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47
귀환 마교관
447화
쉬이이익!
촤아악!
“쿠웨에에엑!”
팔을 잃은 발루크가 괴성을 터뜨리며 몸을 비틀었다.
능운파는 그대로 몸을 회전하며 발을 내질렀다.
쾅!
발루크가 튕겨 나가면서 허우적거리자,
파파파팟!
촤촤촤촤촤촤촤악!
능운파의 직속 부대인 승룡대원들이 벌떼처럼 달려들면서 검기를 난사했다.
츄아아아아!
결국 발루크가 피를 잔뜩 뿜으며 쿵, 쓰러졌다.
능운파가 주위를 둘러보며 소리쳤다.
“당황하지 말고 맞서 싸워라! 스스로를 믿어라!”
하지만 발루크를 처음 상대하는 무인들은 그게 말처럼 쉽지 않았다.
“헉, 이런 괴물…! 크아아악!”
“안 돼! 이건 도저히 이길 수… 아악!”
발루크의 철퇴에서 발사된 가시에 맞아 죽은 이들이 수두룩했다.
뿐만 아니라 바올드의 촉수에 당한 자들도 상당수였다.
‘제길! 이대로라면…!’
능운파는 뒤를 힐끔 돌아보았다.
여전히 제사벽은 굳건했다.
조금 전 자신이 날린 강기로 인해 일부분이 부서진 것 외에는 달라진 점이 없었다.
벽 위에서는 여전히 흑의 궁수들이 활을 팽팽하게 잡아당기고는 언제든 쏠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야말로 진퇴양난!
졸지에 침공해야 할 적진을 배후에 두고 싸우는 꼴이 됐다.
어쩔 수가 없다.
갑자기 나타난 마물들을 전부 상대하려면 움직이지 않는 마령교도들을 등지고서라도 싸울 수밖에.
그때 매서운 칼바람이 부는가 싶더니, 조금 떨어진 곳에서 달려들던 마병 하나가 비명을 터뜨리며 쓰러졌다.
그리고 마병을 일격에 제거한 욱청풍이 능운파 옆으로 다가서며 소리쳤다.
“맹주님! 후퇴해야 합니다! 이대로는 반 시진도 버티지 못합니다!”
“하지만 그랬다간 구출대는 영영 고립되고 말 거요.”
“어쩔 수 없습니다! 그들까지 구하려다간 전멸당합니다! 여기서 머뭇거릴 게 아니라, 우선 후퇴한 다음 구출대를 다시 구성하는 게 좋겠습니다!”
‘그럴 시간이 된다면 좋겠지만….’
능운파는 미간을 좁히고 생각에 잠겼다.
그는 알고 있었다.
지금 후퇴하게 되면 이 전쟁은 패하고 만다는 것을.
겨우 목숨만은 건질 수 있으리라.
욱청풍도 그걸 모르진 않을 것이다.
추후 기회를 봐서 구출대를 다시 구성하자는 건 그저 허울 좋은 명분일 뿐이다.
당장 이곳을 벗어난다고 해도 생존자는 그리 많지 않을 테니.
“맹주님!”
욱청풍이 다시 소리치자, 능운파가 고개를 들고는 말했다.
“후퇴합시다.”
“잘 생각하셨습니다! 다들 후퇴하라! 후퇴다! 최대한 빨리 이곳을 벗어난다!”
욱청풍이 내공을 실어 소리치자, 전장에서 싸우던 무인들이 모두 몸을 빼내기 시작했다.
이제 무인들은 적을 학살하는 대신 생존에 모든 힘을 쏟았다.
능운파 역시 주변을 둘러보며 소리쳤다.
“내가 길을 뚫을 테니, 모두들 뒤를 따르라!”
말을 마친 그가 경공을 펼치면서 무서운 속도로 달려갔다.
“쿠와아아악!”
“크어어어!”
마병들과 발루크가 괴성을 지르며 달려들었다.
“흥! 어림없다!”
능운파가 일갈을 터뜨리며 검을 휘두르자 강기가 폭사하면서 마물들의 전신이 터져 나갔다.
퍼퍼퍼퍼펑!
능운파의 검세는 그 어느 때보다도 매섭고 강렬했다.
그는 자신이 중원 제일 조직의 수장이라는 사실을 여실히 증명했다.
함께 달리는 욱청풍 역시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맹주의 실력을 이렇게 가까이에서 직접 본 것은 오랜만이군. 정말이지 대단하다. 평소의 온화한 성격만 보고 함부로 판단해서는 안 되겠구나!’
짐작컨대 맹주의 무공 수위가 예전보다 훨씬 상승한 듯했다.
어쨌든 그 덕분인지 맹주가 이끄는 무인들은 어렵지 않게 언덕을 오를 수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골렘 앞에 다다랐을 때였다.
그그그그그긍!
바위산처럼 꿈쩍도 하지 않던 녀석들이 갑자기 움직이기 시작하더니 무서운 속도로 부딪쳐 오는 게 아닌가?
“하아앗!”
능운파가 기합성을 터뜨리며 부딪쳐 갔다.
쩌어엉!
“크으윽!”
골렘이 내지른 주먹과 능운파의 검봉이 정면으로 부딪쳤다.
그 충격으로 능운파가 입은 장삼이 순식간에 터져 나갔다.
파파파!
“쿨럭!”
“맹주님!”
호신위들이 얼른 소리치며 달려왔다.
그러는 사이 승룡대원들이 바람처럼 날아가 골렘을 베었다.
쩌카앙! 까가가강!
하지만 골렘은 그 자체로 금강불괴나 다름없었다.
공격을 받은 녀석들의 몸이 은빛으로 빛나는가 싶더니 상체를 빠르게 회전하면서 팔을 휘둘러댔다.
퍼퍼퍼퍽!
“크악!”
“컥!”
승룡대원들이 속절없이 튕겨 나가면서 바닥을 뒹굴었다.
능운파가 어금니를 빠득 갈았다.
“젠장! 이것들은 도대체 어떻게…”
그때였다.
능운파는 등 뒤가 후끈하게 달아오르는 것을 느끼고는 무심결에 뒤를 돌아보았다.
후우우우우웅!
마침 뒤쪽에서 뜨끈한 바람이 강하게 불어오는 것이 아닌가?
곧이어 그는 저만치 거칠게 일어나는 불길을 목격했다.
“저건… 대체?”
곧이어 지진이 일어나는가 싶더니 갑자기 땅이 갈라지면서 치솟아 오르는 용암도 보였다.
“저, 저건…!”
“사비강 관주인가 봅니다!”
승룡대원 중 한 명이 반색하며 소리쳤다.
반면 욱청풍은 냉랭한 표정으로 말했다.
“또 그 마계의 사술을 쓰는 모양이군요.”
“마계의 사술이면 어떻겠습니까? 오히려 그것으로 저 마령교 녀석들을 혼쭐을 내준다면야.”
승룡대주가 시큰둥한 표정으로 말하자, 욱청풍의 눈썹이 성큼 치켜 올라갔다.
그가 뭐라고 말하려는 순간,
키이이이이잉!
갑자기 골렘의 전신에서 금빛 기운이 터져 나오는가 싶더니, 훌쩍 물러나면서 제자리로 돌아가는 것이 아닌가?
곧이어,
쿠쿵! 쿠쿵! 쿠쿠웅!
녀석들이 서로 다닥다닥 붙으면서 이어지더니 더욱 짙은 금빛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육중한 덩치의 골렘들이 하나의 벽처럼 이어지자, 거대한 성벽이 앞을 가로막는 느낌이었다.
능운파가 이맛살을 구기며 중얼거렸다.
“이것들이… 뭘 하는 거지?”
**
“지옥이 따로 없군.”
용암이 굳어 버린 자리를 따라 걸음을 옮기는 악천괴는 연신 혀를 내둘렀다.
그의 뒤를 살막의 살수들이 따르고 있었는데, 그들은 숭마각에 사로잡혀 있던 부상자들을 호위하고 있었다.
사실 사비강이 이렇게 난리를 쳐놨으니, 호위를 하고 말 것도 없는 상황이었다.
반경 수십 장이 초토화 되었는데 감히 누가 나타나서 그들을 가로막겠는가?
“허참! 맹주도 이럴 줄을 몰랐겠지. 그 뭐냐? 총군사인 그 새파란 애송이 녀석도 자네가 이런 식으로 난장을 부릴 줄은 몰랐을 것 아닌가? 큭큭.”
악천괴는 뭐가 그리 재미있는지 헤실헤실 웃으며 사비강에게 다가갔다.
그러던 그가 어느 순간 우뚝 멈추고는 미간을 슬쩍 구겼다.
분명 조금 전까지만 해도 사비강은 용암이 굳어 버린 땅 끝에 홀로 서 있었다.
한데 지금 사비강 앞에는 또 다른 사람이 나타났다.
얼굴을 온통 하얗게 칠한 백면인이었다.
‘저놈은 대체 언제…? 그런데 누구지? 마령교도인가?’
얼굴을 허옇게 칠한 것으로 보면 마령교도일 가능성이 매우 높았다.
악천괴는 내심 코웃음을 쳤다.
‘흥! 배짱 하나는 좋구나. 이 지경이 되었는데도 사비강 앞에 나타날 생각을 하다니.’
만약 자신이었다면 머리카락도 보이지 않도록 꼭꼭 숨었으리라.
하지만 백면인은 두 눈을 똑바로 뜨고 사비강을 응시하고 있었다.
“쩝, 멍청한 건지, 배짱이 좋은 건지….”
악천괴가 혀를 차며 중얼거렸다.
반면 사비강은 눈을 가늘게 뜨고는 백면인을 빤히 바라보았다.
“너냐?”
“뭐가?”
백면인은 희미한 웃음마저 머금은 채 고개를 갸웃거리고는 되물었다.
“암신대를 제거한 놈이 너냐고 묻는 거다.”
“아아, 그 쥐새끼 같은 놈들 말이군. 그래, 내가 죽였지.”
“그럼 이제 네가 죽을 차례군.”
“킥킥.”
백면인이 느닷없이 웃음을 터뜨렸다.
사비강 뒤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악천괴가 기가 막힌 듯 혀를 찼다.
‘정신이 나간 놈인가? 하긴 사비강이 이 난리를 부리는데도 겁 없이 나타난 걸 보면 제정신이 박힌 놈은 아니겠지.’
한참이나 비릿한 웃음을 흘린 백면인이 입매를 비틀며 대꾸했다.
“날 너무 쉽게 보지 마라. 금면을 죽였다고 해서 나 역시 그리 될 것이라는 건 착각이야. 만약 금면도 충분한 시간이 있었더라면 그리 쉽게 당하진 않았을….”
“말이 많다. 빨리 끝내자.”
“흐음. 무척 바쁜 모양이군.”
“언제부턴가 너희 쓰레기들이 주절대는 소리를 들어주는 게 적성에 맞지 않아서.”
백면인의 표정이 살짝 일그러졌지만 그뿐이었다.
그는 곧 희미한 미소까지 머금은 채 말을 이었다.
“너는 정말 재미있는 놈이구나. 존야께서 깊은 관심을 가질 만하군.”
“다 떠들었으면 이제 그만….”
사비강이 베르타스를 스르릉 뽑아 드는데,
“아, 잠깐. 그전에 물어보지. 그 녀석들은 데려가려고 그러나?”
백면인이 손가락으로 숭마각에서 데리고 나온 부상자들을 가리켰다.
악천괴가 이맛살을 푹 찌그리고는 답했다.
“그럼 여기서 소꿉장난이나 하고 있을 줄 알았더냐?”
“후후. 그렇다면 꽤나 고생하겠는 걸?”
말을 마친 백면인이 순간 손가락을 딱 튕겼다.
그러자,
“크흐어업!”
“후으으윽!”
갑자기 부상자들이 허리를 휘며 고통스러운 표정과 함께 비명을 내지르는 것이 아닌가?
“엇! 이봐! 왜 그래?”
“이런! 무슨 일이야?”
살수들이 당황해서 부상자들의 어깨를 잡고 흔들었다.
찰나,
“크와아아아!”
부상자들의 이마에서 타들어가는 소리와 함께 연기가 피어오르기 시작하는 것이 아닌가?
퍼퍼펑!
그들이 일순간 주변을 에워싸고 있던 살수들에게 장력을 격발시키자, 몇몇 살수들이 비명과 함께 나가떨어졌다.
“저 미친…!”
악천괴가 이를 빠득 갈고 튀어 나가려는데,
“끄으으으으!”
부상자들이 털썩 무릎을 꿇고는 고통에 겨워 몸부림을 쳤다.
마침내 그들의 이마에 붉은 글귀가 선명하게 새겨지고 있었다.
마치 달궈진 쇳덩이가 이마에 닿은 것처럼 낙인이 새겨지는 모습이었다.
낙인의 문양은 처음 보는 것이었다.
하지만 사비강은 그 낙인을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었다.
‘마계의 저주…! 바리탄이 걸어 둔 건가?’
다음 순간,
퍽! 퍼퍼퍽!
부상자들이 갑자기 살수들을 향해 살공을 펼치며 달려들기 시작했다.
악천괴가 버럭 소리쳤다.
“이런 니미럴! 이 개 같은 것들이 주화입마에 걸렸다! 어차피 구하긴 글렀으니 죄다 죽여 버려!”
“존명!”
살수들이 곧 검을 뽑아 들고는 살초를 펼치기 시작했다.
사비강 역시 그들을 말리지 않았다.
지금 주화입마에 빠진 몇 명이 문제가 아니다.
이들을 온전하게 데리고 탈출하기란 애초에 무리였을 지도 모른다.
대신 이 강림지를 자세히 알아보고 마왕이 오는 것을 막는 게 급선무.
까강! 깡깡!
살수들과 부상자들 간에 치열한 사투가 벌어졌다.
생각보다 부상자들은 훨씬 강했다.
따악!
백면인이 다시 한 번 손가락을 튕기자, 부상자들은 이제 신체 변형까지 일어나며 점점 괴물이 되고 있었다.
“노옴!”
사비강이 노호성을 터뜨리며 백면인에게 날아가려는 순간,
“참, 멸마관은 안전한가? 교주님께서 그쪽으로 나들이를 가셨다는데 말이야.”
백면인이 비릿한 웃음을 머금은 채 중얼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