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32
귀환 마교관
432화
“해서 관주님의 뜻에 따라 자네에게 술법을 걸게 되었네.”
무랑이 말을 마치자, 자운룡이 쓴 웃음을 지으며 중얼거렸다.
“역시 쉬운 자가 아니군. 사비강 관주. 정말 대단해.”
그는 진심으로 감탄하고 있었다.
사비강이 자신의 정체를 눈치 채서 그런 게 아니다.
그걸 알고도 이렇게 완벽하게 자신을 궁지로 몰아넣을 계획을 세웠다는 게 놀라울 따름이었다.
보통의 경우 간자라는 사실을 알았다면 그 즉시 생포해서 문초를 하려고 했을 것이다.
‘결국 사비강의 손바닥에서 놀아난 셈이었나?’
허탈한 웃음이 흘러나왔다.
주변을 둘러보는데 마침 둘러싼 무인들 중에서 능소소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눈이 마주친 능소소가 한 걸음 다가서며 물었다.
“정말인가요? 그게… 사실인가요? 자운룡 교관님이 마령교도라는 게?”
그녀는 여전히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어쩐지 유정의 마지막 얼굴이 떠오르는 바람에 자운룡은 차마 그녀의 시선을 마주하지 못하고 외면했다.
“속여서 미안하오.”
무랑이 자운룡을 물끄러미 보며 물었다.
“어떤가? 여전히 그 마음은 같은가? 이제 결정을 내려야 할 시간이네.”
“이미 말했다시피 내 대답은 된 것 같소만.”
자운룡의 표정이 굳어졌다.
그러자 한쪽 곁에서 지켜보던 매설란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다가왔다.
“좋아요. 그럼 이제 말해 주시죠. 옥마단은 지금 어디에 있나요?”
자운룡이 착 가라앉은 시선으로 매설란을 바라보았다.
“계책이라도 있소?”
매설란이 옆을 돌아보고 명했다.
“단리 조교. 그것을 가져와.”
단리정이 전서응 한 마리를 데리고 다가왔다.
그걸 본 자운룡의 표정이 흠칫 굳었다.
‘마령응(魔靈鷹)!’
분명 마령교에서 사용하는 전서응이었다.
자운룡이 놀란 눈치를 보이자, 매설란이 희미한 미소를 머금으며 답했다.
“아시다시피 단리 조교의 활 솜씨는 타의 추정을 불허하지요.”
“하지만 어떻게 상처 하나 입히지 않고….”
그러자 이번에는 단리정이 한 걸음 나서며 대답했다.
“화살촉을 뭉툭하게 하여 급소를 맞춰 기절시켰습니다. 물론 지금은 초환당주님이 직접 치료하셔서 그 흔적조차도 없을 겁니다.”
단리정의 말대로 마령응은 겉보기에 이상한 점이 하나도 없었다.
매설란이 다시 말을 이었다.
“어떤가요? 이만하면 좋은 계책이 설 것 같은데. 물론 그대가 협조만 잘 해준다면.”
“좋소.”
자운룡이 굳은 표정으로 대답했다.
**
멸마관 인근의 숲속.
사백 명에 이르는 옥마단원들이 흉흉한 마기를 잔뜩 뿜어내며 도열해 있었다.
커다란 바위 위에는 옥면인 여곤과 부단주가 서 있었는데, 여곤의 심기가 유독 불편해 보였다.
“도대체 은면은 뭐하고 있는 거야?”
여곤이 툴툴거리며 말하자, 부단주가 눈치를 살피다가 조심스레 말했다.
“설마 배신한 건 아니겠지요?”
“설마…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잠깐 생각에 빠졌던 여곤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아무리 그래도 그건 너무 무모하지 않은가?”
“하지만 금면께서 굳이 은마단이 아니라, 본단을 보낸 것도 그런 이유 아니겠습니까?”
“흐음.”
확실히 그건 부정할 수 없었다.
유정이 그렇게 된 이후부터는 교단과 은면 사이에 미묘한 분위기가 흐르긴 했으니까.
여곤이 미심쩍은 표정을 짓자, 부단주가 더욱 목소리에 힘을 주었다.
“어쩌면 지난 번 제단의 소환지에서도 사비강을 죽이지 못한 게 아니라, 죽이지 않은 건 아닐지….”
“어허. 말을 함부로 하는군.”
“죄송합니다.”
부단주가 얼른 고개를 숙여 보였다.
하지만 여곤 역시 생각이 크게 다르진 않았다.
확실히 은면은 ‘유정’이라는 그 아이를 끔찍하게 아꼈으니까.
마치 제 딸처럼 생각하지 않았던가?
‘한낱 계집애에게 정을 주는 바람에 의지마저 흔들리다니. 한심한…!’
어느새 그는 부단주의 말을 사실인 것처럼 생각하고 있었다.
‘유정… 그 아이를 홀로 남기고 사비강과 동귀어진 할 수는 없다고 판단했을 지도.’
여곤의 생각이 깊어지자, 부단주가 다시 한 번 넌지시 부추겼다.
“단주님, 이제는 결정을 내리셔야 합니다. 언제까지 대기할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흐음.”
“지금쯤이면 올가미에 걸린 사비강 쪽도 결판이 났을 테고요. 무엇보다 금면께서 본단을 보낸 이유를 생각해 보십시오.”
확실히 그렇다.
금면인은 은마단을 보내지 않고 굳이 옥마단을 보냈다.
그건 멸마관을 치는 것에 대한 전권을 자신에게 준다는 뜻이나 다름없었다.
비록 은면이 자신보다 직위가 높다고 할지라도.
마음을 굳힌 여곤이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더 이상 기다리지 않는다. 곧바로 멸마관을 치도록 하지.”
“명 받들겠습니다!”
부단주가 포권을 하며 답하는데,
“누구 마음대로 친다는 거지?”
갑자기 등 뒤에서 들려오는 싸늘한 목소리.
두 사람이 흠칫거리고 돌아보니, 자운룡이 바위를 향해 저벅저벅 걸어오고 있었다.
여곤이 노골적으로 불편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대체 어디에서 무얼 하다가 이제 오는 거요?”
“조직 생활을 하면서 몸을 자유로이 빼내는 것이 어디 쉬운 줄 아나?”
“아무리 그래도 잠깐의 짬도 내지 못했다니….”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말을 마친 자운룡이 허공답보를 펼치더니 순식간에 바위 위로 성큼 올라섰다.
여곤이 눈살을 구기며 물었다.
“그만한 이유가 뭐요?”
“멸마관에서 긴급회의가 있었지.”
“긴급회의? 무슨 이유로?”
그러자 이번엔 자운룡이 의외라는 듯 말했다.
“아직 아무것도 모르는 모양이군.”
“대체 뭘 말이오?”
곧이어 자운룡의 입에서 떨어진 말은 그야말로 경악할만했다.
“사비강이 죽었다.”
“뭣이? 그게 정말이오?”
여곤이 깜짝 놀라며 되묻자, 자운룡이 진중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을 이었다.
“사실이다. 해서 멸마관에서는 오늘 밤 모든 교관들과 조교들을 제마각(制魔閣)에 비상소집하여 대책을 세우려고 한다.”
“사비강이 죽었다니… 그럼 금면이 세운 계략이 먹혀들었다는…?”
“그렇다는군. 정도맹주만 겨우 살아서 도망쳤다고 하더군. 뭐, 애초에 금면의 목적이 사비강 하나였으니 맹주가 달아날 수 있었을 테지.”
“그 말 많던 사비강이 죽었다니….”
너무 갑작스러운 소식이었기에 여곤은 쉬이 믿어지지가 않았다.
그런 여곤의 눈치를 살피던 자운룡이 말을 덧붙였다.
“해서, 우리는 오늘 밤 제마각에 교관들과 조교들이 모였을 때를 노린다. 그때까지는 숨도 쉬지 말고 대기하도록.”
그러자 여곤이 조금은 미심쩍은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그게 확실한 정보요?”
“무슨 뜻이지?”
자운룡이 날카로운 눈초리로 여곤을 응시하자, 그가 어깨를 으쓱이며 대답했다.
“뭐, 별 뜻은 없소. 다만 사비강의 죽음이 실감이 나지 않았을 뿐. 게다가 본교에서는 아직 그런 연락조차 없으니….”
그때였다.
삐이이익!
창공에서 매의 울음소리가 들리더니 어디선가 마령응이 나타나 머리 위를 한 바퀴 돌고는 내려서는 게 아닌가?
부단주가 얼른 마령응을 불러들이고는 발목에 매여 있는 서신을 풀어 보았다.
마령교에서만 사용하는 암어가 서신에 적혀 있었다.
빠른 속도로 글을 읽은 부단주의 눈동자가 눈에 띄게 흔들렸다.
“사비강 관주가 혼마에게 당해서 죽었다고 합니다!”
혼마라는 말에 자운룡의 표정이 살짝 떨렸다.
물론 여곤은 그 순간 변했던 자운룡의 안색을 놓치지 않았다.
오히려 그래서 서신의 내용에 더욱 신뢰가 갔다.
여곤이 여유로운 미소를 지었다.
“과연. 그렇게 됐군. 그럼 제마각에서 비상소집 회의를 하는 시각이 언제요?”
“오늘 밤에 토벌대가 모두 돌아온 후, 자정부터 비상회의가 시작될 걸세.”
“그렇군. 하면 자정에 맞춰 기습하도록 하겠소.”
“알겠네. 회의가 시작되면 몸을 빼내기가 쉽진 않겠지만, 내가 외문을 개방하고 신호를 보내도록 하지. 최대한 아무런 마찰 없이 제마각까지 잠입하도록 하게.”
“알겠소.”
여곤이 고개를 끄덕였다.
**
멸마관 전경이 내려다보이는 언덕 위.
여곤이 옆에 선 부단주에게 나직이 물었다.
“준비는 끝났나?”
“옛, 모두 여덟 조로 나누어 팔방에서 동시에 치고 들어갈 예정입니다.”
“굳이 생도들까지 들쑤실 필요 없다. 어차피 머리를 치면 나머지는 알아서 흩어질 테니.”
“알겠습니다. 곧바로 제마각에 접근하는 것을 최우선으로 하겠습니다.”
그때 어두운 경장 차림의 그림자 하나가 옆으로 내려섰다.
그가 한쪽 무릎을 꿇으며 보고했다.
“멸마관의 현재 분위기는 뒤숭숭합니다. 아직까지는 사비강의 죽음을 쉬쉬하는 듯합니다. 경계는 평소와 크게 다를 것 없습니다만, 곧 은면이 문을 개방하고 신호를 보낼 것으로 보입니다. 제마각까지는 무리 없이 진입 가능하며, 소요 시간은 반각으로 예상됩니다.”
그야말로 거저먹기나 다름없는 상황.
반각 안에 옥마단은 제마각을 완전히 포위하고 멸마관의 수뇌 인사들을 모조리 척살할 수 있다는 소리다.
“좋다. 최대한 제마각까지는 마찰을 일으키지 않고 잠입하도록 한다.”
“존명!”
부단주 이하 수하들이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그렇게 자정이 가까워졌을 때, 마침 멸마관 북문에서 횃불이 일렁이더니 둥근 원을 그렸다.
“은면의 신호입니다!”
부단주의 말에 여곤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외쳤다.
“좋아, 가자!”
부단주가 얼른 품에서 뭔가를 꺼내 밤하늘로 던져 올렸다.
쉬이이익!
불빛이 어둠을 찢으며 조용히 날아올랐다.
이제부터 옥마단원들이 팔방에서 잠입을 시도할 것이다.
여곤과 부단주 역시 곧바로 언덕을 달려 내려갔다.
정찰 무인의 보고대로 멸마관의 경계는 허술하기 짝이 없었다.
은면이 손을 쓴 이유도 있으리라.
샤샤샤샤샥! 샤샤샥!
어둠을 가르며 검은 인영들이 빠르게 움직였다.
그야말로 마음 놓고 달리기만 해도 될 정도였다.
‘그야말로 식은 죽 먹기로군!’
이거야말로 차려진 밥상에 숟가락만 얹으면 될 정도가 아닌가?
‘자, 그럼 밥상이 있는 곳으로 가볼까?’
순식간에 외원을 돌파한 여곤은 날렵한 움직임으로 담장을 타고 넘어 내원으로 들어섰다.
하늘 위에서 본 옥마단의 모습은 마치 팔방에서 검은 물결이 휘몰아치며 장원의 중심으로 거침없이 쏟아져 들어가는 듯했다.
이윽고 사방이 탁 트인 공간인 제마각이 드러나자, 검은 경장 차림의 옥마단이 일제히 멈춰 서며 살기를 피워 올렸다.
스스스스슥! 스스슥!
여기까지 잠입한 이상 감출 것은 없었다.
이제는 적들의 심리를 격동시켜 실수를 유발하게 만드는 편이 나았다.
때문에 여곤은 지금까지와 달리 천지가 격동할 만큼 큰 목소리로 외쳤다.
“쳐라!”
“존명!”
우렁찬 대답소리와 함께 사백 명의 옥마단원들이 일제히 검은 경장을 찢어내고는 옥빛 무복을 드러냈다.
동시에 그들이 제마각을 부수며 사방에서 쳐들어갔다.
콰장! 쾅! 쿠당탕!
그런데…
누구보다 앞서서 제마각 안으로 들어갔던 여곤은 텅 비어 있는 회의실을 보고는 흠칫 몸을 떨었다.
“이건…?”
찰나지간,
쒸엑! 쒸에엑!
허공을 가르며 날아드는 화살!
부단주가 얼른 몸을 돌리면서 화살 두 대를 연이어 쳐냈다.
따당!
하지만 마지막으로 날아든 화살은 결국 막아내지 못했다.
퍽!
슈우우우욱, 쿠웅!
화살에 심장이 꿰뚫린 부단주는 그대로 화살과 함께 날아가서는 벽에 처박히고 말았다.
벽에 꽂힌 채로 한 움큼 피를 토한 부단주는 그 자리에서 절명하고 말았다.
그제야 여곤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설마! 함정인가?”
곧이어,
슈슈슈슈슈슉! 슈슈슈슈슈슉!
그는 제마각을 완전히 둘러싸면서 포위하는 수백 명의 무인들을 넋 놓고 보았다.