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49
귀환 마교관
449화
콰자앙!
요란한 소리와 함께 커다란 문짝이 부서지면서 날아갔다.
그 사이로 마령교도들이 봇물 터지듯 우르르 쏟아져 들어왔다.
“막아랏!”
“이여업!”
고적산이 소리치면서 마령교도들을 향해 부딪쳐 갔다.
멸마관 북문을 부수며 나타난 자들은 다름 아닌 혈마대(血魔隊) 마인들이었다.
그들은 모두 적색 무복을 갖춰 입고 있었는데, 교주의 제자인 사신마 중에서도 이신마(二新魔)의 휘하에 있는 자들이었다.
“이놈들! 여기가 어디라고 쳐들어오느냐!”
“죽어 버렷!”
고함소리와 욕설이 뒤섞이면서 비명도 난무하기 시작했다.
챙챙! 채캉!
금속성이 연신 터지면서 혼잡한 싸움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장내로 쏟아져 들어온 혈마대 마인들이 흩어져 싸우던 중, 갑자기 문 쪽으로 물러나는가 싶더니 반원을 그리며 진을 그렸다.
‘무슨 속셈이지?’
고적산이 이맛살을 슬쩍 구기는데,
“화염구!”
마인들이 일시에 손을 내뻗으며 소리치는 것이 아닌가?
찰나,
화르륵! 화르르륵! 화르르륵!
부채꼴로 펼쳐진 마인들의 손바닥 앞에 뜨거운 불덩이가 맺히더니 일순 발사되는 것이 아닌가?
“헛!”
“피햇!”
퍼펑! 콰콰쾅! 콰쾅!
“크아악!”
생소한 싸움 방식에 몇몇 고적산의 수하들이 비명을 내지르며 쓰러졌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이들에게 있어서 마령공이 아주 낯설지만은 않다는 점이었다.
어깨너머로라도 사비강이 사용하는 마법을 본 적이 있다는 것이 큰 도움이 된 셈.
고적산 역시 날아드는 불덩이를 당황하지 않고 검으로 갈라 버렸다.
퍼캉! 슈르르르륵!
두 갈래로 갈라진 불덩어리가 고적산을 아슬아슬하게 스치고는 날아가서 전각 벽에 작렬했다.
한바탕 화염 공격이 퍼부어지고 나자, 주변은 온통 그을음과 연기로 가득 찼다.
“이놈들! 잔재주도 여기까지…!”
하지만 이번에는 곧바로 마인들의 손바닥 앞에 시퍼런 기운이 응집되는 것이 아닌가?
그들의 입에서 동시에 시동어가 터져 나오려는 순간,
“빙결…!”
쒸에에엑! 쒸에에엑! 쒸에에에엑!
창공을 가르는 날카로운 소리!
퍼퍼퍽! 퍼억! 퍼퍼퍽!
콰장창창!
느닷없이 날아든 화살이 그대로 마인들의 가슴과 요혈을 뚫으면서 벽까지 날아가 박혔다.
“방호!”
혈마대주가 소리치자, 다른 마인들도 이구동성으로 외쳤다.
“방호!”
그러자 곧이어 쏟아지는 화살비가 그대로 그들이 소환해낸 반투명한 막에 가로막히면서 튕겨 나갔다.
타다다다다다다다당!
마치 철판에 콩을 볶을 때나 날 것 같은 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
소낙비처럼 떨어져 내리던 화살이 멈추자, 혈마대주가 허공답보를 펼치며 빠르게 날아올랐다.
파바바밧!
전각 꼭대기로 순식간에 날아오른 그가 화살을 쏜 단리정을 향해 일장을 날렸다.
“노옴! 받아랏!”
단리정이 얼른 물러나면서 어깨를 비틀었다.
퍼엉!
아슬아슬하게 스친 장력이 그대로 전각의 창문을 깨부수며 박살냈다.
콰자앙!
혈마대주는 그대로 검을 횡으로 그으며 단리정과 함께 있던 궁수들에게 강기를 날렸다.
콰콰콰콰콰콰앙!
과연 혈마대를 이끄는 수장답게 그의 무공은 어마어마한 파괴력을 지니고 있었다.
전각의 모든 벽에 금이 쩌억 가면서 사방의 창문들이 일시에 터져 나갔다.
“후퇴!”
단리정이 명을 내리자, 궁수들이 재빨리 밖으로 몸을 던졌다.
“어딜!”
혈마대주가 마지막까지 달아나는 자들을 향해 강기를 날려댔다.
쒸앙! 쒸앙! 쒸아앙!
파파팍!
“크악!”
결국 두어 명의 무인이 그가 날린 강기를 막거나 피하지 못하고는 심각한 부상을 입은 채 아래로 추락했다.
한편, 지상에서는 화살비가 멈추자 다시 거침없는 공격을 이어 가고 있었다.
“화염구!”
“화염랑(火焰浪)!”
“풍권(風拳)!”
마인들은 소위 마령공으로 부르는 마법과 검술을 무작위로 섞어 가면서 사용했는데, 때문에 장내는 더욱 아수라장이 되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고적산은 점점 상황이 불리해진다는 것을 깨달았다.
비교적 높은 효율로 마인들을 막아내고는 있었지만, 외벽을 타넘으며 쏟아지는 무리들은 그야말로 끝이 보이지 않았다.
‘제길! 이것들이 아주 작정을 했구나!’
마침 그의 곁으로 단리정이 내려섰다.
“사정이 어렵지만 최대한 버텨 주셔야 합니다!”
“다른 곳은 어떻게 됐소?”
고적산의 질문에 단리정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모두 뚫렸습니다. 놈들의 수가 너무 많습니다. 그래도 아직은 버티고 있습니다.”
결국 다른 방향에서 치고 들어온 녀석들도 만만치 않다는 뜻.
고적산이 어금니를 빠득 갈았다.
“이런 제길! 이 녀석들이 강림지는 어쩌고 죄다 여길 왔단 거요?”
단리정은 대답하지 않았다.
자신도 모른다.
강림지는 전부 가짜였을 지도 모르고, 진짜였다면 토벌대가 전멸한 것일 수도 있다.
그게 아니라면 애초에 마령교가 상상 이상으로 큰 조직이었거나.
어쨌거나 지금 중요한 것은 멸마관을 안전하게 지키는 일이다.
하필이면 그동안 무랑도사가 바빴던 이유로 멸마관 주변의 진법조차도 만들어지지 않은 상황이다.
그 사실을 고적산도 인지하고 있었기에 더는 의미 없는 추궁을 하는 대신 다른 말을 꺼냈다.
“얼마나 버티면 되겠소?”
“현재 내관에서 무랑도사님이 진법을 만드는 중이시니, 반 시진 정도만 버텨 주시면 되겠습니다!”
“끄음…! 반 시진이라…!”
서컥!
대답을 하는 와중에도 고적산은 자신에게 달려들던 적의 머리를 절반으로 쪼개 놓았다.
핏줄기가 팍 튀어 오르면서 그의 얼굴을 물들였다.
“퉤! 알겠소! 최대한 버텨 보겠소!”
“때가 되면 천천히 후퇴하면서 낙오자가 없는지 살펴 주십시오!”
“맡겨 두시오!”
“그럼!”
단리정이 답을 하고는 훌쩍 물러났다.
근거리에서 자신이 오랫동안 머물고 있어 봐야 소용없다.
자신은 최대한 빨리 궁수들을 이끌고 내관 쪽으로 돌아가 정비를 해야 한다.
그래도 고적산이라면 오랫동안 사비강과 함께 철혈대를 잘 이끌어 온 인물이었다.
믿고 맡길 만 할 것이다.
‘다른 곳도 버텨 줘야 할 텐데…!’
천멸대와 신생조에서 토벌대에 차출되지 않은 인원이 사방에서 마령교도들을 막고 있었다.
‘모두들 부탁한다!’
단리정은 경신법을 펼쳐 내관으로 달려가면서도 곳곳에 혹시 모를 낙오자가 없는지 꼼꼼히 살폈다.
**
캉캉! 카카캉!
금속성이 쉼 없이 터져 나왔다.
목단화는 정신을 차릴 수 없을 지경이었다.
어느 틈엔가 자신의 목을 노리고 날아드는 날붙이를 쳐내면, 또 다른 쇠붙이가 머리 위에서 무서운 속도로 떨어져 내렸다.
“헛!”
그녀가 몸을 아슬아슬하게 비틀어 피하자,
“화염창!”
벼락같은 고함 소리와 함께 불덩이로 된 창이 날아들었다.
화르르르르륵!
그녀가 얼른 보법을 밟아 물러나면서 손을 뻗었다.
“실드!”
휘퍼어엉!
반투명한 막이 생성되면서 화염창이 허공에서 거짓말처럼 소멸됐다.
한편, 화염창을 날린 적은 눈을 휘둥그레 뜨고서는 목단화를 노려보았다.
마치 ‘어떻게 네깟 년이 마령공을 사용할 줄 아느냐?’라는 눈치.
목단화가 차갑게 비웃으며 말했다.
“그거 원래 우리 관주님 거야. 이 모조품들아!”
탓!
순간 그녀가 바닥을 차고는 무서운 속도로 날아갔다.
섬광벽력검의 일초식인 혼돈뇌정이 펼쳐졌다.
순간 검봉이 흔들리는가 싶더니 수십 개의 검신으로 쪼개졌다.
어느새 그녀는 섬광벽력검의 대성을 코앞에 두고 있는 상황이었다.
촤촤촤촤촤촤촤아앗!
섬뜩한 파육음이 일어나면서 그녀에게 달려들던 마인들 예닐곱 명이 동시에 비명과 함께 쓰러져 갔다.
“크아아악!”
“아악!”
그러고도 분이 풀리지 않는지 목단화가 주변을 둘러보며 소리쳤다.
“그러니 관주님 허락 받고 다시 와라, 모조품들!”
만약 사비강이 들었으면 어이가 없을 헛소리였지만, 목단화의 목소리에는 진심이 뚝뚝 묻어나 있었다.
하긴 누군가 나타나 마법의 원류는 ‘드래곤’이라고 말해 준들 지금 그녀에게는 통하지도 않으리라.
‘개만도 못한 것들!’
목단화는 입술을 콱 씹었다.
멸마관 무인들이 너무 많이 당했다.
어째서인지 눈에 밟히는 사체마다 멸마관 무인들이다.
절로 울분이 치밀어 올랐다.
그때 마인들 뒤에서 뚜벅뚜벅 발자국 소리가 들리더니 한 노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 미친년이 뭐라는 거야? 나이가 드니까 헛소리인지 환청인지 구분도 안 된다니까. 쯧”
귀를 후비며 마인들 틈새로 걸어오는 자는 바로 귀살색마(鬼殺色魔)였다.
그는 사신마 중에서도 삼신마(三新魔)를 따르는 자였는데, 나이가 구십을 넘긴 노인이었다.
그럼에도 얼굴에는 굵은 주름 두어 가닥이 전부였다.
여인을 품으면서 음기를 갈취해 내공을 쌓는 악질적인 자였다.
마인들 앞으로 걸어 나온 귀살색마가 반들반들한 대머리를 손바닥으로 문지르며 혀를 찼다.
“땀을 그리 많이 흘리면서 어찌 그리 두꺼운 옷을 입은 게냐? 얇고 하늘거리는 걸 입었어야지!”
“미친 영감은 뭐야?”
목단화가 미간을 팍 구기고는 되묻자, 귀살색마가 어이없는 표정을 짓더니 불쑥 대꾸했다.
“뭐긴 뭐냐? 네놈의 서방 될 사람이지! 흐흐흐!”
“미친놈.”
“고년, 혀가 야물구나! 핥아먹는 맛이 있겠다!”
“헛소리 작작하고 덤벼, 이 늙은 색마 새끼야!”
파바밧!
목단화가 더는 들어 줄 수 없다는 듯 경공을 펼치며 곧바로 치고 나아갔다.
쒸에에에엑!
따앙!
귀살색마가 얼른 칼을 뽑아 들고는 목단화를 튕겨냈다.
“고년 성깔 하고는.”
“닥쳐!”
“뭣들 보고만 있느냐? 저 성깔 나쁜 년을 조져라! 아, 죽이진 마라. 살려두고 맛 좀 봐야 하니.”
“존명!”
순간 수하 마인들이 이구동성으로 대답하면서 목단화에게 한꺼번에 달려들기 시작했다.
“치잇! 비겁하게 떼로 덤비다니…!”
“킬킬. 계집아, 싸움에 비겁한 게 어디 있느뇨?”
귀살색마는 아예 뒤로 빠진 채 느긋하게 팔짱을 끼고는 구경했다.
까가강! 깡깡!
요란한 금속성이 쉴 새 없이 울렸다.
‘제길! 끝이 없어!’
목단화는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지쳐 가는 것을 느꼈다.
이미 주변에 널린 멸마관 무인들의 시체도 그녀의 사기를 꺾는 일에 한몫하고 있었다.
그들 중에는 아직 앳되어 보이는 생도들도 있었고, 함께 고민을 나누며 대화하던 조교들도 있었다.
‘제길! 어쩌다가 이렇게까지…!’
상념이 끼어드는 순간,
푸욱!
“크윽!”
어느새 날아든 것인지 귀살색마가 내지른 검에 옆구리를 깊이 찔리고 말았다.
목단화가 이를 악물며 일장을 뻗었다.
퍼엉!
“어림없지!”
귀살색마가 마주 일장을 뻗으면서 장력을 와해하고는 훌쩍 물러났다.
“쿨럭!”
기침과 함께 피가 토해졌다.
목단화가 한 쪽 무릎을 꿇고는 입가에서 흐르는 피를 소매로 훔쳤다.
생각보다 내상이 깊다.
이대로는 검을 든다고 한들 반각도 버티지 못해 무너져 내리리라.
귀살색마가 야비한 웃음을 지으며 검신에 묻은 피를 혀로 핥았다.
“따끈따끈하고 달콤하구나. 역시 네년은 목숨만은 살려 두고 재미를 좀 봐야겠다.”
“닥쳐!”
목단화가 입술을 쿡 씹고는 소리치자, 귀살색마가 수하들을 향해 명했다.
“뭣들 하느냐? 숨만 붙여 두고 조져!”
“존명!”
순간 마인들이 일제히 목단화를 덮쳐 왔다.
그때였다.
촤르르르르르르르륵!
수십 마리의 절지곤충 같은 녀석들이 어디선가 뻗어 나와 마인들의 요혈을 찌르거나 베는 것이 아닌가?
“크아악!”
“아아악!”
마인들이 저마다 몸을 뒤집으며 쓰러져 갔다.
귀살색마가 눈을 부릅뜨고 갑자기 나타난 은발의 여인을 보았다.
“이건 또 뭐야?”
“‘사람을 보고 이거라는 둥, 뭐냐는 둥 하는 건 아니잖아?’라고… 나의 낭군님이라면 말씀하셨을 거야.”
설서린이 착 가라앉은 시선으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귀살색마의 눈썹이 꿈틀거리는데,
“굳이 내가 나설 생각까진 없었지만… 이 첩년이 너무 불쌍해서 보고만 있을 수는 없었어.”
“뭐라?”
한데 그녀를 향해 목에 핏대를 세우며 소리친 사람은 다름 아닌 목단화였다.
“누가 첩년이라는 거야! 첩년은 네년이야! 관주님은 널 절대로 인정… 윽…!”
설서린이 고래고래 소리 지르는 목단화의 머리를 지그시 밟으며 말했다.
“그분의 정실인 내가 이 불쌍한 첩년을 지켜 줘야지 않겠어? 다들 그렇게 생각하지?”
귀살색마가 눈매를 씰룩였다.
“뭐, 뭐 이런 미친년들이… 하나도 아니고 둘씩이나… 뭣들 하느냐? 저 미친년들 전부 조져라! 둘 다 반반하니 목숨만 붙여 둬라!”
“존명!”
순간 마인들이 마기를 확 드러내며 덤벼들기 시작했다.
동시에 설서린의 손에 들린 마칸의 꼬리가 춤을 추듯 날아오르며 수십 갈래로 갈라졌다.
“호호호! 낭군님이 주신 사랑의 증표로 뜨거운 맛을 보렴! 이것이 바로 사랑의 힘이란다!”
촤르르르르르륵!
채찍에서 자라난 절지곤충들이 사방팔방을 향해 마구 뻗어 나가며 굽이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