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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 마교관-434화 (434/670)

# 434

귀환 마교관

434화

저만치 멸마관이 내려다보이는 언덕 위.

사비강이 걸음을 멈추고는 눈을 지그시 감은 채 바람을 느꼈다.

어쩐지 기분 좋은 바람결이었다.

그가 희미한 웃음을 머금고는 옆에 선 유정을 돌아보았다.

유정은 여전히 뭔가에 홀린 듯 멍한 표정이었는데, 중요 부위만 겨우 가린 속곳에 제 몸보다 훨씬 큰 장삼을 어깨에 두르고 있었다.

애초에 사비강은 이곳으로 오는 동안 그녀에게 제대로 된 옷을 사서 입혔지만, 걸핏하면 절지곤충이 살을 찢으며 튀어나오는 바람에 옷이 남아나지 않았던 것이다.

사비강이 유정을 힐끔 보더니 손가락으로 멸마관을 척 가리키며 말했다.

“저기다. 앞으로 네가 지내게 될 곳이.”

“아아… 오오… 아….”

유정이 멍한 표정으로 반응했다.

“너만큼이나 상처가 많고 독특한 녀석들이 지내고 있지.”

“아아… 어어…”

“가자. 너도 좋아하게 될 녀석들일 거다.”

말을 마친 사비강이 성큼성큼 걸음을 내디뎠다.

그렇게 얼마나 이동했을까?

저만치 언덕 아래에서 은발의 여인이 해맑은 목소리로 외치며 달려왔다.

“서방니임! 왜 이렇게 늦으셨어요? 소녀가 얼마나 기다렸다고요! 아이차암!”

경공술을 펼쳐 한달음에 달려온 그녀는 바로 설서린이었다.

사비강이 시큰둥한 표정으로 그녀를 보다가 손을 들어 올리고는 무감히 중얼거렸다.

“파이어볼.”

그 순간,

화르르르륵!

손바닥 앞에서 뜨거운 불덩이가 생성되더니 그대로 설서린을 향해 날아가는 것이 아닌가?

때마침 허공으로 도약해서 날아들던 설서린은 미처 불덩이를 피하지 못하고 호신강기를 피워 올렸다.

콰아앙!

곧 요란한 소리와 함께 불길에 휩싸인 설서린이 저만치 나가떨어졌다.

“으윽!”

신음을 흘리며 겨우 중심을 잡은 설서린의 모습은 그을음이 잔뜩 묻어 있었음에도 본연의 아름다움을 잃지 않고 있었다.

타앙!

순간 그녀가 마칸의 꼬리로 땅바닥을 때리더니 살기를 피워 올리며 날아들었다.

“역시… 가질 수 없을 바엔 부숴 버리겠어!”

촤르르르르륵!

마칸의 꼬리가 마치 살아있는 생명체처럼 굽이치며 사비강에게 날아들었다.

“흥! 절 원망하지 마세요, 서방님! 전 서방님의 시체라도 독차지할 거니까요! 내 옆에 평생 누워서 사랑받도록 해드릴게요!”

듣기만 해도 무시무시한 말을 쏟아내며 날아드는 설서린!

그때였다.

키리리리리리릭!

갑자기 하늘이 시커멓게 물든다 싶더니, 사비강의 등 뒤에서 수백 마리의 절지곤충이 날아와 설서린을 공격하는 것이 아닌가?

“헛!”

졸지에 나타난 마물을 보고 설서린이 헛바람과 함께 마칸의 꼬리를 횡으로 휘둘렀다.

화르르르르륵!

불이 붙은 마칸의 꼬리가 날아들던 절지곤충들을 순식간에 절단내 버렸다.

철벅! 처벅!

불붙은 절지곤충들의 파편이 바닥에 떨어진 채 파닥거리다가 이내 잠잠해졌다.

동시에 성큼성큼 물러난 설서린은 사비강 뒤에 선 유정을 보고는 눈살을 팍 구겼다.

“이건 또 뭐…”

“쿠웨에에엑!”

설서린이 뭐라고 하기도 전에 유정이 느닷없이 무릎을 꿇고 엎드리더니 검붉은 핏덩이를 한 차례 토해냈다.

설서린이 유정을 가리켜 삿대질을 하며 뭐라고 하려는 순간,

퍼억!

느닷없이 날아든 묵직한 발길질에 뒤통수를 얻어맞은 그녀가 그대로 앞으로 고꾸라졌다.

쓰러진 그녀를 짓밟으며 당찬 미소를 짓는 여인은 다름 아닌 목단화였다.

두 사람은 멸마관이 개관한 이래로 단 한 번도 사이좋게 지낸 적이 없었는데, 특히 사비강 앞에서는 그 정도가 매우 심했다.

“오셨어요? 관주님.”

“그래… 마중을 나온 것이냐?”

“물론이죠. 주제도 모르고 설치는 기녀가 관주님을 어떻게든 꼬셔 보려고 혈안이 되어 있으니까요.”

말을 뱉는 목단화의 시선이 발아래에 깔린 설서린에게 힐끔 향했다.

사비강이 입매를 비틀며 물었다.

“뭐… 그렇다고 치자. 그런데 그게 너와 무슨 상관이지?”

“그거야… 뭐… 존경하는 관주님이 잘못된 길로 빠지지 않도록 돕는다고나 할까…?”

“아무래도 뭔가 역할이 바뀐 것 같은데.”

대답이 궁해진 목단화가 눈을 이리저리 굴리다가 마침 유정에게 시선이 닿았다.

유정은 조금 전 온몸으로 절지곤충을 쏘아낸 탓에 옷이 걸레처럼 너덜너덜 찢어진 상태였다.

아무렇게나 찢어진 장삼 안으로 아찔한 곡선을 그리는 몸매가 여실히 드러났다.

“어디서 또 저런….”

목단화가 가볍게 한숨을 내쉬고는 뭐라고 말하려는 순간,

“오셨습니까? 관주님!”

묵직한 소리에 뒤를 돌아보니 당이협이 수하들을 이끌고 나타나 한쪽 무릎을 척 꿇으며 인사를 올렸다.

“관주님을 뵙습니다!”

그들의 우렁찬 인사가 끝나자, 그들 틈에서 한 여인이 사뿐사뿐 걸어 나왔다.

총관 매설란이었다.

그녀의 걸음 하나하나에서 기품이 느껴졌다.

언제부턴가 그녀는 보통 사람들과 다른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다.

함부로 대할 수 없는 모종의 위엄이라고나 할까?

무공의 경지가 상승하면서 자연히 생각도 변했고, 생각이 변하니 행동거지가 달라지고 분위기마저 바뀐 것이다.

어쨌거나 그런 그녀가 사비강에게 다가가자, 목단화와 설서린은 자신들도 모르게 주춤 한 걸음 물러서고 말았다.

사비강 앞으로 다가선 매설란이 빙그레 미소 지으며 말했다.

“왔어?”

사비강이 매설란의 손을 맞잡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다녀왔어. 오늘따라 멸마관의 전경이 보기 좋군.”

멸마관을 힐끔 본 사비강이 다시 매설란에게 시선을 던지며 말을 이었다.

“고마워.”

매설란은 그가 무슨 말을 하는 것인지 잘 알 수 있었다.

자신이 멸마관을 비운 동안, 많은 일이 일어날 것이라는 것을 예측한 사비강이었다.

매설란과 무랑에게 대략의 상황을 설명하긴 했지만, 어찌 불안하지 않았을까?

지금까지 모든 걸 혼자 해결해 오던 그가 아니던가?

그러다가 이번에야말로 처음으로 타인에게 모든 걸 내맡겨 본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여느 때와 다름없는 멸마관의 전경을 보게 되니 어찌 반갑지 않을까?

매설란이 싱긋 웃으며 대꾸했다.

“적어도 당신에게 의지하는 여자가 아닌, 당신이 의지할 수 있는 여자가 될 거야.”

“이미 난 당신에게 의지하고 있어.”

두 사람의 시선이 허공에서 한참이나 얽혔다.

그 시선에는 그 어느 때보다도 많은 말과 감정이 담겨 있었다.

“아아아… 오오… 옹아…!”

분위기 파악 못하고 끼어드는 유정의 목소리.

세 여인의 시선이 그녀에게 향하는데, 사비강이 주변을 둘러보다가 물었다.

“자운룡 교관은?”

“지금은 제마각에. 다행히 자운룡 교관이 협조하는 바람에 모든 게 수월해졌지.”

“그랬군.”

“그보다 배고프진 않아? 먼 길을 다녀왔으니 오늘 내가 특별한 요리를….”

“아아아아! 오오오오! 우어우어…!”

유정이 갑자기 날벌레를 쫓아 이리저리 뛰며 소리를 질러댔다.

매설란이 그녀를 다시 한 번 슬쩍 보고는 말을 이었다.

“아무튼 내가 할 말은 내 생에 처음으로 당신을 위해 요리를….”

“우우우우! 아오오오오!”

다시 한 번 끼어드는 유정의 목소리.

매설란은 이마에 핏대가 서는 걸 간신히 참으며 심호흡을 하고는 또박또박 말을 이어 갔다.

“잡설은 그만 두고 가자! 내가 오늘 특별히 맛있는 요리를….”

“아우우우우우우!”

순간 매설란과 목단화 그리고 설서린이 동시에 사비강에게 바짝 다가서며 빽 소리쳤다.

“대체 저년은 또 어디서 주워 온 거죠?”

**

의자에 묶인 채 앉아 있는 여곤은 온몸이 피투성이였다.

의식을 잃고 입을 헤 벌린 그의 입가에서는 피가 섞인 침이 걸쭉하게 늘어졌다.

자운룡이 차가운 시선으로 여곤을 보며 중얼거렸다.

“이런 방법으로는 놈이 절대 입을 열지 않을 겁니다.”

“어찌 그리 장담하는가?”

무랑의 질문에 자운룡이 차갑게 식은 표정으로 대꾸했다.

“놈은 마령교도의 수뇌입니다. 보통 독해서는 그 자리에 오를 수가 없지요.”

“자네처럼 말인가?”

무랑의 의미심장한 질문에 자운룡이 쓴 웃음을 지었다.

“저보다 더 독할 겁니다.”

“하긴. 그건 그럴 지도 모르겠군. 그러니 자네도 모르는 강림지에 대해서 이자는 아는 거겠지.”

두 사람은 현재 여곤으로부터 강림지의 위치에 대해 자백을 받으려고 하는 중이었다.

하지만 여곤은 어지간한 고문에도 끄떡하지 않고 입을 다물고 있었다.

그렇게 서른두 번째 의식을 잃었을 때, 무랑은 고문을 중지하고 자운룡과 함께 이곳으로 와 본 것이다.

자운룡이 무랑을 돌아보며 말했다.

“그러니 자백술 같은 걸 사용하시지요? 도사께서는 술법의 대가이시니, 놈의 기억 속으로 들어가는 방법도 있지 않습니까?”

무랑이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누군가의 기억 속으로 들어가는 일이 그리 쉽지만은 않네. 특히 그 대상이 의지를 가지고 그걸 거부할 경우에는 더욱 심하지.”

“하지만 도사께선 가능하지 않습니까?”

“뭐, 부정하진 않겠네. 다만….”

무랑이 허연 눈썹을 슬쩍 들어 올리고는 여곤을 보았다.

“이자에게는 불가능해.”

“어째섭니까?”

“내가 술법을 이용해서 기억을 보려고 하면 이자는 곧바로 죽어 버리고 말걸세.”

“금제가 걸려 있군요!”

“그렇네.”

마령교에서 걸어 놓은 금제다.

물론 술법의 대가인 무랑이 마음먹고 이 금제를 풀고자 한다면 못할 건 없으리라.

다만 시간이 문제다.

일 년이 걸릴지, 이 년이 걸릴지 알 수가 없다.

최소한 반 년 이상은 걸릴 것이다.

그럼 의미가 없다.

강림지는 그 전에 발견해야 한다.

무랑이 한숨을 쉬다가 문득 자운룡을 돌아보며 물었다.

“자네는 정녕 강림지에 대해서 아는 바가 없는 건가?”

“지금 나를 의심하는 거요?”

“아서, 여기까지 온 자네가 무엇을 숨기겠나? 보아하니 기억이 봉인 된 것도 아닌 것 같은데. 다만, 은면인 자네도 모르게 강림지를 골랐다면, 쉽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물어본 거네.”

“난 모르오. 내가 교와 갈등을 빚고 나서부터는 대업의 중요한 일마다 날 제외시켰소.”

그때였다.

“무랑도사, 안에 있습니까?”

문득 밖에서 사비강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이 아닌가?

자운룡이 무랑보다 먼저 반응했다.

그가 얼른 밖으로 달려 나가 사비강을 보자마자 물었다.

“사비강 관주! 그곳에서 한 아이를 보지 못했소? 무랑도사께 이미 들었소! 당신은 그 아이를 몽계에서 봤다던데! 내가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알지 않소?”

사비강이 자운룡을 빤히 보더니, 귀를 후비며 말했다.

“그전에 먼저 사과를 해야 순서가 아닐까?”

“미안…하게 됐소.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과정이야 어떻든 결과만 좋으면 된다는 건가?”

“그건 아니지만….”

“과정이야 어떻든 결과적으로 그 아이는 날 죽이려고 했다. 그런데 내가 그 아이를 봐 줄 필요가 있을까?”

“설마…”

“아, 아이라고 말하기에는 꽤나 성숙한 여인이더군. 뭐, 아무튼 나는 날 죽이려는 자를 상대로 자비를 베풀진 않아.”

순간 자운룡의 표정이 흠칫 떨렸다.

그가 주춤 물러나며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설마…?”

“그래, 죽였다. 그 여자를.”

“그런…! 이… 이…!”

“내가 그 여자를 살려야 할 이유가 없잖아? 결과적으로 날 죽이려고 달려드는데? 음? 이봐. 내 말 듣고 있는 건가?”

하지만 자운룡은 고개를 푹 숙인 채 꿈쩍도 하지 않았다.

대신 그의 전신에서 살기가 휘몰아치면서 거대한 태풍을 만들어냈다.

휘아아아아아앙!

자운룡의 머리카락이 한 올 한 올 허공으로 떠올랐다.

한참이 지나서야 자운룡이 고개를 들고 귀신같은 표정으로 사비강을 노려보았다.

“노옴. 죽여 버리겠다!”

파아앙!

찰나, 자운룡이 사비강 눈앞에 나타났다.

소위 눈 깜빡할 사이라는 건 이럴 때 쓰는 말이리라.

쒸에에에엑!

한 줄기 섬광이 무서운 속도로 사비강의 목을 노리고 날아들었다.

따앙!

어느새 뽑혀 나온 베르타스가 자운룡의 검을 막아내고 있었다.

“크으으으! 사비가아아앙!”

“귀 안 먹었어.”

두 사람의 얼굴이 서로의 숨결마저 느낄 수 있을 정도로 가까워졌다.

마침 사비강이 싱긋 웃더니,

“통과다.”

“뭣이?”

다음 순간,

“아아아아?”

사비강의 뒤에서 들린 목소리.

동시에 자운룡은 온몸이 굳어 버린 것처럼 그 상태에서 움직일 수 없었다.

대신 눈알을 굴려 사비강 뒤에 선 여인을 바라보았다.

“……!”

고개를 갸웃거리고 선 여인.

그녀와 시선을 마주친 순간, 분노로 가득했던 자운룡의 두 눈에 이슬이 맺혔다.

“정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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