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52
귀환 마교관
452화
“헛!”
목단화가 헛바람을 삼키며 급히 손을 내질렀다.
“파이어볼!”
화르르르륵, 퍼어엉!
불덩이가 발사되면서 귀살색마의 몸이 휘청거렸다.
“이년이!”
귀살색마가 미간을 팍 구기며 재차 칼을 내지르려는데,
화르르르르르륵!
이번엔 불에 휩싸인 절지곤충들이 갑자기 뻗어 나오더니 그의 복부를 꿰뚫는 것이 아닌가?
푸욱!
“커흡!”
귀살색마가 눈을 부릅뜨며 물러났다.
“쿠웨에엑! 이 빌어먹을 년들이…!”
그는 피를 한 바가지 토하고는 눈을 부라렸다.
당장이라도 달려가서 설서린의 채찍부터 뺏어 들고 미친 듯이 후려치고 싶었지만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한낱 조교들이라고 얕잡아봤건만 오히려 이쪽이 목숨을 위협받고 있다니!
그때였다.
“아직도 이러고 있나?”
시큰둥한 목소리.
귀살색마가 하얗게 질린 표정으로 뒤를 돌아보았다.
육중한 덩치의 한 남자가 무뚝뚝한 표정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삼신마였다.
“죄, 죄송합니다.”
귀살색마가 얼른 허리를 꾸벅 숙이면서 사죄했다.
삼신마가 미간을 슬쩍 구기더니 귀살색마의 복부에 난 상처를 빤히 응시했다.
“다쳤군.”
“큰, 큰 지장은 없습니다.”
“아닌 것 같은데. 그 정도면 싸우기에도 무리가 있겠군.”
“아, 아닙니다! 지장 없습니다!”
귀살색마가 안타까울 정도로 안절부절 못하며 소리쳤다.
하지만 삼신마는 여전히 무뚝뚝하고 냉정한 표정으로 일관했다.
“아니, 전력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 차라리 쉬어라.”
“하, 하지만…!”
삼신마가 가볍게 손가락을 튕겨 탄지기공(彈指氣功)을 날렸다.
피융!
퍽!
귀살색마는 더 이상의 반박도 하지 못한 채 그대로 이마에 구멍이 뚫려 명을 달리하고 말았다.
그가 쓰러지자 목단화와 설서린은 서로를 바라보고는 마른 침을 꿀꺽 삼켰다.
지금 나타난 이 남자.
귀살색마가 안절부절 못하면서 존대를 하던 이 남자는 정말 강하다.
그냥 마주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기에 눌려 옴짝달싹도 할 수 없을 지경이다.
삼신마의 표정에 처음으로 비릿한 웃음이 지어졌다.
“이제 보니 계집년 둘을 데리고 이 난리였군. 귀살이 애를 먹을 만도 했어.”
그의 눈길이 시체가 된 귀살색마에게 슬쩍 향했다가 돌아왔다.
만약 여자가 아니었더라면 귀살색마는 손속에 사정을 두지 않았을 것이고, 그랬다면 결과는 달라졌을 것이라는 짐작이었다.
우두둑.
그가 목을 한 차례 꺾더니 목단화와 설서린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손가락을 들어 하나씩 번갈아 가리키며 중얼거렸다.
“어.느. 쪽.부.터. 죽.일.까? 선.택.하.자. 여기군.”
마지막으로 손가락이 멈춘 곳은 목단화였다.
목단화가 움찔거리고는 사심자를 콱 움켜쥐었다.
‘괜찮아. 침착하게만… 엇?’
다음 순간 목단화의 눈이 찢어질 듯 부릅떠졌다.
어느새 삼신마가 코앞에 나타난 것이 아닌가?
‘어, 어느 틈에…?’
생각을 더 이어 갈 겨를도 없이,
쒸이이이잇!
삼신마의 손날이 사선을 그리며 떨어져 내렸다.
“이익!”
목단화가 이를 악다물고는 있는 힘껏 바닥을 찼다.
피츗!
삼신마의 손날이 목단화의 어깨를 아슬아슬하게 찢으며 지나갔다.
“호오?”
삼신마 역시 놀란 듯 흥미로운 시선으로 목단화를 응시했다.
어금니를 빠득 간 목단화가 앙칼지게 소리치며 달려들었다.
“얕잡아 보지 마!”
쉬이이이잇!
섬광벽력검의 제이초식인 개유전편이 펼쳐졌다.
두꺼운 검신이 그대로 삼신마의 허리를 절단 낼 기세로 휘몰아쳐 왔다.
“크하하! 재미있군!”
삼신마가 호쾌한 웃음을 터뜨리면서 양손을 앞으로 쭉 뻗었다.
퍼버어엉!
강기를 머금은 개유전편이 힘을 잃고 나자, 이번에는 뒤쪽에서 마칸의 꼬리가 불길을 머금은 채 날아들었다.
휘르르르르르륵!
타앗!
치이이이익!
삼신마가 마칸의 꼬리를 손으로 휘어잡았다.
살이 타들어 가는 소리가 나는데도 삼신마의 표정에는 여유가 흘러넘쳤다.
“재미있는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군.”
“닥쳐!”
촤촤촤촤촤촤아앗!
설서린의 뺨에 새겨진 문신이 붉게 빛을 발하는 순간, 마칸의 꼬리에서 절지곤충들이 자라나며 뾰족한 가시로 변했다.
푸푸푸푸푸푹!
수십 가닥의 절지곤충들이 그대로 삼신마의 몸을 뚫었다.
아니, 뚫은 줄 알았다.
한데 얕게 박힌 수준에 그치고 말았다.
“어, 어떻게?”
설서린의 눈동자가 흔들리는데,
휙!
“악!”
삼신마가 채찍을 잡아당기자, 설서린의 몸이 튕기듯 이끌려 갔다.
삼신마가 그대로 일권을 내지르려는 순간,
“죽엇!”
어느새 목단화가 날아올라서 삼신마의 목을 사선으로 내려치는 것이 아닌가?
그런데…
쩌엉!
사람의 몸을 베는 것이 아닌, 금속을 때릴 때와 같은 소리가 장내에 쩌렁쩌렁 울렸다.
그 바람에 삼신마가 마칸의 꼬리를 놓쳤지만, 놀랍게도 큰 부상은 입지 않았다.
대신 그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선 목단화의 멱살을 움켜쥐었다.
“커억! 큭…!”
“제법 설쳐대는구나. 계집.”
“이것… 놔… 크윽!”
“장난은 여기까지다.”
삼신마가 목단화를 번쩍 들어올렸다.
죽음을 직감한 목단화는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삼신마가 그녀를 그대로 바닥에 내다꽂으려는 순간!
삐잉! 삐잉! 삐잉!
가느다란 소리가 귀를 찌르더니,
피츗, 피츗, 피츗!
삼신마의 전신에서 핏줄기가 튀어오르면서 순간 몸을 꿈쩍할 수 없게 됐다.
그 덕에 겨우 삼신마의 손아귀에서 벗어난 목단화가 옆구리를 쥐고는 숨을 몰아쉬었다.
“헉, 헉, 헉…!”
한편 보이지 않는 실 같은 것으로 사지가 구속된 삼신마는 처음으로 화난 표정을 지으며 으르렁거렸다.
“왜 자꾸 나타나는 거냐? 한꺼번에 덤비란 말이다!”
순간, 그가 양손을 활짝 펼치며 들어 올리자,
투툭, 투두두둑!
뭔가가 끊어지는 소리가 나면서 마침내 육신이 자유로워졌다.
그때 다시,
삐이이잉!
날카로운 소리!
하지만 이번만큼은 삼신마도 그냥 당하지 않았다.
쉬이이잇, 탁!
허공을 가르며 날아든 비수를 낚아채고는 거칠게 잡아당기자, 지붕 위에 숨어 있던 남자가 바닥으로 곤두박질치며 떨어졌다.
쿠당!
그는 바로 설수민이었다.
“쥐새끼 같은 놈!”
삼신마가 노호성을 터뜨리며 달려들자, 설수민 역시 달아나지 않고 그대로 유성추를 뿌리며 맞부딪쳤다.
마침내 두 사람이 서로 마주친 순간,
콰콰아아앙!
요란한 폭음과 함께 두 사람이 튕겨 나갔다.
“오라버니!”
설서린이 목이 찢어져라 외치면서 달려갔다.
한쪽 구석에 쓰러진 설수민은 온통 피투성이가 되어 있었다.
반대쪽으로 튕겨 나간 삼신마 역시 성한 상태는 아니었다.
전각을 무너뜨리며 쓰러진 그는 기절을 한 것인지, 죽은 것인지 아무런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었다.
하지만 설수민 역시 부상의 정도가 매우 심각해보였다.
“헉, 헉, 헉…! 달아나라. 린아.”
“오라버니! 안 돼요! 오라버니를 두고 갈 순 없어요!”
“시간이 없다! 저 녀석 아직 죽지 않았을 거다! 내가 어떻게든 시간을 벌어 볼 테니 달아나!”
“싫다고요! 왜 오라버니가! 왜!”
설서린이 눈물을 머금고 소리쳤다.
마침 그녀 뒤로 목단화도 비척거리며 다가왔다.
설서린이 돌연 돌아서서 목단화의 멱살을 잡았다.
“너 때문이야! 오라버니가 널 구하려다가 무리해서…!”
목단화는 반박할 수 없었다.
설서린의 말대로 만약 설수민이 나서주지 않았더라면, 그대로 바닥에 꽂혀 참혹한 죽음을 면치 못했을 것이다.
그녀가 말없이 서 있자, 설수민이 희미하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린아. 그러지 마라. 나는 후회 없다. 난 여기 두고 어서 달아나라.”
“싫어요! 차라리 저년을 버릴래요! 오라버니! 같이 가요!”
‘너무 하잖아.’
목단화는 속으로 떠올린 생각을 가슴으로 삼키고는 말없이 서 있었다.
설수민이 목단화에게 시선을 던졌다.
더 이상 시간을 끌지 말고 설서린을 데리고 이곳을 떠나라는 신호였다.
지금은 기절한 것인지 모르지만, 이렇게 쉽게 삼신마가 당할 리가 없었다.
마지막으로 그와 일합을 겨루면서 확실히 느꼈다.
그는 결코 이 정도로 죽을 상대가 아니라는 것을.
지금이라도 당장 두 사람이 이곳을 벗어나야 했다.
그 뜻을 알아차린 목단화가 설서린의 혼혈을 점했다.
탁. 탁탁.
“헛…! 너…!”
설서린이 말을 마저 잇지 못한 채 원망서린 눈으로 목단화를 보더니 이내 스르르 눈을 감았다.
목단화가 설수민에게 고개를 꾸벅 숙였다.
“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덕분에 살았습니다. 그리고… 죄송합니다.”
“아니다. 모든 게 내 결정이었다.”
설수민은 쓰러진 설서린에게 시선을 잠시 던지고는 말을 이었다.
“평생을 외로웠던 아이다. 그 아이에게 친구가 생겨서 무척이나 보기 좋았다.”
“친구…?”
“그래, 두 사람 정말 잘 어울리는 친구였다. 그 아이를 잘 부탁하마. 오라비로서 많은 걸 해주지 못하고 가는 걸 용서해 달라고 전해 주게.”
“왜… 왜 그러셨죠?”
어느덧 목단화의 눈도 물기로 젖어들었다.
그녀는 알고 있었다.
마지막 일격에서 설수민은 이미 동귀어진을 각오했다는 것을.
설수민의 입에서 너무나 당연한 대답이 돌아왔다.
“그러지 않았더라면… 너희들을 구할 수 없었을 테니까. 내가 그때 나서지 않았다면… 너는 물론 린아도 결국 저자에게 죽었을 테니… 쿨럭!”
그때였다.
부스럭…! 부스스…!
저만치 쓰러져 있던 삼신마가 무너진 목재를 들썩이면서 깨어나려고 했다.
설수민이 품에서 유성추 하나를 더 꺼내 들었다.
“내게는 아직 마지막 한 수가 남았으니, 운이 좋다면 저 녀석의 발목을 잠시나마 더 잡을 수 있을 게다. 어서 달아나라. 린아의 좋은 친구가 되어 줘라.”
목단화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설서린을 어깨에 들쳐 멨다.
“잊지 않을게요.”
목단화가 휙 돌아서서 경공을 펼치기 시작했다.
멀어져 가는 목단화를 보면서 설수민은 희미한 웃음을 지었다.
“아버지, 어머니… 오라비로서 낙제점인가요? 그래도 너무 미워하지 마십시오. 선택의 여지가 없었습니다.”
그렇게 중얼거린 설수민이 비척거리며 상체를 일으켰다.
쿠르르르르…!
마침 삼신마 역시 무너져 내린 목재더미를 걷어치우고는 저벅저벅 걸어 나왔다.
그는 그 어느 때보다도 무서운 표정을 하고 있었다.
“누구 마음대로 간다는 거냐!”
팟!
순간, 그가 거짓말처럼 사라지더니 지붕을 딛고 달려가던 목단화 앞으로 순식간에 이동하는 것이 아닌가?
설서린을 업고 있던 목단화로서는 그를 피할 겨를도 없었다.
꼼짝없이 죽었다고 생각하는 그 순간,
콰아앙!
한 줄기 강기가 날아와 삼신마의 등짝을 후려갈겼다.
그대로 포탄처럼 튕겨 나간 삼신마가 다시 전각을 부수며 나뒹굴었다.
“두 사람, 괜찮은가?”
아슬아슬한 순간에 등장한 사람은 다름 아닌 위검종이었다.
“네, 하지만 설수민이….”
목단화의 말에 위검종의 시선이 저만치 쓰러져 있는 설수민에게 향했다.
설수민이 소리쳤다.
“난 상관 말고 가시오! 두 아이를 잘 부탁드리겠소!”
상황을 냉정하게 판단한 위검종이 고개를 끄덕여 보이고는 목단화에게서 설서린을 넘겨받았다.
“달려라!”
“네!”
그렇게 세 사람이 떠나간 직후,
콰자아앙!
무너진 전각의 잔해가 사방으로 튕겨 날아가며 삼신마가 다시 벌떡 일어났다.
“크아아아아!”
그는 짐승처럼 포효를 내지르더니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설수민이 싸늘한 웃음을 지었다.
“잘난 척하더니 꼴좋군.”
“너 이 새끼… 죽여 버린다.”
“그래, 같이 죽어 보자.”
“노오옴!”
삐이이이잉!
유성추가 허공을 갈랐다.
팟!
순간 설수민은 눈을 부릅떴다.
유성추는 저 멀리 날아가고 있는데, 삼신마는 어느새 코앞에 나타나 자신의 이마를 검지로 찍고 있었다.
푹!
그의 이마에 구멍이 뚫리면서 싸움은 순식간에 끝나고 말았다.
**
“이, 이건…!”
구강룡은 눈앞에 벌어진 현상을 보고도 믿을 수가 없었다.
초절정에 이른 자신이었다.
그럼에도 절정 고수 수십 명이 작정을 하고 달려들면 목숨을 걸어야 한다.
한데 옹기승은 달랐다.
너무나 쉽게 적들을 휩쓸어 버렸다.
수면신공이 아니었다.
옹기승의 배후에 나타난 거대한 존재.
그건 분명 마령혼이었다.
마령혼이 마령교와 싸우는 모습을 보게 되다니.
아마 세상 누구도 헛소리라며 삿대질을 하리라.
그런데 그런 일이 진짜로 일어났다.
“너… 마령혼을 다룰 수 있는 것이냐?”
구강룡의 물음에 옹기승이 어깨를 으쓱이고는 답했다.
“뭐, 그렇게 됐습니다. 아직 완전하진 않습니다만.”
“놀, 놀랍군.”
“이제 가시죠, 형님. 더 이상 고립된 자는 없는 듯합니다.”
“그, 그러자.”
구강룡은 대답을 하면서도 옹기승 뒤에 나타난 거대한 존재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몇 걸음 옮기다 못한 그가 옹기승에게 물었다.
“그런데 그건 안 없어지는 거냐?”
“아, 없어집니다.”
말을 마친 옹기승이 긴장을 풀자, 배후에 나타난 마령혼이 스르르 허공에 흩날리듯 사라졌다.
**
“됐다! 이제 내관으로 돌아간다!”
무랑도사가 말하자, 무랑전에서 수학하던 생도들이 일제히 주변을 정리하고는 걸음을 옮겼다.
내관의 북문을 바라보던 무랑도사는 가만히 속으로 생각했다.
‘이걸로 이제부터는 남쪽만 집중 방어하면 되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