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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 마교관-435화 (435/670)

# 435

귀환 마교관

435화

뎅그렁!

자운룡이 뭔가에 홀린 사람처럼 검을 떨어뜨렸다.

“정아…?”

“아오오… 오아오…!”

유정이 멍한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리자, 자운룡의 눈가에 맺혔던 이슬이 마침내 굴러 떨어졌다.

“나다, 정아. 나를 알아보겠느냐?”

자운룡이 문득 한 걸음을 옮겼다.

저벅… 저벅…

그가 천천히 다가가자 유정이 차츰 경계하는 표정으로 물러나기 시작했다.

“아아아? 우우?”

“정아…”

자운룡이 울음을 삼키며 다시 한 걸음을 내디뎠다.

그렇게 두 사람의 거리가 서너 장 정도로 가까워졌을 때,

“아아아아아아!”

유정이 갑자기 비명에 가까운 고함을 내지르더니 훌쩍 물러나면서 절지곤충을 온몸으로 쏘아내는 것이 아닌가?

키리리리리리리릭!

시커먼 절지곤충이 마디마디 굽이치며 날아들자, 자운룡은 충격 받은 표정으로 움직이지도 못했다.

마침내 절지곤충들이 그의 몸을 파고들려는 찰나,

“실드!”

파아아아앙!

자운룡 옆에 나타난 사비강이 손을 뻗으며 소리쳤다.

그 바람에 소나기처럼 쏟아져 내리던 절지곤충들은 보이지 않는 막에 부딪치면서 튕겨 나갔다.

투타타타타탕!

“정아…”

넋이 나간 채로 선 자운룡이 멍하니 중얼거렸다.

마디마디 끊어져 나간 절지곤충의 파편들이 바닥에서 퍼덕거리며 녹빛 액체를 쏟아냈다.

“우에에엑!”

곧이어 유정이 무릎을 꿇고 엎드리면서 핏덩이를 토해냈다.

털썩!

다리에 힘이 풀린 자운룡이 그 자리에 무릎을 꿇었다.

온몸이 사시나무처럼 떨렸다.

저런 유정의 모습은 처음이었다.

저절로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미안하다. 미안하다! 내가 널 그렇게 망가뜨렸다! 으흐흑!”

결국 그는 엎드려 오열하고 말았다.

사비강이 그의 곁으로 다가왔다.

“당장 슬픔을 느끼는 것보다 더 간절한 것이 뭔지 생각해라.”

자운룡이 흠칫거리고는 사비강을 돌아보았다.

그가 붉게 충혈된 눈으로 말했다.

“도와주시오. 저 아이를 돌려놓을 수만 있다면 내 무엇이든 하겠소.”

사비강이 자운룡을 빤히 바라보다가 물었다.

“진심인가?”

“내 목숨을 걸어도 좋소.”

“그럼 잘 됐군. 내가 원하는 게 네 목숨이니까.”

“진심이오?”

사비강이 진중한 표정으로 그를 보며 말했다.

“진심이다. 나는 날 속인 인간들을 용서하지 않거든. 언젠가 내게 해가 될 싹이라면 뿌리부터 뽑아야지.”

자운룡이 굳은 표정으로 사비강을 바라보다가 벌떡 일어났다.

그가 손을 불쑥 내뻗자, 바닥에 떨어져 있던 검이 휙 날아들어 손에 잡혔다.

“알겠소. 약속은 지켜 주시오.”

단호한 표정으로 말을 남긴 자운룡이 순식간에 검을 들어 자신의 목을 베었다.

아니, 베려고 했다. 하지만 그 직전,

탁.

사비강이 검신을 손가락으로 낚아채고는 히죽 웃었다.

“실은 농담이야. 이걸로 두 번째 시험도 통과다.”

“무슨…”

“네가 얼마나 진심으로 저 아이를 생각하는지 확인하고 싶었거든. 그래야 나도 널 믿을 수 있을 것 같았고.”

“그렇다면 이제 저 아이를….”

자운룡이 어렵게 말을 꺼내자, 사비강이 고개를 끄덕였다.

“정상으로 한 번 돌려 보지.”

“정말이오? 그게 가능하겠소?”

“뭐, 우리에겐 최고의 술법가가 있으니까.”

그러자 제마각 안에서 무랑이 뚜벅뚜벅 걸어 나오며 툭 던지듯 말했다.

“책임질 수 없는 약속은 함부로 하는 게 아닐세.”

“물론 도사께 모든 걸 맡길 생각은 아니오. 우리에겐 의술의 대가도 있거든.”

말을 마친 사비강이 씨익 웃었다.

**

“에, 에취!”

진백이 창밖을 보며 코를 실룩였다.

‘흐음 누가 내 이야기를 하나? 왠지 몸이 으스스한 것이 불길하군.’

**

“불길한 예감은 늘 틀린 법이 없지.”

진백이 불만 가득한 표정으로 중얼거리고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정말이지 단조롭게 지어진 방이었다.

그 어떤 장신구나 가구도 없는 방.

바로 관주전 지하 수련실이었다.

이곳은 혈사련에서 사비강이 신생각 지하에 지었던 수련실과 무척 흡사했다.

그 수련실 한복판에는 의식을 잃은 유정이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모습으로 누워 있었다.

그리고 진백과 무랑이 좌우에 마주보며 서 있었다.

마침 사비강이 유정의 머리맡으로 다가오며 말했다.

“걱정 마십시오. 저는 언제나 좋은 예감이 정확하니까요.”

“이상하게 자네에게 좋은 예감은 내겐 별로 반갑지가 않더군.”

“너무 그러지 마십시오. 사람 하나 살리는 일인데.”

“언제나 하는 말이지만, 사람 하나 살리는 일이 자칫 사람 둘을 죽일 수도 있네.”

“의술을 익히신 분이 하실 말씀은 아닌 것 같은데요?”

“그만큼 사람 목숨을 대하는 일에 신중하라는 뜻이지.”

사비강이 씨익 웃으며 답했다.

“아무리 엄살을 부리셔도 이번엔 도와주셔야 합니다.”

결국 진백이 한숨을 쉬며 답했다.

“만약 이 일로 내가 죽으면, 장례는 치러 주게나.”

“삼일장으로 지내면 되겠습니까?”

‘이런 독한 녀석…!’

진백이 내심 서운해 하면서 버럭 소리쳤다.

“삼일장이 뭔가? 삼년장은 지내야지!”

“흐음. 그럼 아무래도 마족이 정리될 때까지 장례를 미뤄야겠네요. 시신이 좀 썩어도 용서해 주시길.”

멍한 표정을 짓던 진백이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말을 말지. 말을 말아. 도대체 예전의 그 고분고분하던 사비강은 어디로 갔을꼬?”

“오래 전에 죽었습니다.”

문득 사비강의 표정에 쓴 웃음이 스치자, 진백도 더는 농을 이어 가지 않았다.

무랑이 수염을 쓸며 말했다.

“정말 위험한 일일세. 진 당주의 말대로 이 아이를 살리려다가 자칫 더 위험한 상황에 처할 수가 있네.”

“너무 걱정 마시오. 천해경이 함께 있으니.”

“뭐, 자네야 멀쩡하겠지. 하지만 우린 아니란 말일세.”

“나를 믿으시오.”

사비강이 무랑을 빤히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장례는 확실히 치러 줄 테니까.”

“끄음.”

차라리 안 듣는 게 나았다는 표정을 짓던 무랑이 퉁명스럽게 입을 열었다.

“어쨌거나 이번 일은 시간을 잘 맞춰야 하네. 찰나지간에 생사의 갈림길에 서게 될 테니.”

“알겠소.”

“거듭 말하지만 자네가 위험할 거란 말이 아닐세. 자칫하면 나와 진 당주가 위험해질 걸세.”

“기억해 두지.”

“이걸로 자네는 몽계에 또 들어가게 되겠지만 시간은 아주 짧아. 그야말로 순식간에 들어갔다가 번개처럼 돌아와야 하네. 그리고 늘 그렇듯이 기회는 딱 한 번뿐일세. 그 순간을 놓치면 이 아이는 영영 돌이킬 수 없게 되네. 몽계에서는 단 한 순간의 망설임도 보여서는 안 될 것이야.”

“명심하겠소.”

무랑이 표정을 굳히고는 심호흡을 했다.

“자, 그럼 시작하지.”

다음 순간,

쩡!

무랑이 지팡이로 바닥을 찍으며 알아듣기 힘든 주술을 읊기 시작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그의 목소리가 지하 수련실에 공명하듯 울려댔다.

먼저 뱉은 말이 뒤에 뱉은 말과 뒤섞이면서 묘한 울림을 더하고 있었다.

마침내 주술이 막바지에 이르고 그의 목소리도 점점 고조되자, 바닥에 그린 술법진이 환한 빛을 품기 시작했다.

점점 빨라지던 무랑의 주술이 거짓말처럼 딱 멈춘 순간,

화아아아아악!

강렬한 빛이 바닥에서 솟구쳐 오르더니 네 사람을 순식간에 집어 삼켰다.

**

깊은 산중의 너른 들판.

유정은 들판 한쪽에 핀 꽃 한 송이를 보고는 자운룡에게 물었다.

“사부님, 이 꽃 좀 보세요. 정말 예쁘지 않아요?”

“예쁘구나.”

“혹시 이 꽃 이름이 뭔지 아세요?”

“글쎄다. 잘 모르겠구나.”

“그래도 상관없어요. 들꽃은 그래서 들꽃이니까요. 사부님, 저는 다음 생에 다시 태어난다면 깊은 산속에 핀 들꽃이 되고 싶어요. 햇살의 속삭임도 듣고, 바람의 손길도 느낄 수 있도록. 흙내음도 잔뜩 마시고.”

자운룡이 유정을 가만히 바라보며 미소 지었다.

“너는 참 알다가도 모를 아이구나.”

“그럴 리가요. 사람들이 저를 보고 정말 단순하다고 하는 걸요.”

유정이 밝게 미소 지으며 돌아섰다.

그런데…

“사부님?”

조금 전까지만 해도 대화를 나누던 자운룡이 어디에서도 보이지 않았다.

“사부님? 어디 계세요?”

그때 또 다시 들리는 목소리.

“너는 정말 알다가도 모를 아이구나.”

“사부님?”

목소리를 쫓아서 휙 돌아선 유정.

하지만 역시 자운룡은 보이지 않았다.

쿠르르릉.

조금 전까지만 해도 맑았던 하늘은 어느새 잔뜩 낮아져 울음을 토하고 있었다.

툭. 툭.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사부님! 어디에 계세요? 사부님! 사부님!”

유정의 목소리가 점점 절박해졌다.

하지만 자운룡은 끝내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사부…!”

애타게 소리치던 유정이 흠칫거리고는 손에 묻은 빗물을 보았다.

‘피…!’

놀랍게도 하늘에서 떨어져 내리는 것은 핏빛 비였다.

마침 핏빛 연무 너머에서 그림자가 저벅저벅 걸어왔다.

자운룡이었다.

“사부님!”

반갑게 달려가려던 유정이 멈칫거리고는 한 걸음 물러났다.

어딘지 자운룡이 평소와 너무 달랐던 것이다.

“너는 정말 알다가도 모를 아이구나.”

“사부님?”

“알다가도 모를 아이는… 나쁜 아이란다. 고로 너는 혼나야 한다아아!”

느닷없는 고함소리와 함께 자운룡의 전신에서 절지곤충 수백 마리가 튀어나왔다.

키리리리리리리리릭!

“꺄아악!”

소스라치게 놀란 유정이 몸을 돌리고 달리기 시작했다.

키리릭! 키릭! 키리리리리릭!

절지곤충들이 무서운 속도로 그녀의 뒤를 쫓기 시작했다.

**

“반응이 왔다! 이제 언제든 몽계로 들어갈 수 있도록 준비하게!”

무랑이 버럭 소리 지르면서 손바닥을 유정의 단전 부위에 가져다댔다.

우글우글.

절지곤충들이 단전의 얇은 피부 안에서 바글거리는 것이 여실히 보였다.

끼릭. 키리릭.

몇몇 절지곤충들은 단전의 피부를 찢고 튀어나오다가 이내 다시 단전으로 기어들어가곤 했다.

“끄음… 징글징글하군.”

지켜만 보던 진백이 신음처럼 중얼거렸다.

지렁이처럼 가느다란 절지곤충 수백 마리가 마구 우글거리며 표피를 따라 점점 이동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작은 녀석들이 튀어나올 때는 어찌 그리 커지는지 신기하군.”

진백이 다시 한 번 혀를 내두르며 중얼거렸다.

물론, 그에 대한 설명은 사비강에게 이미 들었다.

일시적으로 공력을 야분으로 삼아 찰나지간에 성장하는 것이라고.

하지만 역시 마물을 처음 보는 진백에게는 무척 생소할 뿐이었다.

수백 마리의 절지곤충들이 우글우글 이동하자, 손바닥을 갖다 댄 무랑의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이 녀석들을 저지하기가 어렵네!”

무랑의 말대로 피부 아래의 절지곤충들은 명치를 지나, 가슴으로, 쇄골을 지나 목을 타고 귓불 뒤까지 오르고 있었다.

마침내 관자놀이 부근까지 불룩 솟아올랐을 때,

“진 당주! 당신 차례요!”

무랑이 버럭 소리치니, 진백이 얼른 침을 꺼내 유정에게 놓기 시작했다.

제일 먼저 관자놀이에 일촌 이푼의 깊이, 그 다음 정수리에 오푼의 깊이로, 콧등과 눈가, 이마에도 차례로 침을 찔러 갔다.

푹. 푹. 푹. 푹!

그렇게 이동로가 차단되자 유정의 얼굴은 수백 마리의 벌레들이 우글거리면서 차마 두 눈 뜨고 볼 수 없을 만큼 흉측하게 일그러졌다.

마지막으로 목 부위까지 침을 찔러 넣은 진백이 소리쳤다.

“이제 됐소!”

이걸로 당장 흡혼충들이 뇌를 파고드는 상황은 막은 셈.

그제야 무랑이 손을 거두고는 빠르게 부적을 그려 나갔다.

무랑이 진백을 힐끗 보고는 물었다.

“얼마나 버틸 것 같소?”

“아주 잠깐일 뿐이오!”

무랑의 손길이 더욱 빨라졌다.

마침내 무랑이 부적을 완성하자, 사비강의 이마로 휙 날려 보내며 소리쳤다.

“자, 다녀오게! 명심해! 재빨리 해결하고 나오지 않으면 나와 진 당주 모두가 죽어 있을 걸세!”

척!

부적이 사비강의 이마에 날아가 붙자, 밝은 빛이 쏟아져 나왔다.

무랑이 외쳤다.

“몽계에 들어가자마자 유정의 안식처부터 찾게! 거듭 말하지만 최대한 서둘러야 해! 시간을 맞추지 못하면 모두가….”

결국 사비강은 그의 목소리를 끝까지 듣지도 못한 채 빛 속으로 완전히 잠겨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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