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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 마교관-456화 (456/670)

# 456

귀환 마교관

456화

쩌엉!

어마어마한 금속성과 함께 기파가 사방으로 훅 불어 나갔다.

그 바람에 구윤이 뒷걸음질을 치다가 발을 헛디디며 균형을 잃었다.

“엇!”

몸이 기우는가 싶더니 그의 시야에 천 길 낭떠러지가 보였다.

‘안 돼!’

이대로 죽을 수는 없다.

삶의 끝자락에 서게 되자 생에 대한 집착이 솟구쳐 올랐다.

얼른 팔을 휘저어 손에 걸리는 것을 움켜잡았다.

천만다행히 낭떠러지 바깥으로 삐져나온 나뭇가지 하나를 움켜쥐었다.

아슬아슬하게 매달린 구윤이 마음속으로 기도했다.

‘제길! 이번만 살려 주십시오! 더 강하게 살아보겠습니다!’

한편, 구윤을 공격했던 존야는 미간을 잔뜩 좁히고는 자신의 앞을 막아선 그림자를 바라보았다.

그는 바로 흑귀였다.

사비강이 구출대로 참여하게 되면서 흑귀에게 구윤을 호위하도록 지시한 것이다.

이미 악신의 가호를 받는 흑귀였기에 존야의 공격을 어느 정도 막아낼 수 있었다.

하지만 존야의 몸에 혼을 담은 바리탄 후작은 다섯 악신의 가호를 받고 있었다.

겨우 하급 악신 하나의 가호를 받는 흑귀가 상대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존야가 흥미로운 시선으로 흑귀를 보았다.

“네놈은… 우리와 비슷한 냄새가 나는구나.”

“내가 악취 좀 풍기고 다니지.”

흑귀가 싸늘하게 웃으며 대꾸하자 존야가 눈썹을 슬쩍 일그러뜨렸다.

“건방진…”

“하아아앗!”

차아앙!

흑귀가 기합성을 내지르는 것과 동시에 두 사람이 훌쩍 물러났다.

찰나지간 흑귀는 절벽 아래로 몸을 날리더니 구윤의 손목을 낚아채고는 위로 던져 올렸다.

곧이어 그가 검을 절벽에 꽂아 넣고는 반동을 이용해서 훌쩍 올라왔다.

다행히 저만치 날아가 쓰러진 구윤은 크게 다친 곳이 없는 듯했다.

존야가 미미한 웃음을 지었다.

“악신과 계약을 했다고 해서 나를 이길 수 있다고 보느냐? 한낱 인간 주제에?”

“네놈이 가진 육체 역시 한낱 인간이 아니더냐? 그리 대단한 놈이 왜 한낱 인간의 몸에 기생하고 산다더냐?”

“참으로 건방지군.”

“존경하는 어떤 분에게 배운 거다.”

존야의 입매가 파르르 떨렸다.

한편, 존야와 흑귀가 대치하는 사이에 정신을 차린 비령이 쓰러져 있는 구윤에게 다가왔다.

“군사님! 괜찮으십니까?”

“령… 난 괜찮아. 그보다 어서… 윽…!”

몸을 일으키던 구윤이 그대로 주저앉아 버렸다.

“군사님!”

“정말이지 형편없네. ‘총군사’라는 인간이 작전에 실패한 것도 모자라서 적에게 사로잡혀 이 지경이 되다니.”

구윤이 입술을 질끈 깨물고는 부어오른 발목을 보았다.

아무래도 발목에 금이라도 간 모양이었다.

“업히세요.”

“어쩌려고?”

“어쩌긴요. 여기서 벗어나야지요!”

“그럼 흑귀는…?”

“저희 임무는 군사님을 보호하는 일입니다. 유사시에는 저자가 대신 나서기로 얘기가 되어 있는 상태입니다.”

“아무리 그래도…”

“군사님! 군사님은 더 큰 것을 보셔야 하지 않습니까? 군사님도 보시지 않았습니까? 저 얼어붙은 수면 거울을 통해서 무림 동도들이 얼마나 처참한 상황에 처해 있는 것인지!”

순간 구윤의 표정이 흔들렸다.

잠시 절망에 잠겨 잊고 있었다.

그러고 보면 참으로 한심하고 바보 같지 않은가?

조금 전 목숨이 경각에 달렸을 때만 해도 살아나기만 하면 더욱 강하게 살아가겠다고 다짐했으면서.

불과 시간이 얼마나 지났다고 이렇게 나약한 소리나 해댄단 말인가?

구윤의 표정이 다시금 다부진 각오로 물들었다.

“령, 고맙다.”

“업히십시오.”

“부탁한다.”

구윤이 비령의 등에 업혔다.

그녀의 어깨는 생각보다 훨씬 작았다.

‘이 작은 어깨에 나는 의지하고 있었구나.’

하지만 그는 잘 알고 있었다.

이 작은 등이 자신에게만큼은 누구보다 너른 등이었다는 것을.

‘나도 누군가에게는 등이 되어 주어야 한다.’

생각을 굳힌 구윤이 비령에게 나직이 속삭였다.

“가장 가까운 지단으로 가자!”

“알겠습니다!”

그때,

“누구 마음대로 여길 벗어난다는 거냐?”

버럭 고함소리가 들리는가 싶더니, 존야가 비령의 등 뒤로 순식간에 이동하는 것이 아닌가?

곧이어,

“네 상대는 나다!”

흑귀의 벽력같은 고함에 이어 강기가 무서운 속도로 날아들었다.

쒸에에에엑!

콰아아아앙!

존야가 쌍장을 뻗으며 강기를 마주치자 어마어마한 폭발과 함께 주변의 앙상한 고목들이 잿더미가 되어 흩어졌다.

파스스스스…!

그러는 사이 비령은 구윤을 등에 업은 채 최대한의 경공술을 펼쳐 내달리기 시작했다.

“이 연놈들이…!”

존야가 다시 뒤를 쫓으려고 하자, 흑귀가 이번에도 무서운 속도로 날아들며 검을 휘둘렀다.

가히 흑귀의 경신법은 천하에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였다.

실제로 순수하게 경신법만 따진다면 사비강보다도 빠른 그였다.

“귀찮은…!”

“하앗!”

쩌어어엉!

다시 한 번 벽력과도 같은 금속성이 터지면서 두 사람 사이에서 강렬한 충격파가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쿠구구구궁…!

쩌적…!

너무나 강한 충격이 연이어 발생했기 때문일까?

절벽이 지진이라도 일어난 것처럼 떨렸다.

휘리리릭, 탁!

잽싸게 몸을 회전한 흑귀가 비령이 달린 방향을 막아서며 검을 내밀었다.

“내 허락 없이는 가지 못한다.”

존야가 어이없는 표정으로 한참을 바라보더니 피식 실소를 터뜨렸다.

“정말이지 너희 인간들은 죽음의 순간까지 광오하구나.”

“멋대로 생각하시지.”

“노옴, 네놈만큼은 내 사지를 갈기갈기 찢어서 죽여 주마!”

팟!

순간 존야가 눈앞에서 사라지는가 싶더니 이내 흑귀의 배후에 나타났다.

촤아아아악!

“아악!”

존야가 손을 휘젓자 흑귀의 등에 대각선으로 상처가 생기면서 피가 솟구쳤다.

흑귀가 비틀거리며 물러나는 사이, 존야의 손에는 날카롭고 뾰족한 얼음 창이 생성되고 있었다.

“받아라.”

슈슈슈슈슈슉!

타타타타타탕!

무수한 얼음 창이 빠른 속도로 날아들자, 흑귀 역시 눈으로 쫓기 힘들만큼 날렵한 동작으로 얼음 창을 깨부숴 갔다.

아직까지는 용케 막아내고 있었지만, 흑귀는 그야말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는 기분이었다.

끝을 알 수 없는 줄타기.

어느 한 순간 균형을 잃어버리면 죽음의 낭떠러지 아래로 추락하고 말리라.

한편, 구윤을 등에 업고 달리는 비령은 등 뒤에서 연이어 들려오는 소음에 신경이 바짝 곤두섰다.

비록 구윤을 설득해 달아나는 중이었지만, 흑귀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지 않는다면 거짓이리라.

“신경이 쓰이느냐?”

“아닙니다.”

비령의 대답에 구윤이 쓴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신경이 쓰여도 참고 달려라.”

“……!”

뜻밖의 말에 비령이 흠칫거렸다.

반대의 말을 할 줄 알았다.

정 신경이 쓰인다면 이쯤에서 자신을 내려 두고 돌아가서 흑귀를 도우라는.

그런데 구윤은 정말로 완전히 마음을 다잡은 것인지 다른 말을 꺼내고 있었다.

“그라면 잘 이겨낼 것이다. 네 임무는 어떻게든 날 지키고 살리는 것이다. 네 본연의 임무만 생각해라.”

곧 비령의 표정도 더 없이 단단해졌다.

그녀가 힘주어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두 사람은 빠른 속도로 절벽에서부터 멀어져 갔다.

콰콰콰콰쾅!

타타타타타타탕!

촤아악!

절벽에서는 여전히 마찰음과 파육음이 번갈아가며 들려왔다.

이따금씩 기합성과 비명성이 들려왔는데, 모두 흑귀의 것이었다.

실제로 흑귀는 죽음의 끝자락에서 혼신의 힘을 다하고 있었다.

“헉, 헉, 헉…!”

온몸이 피투성이가 된 흑귀가 게슴츠레 뜬 눈으로 존야를 바라보았다.

놀랍게도 존야는 피 한 방울 묻지 않은 상태에서 여유로운 미소까지 머금고 있었다.

“악신의 가호를 받는다고 기고만장해서 설치더니, 이제 너와 나의 차이를 알겠느냐?”

“헉… 헉… 좆까…! 아…, 깔 좆이 없던가?”

존야의 미간이 다시 한 번 꿈틀거렸다.

“천박한…!”

“헉… 헉… 주군이 계셨다면… 너 같은 건… 한 주먹 감이었을 거다….”

“주군이라…? 그 사비강이라는 놈을 말하는 거냐?”

“그렇다.”

“그놈이 그렇게 대단한가? 하지만 그놈이 결국 나의 대업을 도왔으니, 나의 승리다.”

“너야말로… 교만의 덩어리군….”

“하하하하! 개미가 인간을 보고 교만하다고 말할 수 없듯이, 너희 인간이 마족인 나를 보고 교만하다고 할 수는 없는 법.”

“멍청아… 헉, 헉… 인간은 개미하고 대화도 안 해.”

“흐음. 그만 끝내지.”

“좋을 대로.”

“널 죽이고 곧장 저 연놈들을 쫓아가 죽일 거다. 절망 속에서 죽어 가거라.”

“넌 날 절대로 못 죽인다.”

“끝까지 교만하구나!”

팟!

순간 존야가 다시 한 번 자취를 감췄다.

다음 순간, 그녀는 흑귀의 배후에 나타나서 한 손을 높이 치켜들었다.

일격에 때려죽일 생각이었다.

어차피 흑귀가 이 방식을 눈치 챘다고 해도 그가 돌아보는 속도보다 자신이 손을 내리치는 속도가 훨씬 빠를 터였다.

그런데,

“또 당할까 보냐!”

흑귀가 버럭 고함을 내지르는 것과 동시에 두 팔을 활짝 펼쳤다.

동시에,

화아아아아아악!

완전한 어둠이 존야와 흑귀를 동시에 집어삼키는 것이 아닌가?

잠깐 당황한 존야가 곧 정신을 차리고는 일갈했다.

“가소로운! 마지막으로 믿은 게 고작 이런 잔재주였단 말이더냐?”

그녀가 순간 손을 뻗으며 외쳤다.

“블레이즈 템페스트!”

후아아아아아아아앙!

완전한 어둠 속에서 강렬한 불기둥이 솟구치는가 싶더니 불 바람이 온 사방을 휩쓸며 날아다녔다.

쩌저저적…! 카창!

뭔가 깨지는 소리에 이어 완전한 어둠이 사라졌다.

그때!

휘익, 팍!

“음?”

존야는 뭔가가 자신의 허리를 강하게 끌어안는 것을 느꼈다.

어느 샌가 뒤에 나타난 흑귀가 존야의 허리를 끌어안고는 빠른 속도로 내달리는 것이 아닌가?

“노옴!”

존야가 흑귀의 팔목을 잡고 힘을 주었다.

우두둑!

“큭!”

하지만 흑귀는 신음만을 뱉을 뿐 팔을 풀지 않았다.

곧이어,

팟!

허공에 몸이 붕 떠올랐다.

흑귀가 존야의 몸을 안은 채 절벽 밖으로 몸을 던진 것이다.

동시에 흑귀가 모든 공력을 짜내어 기합성을 내질렀다.

“으아아아아압!”

그의 전신에 새겨진 문신이 짙게 피부 위로 떠올랐다.

존야는 낯선 공력이 자신의 몸에 들어와 마구 휘젓는 것을 느끼고는 깜짝 놀랐다.

이건 철저하게 중원의 무인들이 내공으로 싸우는 방식이었다.

마족인 바리탄으로서는 이러한 방식이 익숙하지 않았다.

‘몸을 맡기마.’

‘알겠습니다.’

바리탄의 혼이 물러나자, 반로환동한 마령이 직접 신체를 다뤘다.

하지만 그녀 역시 흑귀가 불어넣는 내력을 일방적으로 밀어내는 건 쉽지 않았다.

그러는 동안에도 두 사람의 끝없는 추락이 이어졌다.

“같이 죽는 거다!”

흑귀가 마지막으로 소리치며 모든 공력을 존야의 몸에 마구 쏟아냈다.

**

쿠구구구구구궁…!

사비강은 강림지에 우뚝 솟은 성을 올려다보았다.

하늘에 닿을 듯 줄기는 이제 완전한 성 모양을 하고 있었다.

단단한 화석처럼 굳어 버린 줄기는 거대한 바위처럼 보이기도 했다.

식물처럼 자라서 굳어 버린 성이었지만, 이 마계 식물의 표피가 어지간한 바위나 금속보다도 단단하다는 것을 그는 잘 알고 있었다.

마왕성.

테라포밍의 일곱 단계가 모두 진행된 것이다.

이제 이곳에 마왕이 강림하는 것은 그야말로 시간문제였다.

적어도 하루 이내에 마왕이 강림하리라.

아니, 어쩌면 한 시진도 걸리지 않을 지도 모른다.

테라포밍이 끝났으니, 더 이상 마왕의 강림을 막을 방도는 없다.

투두두두두두두…!

마침내 골렘 장벽에 균열이 가는가 싶더니 육중한 소리와 함께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테라포밍이 완료될 때까지 장벽이 해야 할 일을 다 끝낸 것이다.

골렘들이 가지고 있던 모든 마나를 소모했을 것이고, 그들은 강림지에 바쳐진 수많은 죽음의 기운을 마족에게 선사했을 것이다.

사비강은 얼른 주변을 둘러보았다.

여전히 무인들은 참혹한 광경 속에서 희생되고 있었다.

칠죄종에 빠진 인간들은 마물의 먹이가 되거나, 서로를 탐욕하며 허우적거리다가 자멸해 가고 있었다.

이제 그 희생을 끝내야 할 때였다.

한 사람이라도 더 살려야 한다.

“모두 들어라! 방벽이 무너졌으니 지금부터 탈출을 시도한다! 최대한 이곳에서 멀어져라!”

결국 마왕의 강림을 막지 못했다.

하지만 이대로 주저앉아서 전멸을 당할 수는 없다.

사비강의 눈동자가 차갑게 가라앉았다.

“자, 이제 본격적으로 튀어나와 봐라. 이 하찮은 마물 새끼들아.”

이제부터 나올 마물들은 온전한 이성을 가진 녀석들이리라.

쑤아아아아아앙!

베르타스에 시퍼런 강기가 맺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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