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53
귀환 마교관
453화
낙오자들이 모두 귀환했다.
그 과정에서 안타까운 일도 많았다.
낙오자를 구하러 간 구출대가 전멸하는 경우도 있었고, 낙오자 중 몇 몇은 죽음을 피하지 못하기도 했다.
하지만 감상에 젖어들 여유 따위는 없었다.
마령교가 내관까지 치고 들어오면 더 이상 물러날 곳은 없는 셈이다.
매설란은 조신량을 불렀다.
“조 각주님. 기관은 얼마나 완성됐습니까?”
“평소에 틈틈이 봐 둔 덕분에 구 할 정도는 완성이 됐네. 하지만 당장이라도 사용하려면 할 수는 있지. 뭐, 몇 군데 문제가 생길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어쩔 수 없어요. 당장 써먹지도 못하고 당하는 것보다는 낫겠죠.”
“빌어먹을! 저것들이 멸마관으로 쳐들어올 거라곤 상상도 못했으니. 그래도 총관이 직접 지시하지 않았더라면 이 정도도 못했을 거야.”
그는 매설란의 선견지명에 내심 감탄하고 있었다.
사실 평소에 내벽 주변으로 방어 기관 장치를 매설해 달라고 부탁한 사람은 바로 매설란이었다.
사비강이 이런저런 이유로 멸마관을 자주 비우게 되면서, 그녀는 내심 막중한 책임감을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특히 지난 번, 자운룡 사건 이후로는 더욱 멸마관의 안전에 만전을 기하고 있었다.
언제 또 마령교가 멸마관을 노리고 달려들지 모른다는 위기감을 느꼈던 것이다.
이러한 우려가 다른 사람이 보기에는 쓸데없는 걱정에 지나지 않았을 테지만, 적어도 지금 이 순간만큼은 그 덕을 톡톡히 보고 있는 것이다.
“안전을 기하는데 있어서 한계는 없어야죠.”
매설란의 말에 조신량이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백번 옳은 말이다.
일어나지 않은 일을 대비하는 것만큼이나 막연한 게 또 없을 테니.
하지만 아직 일어나지 않았다고 해서 안일하게 대처했다간 정작 큰일이 났을 때 모든 것을 잃고 만다.
매설란은 그런 점을 모두 인지하고 있었던 것이다.
확실히 어느 샌가 그녀는 멸마관의 든든한 총관이 되어 있었다.
그때 마침 무랑이 북문을 통해 내관으로 들어왔다.
매설란은 나머지 사항을 지시하고는 얼른 무랑에게 달려갔다.
“어떻게 됐습니까?”
“북문까지 모든 술법진을 완성해 두었네. 이걸로 남문 방어에만 집중하면 될 걸세.”
“다행이군요. 만약 적들이 동서북으로 쳐들어올 경우에는 어떻게 되죠?”
“끝없는 미로에 갇히도록 해두었네. 길면 육 개월이 걸릴 것이고, 빠르면 두 달이 걸릴 걸세.”
“그 정도면 충분하겠군요. 수고하셨습니다.”
“별 말을. 그보다 사상자가 꽤 있다던데.”
“예, 부상자는 초환당으로 모두 옮겼습니다. 초환당주님께서 그들을 치료하는데 전력을 다하고 계십니다.”
“그렇군. 나도 최대한 돕겠네.”
“감사합니다.”
매설란은 곧바로 남문 쪽으로 향했다.
조신량은 연신 기관 장치를 점검하느라 무척 바쁜 모양이었다.
신수각 생도들이 남문 바깥 먼 곳까지 가서 기관 장치에 이상이 없는지 점검하고 있었다.
모든 점검을 끝낸 것인지 조신량이 생도들을 데리고 내관으로 돌아왔다.
“기관 장치의 대략적인 정비가 끝났네. 다소 문제가 생길 소지는 있지만, 큰 불량은 없을 걸세.”
“수고하셨어요.”
매설란이 인사를 하고는 곧바로 단리정을 시켜 궁수들을 내벽에 배치하도록 지시했다.
그녀는 내관 남문 위로 올라가서 전방을 주시하며 심호흡을 했다.
‘어떤 일이 있어도… 반드시 지키겠어!’
기관 장치가 든든한 아군이 되어 주겠지만, 적들이 인해전술로 밀고 들어오면 결국 남문은 뚫릴 것이다.
그때 자신이 가진 모든 역량을 쏟아 부어 막아내야 한다.
“반드시 지킨다.”
그녀는 다시 한 번 각오를 입 밖으로 뇌까리면서 검의 손잡이를 굳게 잡았다.
**
일순간 온몸이 찢어진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데 그 강렬한 통증도 정말이지 찰나지간에 지나지 않아 마치 꿈처럼 느껴질 지경이었다.
당이협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안개가 자욱한 공간.
미친 듯이 싸우다가 정신을 번쩍 차려 보니 낯선 공간에 홀로 떨어졌다.
‘도대체 어떻게 된 거지?’
잠시 미간을 구긴 채 서 있던 당이협이 주변을 둘러보며 소리쳤다.
“다들 무사한가!”
대답이 돌아오지 않는다.
아니, 그전에 자신의 목소리가 이상하게 들린다.
마치 공기가 멈춘 느낌이랄까?
목소리가 울려 퍼져 나가지 않았다.
소리가 반경 일장 이내에 머물러서 더 이상 퍼져 나가지 않는 느낌이다.
이 생소하고도 낯선 감각에 당이협은 소름이 오소소 돋았다.
‘설마 내가 벌써 죽은 건가?’
만약 그렇다면, 자신도 모른 사이에 죽은 것이 된다.
마지막으로 본 것은 방벽처럼 둘러져 있던 석상들이 강렬한 금빛 기운을 뿜어내는 모습이었다.
그리고 전신이 찢어지는 것만 같은 고통이 찰나지간 스쳤다.
‘그때 정말 죽은 걸지도….’
하지만 죽음이 이런 것이라면 무척 기이하단 생각도 들었다.
“무천! 자량! 소소! 다들 무사한가!”
다시 목청껏 소리쳤지만 이번에도 마찬가지.
목소리가 퍼져 나가질 않는다.
때마침 등 뒤에서 기척이 들렸다.
“누구냐!”
“쿠와아아악!”
마병 하나가 당이협을 알아보고는 무서운 속도로 질주해 왔다.
쉬이이잇, 서컥!
단 일격에 목이 달아난 마병이 그 자리에 고꾸라졌다.
‘이건 마병인데… 그럼 아직 내가 살아 있다는 건가?’
하지만 어떻게 이럴 수가 있을까?
한순간의 통증에 이어 전혀 낯선 곳에 떨어지다니!
그때 다시 뒤에서 기척이 들렸다.
당이협이 재빨리 돌아서며 품에서 두 자루의 비수를 꺼내 날렸다.
“어림없다!”
쉭! 쉬익!
따다앙!
‘튕겨내?’
분명 비수를 튕겨내는 소리였다.
곧이어 안개를 뚫고 한 사내가 나타나더니 다급하게 외쳤다.
“단주님! 접니다! 추량!”
“아…! 괜찮으시오?”
“뭐, 단주님 덕분에 골로 갈 뻔했지만, 용케도 살았습니다.”
“미안하오.”
“쩝,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으리라 생각합니다.”
추량이 바닥에 널브러진 마병의 사체를 보고는 중얼거리듯 답했다.
“목소리가 퍼져 나가질 않소. 대체 여기가 어디요?”
당이협은 질문을 던져 놓고도 곧 후회했다.
자신이 모르듯 추량이라고 알 리가 없었다.
그는 사비강이 살막과 함께 구출대로 나서면서 척마단에 배정을 받고 함께 싸우고 있었다.
그라고 특별히 알 까닭이 없었다.
예상한 대로 추량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다만, 추량이 하나의 가능성을 내놨다.
“아무래도 우리 목소리가 퍼지지 않는 건 이 안개 때문인 것 같습니다. 어쩐지 이 안개가 소리를 먹어치우는 기분입니다.”
“과연. 그럴 수도 있겠군.”
확실히 사방을 가득 메운 안개는 뭔가 좀 이상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아까부터 안개가 조금씩 걷히고 있다는 점이다.
그만큼 목소리도 조금씩 주변으로 퍼져 나가고 있었다.
“누구 없나! 대답해라!”
당이협이 다시 소리치자, 추량도 손을 모으고 외쳤다.
“흑귀! 대답해라! 흑귀! 흑귀!”
“흐음.”
“뭐, 이 녀석은 원래 있어도 없는 것 같을 때가 많은데… 이번엔 정말 없군요. 하긴, 애초에 강림지까지 따라오기나 한 건지 모르겠군요.”
“적어도 내가 그를 본 적은 없소. 그나저나 도대체 이게 어떻게 된 건지….”
“혹시 우리가 진법에 빠져서 허상을 보는 건 아닐까요?”
추량의 말에 당이협이 고개를 저었다.
“그 부분도 생각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너무 이상하지 않소? 우리가 먼저 진법에 들어선 것도 아닌데, 없던 진법이 삽시간에 그 자리에서 생성될 수가 있는 법이오?”
“그건 저도 잘….”
추량도 알 수 없다는 듯 미간을 구기고는 생각에 잠겼다.
‘확실히 이상해. 게다가 여긴 너무 춥지 않은가?’
제법 두꺼운 장삼을 걸치고 있음에도 칼바람이 불면 등골이 오싹했다.
날씨가 갑자기 바뀐 기분이었다.
하긴 지형도 바뀌긴 했다.
분명 강림지에서 싸우던 장소와는 다른 곳이다.
그때였다.
쿠웅! 쿠웅! 쿠웅…!
갑자기 지축이 뒤흔들리는 소리가 울렸다.
“엇?”
“뭐지?”
두 사람이 화들짝 놀라서 주변을 두리번거리는데, 갑자기 하늘에서 시커먼 공간이 열리는 것이 아닌가?
“맙소사… 저게 뭐죠?”
“설마… 강림…?”
추량의 멍한 질문에 당이협이 사색이 된 채로 중얼거렸다.
**
사비강은 하늘에 생긴 시커먼 구멍을 바라보았다.
“강림…!”
그의 미간이 팍 구겨졌다.
틀림없다.
저건 강림 의식이 성공했을 때나 나타나는 현상이었다.
물론, 그는 직접 강림을 본 적이 없다.
하지만 마계에서 생활하는 동안 마족이 인간 세계에 강림할 때 나타나는 현상에 대해서는 책을 통해 무수히 보고 익혀 두었다.
‘젠장! 강림의식을 막지 못했어!’
찬바람이 쌩쌩 부는 것으로 보아서는 꽤나 북쪽으로 치우친 장소이리라.
역시 마령교의 강림지는 가짜였다.
이곳이 진짜다.
지금까지 엉뚱한 곳을 들쑤시고 있었던 거다.
게다가 그곳에 골렘 게이트까지 생성되어서 매스 텔레포트가 시전됐다.
제물이 집단으로 바쳐진 것이다.
주변의 자욱한 안개 때문에 쿵쿵 울리는 진동을 제외하면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에도 마물들과 인간의 전쟁이 한창 벌어지고 있을 터였다.
그것들은 모두 제물이 될 터였다.
“지독한 놈들. 의식에 참여한 마령교도들도 전부 제물로 바친 거군.”
마침내 하늘에서 거대하고 시커먼 손이 그림자처럼 내려서기 시작했다.
마족들이 ‘신수(神手)’라고 표현하는 것이다.
그 순간, 거짓말처럼 주변을 가득 메우고 있던 안개들이 사라졌다.
동시에 주변에서 뒤엉켜 싸우고 있던 무인들과 마물들이 확연하게 드러나면서 온갖 소음이 튀어 올랐다.
“으아아아악!”
“쿠르러러러렁!”
“하아앗!”
“크아악!”
채캉! 챙챙챙! 퍼엉!
그야말로 지옥도가 따로 없었다.
먼발치에는 능운파가 이끄는 무리가 보였고, 조금 떨어진 곳에는 당이협을 비롯한 척마단도 보였다.
비교적 가까운 곳에서 싸우던 악천괴와 살막의 모습도 보였다.
매스 텔레포트가 펼쳐지기 직전, 새하얀 설산이었을 이곳은 이제 온통 핏물로 붉게 물들어 가고 있었다.
그때,
“피해라!”
사비강이 내공을 실어 있는 힘껏 소리쳤다.
하늘에서 떨어지는 저 신수를 피하지 못하면 즉사하고 만다.
마물들과 맞서 싸우던 무인들이 사비강의 목소리를 듣고 흠칫 떨면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시커먼 그림자가 자신들 머리 위로 떨어지는 것을 본 무인들은 아연실색하며 경공을 펼쳐 내달렸다.
하지만 상당수 무인들은 미처 그 거대한 신수를 피하지 못했다.
쿠콰아아아아앙!
어마어마한 충격음이 고막을 때렸고, 땅은 강진이라도 일어난 것처럼 떨고 부서지며 주저앉았다.
신수는 그대로 지하에 파묻히듯 사라졌다.
신수는 실체가 없다.
하지만 신수에 짓눌리면 온몸이 터져서 죽고 만다.
신수가 떨어진 자리에 수백 명의 무인들이 피범벅이 된 채 즉사하고 말았다.
신수는 하나가 아니다.
“우와아악! 또 떨어진다!”
“살, 살려줘어어억!”
비명에 가까운 고함소리가 여기저기에서 솟구쳤다.
“제길!”
사비강이 어금니를 빠득 갈고는 바닥을 차고 날아올랐다.
“흐아아압!”
사비강은 거대한 신수와 맞부딪쳐 가면서 생각했다.
이걸 검으로 상대할 수 있을까?
쩌꽈아아아앙!
강기를 머금은 베르타스와 신수가 부딪치자 벽력과도 같은 소음이 터져 나왔다.
퍼콰아아아아앙!
마침내 신수가 산산이 부서지면서 허공에서 스르르 소멸됐다.
하지만 사비강이 받은 내상도 만만치 않았다.
강공 대 강공으로 격돌한 셈.
사비강이 걸쳐 입었던 옷이 완전히 터져 나가면서 나신이 되고 말았다.
척!
“쿨럭!”
바닥에 착지한 사비강이 핏덩이를 한 움큼 토해냈다.
“젠장!”
쩌엉!
그가 홧김에 주먹을 내지르자 바닥이 움푹 파였다.
신수는 끝없이 떨어지고 있었다.
쿠콰콰콰콰콰콰콰아아앙!
세상이 종말을 고할 때의 모습이 있다면 바로 지금과 같지 않을까?
강림지에 제물로 바쳐진 사람들과 마물들은 하늘에서 떨어지는 신수를 피하기 위해 아등바등 거리다가 온몸이 터져 죽기 일쑤였다.
천해경에 이른 사비강조차도 신수를 간신히 상대해서 깨부술 정도였으니 오죽하랴.
쾅! 콰앙! 콰콰쾅! 쾅!
끝없이 떨어질 것만 같던 신수가 마침내 멈췄다.
지면은 온통 박살이 난 상황이었고, 곳곳에 터져 죽은 사람들과 마물들의 사체가 보였다.
실력으로, 혹은 운이 좋아서 살아남은 무인들도 있었다.
그들은 그저 이 낯설고도 두려운 광경에 넋을 놓고 있을 뿐이었다.
‘끝난 건가…? 신수의 평정이 끝났다. 그럼 이젠…’
드드드드드드드드…!
지면이 미친 듯이 떨기 시작했다.
“테라포밍의 시작. 본격적으로 강림하시겠군!”
사비강이 어금니를 빠득 갈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