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59
귀환 마교관
459화
휘이이이잉.
차가운 바람이 뺨을 스쳤다.
내관 남문 위에 올라선 매설란은 맞은편 전각 지붕 위에 선 세 사람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녀가 옆에 선 단리정에게 물었다.
“저들이 누군지 알아볼 수 있겠어?”
용안 덕분에 누구보다도 시력이 좋은 단리정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했다.
“아무래도 마령교주의 네 제자인 사신마 같습니다. 가장 왼쪽에 선 중년의 남자는 첫째 제자인 일신마와 인상착의가 거의 흡사합니다. 그리고 가운데에 검은 안대를 찬 애꾸 사내는 이신마, 덩치가 유난히 큰 자는 삼신마입니다.”
“사신마는 어디에 있지?”
“모르겠습니다. 지금은 보이지 않습니다.”
“흐음.”
매설란이 침음을 흘렸다.
사신마에 대한 정보는 자운룡을 통해서 미리 들은 바가 있었기에 단리정과 매설란 모두 비교적 자세히 알고 있었다.
때마침 무랑이 뒤로 다가서며 말했다.
“지금 동북서로 마인들이 쳐들어왔네.”
“어떻게 됐죠?”
“뭐, 어떻게 되고 말고 할 것도 없지. 고작해야 각각 십여 명 남짓이니까. 술법에 갇혀 길을 잃고 한창 헤매고 있는 중이네.”
“고작 십여 명이라고요?”
무랑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을 이었다.
“확실히 호락호락한 놈들은 아닌 게지. 뭔가 위화감을 느꼈을 게야. 그래서 십여 명을 먼저 보낸 것일 거고.”
“정찰조라는 건가요?”
“정찰조라기보단 희생조 개념일 테지. 소위 말하자면 버리는 패.”
“저들은 아군에게도 가차 없군요.”
“그러니 마교가 아니겠나?”
무랑이 씁쓸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만약 희생조와 연락이 끝내 닿지 않으면, 술법이 펼쳐져 있다는 걸 알게 되겠군요.”
“아마 지금쯤이면 저들도 알았을 걸세. 그래서 술법을 파훼할 수 있는 대법가나 술사들을 투입하겠지. 하지만….”
“도사님의 술법은 파훼되지 않겠죠.”
“물론이네. 길면 석 달, 빠르면 한 달.”
매설란이 이맛살을 슬쩍 찡그렸다.
“줄어들었네요. 육 개월, 두 달에서.”
“직접 상대해 보니 생각보단 만만찮은 놈들 같아서 말일세. 하지만 한 달 이상 좁혀지진 않을 걸세. 장담하지.”
“그럼, 만약 유사시에 우리가 빠져나갈 방법은 있나요?”
무랑이 고개를 저었다.
“들어오지 못하게 하면서 나가기 쉽게 만드는 건 어려워. 더구나 이렇게 많은 사람이 빠져나가긴 어렵지. 그땐 신수각에서 만든 지룡도(地龍道)를 이용해야 할 걸세.”
‘지룡도’란 애초에 멸마관을 세울 때부터 조신량과 홍염이 함께 머리를 맞대고 만들어 두었던 비상 통로였다.
관주전 지하 연무장에서 기관 장치를 작동시키면 더욱 깊은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이 나타나는데 무한 외곽지로 이어지게 되어 있었다.
만약의 경우를 대비해서 만든 비상 통로였지만 이렇게 일찍 사용해야 할 날이 올 줄 누가 알았으랴.
이제 매설란은 가까운 곳에 선 조신량에게 향했다.
“비상 통로의 기관 장치는 정상 작동되겠죠?”
“물론. 그건 수시로 점검했으니 문제없을 걸세.”
“다행이군요.”
매설란이 대답을 하면서도 속으로 가만히 생각했다.
‘그 통로를 이용하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지만.’
비상 통로를 이용해서 여길 빠져나간다는 것은 곧 내관까지 적의 침입을 허용했다는 말이다.
그땐 정말 위험해진다.
하지만 그렇다고 최악의 경우를 생각하지 않을 수도 없다.
더구나 부상자가 많은 만큼 최악의 경우에는 그들부터 안전하게 옮겨야 할 것이다.
매설란이 각오를 굳힌 표정으로 말했다.
“모두 이곳이 최후의 보루라고 생각하고 싸워 주시길 바랍니다. 결코 쉬운 싸움은 아니겠지만, 마지막 순간 승리의 환호를 지르는 건 우리가 될 겁니다.”
모두들 다부진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고 단주님.”
“네.”
고적산이 나서며 대답하자, 매설란이 가볍게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우선 초환당주님을 도와서 부상자들을 모두 관주전 지하 연무장으로 옮겨 주세요. 유사시에 언제든 대피할 수 있도록.”
“알겠습니다!”
고적산이 달려가자 매설란이 옆에 선 단리정을 돌아보았다.
“어차피 터질 일이야. 저들이 정비를 마칠 때까지 기다릴 필요는 없겠지.”
단리정이 그 뜻을 알아들었는지, 고개를 끄덕이고는 활시위를 천천히 당겼다.
“그럼 슬쩍 찔러 보겠습니다.”
매설란이 가늘게 뜬 눈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
후우우우웅.
차가운 밤바람이 남문 앞 광장을 휩쓸며 지나갔다.
비교적 너른 공간에는 개미 한 마리조차 기어 다니지 않았다.
대신 광장에서 이어지는 길목마다 머릿수를 셀 수도 없을 만큼 많은 마인들이 빽빽하게 도열한 채로 흉흉한 마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남문 인근의 전각 지붕 위에도 수백 명의 마인들이 언제든 싸울 준비를 하고 있었다.
남문 맞은 편 전각 지붕 위.
일신마가 꼿꼿하게 선 자세로 팔짱을 낀 채 중얼거렸다.
“남은 것들은 전부 저 안에 옹기종기 모여 있다는 건가?”
“그나마 남은 녀석들 상당수가 부상을 입었을 거요. 이젠 뭐 거의 마무리 하는 수준이 되겠지.”
이신마의 말에 삼신마가 주먹으로 손바닥을 쾅쾅 치며 말했다.
“그럼 어서 들어갑시다. 이 시건방진 것들 당장 족쳐야겠습니다.”
“삼신이 약이 바짝 올랐나보군.”
이신마가 피식 웃으며 말하자, 삼신마가 낯빛을 붉혔다.
“이것들을 아작 내지 못하면 오늘 밤 잠도 못잘 겁니다.”
때마침 사신마가 마침 그들 옆으로 내려섰다.
그의 뒤로는 네 명의 대법가와 술법사들이 따르고 있었다.
희멀건 피부에 깡마른 사신마가 일신마에게 다가가며 말했다.
“예상대로 남문을 제외한 모든 방면이 술법 진으로 막혔습니다. 이놈들이 남문에 이토록 신경 쓰는 이유가 있었습니다.”
그러자 일신마가 눈을 가늘게 뜨고는 뒤에 선 네 명의 남녀를 보았다.
“파훼하는데 얼마나 걸리겠나?”
그러자 나이가 지긋한 노인이 한 걸음 나서면서 말했다.
“술법을 펼친 녀석의 솜씨가 보통이 아닙니다. 길면 육 개월, 짧으면 석 달은 걸립니다.”
일신마의 표정이 살짝 굳었다.
잠시 후,
피융, 퍽!
일신마가 손가락을 가볍게 튕기자, 한 줄기 지풍이 날아가더니 노인의 이마에 구멍이 뚫렸다.
털썩!
노인이 그대로 쓰러지자 남은 세 명이 기겁을 하며 눈을 휘둥그레 떴다.
일신마의 시선이 노인 바로 뒤에 서 있던 여인에게 향했다.
“파훼하는데 얼마나 걸리겠나?”
“길, 길면….”
“짧은 걸로.”
“한, 한 달 안에 끝낼 수도 있습니다.”
퍽!
이번에도 여인은 이마에 구멍이 뚫린 채 절명하고 말았다.
그녀가 스르르 허물어지자 곁에 서 있던 중년의 두 남자가 안절부절 못하면서 식은땀을 뻘뻘 흘렸다.
일신마가 그 중 한 사내에게 물었다.
“그쪽은?”
“하, 하루 안에 끝내도록 하겠습니다!”
“이제야 말이 좀 통하는군. 하지만 하루씩이나 걸리면 교주님께서 화를 내실 거다. 한 시진 안에 끝내도록.”
“예? 아, 알겠습니다! 목숨을 걸고 해보겠습니다.”
“좋아, 가 봐.”
두 명의 술법가가 부리나케 달려갔다.
그 모습을 본 사신마가 고개를 갸웃거리고 물었다.
“저것들이 정말 한 시진 내에 파훼할까요?”
“못하겠지.”
“그럼…”
“적어도 처음 말한 것처럼 석 달이나 생각하고 느긋하게 움직이진 않겠지. 죽을 때까지 발악이라도 하는 게 중요한 거다.”
“그렇군요.”
“쥐새끼들도 빠져나갈 구멍은 마련하는 법이지. 내관으로 연결된 비상 통로가 어딘가에는 있을 가능성이 크다. 무한 외곽까지 샅샅이 뒤져서 연결된 비상 통로 출구를 찾아내도록.”
“알겠습니다. 대형.”
사신마가 고개를 숙였다.
그때였다.
쒸에에에에에엑!
한 줄기 섬광이 남문에서부터 날아드는 것이 아닌가?
얼른 몸을 뒤틀면서 손을 뻗은 일신마는 한 자루의 기다란 화살을 낚아챘다.
탁!
보통 화살보다 화살이 제법 길었다.
삼신마가 눈썹을 성큼 치켜 올리고는 으르렁거렸다.
“이 찢어 죽일 것들이 감히…!”
일신마는 가만히 손을 들어 삼신마의 흥분을 가라앉히고는 흥미로운 시선으로 남문을 보았다.
곁에 있던 사신마가 말했다.
“실력이 보통이 아닙니다. 멸마관에 신궁이 있다는 소문이 나돌더니 헛소문은 아닌 모양입니다.”
“이게 아니야.”
“예?”
“이건 그저 도발일 뿐이다. 최선을 다한 게 아니란 거지.”
“설마….”
사신마가 믿지 못하겠다는 듯 남문 쪽을 돌아보았다.
일신마가 화살을 왼손으로 옮겨 쥐고는 오른 손바닥을 펴보았다.
화살을 낚아채면서 손바닥이 조금 찢어진 것인지 피가 배어 나왔다.
그의 표정이 무섭게 일그러지면서 미소를 품었다.
“재미있군. 후후. 이런 식으로 나온다는 건가? 좋아, 광마단(狂魔團)을 먼저 풀어라. 놈들이 원하는 대로 해주지.”
**
“저들은…!”
자운룡이 남문 정면에 배치된 마령교도들을 보고는 흠칫 몸을 떨었다.
매설란이 그를 슬쩍 돌아보고는 물었다.
“아는 조직인가요?”
“예, 저들은 광마단입니다.”
“광마단?”
매설란이 되물으면서 눈을 가늘게 떴다.
듣고 봐서 그런지 과연 모종의 광기가 느껴지는 것도 같았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저들이 내뿜는 마기가 범상치 않다는 점이었다.
슬쩍 건드리기만 해도 당장 폭발해 버릴 것 같다고나 할까?
쿠오오오오오…!
대략 백여 명 정도로 보이는 그 조직이 뿜어대는 기운은 등골이 오싹할 정도였다.
조신량이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
“광마단인지 뭔지는 몰라도, 기관 장치가 작동하는 걸 보면 저들도 무작정 쳐들어오진 못할 걸세.”
하지만 자운룡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저들은 상관하지 않을 겁니다.”
“아무리 독한 조직이라도 가능성을 고려해 볼 일이 아니겠나? 불가능한 일에 매달릴….”
“쉽게 말해서 저들 역시 ‘버리는 패’입니다.”
“버리는 패라니….”
자운룡이 조신량을 돌아보며 조곤조곤 말했다.
“광마단은 마령교가 그동안 포로로 사로잡은 무인들을 대법으로 세뇌시켜서 만든 조직입니다. 저들은 광마단주가 내린 명령이라면 불구덩이 속에도 아무렇지도 않게 뛰어들 겁니다. 한 마디로 온전한 이성을 가진 자들이 아니지요.”
“허어, 그런 미친 짓을…!”
세뇌당한 광마단원들을 두고 한 말이 아니다.
아무리 적이라지만 같은 인간끼리 그런 대법을 사용했다는 게 혐오스러워 꺼낸 말이었다.
“이제 곧 들어오겠군요. 긴장해야겠습니다.”
자운룡의 말에 매설란이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고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모두 각자의 위치에서 적들이 이곳까지 올 것을 대비해서 준비하세요.”
“알겠습니다!”
무인들이 흩어지며 자리를 잡았다.
매설란은 어금니를 꽉 깨물고는 적들을 노려보았다.
‘와라!’
그 뜻이 전달이라도 된 것인지 광마단주가 사자후를 외쳤다.
“쳐라!”
“흐아아아압!”
광마단원들이 일제히 기합성을 내지르며 경공을 펼쳐 달려왔다.
그들이 광장 복판쯤 다다랐을 때,
“지금이다!”
조신량이 버럭 소리쳤다.
그 순간 벽면에서 ‘철컹!’ 소리가 나더니 수백 개의 구멍이 생겨나는 것이 아닌가?
곧이어,
투투투투투투투퉁!
마치 수백 대의 석궁이 쏘아진 것처럼 벽면의 구멍에서 짤막한 화살이 허공을 빽빽하게 채우며 날아갔다.
슈슈슈슈슈슈슈슉!
퍼퍼퍼퍼퍼퍽!
“크아악!”
“아아악!”
앞서 달려오던 광마단원들이 몸을 뒤집으며 쓰러졌다.
몇몇 광마단원은 병장기를 휘둘러 날아드는 화살을 쳐냈다.
슈카앙! 팍!
쳐낸 화살이 다시 동료의 가슴에 꽂히기도 했다.
하지만 자운룡의 말대로 광마단원들은 두려움 따위를 느끼지 않았다.
그들은 오로지 남문을 부수고 들어간다는 목표 하나에만 매달렸다.
수십 명의 광마단원들이 날아드는 화살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달려오자, 이번에는 바닥에서 수백 자루의 창이 대각선으로 치솟으며 올라왔다.
슈콰가가가각!
푹! 푸슉! 푹!
“크악!”
“아아악!”
역시나 상당수의 광마단원들이 느닷없이 튀어나온 창날에 상처를 입고 쓰러졌다.
창날은 다크번의 날개 뼈로 만든 것이었기에 부상당한 자들은 모두 화상의 고통으로 신음해야만 했다.
그야말로 불구덩이에 달려드는 불나방들이 따로 없었다.
전황을 묵묵히 바라보던 일신마가 무겁게 입을 열었다.
“이제 본격적으로 쓸어 버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