해 몸이 휘청거리는 걸 어찌할 수 없었던 것이다.
‘제길! 이대로 계속하면 내가 당한다!’
상황이 불리하다는 것을 파악한 유백호가 얼른 주변을 살폈다.
마침 서너 장 정도 떨어진 곳에서 작동하는 기관 장치가 보였다.
바닥에서 사선으로 솟구치는 창이 있는 곳이었다.
‘어쩌면…!’
생각을 마친 그가 얼른 몸을 옆으로 날렸다.
쉬까앙!
그의 몸을 아슬아슬하게 스친 적무린의 검이 바닥을 때리며 불꽃을 터뜨렸다.
쒸에에에엑!
적무린은 멈추지 않고 그대로 유백호의 등을 노리며 검강을 뿌렸다.
쑤아아앙!
꽈아앙!
검강이 그대로 유백호의 검에 부딪치면서 소멸됐다.
이번에도 유백호는 팔이 떨어져나갈 것처럼 아팠다.
‘정말이지 지독한 힘이군. 하지만…!’
다음 순간 유백호는 다시 보법을 밟아 뒤로 물러났다.
적무린이 그대로 관성을 이용하듯 쫓아오는 순간,
파바밧!
유백호가 얼른 몸을 던져 피했다.
반면 중검의 관성을 이기지 못한 적무린이 그대로 유백호가 있던 자리에 검을 내리쳤다.
유백호는 내심 쾌재를 불렀다.
자신이 서 있던 바로 뒤쪽이 창날이 솟구치는 자리였다.
이제 결과는 둘 중 하나였다.
적무린이 검강으로 기관 장치를 부수거나, 기관 장치가 한 발 먼저 적무린의 몸을 뚫어 버리거나!
어느 쪽이든 상관없었다.
적무린이 기관 장치를 부순다면, 그 찰나를 이용해 자신이 배후에서 목을 베면 그만이었다.
그런데…
‘뭐지?’
유백호가 흠칫거리고는 눈을 부릅떴다.
어째서…
‘기관이 작동하질 않는 거냐?’
다음 순간, 내공을 이용해 중검의 관성을 비튼 적무린이 그대로 유백호의 목을 향해 강기를 날렸다.
쒸에에엑, 서컥!
순식간에 목을 잃은 유백호가 피를 분수처럼 터뜨리며 그 자리에 털썩 무릎을 꿇었다.
바닥에 떨어진 그의 머리는 여전히 이 상황을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두 눈을 부릅뜨고 있었다.
적무린이 침을 탁 뱉고는 궁금증을 풀어 주겠다는 듯 말했다.
“멸마관의 기관 장치는 마기에만 반응한다. 꼴통아.”
적무린은 검신에 묻은 피를 한 차례 털어내고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여전히 처절한 싸움이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기관 장치의 도움으로 적의 머릿수를 상당히 줄이긴 했지만, 애초에 워낙 많은 적들이었다.
적무린은 시선을 돌려 전각 지붕 위에 꼿꼿하게 선 삼신마들을 노려보았다.
“자, 이제 그만 내려올 때가 되지 않았나?”
마치 그의 중얼거림을 듣기라도 한 듯 일신마가 처음으로 팔짱을 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