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48
귀환 마교관
448화
사비강의 눈동자에 분노가 불같이 일어났다.
“지금 뭐라고 했나?”
“이미 다 들었을 텐데.”
백면인이 히죽 웃었다.
순간 사비강의 미간에 주름이 팍 새겨졌다.
“죽여 주지.”
“기꺼이.”
백면인은 여전히 웃음을 잃지 않았다.
다음 순간,
팡!
사비강의 신형이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그는 눈 깜빡할 사이에 백면인 앞에 나타나 있었다.
백면인의 표정에 처음으로 놀라움이 스쳤다.
‘마령공을 사용하지 않고 이렇게나 빨리?’
그러거나 말거나 사비강은 그대로 베르타스를 휘둘렀다.
쒸에에에엑!
가차 없이 날아간 베르타스가 백면인의 목을 단숨에 그어 버렸다.
하지만 그건 허상에 지나지 않았다.
어느새 백면인은 눈앞에서 신기루처럼 스르르 사라지고 말았다.
‘블링크?’
사비강이 흠칫거리고는 뒤를 돌아보자, 예상대로 제법 멀리 떨어진 곳에 백면인이 팔짱을 끼고 서 있는 게 아닌가?
사람이 점처럼 보일 만큼 무척 먼 거리였음에도 백면인의 목소리는 또렷하게 날아 들어와 귀에 박혔다.
“매설란이라던가? 멸마관 총관이라는 그 계집이 그리 요물이라지? 교주님께서 오랜만에 즐거운 시간을 가지시…!”
말을 뱉어내던 백면인이 두 눈을 부릅떴다.
어느새 사비강이 코앞에 나타난 게 아닌가?
그가 미처 방어를 할 겨를도 없이,
“주둥이를 함부로 놀리면 명이 짧아지지.”
사비강이 무뚝뚝한 말을 뱉으며 그대로 주먹을 휘둘렀다.
꽈앙!
마치 금속을 때렸을 때와 같은 소리가 울리면서 백면인이 포탄처럼 튕겨 날아가 한참이나 바닥을 굴렀다.
“크큭! 제법 손이 맵…”
가까스로 몸을 일으키던 백면인은 이번에도 말을 마저 잇지 못했다.
사비강이 또 다시 눈앞에 나타난 것.
“어떻게 이렇게 빨리? 마령공을 다시 사용하려면 대기 시간이 있을 텐데…?”
사비강이 손을 불쑥 뻗더니 백면인의 머리카락을 거칠게 휘어잡았다.
“너하고 같은 레벨이 아니다, 병신아.”
“레벨…?”
백면인이 알아듣지 못한 소리를 이해하느라 고개를 갸웃거릴 때, 사비강이 다시 주먹을 내질렀다.
퍽! 퍽! 퍽!
머리채가 휘어 잡힌 백면인은 그 자리에서 꼼짝도 하지 못한 채 연이어 얼굴을 얻어맞았다.
온통 새하얗게 물들었던 백면인의 얼굴이 이제는 시뻘겋게 변해 버렸다.
이가 빠지고 코가 뭉개진 백면인이 퉁퉁 부어오른 눈을 뜨고는 간신히 말을 이었다.
“손이… 맵군… 하지만 이런다고… 교주님이 그년을…”
뻐억!
쿠당탕탕탕!
결국 백면인은 머리카락이 완전히 뜯겨 나가면서 저만치 날아가 바닥을 굴렀다.
사비강이 한 움큼 빠진 머리카락을 아무렇게나 날려 버리고는 백면인에게 저벅저벅 걸어갔다.
이제는 정말 죽여 버리겠다는 의지가 다분한 눈빛이었다.
그의 전신에서 살기가 폭사되면서 우러나왔다.
한편 백면인은 거칠게 호흡을 하면서 비척거리며 일어났다.
누가 보더라도 일방적인 싸움.
백면인이 입가에서 흘러내리는 피를 소매로 닦아내고는 힘겹게 말을 이었다.
“하악, 하악, 하악…! 궁금하지 않은가? 이렇게 실력 차이가 큰데도 너와 맞서는 이유가…?”
사비강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더욱 짙은 살기만을 내뿜고는,
팟!
다시 한 번 블링크 마법을 이용해서 백면인 앞에 다다랐다.
콱!
사비강이 거칠게 멱살을 움켜쥐는 순간,
히죽.
백면인의 입매가 치켜 올라갔다. 동시에,
따악!
그의 손가락이 유난히 큰 소리를 울리며 튕겼다.
변화는 곧바로 일어났다.
드드드드드드…!
구구구구구구…!
주변의 땅이 잔잔한 진동을 일으키는가 싶더니,
“쿠와아아아아!”
“크아아아아아!”
온갖 마물들이 포효를 내지르며 땅속에서 마구 솟구쳐 올라오는 것이 아닌가?
그야말로 일개의 군단이라고 봐도 과언이 아닐 정도의 규모.
사방팔방에서 솟구쳐 올라온 마물들이 사비강을 향해서 일시에 쏟아지듯 달려들기 시작했다.
사비강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쓸데없는 짓을…”
무심히 중얼거린 그가 손에 들고 있던 백면인을 마물들에게 냅다 집어던지고는 그대로 양손을 활짝 펼치며 외쳤다.
“헬파이어!”
휘아아아아아앙!
화르르르르르륵!
뜨거운 열기가 사방으로 뻗어 나가면서 앞서 달려들던 마물들을 순식간에 연소시켜 갔다.
“크와아아악!”
“쿠아아아아!”
비명인지 기합성인지 구분도 되지 않는 괴성이 연신 울려 퍼졌다.
불이 붙은 마물들은 여기저기 허우적거리다가 쓰러져 갔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화염 속성을 지닌 마물들은 끄떡하지 않고 사비강에게 달려들었다.
“귀찮게 하지 마라!”
사비강이 버럭 일갈을 내지르고는 베르타스를 횡으로 그었다.
쒸아아아아아앙!
시퍼런 강기가 원을 그리면서 뻗어 나갔다.
파파파파파파!
마치 거대한 파도가 휩쓸고 지나간 자리마냥 거침없이 달려들던 마물들이 그대로 절단되면서 잔해처럼 바닥으로 떨어졌다.
하지만 사비강을 향해 밀려드는 마물들의 수는 끝이 없었다.
쿠두드드득!
쿠우웅!
땅속에서 싹이라도 자라나는 것처럼 녀석들은 끊임없이 튀어 나오면서 우글우글 달려들었다.
팟!
마침내 사비강이 바닥을 차고는 하늘로 날아올랐다.
곧이어 그가 양손을 뻗으며 소리쳤다.
“그라운드 오브 퓨리(Ground Of Fury)!”
우우우우우우웅!
그 순간, 지면에서 묘한 진동이 일어났다.
곧이어,
쿠콰콰콰콰콰쾅!
드드드드콰콰콰앙!
마치 종말이라도 일어난 것처럼 땅바닥이 뒤집히고 흔들리며 부서져 버리는 것이 아닌가?
“크아아아아!”
“쿠와아아악!”
사비강을 향해 몰려들던 마물들은 연신 뒤집히고 갈라지는 땅속에 파묻히면서 허우적거렸다.
사비강은 손속에 사정을 두지 않았다.
그는 화염 속성의 마물이든, 냉기 속성의 마물이든 속성과 무관하게 타격을 받을 수 있는 마법 공격을 연이어 펼쳤다.
“그라운드 오브 데스(Ground Of Death)!”
쿠차차차차차차착!
순간 지면에서 쇠창살 같은 가시가 여기저기 삐죽삐죽 튀어 나오면서 마물들의 전신을 관통했다.
“크에에엑!”
“퀴이이이익!”
순식간에 사지가 꿰뚫린 마물들이 마구 버둥거리면서 생명을 잃어 갔다.
그럼에도 마물들의 집착은 끝이 없었다.
쿠드드드득!
“쿠와아아아아!”
누군가 이 광경을 보았더라면 차라리 지옥이 나을 것이라고 말하리라.
연신 솟구쳐 오른 마물들은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사체들을 밟으며 하늘에 뜬 사비강에게 달려들었다.
우르르르르.
수백, 수천 마리의 마물들이 서로 뭉치면서 움직이자, 하나의 유기체가 된 것처럼 보일 지경이었다.
탑처럼 쌓인 마물들이 금방이라도 사비강에게 다다를 것만 같은 순간,
“프로즌 템페스트(Frozen Tempest)!”
쒸아아아아앙!
모든 것을 얼려 버릴 듯한 냉기의 폭풍우가 휘몰아치기 시작했다.
꾸드드드드드…!
이쯤 되자 땅속에서 마구 치밀고 올라오던 마물들도 그 자리에서 얼어 버리면서 더 이상 움직일 수가 없었다.
쩌저저저저억!
사비강을 향해 탑처럼 쌓이던 마물들의 유기체도 그대로 얼어 버렸다.
사비강이 그 모습을 차갑게 식은 눈동자로 내려다보다가 손을 뻗으며 마무리 지었다.
“퓨리 오브 더 헤븐(Fury Of The Heaven)!”
다음 순간,
짜르르르르르릉!
쾅! 꽈장! 꽈앙! 꽝!
하늘에서 무지막지한 벼락이 연이어 떨어져 내리는 것이 아닌가?
그야말로 신령이 대노하여 지상에 징벌을 내리는 듯했다.
그 엄청난 파괴력 앞에서 꽁꽁 얼어붙은 마물들은 속수무책으로 당해 갔다.
꽈과과과과아앙!
마지막으로 한 차례 격렬한 떨림이 전해진 후로 하늘은 분노를 멈췄다.
지상은 그야말로 초토화가 된 상태.
더 이상 바닥을 헤집으며 기어 나오는 마물도 보이지 않았다.
간헐적으로 꿈틀거리는 마물의 신체 일부가 보일 뿐.
스르르르르.
사비강이 천천히 하강하면서 백면인 곁으로 내려섰다.
백면인 역시 광범위한 마법 공격에서 완전히 벗어나진 못했기에 만신창이가 된 모습이었다.
그는 이제 이 하나 남아 있지 않은 입을 히죽 틀어 올렸다.
“끝났… 쿨럭! 쿠웨엑!”
말을 꺼내던 백면인이 그 자리에서 고개를 돌리고 핏덩이를 한 움큼 토해냈다.
그는 가까스로 숨을 몰아쉬며 가슴을 들먹였다.
“역시… 존야께서 정확… 하셨군. 넌… 상상 이상으로… 쿨럭! 이걸로 대업은… 이루어졌다… 이 위업에는… 너의 기운이… 거름이 될 터…”
백면인은 말을 완전히 끝맺지 못하고 눈을 뜬 채로 숨을 거두었다.
사비강이 가만히 눈살을 찌푸렸다.
다음 순간,
츠츠츠츳!
백면인의 전신에서 시커먼 문신이 도드라지는가 싶더니 이내 붉은 빛을 발하면서 타들어가는 게 아닌가?
“크아아악!”
“우아아아악!”
마침 저 멀리서 살수들이 상대하는 부상자들 역시 느닷없이 비명을 내지르며 몸부림을 치는 게 아닌가?
이내 백면인과 마찬가지로 부상자들의 전신이 회색빛 잿더미로 변하면서 스르르 공기 중에 흩어져 갔다.
동시에 강림지를 둘러싸고 있던 골렘들의 전신에서 황금빛 기운이 휘황하게 뿜어져 나오더니 이내 커다란 호선을 그리며 하늘을 뒤덮었다.
생전 처음 보는 광경에 악천괴와 살수들이 눈을 휘둥그레 뜨고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뭐, 뭐야?”
“빌어먹을!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는 거지?”
꽤나 멀리 떨어진 곳에서 사투를 벌이던 정도맹 무인들도 당황하면서 우왕좌왕하는 모습이 보였다.
찰나,
쏴아아아아앙!
성벽처럼 단단해진 골렘들이 뿜어내는 황금빛 기운이 이내 하늘을 가득 메우며 덮어 갔다.
우우우우우우웅!
지상이 떨려왔다.
사비강이 미간을 팍 구겼다.
‘설마…? 골렘 게이트?’
직접 본 적은 없다.
하지만 마계에서 생활하는 동안 들어본 적은 있다.
마법의 파생물인 골렘을 이용해서 단체 이동 마법인 매스 텔레포트(Mass Teleport) 결계를 만드는 것을.
하지만 실제로 대규모 이동 마법을 사용하기에는 워낙 많은 시간과 힘이 필요하기에 마계에서도 거의 사용하지 않는.
골렘을 이용해서 만든 것이면서, 장소 간의 이동을 목적으로 하기에 ‘골렘 게이트’라고 불리는 결계다.
그런데 그걸 여기에서?
‘그렇다면 여긴 강림지가 아니라… 그저 제단일 뿐이었다는 건가? 그렇다면 이곳에 있는 모든 인간이 제물이라는 뜻인데….’
사비강의 생각에 대답이라도 하려는 듯, 순간 방벽처럼 둘러선 골렘들이 어마어마한 빛을 뿜어내기 시작했다.
이윽고 한치 앞도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강렬한 빛이 시야를 완전히 채워 버렸다.
**
“총관님! 마령교가 공격해 왔습니다!”
단리정의 보고에 매설란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마령교가? 강림지는 어쩌고?”
반사적으로 터져 나온 물음에 그녀는 아차 싶었다.
이 급박한 상황 속에서 마령교가 강림지를 어떻게 했는지 알 게 뭔가?
그녀가 얼른 말을 정정했다.
“적이 얼마나 되지?”
“어림잡아 이천 명은 됩니다!”
“뭐라고? 이천…?”
매설란의 눈동자가 찢어질 듯 커졌다.
현재 멸마관에 남은 생도들의 두 배가 훨씬 넘는 수가 아닌가?
그야말로 멸마관을 잿더미로 만들겠노라 작당하고 온 것이 아니고서야!
“경계령을 내리고 곧바로 싸울 준비 해!”
“알겠습니다!”
단리정이 대답과 동시에 달려 나갔다.
매설란이 입술을 쿡 씹었다.
“반드시 지켜내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