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환 마교관-450화 (450/670)

# 450

귀환 마교관

450화

언덕 아래로 보이는 멸마관은 그야말로 아수라장이 따로 없었다.

멸마관 곳곳에서 화마가 일어나 연신 허공을 핥아댔고, 여기저기에서 날카로운 금속성과 파육음 그리고 비명성이 터져 나왔다.

마령교주의 네 제자인 사신마는 그 참혹한 광경을 무감한 시선으로 내려다보고 있었다.

“꽤나 버티는군.”

사신마 중 첫째인 일신마(一新魔)가 무뚝뚝한 소리로 중얼거리자, 한쪽 눈에 검은 안대를 찬 이신마가 히죽 웃으며 답했다.

“이 정도는 버텨 줘야 재미가 있지. 그래도 ‘멸마’라는 이름까지 내걸었으니.”

“하지만 너무 시간을 끌면 교주님이 탐탁찮게 여기실 테니 이쯤에서 들어갑시다.”

육중한 덩치에 피부가 돌처럼 단단해 보이는 삼신마가 말하자, 사신마도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제 생각에도 이제 슬슬 나서야 할 것 같습니다.”

일신마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일어났다.

“그럼 마무리 지어 볼까?”

그의 눈빛이 얼음장처럼 차갑게 가라앉았다.

**

쉬컥, 푹! 쒸이이익! 퍽!

진조영이 동에 번쩍 서에 번쩍 검을 후리며 날아다녔고, 도비천의 비수가 연신 허공을 가르며 적의 요혈에 틀어박혔다.

“크아아악!”

“아아악!”

여기저기에서 비명이 마구 터져 나왔다.

하지만 그 중에는 적의 비명도 있을 것이고, 멸마관 무인들의 비명도 있을 터였다.

“이런 제기랄! 이것들 끝이 없어!”

진조영이 자신에게 달려들던 마인 하나의 목을 베어 버린 후 숨을 헐떡이며 욕지거리를 뱉어냈다.

그와 등을 맞댄 도비천이 거칠게 숨을 몰아쉬며 대꾸했다.

“헉, 헉, 더 이상 낙오자는 없는 건가?”

“니미럴, 우리가 지금 낙오자야. 병신아.”

“하여튼 그놈의 주둥이는….”

도비천이 핀잔을 주었지만, 진조영은 피식 웃어넘길 뿐이었다.

하지만 진조영의 말대로 현재 남문에서 살아남은 멸마관 무인은 두 사람이 전부였다.

낙오된 자들을 구하기 위해 외문 가까이 달려왔던 두 사람이었다.

다행히 생도들 다수를 안쪽으로 달아나도록 도왔지만, 정작 두 사람이 고립되고 만 것이다.

둘은 등을 맞댄 채 자신들을 포위한 마인들을 싸늘한 시선으로 훑어보았다.

“살아 나갈 수 있을까?”

“살아야지. 그래야 맹 영감한테 큰 소리 치지.”

“그렇지. 우리가 어떻게 살아남은 목숨인데.”

“가자!”

“흐아아압!”

두 사람이 동시에 기합성을 터뜨리며 달려 나갔다.

곧 금속성에 이어 기합성과 비명이 터져 나왔다.

남문의 마인들을 지휘하는 혈응칠마(血鷹七魔)가 저마다 고성을 내지르며 달려들었다.

“저 끈질긴 것들! 조져 버려!”

“고작 두 놈이다! 빨리 처리해라!”

하지만 도비천과 진조영은 정말 잘 싸웠다.

마인들이 두 사람에게 달려들려고만 하면 도비천이 양팔을 펼쳐 올리면서 사방팔방으로 비수를 뿌려댔다.

그 모습을 본 진조영이 눈매를 슬쩍 구기며 물었다.

“그거… 당가의 만천화우?”

“아니. 만천화우를 응용해서 내 방식대로 좀 바꿨다.”

“당이협 교관도 아는 거냐?”

“후후. 당연하지. 당 교관님과 나는 의형제 사이라고.”

“미친. 정사지간 의형제라니. 세상이 비웃겠군.”

진조영이 적을 베어 넘기면서 차갑게 웃었다.

하지만 그는 내심 알고 있었다.

며칠 전부터 당이협과 도비천이 항상 붙어 다녔던 것을.

두 사람 모두 암기를 주 무기로 사용하기 때문인지 통하는 것이 있었으리라.

실제로 정사지간에 의형제를 맺었다고 하면 세상이 비웃을지라도 멸마관에서는 다르다.

사비강과 매설란의 지도 아래 생도들은 정사를 막론하고 어울리기 시작했으니까.

애초에 사비강은 멸마관을 세울 때부터 이런 효과를 기대한 건지도 모른다.

어쨌거나 도비천의 비도술은 사방이 적으로 둘러싸인 와중에도 빛을 발하고 있었다.

덕분에 진조영은 더욱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었고, 그때마다 적을 어렵지 않게 베어 넘겼다.

그러던 어느 순간,

“지금이다!”

“맡겨 둬!”

도비천이 외친 소리에 진조영이 얼른 바닥을 차고 날아갔다.

쒸에에엑!

그가 노린 사람은 다름 아닌 혈응칠마 중 육마!

갑자기 자신에게 쇄도하는 진조영을 보고는 육마가 얼른 양손을 뻗으며 외쳤다.

“화, 화염구!”

쉬르르르륵, 퍼엉!

뜨거운 불덩이가 그의 손바닥 앞에서 맺히자마자 단칼에 부서지며 소멸됐다.

쉬컥!

한 줄기 섬광이 육마의 가슴을 스치며 날아올랐다.

츄아아아아아!

“크아악!”

피가 분수처럼 터져 나오면서 육마가 비명과 함께 몸을 뒤집었다.

“아우야!”

이를 본 오마가 눈을 뒤집으며 달려들었다.

“이 미꾸라지 같은 노옴! 내 네놈을 잘게 다져서… 컥!”

오마는 말을 마저 잇지 못했다.

그가 흥분하면서 달려드는 순간, 도비천의 비수가 허공을 가르면서 그의 목에 날아든 것이다.

방어를 하거나 회피할 여유도 없었다.

목에 비수를 박아 넣은 오마는 그대로 몸을 뒤집고 쓰러지더니 다신 움직이지 못했다.

“형님들!”

이번엔 칠마가 노호성을 터뜨리며 도비천에게 달려들었다.

“기다렷!”

삼마가 얼른 말렸지만, 이미 칠마의 몸은 도비천 앞에 다다라 있었다.

그가 인정사정 볼 것 없이 손에 든 철봉을 내리치려는 순간,

쉬이이이잇, 철컥!

한 줄기 짙푸른 섬광이 그의 뒷목을 그으며 지나가더니 진조영의 검집으로 갈무리됐다.

회격일검(回擊一劍).

단 일격을 뿌리는 것과 동시에 검집으로 갈무리되는 검법이다.

사실 목단화의 섬광벽력검을 바탕으로 진조영이 창안한 검법이니, 그 역시 정도 문파의 영향을 받지 않았다고는 할 수 없었다.

회격일검은 언뜻 비효율적일 수는 있으나, 상대에게 무조건 일격만으로 치명상을 입히는 필살기나 다름없었다.

그렇게 칠마가 머리를 잃고 쓰러지자, 도비천이 얼른 비수를 뿌려대며 소리쳤다.

“이쪽으로!”

진조영이 얼른 도비천의 뒤를 따랐다.

단 세 명.

혈응칠마 중 세 명만 제거한다면 이 포위에서 벗어나 내관으로 들어갈 수 있다는 판단이었다.

그리고 그 판단은 정확했다.

진법을 짜 맞춘 것처럼 포진해 있던 마인들이 우왕좌왕하면서 빈틈이 생겼고, 두 사람은 그 사이로 빠르게 내달렸다.

그런데…

쒸에에에엑, 푹!

“커억!”

앞서 달리던 도비천이 비명을 터뜨리며 그대로 나뒹굴었다.

“천!”

진조영이 찢어질 듯한 목소리로 외쳤다.

“크윽…!”

도비천이 길목 한쪽에 구겨진 채로 신음을 흘렸다.

진조영이 얼른 달려가 보니 놀랍게도 도비천의 심장에 구멍이 뚫려 있었다.

“씨벌… 여기서 뭐하고 있어? 얼른 가지 않고!”

“닥쳐, 이 새끼야! 말하지 말고 있어.”

진조영이 얼른 지혈을 하며 소리쳤다.

하지만 부상이 너무 심각해 소용없는 짓이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

짝짝짝짝!

문득 박수 소리가 들려 고개를 들어보니 한 중년 남자가 느긋한 표정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그는 바로 사신마 중 첫째 제자인 일신마였다.

그를 보자마자 진조영은 느낄 수 있었다.

‘강하다…!’

상대의 뱀 같은 두 눈을 마주보고 있자니 전신이 거미줄에 얽매인 것처럼 옴짝달싹도 하지 않았다.

단 일 수에 도비천에게 치명상을 입힌 남자다.

만약 그가 마음을 달리 먹었다면, 도비천보다 뒤에 달렸던 자신도 얼마든지 죽일 수 있었으리라.

이렇게 강한 적을 상대한 적이 얼마만이던가?

손끝이 미세하게 떨려 왔다.

“눈물겨운 우정이군. 작별인사는 나눴나?”

“닥쳐라, 이 개새끼야!”

진조영이 버럭 고함을 내지르며 선공을 가했다.

동시에 그는 죽음을 직감했다.

그럼에도 달아나기보다 선공을 가한 것은 마지막 자존심이었다.

어차피 달아나지 못하고 죽을 테니 발악이라도 해보자는.

쉬이이이잇, 푹!

사내를 지나친 진조영은 가슴이 뜨끈해지는 것을 느꼈다.

주르르륵!

뭔가가 흐르는 것도 느꼈다.

곧이어,

쉬컥!

진조영이 허공으로 떠올랐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그의 머리만 허공으로 떠올랐다.

머리를 잃은 몸이 보였고, 그보다 조금 떨어진 곳에 절망에 찬 표정으로 죽음을 기다리는 도비천도 보였다.

‘젠장… 저승에서도 맹 영감을 볼 낯이 없군.’

그것이 그가 떠올린 마지막 생각이었다.

툭, 데굴데굴…

바닥을 구르는 진조영의 머리를 무신경하게 바라보던 일신마가 뒤에서 우물쭈물거리는 마인들을 향해 툭 내던지듯 말했다.

“뭐 하고 있나? 정리하고 이동하도록.”

“존명!”

마인들이 쓰러진 도비천을 향해 쇄도했다.

**

쉬이이익, 푹!

“크억! 씨벌…!”

서문 지역에서 마지막 남은 마령교도 하나가 욕지거리를 뱉어내며 털썩 쓰러졌다.

“후욱, 후욱, 후욱…!”

마령교도의 심장에서 검을 뽑아낸 등자경이 거칠게 숨을 몰아쉬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시산혈해.

주변이 온통 사체 투성이다.

그나마 위안이 된다면 멸마관의 무인들보다 마령교도들의 사체가 훨씬 많다는 점이었다.

멸마관 서문은 상대적으로 적은 적들이 나타난 게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등자경의 모습도 온전하진 않았다.

몸 여기저기에 자상이 새겨져 있었고, 전신은 피에 젖은 혈귀가 되어 있었다.

마지막 마령교도를 처리한 등자경은 후들거리는 다리를 이끌고는 천천히 움직였다.

“누구… 살아남은 사람 없어?”

사방이 적막했다.

죽은 자들로 가득한 공간에서 홀로 살아 움직이는 기분이 묘했다.

모두가 죽은 이 상황에서 그래도 자신만은 살아남았다는 게 기적에 가까웠다.

다만 아쉬운 점이 있다면…

“젠장, 나만 빼고 전부 내관으로 달아나다니. 너무하잖아?”

그는 낙오자였다.

하지만 멸마관 무인들 중 누구도 그의 존재를 눈치 채지 못한 듯했다.

그렇게 무거운 발길을 옮기려는데,

“어이, 여기 쓰러진 녀석들 전부 네가 한 짓이냐?”

등을 때리는 탁한 목소리.

등자경이 뻣뻣하게 굳은 자세로 돌아보니, 깡마른 체구에 희멀건 피부를 가진 사내가 자신을 똑바로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바로 교주의 막내 제자인 사신마였다.

“제길, 이럴 땐 희미한 존재감도 소용없나보군.”

등자경이 툴툴 거리자, 사신마가 눈살을 구기고는 말했다.

“뭐라는 건지 모르겠군.”

“몰라도 돼. 덤벼라.”

등자경이 마지막 남은 한 줌의 공력을 끌어올리며 맞섰다.

그는 죽음을 직감했다.

눈앞의 이자는 강하다.

자신은 이 자리에서 죽으리라.

괜히 울컥 눈물이 치밀었다.

왠지 자신이 죽어도 누구 하나 알아줄 사람이 없을 지도 모른다는 서러움이 앞섰다.

‘다 필요 없다. 지금은 일단 저놈의 발목을 최대한 잡아끌어야 한다!’

아직 내관까지 도망치지 못한 생도들이 있다면, 그들이라도 살려야 하지 않겠나?

그가 투기를 드러내자 사신마가 피식 웃었다.

“귀엽군. 편히 보내 주마.”

그가 손바닥을 펼치자, 그 위로 뜨거운 불덩이가 화르르륵 맺히기 시작했다.

다음 순간,

“화염창.”

길쭉하게 자란 불덩이가 허공을 가로지르며 등자경에게 날아들었다.

“우와아아아앗!”

등자경이 눈물을 머금으며 기합성을 터뜨렸다.

쉬르퍼어엉!

어마어마한 폭발과 함께 화마가 일어났다가 사라졌다.

검을 내지른 등자경은 뭔가 이상한 것을 느끼고 천천히 눈을 떴다.

걸리는 게 없다.

“……!”

순간 등자경은 자신을 등지고 선 한 남자를 보았다.

시커먼 그을음이 묻은 그가 뒤를 돌아보고 씨익 웃었다.

“여기서 뭘 꾸물거리고 있어? 멍청아. 빨리 내관으로 이동해야지.”

“백…공보!”

“먼저 가라. 여긴 내가 맡고 있을 테니. 이래봬도 내가 맷집은 너보다 나을 테니.”

“너, 너… 날 구하려고 일부러….”

“뭐하고 있어? 어서 가!”

백공보가 소리치며 사신마를 향해 달려갔다.

사신마가 이맛살을 팍 구기더니,

“별로 귀엽지 않은데.”

순식간에 앞에 다다른 백공보를 그가 손바닥으로 후려쳤다.

쩌엉!

쿠당탕탕!

지켜보던 등자경이 움찔거렸다.

‘백공보를 한 손에…?’

강해도 너무 강한 게 아닌가?

그때 백공보가 다시 버럭 소리 질렀다.

“가! 가서 차라리 다른 녀석들을 데려와!”

“알, 알았어!”

등자경이 얼른 몸을 돌렸다.

확실히 자신은 남아 봐야 도움이 되지 않으리라.

우왕좌왕거릴 시간에 조금이라도 빨리 움직여 지원을 요청하는 게 낫다.

사신마는 저만치 달려가는 등자경을 보고도 쫓지 않았다.

대신 그가 백공보를 보며 말했다.

“저놈이 누군가를 데려올 때까지 네놈이 살아 있을 것 같진 않은데?”

“흐흐. 나도 알아. 그래도 저놈은 살겠지. 안 그래?”

쉬이이이잇!

백공보가 마지막 일격을 가했다.

그리고 그 공격은 정말로 그에게 마지막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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