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환 마교관-440화 (440/670)

# 440

귀환 마교관

440화

“이제 금면도 죽었군.”

태사의에 앉은 마령교주가 묵직한 음성을 흘렸다.

앞에 시립한 백면인이 고개를 숙이며 답했다.

“어차피 예상한 일 아니었습니까?”

“하긴. 그렇지.”

만약 금면인이 이 자리에 있었더라면 기절초풍했으리라.

자신의 죽음을 예상하고도 아무런 수도 쓰지 않고 내버려 두었다는 소리가 아닌가?

당장이라도 얼굴을 붉히며 따지고 들 만한 일이다.

하지만 망자는 말이 없는 법.

교주의 차분한 목소리가 허공에 잔잔히 울렸다.

“강림지 의식은 얼마나 진행되었나?”

“이제 팔 할을 넘었습니다. 곧 구 할에 이를 것입니다.”

“모든 일이 계획대로 진행되는군.”

“교주님의 안목에 감탄을 금치 못했습니다. 금면이 정확히 교주님의 뜻대로 움직여 주었습니다.”

“안목이라고 할 것도 없지. 무공을 보는 것보다 중요한 게 바로 사람을 보는 것이다.”

“새겨듣겠습니다.”

“은면의 배신은 이미 예견된 것이었다. 어차피 거두지 못할 거라면 속여서 이용이라도 해야 할 테니. 중요한 건 금면이었지.”

교주가 눈을 가늘게 떴다.

그는 언젠가 존야와 나눈 대화를 떠올리고 있었다.

**

“마령교도를 이용하란 말씀이십니까?”

교주가 다소 당황한 목소리로 묻자, 존야가 이맛살을 곱게 찌푸리며 되물었다.

“아까운가?”

“아, 죄송합니다. 그런 뜻이 아니라….”

교주가 얼른 부복하며 사죄했다.

존야가 무감한 표정으로 시선을 돌려 꽃을 보았다.

“한낱 보잘 것 없는 생명에게마저 정을 품지 마라. 정이란 인간이 가진 가장 큰 약점이다. 대업을 위해서는 모든 것이 이용될 수 있다. 너 자신조차도.”

“명심하겠습니다!”

“사비강이라고 했던가?”

“그렇습니다.”

“그자는 쉽게 감당할 수 있는 자가 아니다. 보다 큰 그림을 그려야 한다.”

“어떤…”

“네가 이용할 수 있는 최대한의 무기를 꺼내야 할 것이다. 정면으로 부딪쳐서는 너조차도 절대 그를 꺾진 못할 것이다.”

“그 정도로…!”

못 믿는 것이 아니다.

존야의 말이었다.

그는 존야의 말을 맹신했다.

단지 놀랐을 뿐이다.

존야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꽃내음을 맡더니 말을 이어 갔다.

“그는 마계를 알고 있다. 그 이유는 나도 정확히 알 수 없지만 그것만은 분명하다. 그러지 않고서는 나를 통하지 않고 마법을 사용할 수 없지.”

마법이라는 것이 바로 존야가 알려준 마령공이라는 것을 교주는 잘 알고 있었다.

교주가 고개를 더욱 깊이 숙이며 말했다.

“모든 것을 희생해서라도 그자를 반드시 제거하겠습니다!”

“아니, 너는 제거하지 못할 것이다.”

“하면…?”

“저지해라. 대업을 이룰 때까지 그를 저지하는 것이 네 임무다.”

“명심하겠습니다.”

교주가 엎드린 채로 바닥에 이마를 찧었다.

**

그날 이후 교주는 다소 복잡한 계획을 세웠다.

은면을 간자로 보낸 것 역시 그의 의도가 다분히 섞여 있었다.

그리고 사람의 심리를 잘 읽어내는 금면에게 꽤 많은 권한을 넘겨 주었다.

금면이라면 충분히 은면과 옥면의 사이를 잘 이용하리라 마음먹었다.

다른 몇 부분에 대해서는 교주의 뜻과 무관하게 진행된 것도 있었다.

하지만 교주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금면에게 자유를 줄수록 그는 자연스럽게 도구로 쓰여 질 것이었기에.

이 모든 일들을 진행함에 있어서 교주의 속뜻을 제대로 알고 있는 이는 백면이 유일했다.

교주가 백면을 선택한 이유는 다름이 아니라, 자신을 가장 잘 따르는 자였기 때문이었다.

“옥면이 죽지 않았다니, 조만간 사비강이 움직일 것이다.”

“그가 의심하진 않을까요?”

“의심하겠지. 하지만 그는 이번에도 움직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천강곡을 친 것이고.”

“그럼 곧 대업의 완성이 이루어지겠군요.”

“원활한 마무리를 위해 사신마(四新魔)를 부르도록 하라.”

“……!”

백면인이 흠칫거리고는 교주를 보았다.

사신마는 네 명으로 이루어진 교주의 제자들이었다.

그들 개개의 무공 수위는 금면을 초월한다고 알려져 있었다.

그런 사신마를 부른다는 것은 이제 정말로 대업의 완성이 가까워졌다는 뜻.

백면인이 벅찬 가슴을 억누르며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

“그 정보는 확실한가?”

능운파의 눈빛이 흔들렸다.

“확실합니다. 확인 작업은 모두 끝났습니다.”

사비강이 차분한 표정으로 대꾸했다.

장내에 모인 정도맹 수뇌 인사들과 각 지파의 수장들이 비분강개하며 소리쳤다.

“이런 개 같은 놈들! 이제 놈들의 위치가 파악됐으니 당장 토벌대를 구성해서 그 썩을 놈들을 휩쓸어 버려야 합니다!”

“옳소! 마령교의 만행을 언제까지 두고만 볼 수 없습니다! 이 기회에 녀석들의 씨를 말려 버립시다!”

“비열한 새끼들이 천강곡을 치다니! 게다가 부상자들을 납치해서 제물로 삼으려고 한다니! 도저히 용납할 수 없습니다!”

너도나도 소리치며 분노를 드러내니 장내는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고 말았다.

오늘 사비강은 정도맹 본단으로 와서 그간 조사한 것들에 대해 보고했다.

대부분 여곤을 고문하면서 얻어낸 정보였고, 귀영단을 통해 확인 절차를 거친 것들이었다.

능운파가 눈을 지그시 감으며 말했다.

“그러니까 자네 말에 의하면… 본맹이 가짜 강림지에 발이 묶여 있는 동안, 마령교가 천강곡을 쳐서 제물로 바칠 무인들을 납치했고, 지금 그들이 강림지에 잡혀 있다는 건가?”

“우선은 그렇게 파악됩니다. 여곤의 입을 통해서 들은 이야기이고, 실제로 그곳에서 귀영단을 통해 납치당한 무인들이 확인됐습니다.”

“한데 민가를 습격하지 않고, 굳이 천강곡을 친 이유라면?”

“그건 아마도 무공을 익힌 사람이 제물로 바쳐질 경우 효과가 극대화 되기 때문인 듯합니다.”

“그 말이 사실이라면 보통 문제가 아니군.”

능운파가 중얼거리면서 침음을 흘렸다.

총군사 구윤은 눈을 가늘게 뜨고는 사비강을 바라보았다.

어딘지 사비강의 태도가 평소답지 않다고 여긴 것이다.

언제나 거침없는 사비강을 떠올린다면, 지금쯤 강림지로 당장 쳐들어갈 테니 지원을 원한다고 당당히 말했을 것이다.

한데 오늘은…

‘어째서 보고에서 그치는 거지?’

의문을 품은 구윤이 넌지시 사비강에게 물었다.

“혹시 관주께서는 마음에 걸리는 것이라도 있습니까? 혹, 정보에 대한 신뢰도가 떨어진다거나….”

사비강이 고개를 저었다.

“적어도 납치당한 무인들이 그곳에 갇혀 있다는 것만은 확실하오.”

“하면 무엇이 문제입니까? 여기 계신 분들의 의견대로 당장이라도 작전을 세워서 쳐들어가면 되지 않겠습니까?”

“나는 문제라고 말한 적이 없소만.”

“그렇지요. 다만 관주님의 반응이 평소와 다른 것 같아서 말입니다.”

사비강이 웃음을 지었다.

확실히 총군사는 눈치가 빠른 자였다.

사비강이 솔직하게 말했다.

“사실 그곳이 강림지인지는 정확하지가 않소.”

“하지만 이미 진짜 강림지와 흡사하게 꾸며 놓은 가짜 강림지를 직접 보지 않았습니까?”

“물론 그랬소. 하지만 그런 곳이 한 군데 더 있다고 해도 문제될 건 없지. 마령교는 이번 일에 모든 걸 걸고 있으니.”

“하면, 이번에도 함정일 가능성이 있다는 말입니까?”

“그렇소. 물론 납치된 무인들이 그곳에 있다는 것만큼은 진짜지만.”

“가짜일 가능성은?”

“오 할. 반반이오.”

한 마디로 전혀 예상하지 못하겠다는 뜻이다.

뜻밖의 반응에 장내가 술렁거렸다.

평소 사비강이었다면 일단 치고 보자는 식으로 나왔을 것이다.

마침 안강문주(安康門主) 정욱진(鄭旭鎭)이 눈썹을 성큼 치켜 올리며 말했다.

“그곳이 강림지가 아닐지는 모르나, 천강곡에서 치료 중이던 무인들이 잡혀 있다는 건 사실이라고 하지 않았소? 하면, 응당 그들을 구출하기 위해서라도 작전을 세워야 합니다!”

사실 그가 이토록 강하게 주장하는 이유는, 그의 아들인 정위학(鄭偉鶴)이 천강곡에서 치료를 받던 중 마령교에게 납치를 당했기 때문이었다.

그 뿐만 아니라, 이곳에 모인 대부분의 지파 수장들은 그런 사연들을 하나씩 가지고 있었다.

“나 또한 정 문주님의 말씀에 찬성하는 바요! 신중할 때가 있고, 신속할 때가 있는 법! 지금은 신중보다 신속해야 할 때요!”

“옳소! 본맹은 약자를 보호하고, 악을 물리치는 일에 뜻을 두고 있습니다. 분명히 그곳에는 약자가 잡혀 있고, 악의 무리가 득실거린다니 더 이상 지체할 까닭이 없습니다!”

“비열한 새끼들! 부상자들을 노리다니!”

다시 한 번 투지 가득한 목소리가 여기저기에서 울려나왔다.

이번만큼은 사비강도 별 달리 말을 꺼내지 않았다.

그가 확실하게 결단을 내리지 못하는 이유는 단지 기분 탓이었다.

어딘지 모를 위화감.

하지만 그 위화감의 정체를 정확히 알 수가 없다.

이런 적은 그도 처음이었기에 스스로가 낯설 정도였다.

분명한 것은 그곳에 천강곡의 환자들이 잡혀 있다는 점이다.

마침 지파의 수장인 늙은 남자가 목청을 높이며 사비강을 비아냥거렸다.

“멸마관주께서 지닌 무공 실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고 들었소. 한데 무엇이 그리 겁난단 말이오? 그렇게 강하다면서도 함정에 빠져 죽을까 봐 겁나는 거요? 그것이 아무리 옳은 일이라도?”

사비강이 그를 빤히 바라보더니 허리춤에서 베르타스를 뽑아 들었다.

곧이어,

슈콰아악!

베르타스를 수직으로 내리꽂듯이 던지자 단단한 바닥에 손잡이까지 푹 박혀 들었다?

그 어마어마한 위력에 주위 사람들이 입을 딱 벌리고 바라보았다.

사비강이 싸늘하게 식은 시선으로 말했다.

“난 어디에서도 죽지 않을 거요. 그만큼 강하니까. 하지만 당신들이 문제요. 좀 더 최악의 경우를 가정해 볼까? 일이 잘못되면 아마 나 빼고 모두 시체가 될 수도 있을 거요.”

“그런…!”

늙은 무인이 뺨을 씰룩이며 몸을 가늘게 떨었다.

그야말로 광오한 표현이었다.

하나 그가 떠는 것은 분노 때문이 아니었다.

사비강의 싸늘한 눈빛을 보면서 건조하기 짝이 없는 말을 듣다 보니 저도 모르게 두려움이 스멀스멀 번져 온 것이다.

사비강은 속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문제는 내가 아냐. 너희들이지.’

자신만 살고 모두가 죽으면 무슨 의미가 있겠나?

그건 또 다른 의미로 전생의 반복일 뿐.

혹시 이런 기분이 드는 건 존야 때문일까?

이번엔 그가 나설 테니까?

글쎄, 모르겠다.

구윤이 나직이 물었다.

“만약 본맹이 공격했는데, 그곳이 진짜 강림지가 아닐 경우에는 어떻게 됩니까?”

“아마 강림 의식을 시간 내에 막지 못할 거요.”

그렇다.

이 부분도 한몫하고 있다.

여곤의 말에 의하면 현재 강림 의식은 팔 할 이상 진행되었다고 했다.

곧 마무리가 된다는 뜻이다.

무랑을 통해서 확인해 봤지만, 그가 거짓말을 하는 것은 아니었다.

다만…

‘마령교가 수뇌 인사인 여곤에게마저 진실을 왜곡해서 알렸다면?’

즉, 그럴 땐 여곤의 진술을 완전히 믿을 수도 없다는 뜻이다.

이쯤 되자 장내에서도 신중론을 제기하는 자들이 생겨났다.

장시간 격론이 이어지자 언쟁을 넘어 감정적으로 주고받는 대화가 됐다.

스르르릉!

마침내 울분을 참지 못한 정욱진이 검을 뽑아 들더니 성큼성큼 나섰다.

신중론을 제기하던 수뇌 인사들의 표정에 경악이 서렸다.

“무, 무슨 짓이오? 정 문주!”

“진정하시오! 어찌 이런 자리에서 검을 뽑아 든단 말이오?”

정욱진은 붉어진 눈시울로 소리쳤다.

“시끄럽소! 당신들 자식이 병중에 납치를 당해도 이처럼 신중할 수 있소?”

“하지만 이건…!”

“만약 내 목숨을 버려서라도 부상자들을 생환시킬 수 있다면, 그리할 생각이오! 여기서 내가 목숨을 던져 의지를 표하겠소!”

“정 문주! 그만…!”

경악에 찬 외침이 이어졌지만, 정욱진의 빠른 반응을 누구도 막지는 못했다.

푸욱!

할복(割腹)이었다.

자신의 배에 장검을 쑤셔 박은 정욱진은 초승달 모양으로 그어 올리기 시작했다.

모두가 너무 놀라서 돌처럼 굳어 버렸을 때,

탁!

바람처럼 다가선 한 남자가 그의 손목을 잡았다.

“이것 놓으…!”

“무모한 짓은 그만 두시오.”

사비강이었다.

그가 얼른 손을 뻗어 정욱진의 혈을 점해 지혈했다.

탁탁탁!

곧이어 정욱진의 배에 박힌 검을 쑤욱 뽑아내고는 곧바로 품에서 힐링 포션을 꺼내 부었다.

“어서 의원을!”

사비강이 소리치자, 잠시 후 의원 여럿이 장내로 달려 들어왔다.

“지금이라면 늦지 않을 거요. 서두르시오.”

“알겠습니다!”

의원들이 정욱진을 들쳐 업고 빠르게 장내를 빠져나갔다.

한바탕 소란이 일어난 후여서 그런지 장내의 분위기는 더없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그리고 자연히 토벌대와 구조대를 당장이라도 급파하자는 주장이 힘을 얻기 시작했다.

마침내 능운파가 입을 열었다.

“결론을 내리겠소.”

순간 장내가 쥐죽은 듯 조용해지면서 사람들의 시선이 맹주에게 향했다.

능운파가 지엄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뜻밖의 사고가 있었소. 안강문주의 무모한 행동을 옹호하거나 지지할 생각은 없소. 하나, 그의 절실함에 내 마음이 움직이지 않았다면 그 역시 거짓일 거요. 조금 전 안강문주처럼 천강곡에 있던 부상자들은 우리 모두의 자식이거나 부모, 형제일 수도 있었소. 이에 맹주로서 무한한 책임을 느끼는 바요.”

잠시 말을 끊은 능운파가 심호흡을 하고는 다시 입을 열었다.

“강림 의식을 막지 못하면 분명 무림엔 더 큰 위기가 닥칠 거요. 하나, 본맹은 보이지 않는 위험이 두려워, 눈에 보이는 불의를 참고 넘길 수 없소. 마령교에게 납치당한 부상자들을 두고 마냥 시간을 지체할 수는 없는 일이오. 대의를 위해서 희생이 불가피하다는 식의 사고는 언제나 비열한 자들의 변명이었고, 핑계거리에 지나지 않았소. 본맹은 그들과 분명히 다르오. 해서, 본맹은 이 시간부로 구출대와 토벌대를 구성하여 납치당한 부상자들을 구하고, 비열하고 악랄한 적들을 소탕하도록 하겠소!”

“지극히 옳은 결정이십니다!”

“맹주님의 결정을 지지합니다!”

수뇌 인사와 지파의 수장들이 이구동성으로 외쳤다.

능운파는 사비강에게 이해를 바란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지금으로선 이 결정이 최선이라고 생각하네. 하니, 멸마관에서도 빠른 시일 내에 작전에 참여할 토벌대를 구성해 주게.”

마령교에 대해서 제일 잘 아는 멸마관이 작전에서 빠질 수는 없었다.

“알겠습니다.”

사비강은 대답을 하면서도 마음 한 구석이 여전히 개운치가 않았다.

단지 기분 탓일지도 모르지만, 이번 작전에서는 어딘지 위험한 냄새가 나는 것만 같았다.

‘일단은 멸마관으로 돌아가기 전에 한 군데 들러야겠군. 최대한의 방비를 세워야겠어.’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